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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의 난 이후

방방곡곡에서 강을 죽이는 소리가 요란하다. 전국 4개 법원에서 이 강 '죽이는' 사업에 대해 심리하고 있다. 

애당초 기초적인 절차들도 모조리 무시하고 시작한지라, 강을 '살리는' 판결을 받아 낼 수 있을 것이라고 믿긴 하는데, 이놈의 판결은 왜 이리 늦는지 모르겠다. 다 부숴지고 나서 매몰 비용이 크고 '회복 가능한 이익'이 없다고 핑게대는 것은 아니겠지? 이미 새만금 사건 때 대법원이 똑 그랬다. 그걸 노리고 저들은 밤 새워 삽질을 해댔고. 

 

판사들이 어디 진보적이길 바라겠는가마는 자연물을 보는 시각에서는 무식의 정도가 지나치다고 해도 변명할 여지가 없을 것이다. 책상머리에만 앉아 평생 살아서들 뭐가 급한지 안 급한지도 모르는 듯하다. 지난번 공사중지 가처분 신청들이 거부된 걸 보면 그렇다. 이 자들은 수시로 강변으로 산으로 끌고 다니면서 눈알을 씻어주고 뇌를 정화시켜줘야,  무생물과 유기생물에 관한 소송은  일반 민사소송이나 절차 소송과 다르다는 것을 깨우치게 될 것이다.

 

천성산 사건때 '도룡뇽 소송'은 아주 획기적인 발상이었던 것 같은데, 그 뒤로는 별로 이어지는 말들이 없었다. 도룡뇽이 소송 원고가 될 수 있는가? 강이 원고가 될 수는 없는가? 산이 원고가 될 수는 없는가? 자연물과 이해관계가 있음을 인정받아야 소송의 주체가 될 수 있고, 또 그렇지 않으면 파괴적 행위의 절차 위반 정도를 두고 싸울 수 밖에 없는 지금의 논리 구조 속에는, 이번 이명박의 난에서 이기고 난 후에 또 다른 난리꾼이 어디서 산과 강을 파먹겠다고 난리를 피워도 막아낼 든든한 구실이 별로 없다.

 

존 드라이젝에 따르면 인간이 자연과 힘을 합해서 싸울수 있는 좋은 설득 논리가 있다. 가끔 사람들은 모든 법적 권리가 태초부터 있었던 것처럼 착각하는데, 법적 권리는 사회가 인정하고 창설하는 것이다. 아무 생명도 도덕 감정도 없는 기업에게 필요에 따라 인간과 대등한 '인격'을 부여한 것을 보라. 기업이 특별히 보호받는  법적 권리를 자연계가 특별히 갖지 못할 이유는 없다. 그 때 필요한 것은 그  권리를 이행할 조직을 어떻게 논리적인 측면에서, 그리고 실행 차원에서 그럴듯하게 구성해내느냐가 될 것이다.

 

 "환경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권리들을 발전시키기 위한 더 진보적 조치들도 생각할 수 있다. 이러한 배경에서 현재 가장 재미있는 제안 중 하나가 바로 생물종과 자연환경 및 생태계 같은 자연적 대상에 법적 권리를 부여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생물권리(animal rights)' 운동에 즈음해서 대부분의 법학자들과 도덕철학자들은 이러한 권리가 인간이 아닌 실체에까지 연장되는 것에 곤혹감을 느끼는데, 자연적인 객체들이 어떤 도덕적 권리를 갖는가의 문제는 철학자들 사이의 심각한 논쟁거리이다. 현재의 목적에 비춰보면 그러한 질문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으며, 그러한 법적 권리의 존재가 부의 환류와 통합조정기능 같은 생태적 관심에 긍정적인 수단적 가치가 되느냐가 더 중요한 것이다.

 

 분명히 기업은 도덕적 권리를 갖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자본주의 사회의 법률체계는 이를 법인(legal person)으로 취급해 왔으며, 여러가지 이익들 중에서 기업에 대하여 이렇게 특별히 대접하는 것은 시장경제체계의 경제적 합리성을 향상시키기 위한 것이다. 자연계와의 상호작용에 있어서 인간 체계의 생태적 합리성을 증가시키기 위해서 생태계 같은 자연적 객체가 법적으로 '인간화(personhood)' 되지 못할 이유는 없다."(존 드라이젝 지음, 최승 외 옮김, 환경문제와 사회적 선택, 신구문화사, pp.212-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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