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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특별한 워크샵

  • 등록일
    2005/03/12 12:40
  • 수정일
    2005/03/12 12:40
피자매연대, 투쟁과 밥 친구들이 지난 일요일(16일)에 풍동에서 아주 특별한 워크샵을 열었다. 이주노동자 농성단에서 해외 네트워크에 기사를 보내는 일을 맡고 있는 독일인 친구과 캐나다인 친구와 함께 백석역에서 내려 약 10분정도 택시를 타고 어느 벌판 입구에 내렸다. 이미 다른 지역은 새 아파트로 들어차 있었고, 그 곳만 마치 폭탄이 떨어진 것처럼 뻥 뚤린 폐허였다. 경찰이 입구에서 검문검색을 했다.



신분증을 보여달라는 바람에 약 5분간 다소 쓸데없는 실갱이가 벌어졌고, '백인 외국인'을 의식해서인지 결국엔 그냥 통과시켜 주었다. 나중에 알고보니 경찰을 만나지 않고 들어갈 수 있는 길이 사방에 수도 없이 많다는 사실을 알았다.



(이 넓은 벌판에 사방이 길이다. 우리가 만들면 길이다...)

풍동은 철거현장은 여기저기 흙과 깨어진 벽돌, 쓰레기, 가재도구들, 흙에 범벅이 된 인형, 부서진 가구들이 즐비한 것이 마치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건물 몇 채만 남기고 집들이 다 부셔져 있었는데, 그 남은 몇 채 마저도 이미 창문가 문이 다 뜯기고 골격만 앙상하게 서 있었다. 그 가운데 비교적 멀쩡한 집이 두 채가 남아있었는데, 하나는 바로 우리가 가고 있는 풍동 철대위 골리앗이었고 다른 하나는, 나중에 들은 얘기로, 용역들이 기거하며 침탈준비를 할 때 사용한 집이다.





(폐허 속의 산타)



(또 산타)



(또 산타)


살아있는 것은 하나도 없는 듯한 고요함과 폐허, 그런 곳에 사람이 살고 있다는 게 믿겨지지 않았다. 함께 간 친구들이 사진을 찍고 있는 사이, 위에서 누구냐고 묻는 남자 목소리가 들려왔다. 검은 복면을 쓴 사람이 옥상에서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 말로만 듣던 아나키스트 블랙블록이 아닌가! 잠깐 의심하던 사이, 육중하게 잠겨있는 문이 열렸다. 골리앗은 약 6개월 전 철거가 시작되자마자 11가구의 철대위 주민들이 4층짜리 빌라를 점거해서 그 위에 망루를 쌓아올린 일종의 저항의 "요새"였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환한 대낮임에도 불구하고 안은 매우 컴컴했다. 계속된 침탈 때문에 건물내에 있는 창문이란 모든 창문은 두꺼운 판자로 꽉꽉 막아 버렸기 때문이다. 빛도 없고 전기도 끊긴 어둠 속에 고립되어 이들은 무엇을 희망삼아 이토록 오랫동안 투쟁하는 것일까? 대부분의 주민들은 주택공사가 던져주는, 방한칸 전세값도 안되는 700만원을 들고 풍동을 떠난지 오래인데...

방에 들어서자 철대위 위원장님이 약간은 어색해 하며 우리를 반긴다. 오랫동안 주목받지 못하다가 최근 침탈 이후에 MBC니 오마이뉴스니 하는 매체들에서 인터뷰들이 나오니 조금은 얼떨떨한 모습인 듯. 자기소개를 하는 시간. 여성분들 중 반 이상이 60이 넘는 노인분들이라는 게 인상적이었다. 방 안 곳곳에 매직으로 쓴 문구들로 가득 차 있다. 여느 캠페인이나 행사, 시위 등에서 흔히 보는 세련되고 매끈하게 인쇄된 플랭카드니 포스터들과는 전혀 딴판이었지만 그래서 오히려 정겹게 느껴졌다.







아주머니들 다섯 분과 함께 워크샵을 시작했다. 먼저 대안달거리대의 취지에 대해서 설명을 하고 견본을 몇 개 보여주었더니, 덧버선 같이 생겼다며 신기해하시는 분들도 계시고, 새지 않을까 염려하시는 분들도 계셨다. 한분은 철대위 남자분들과 함께 공동생활 하고 있기 때문에 달거리대를 빨기 어려울 거라고 말씀하셨다. 평소 같았으면 월경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니 챙피해하지 말고 당당하게 빨자... 운운했을 터인데, 이 날만큼은 나중에 농성 끝난 다음에 사용하시라는 완곡한 어법으로 대체할 수밖에 없었다.





아주머니들의 바느질 솜씨는 역시나 대단했다. 미리 예상은 했지만, 평소 2시간이 걸리던 워크샵이 1시간 남짓 마무리가 되었다. 바느질을 하는 동안, 아주머니 한 분이 옆에 계시는 할머니께 농담조로 생리도 안하는 분이 무엇 하러 배우시냐고 핀잔을 주니, 나중에 손녀에게 가르쳐 주신다며, 대학 디자인과를 진학한 외손녀가 솜씨가 좋다는 자랑을 한참 늘어놓으신다. 눈이 침침하신 할머니가 바늘에 실을 못 꿰고 있자, 옆에 있던 아주머니가 자신만의 특허라며 바늘 꿰는 방법을 가르쳐주었다. 이 아주머니 이마는 지난번 침탈 때 용역깡패가 쏜 쇠구슬에 맞은 상처가 아물지 않아 빨갛게 피딱지가 앉아 있었다.



(침탈 때 구슬을 맞고 피 흘리는 아주머니)



(여기저기 길에 널부러져 있는 구슬들을 모아놓은 사진. 아이들의 구슬이 깡패들의 손으로 들어가 사람을 헤치는 무기가 된다.)

워크샵이 끝나고 몇몇 함께 간 친구들이 맛있게 부친 야채 부침개를 먹고 나서 건물을 나왔다. 다른 투밥 친구들이 페인트를 가져다가 불에 그을린 건물들 벽을 빨간색, 파란색, 노란색 글씨와 그림으로 장식하고 있었다. 처음 들어와 죽음과 폐허의 장소라고 느꼈던 풍동의 벌판은 왁자지껄한 생명력을 숨기고 있었는지... 경찰을 만날 때부터 답답했던 마음이 다소나마 환하게 뚫리는 듯 했다.  











지금 풍동은 한참 풍동 문화제 준비로 들떠 있다. 주공과 정부가 풍동에게 안겨준 것은 이윤추구를 위한 이런 저런 방식의 죽음과 파괴이다. 그래서 우리의 저항은 자연스레 이런 저런 방식의 삶과 이런 저런 다른 방식의 연대와 축제가 될 수밖에 없다. 그것이 바로 비폭력 직접행동이 아니었던가? 지금은 돌아가신 일본의 아나키스트 무까이 꼬오의 말을 되새겨 본다.

“비폭력 직접행동은 승리를 지향하지 않는다. 오직 지고 또 져도 지지않을 뿐이다... (하지만) 똑같은 방식으로 늘 동일한 식으로 지는 게 아니라 방법을 그때 그때 바꿀 것, 다시 말해서 지는 방법을 바꿀 것, 체념하지 않고 바꾼 방법으로 계속 대처할 수밖에 없다. 잠이 들려고 할 때 귀찮은 파리나 모기 같은 것, 방법을 차례 차례로 조금씩 바꾸는, 와글와글 떠드는 비폭력 직접행동을 재미거리로 즐기는 것이다.”



철거민연대투쟁위원회(준) http://sangdo2.cyworld.com

풍동 지지모임 홈페이지: http://nobreak.gg.g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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