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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랄프 네이더를 지지한 이유

팀 로빈스(Tim Robbins)

더 네이션 2001년 8월6일

 

미국의 유명한 영화배우 팀 로빈스와 그의 부인이자 역시 배우인 수전 서랜던은 지난해 대선에서 녹색당 후보 랄프 네이더를 지지했답니다. 로빈스가 2001년 6월 `업톤 싱클레어 상'을 받는 자리에서 미국의 정치 현실, 민주당의 문제, 세계적인 반세계화 운동 등에 대해 발언한 것입니다. 양심적인 미국 지성인의 진솔한 이야기입니다. 왜 세계화가 문제인지를 쉬운 말로 풀어놓은 썩 괜찮은 글입니다.

 


 

 

나는 뭘 위해 투표했는가 (What I Voted For)

팀 로빈스(Tim Robbins)

 

6월 중순 (영화배우) 팀 로빈스는 로스앤젤레스에서 풀뿌리 조직을 지원하는 리버티힐 재단 (Liberty Hill Foundation)의 연례 저녁모임에서 연설했다. 그의 정치 참여적 영화와 운동에 대한 헌신을 인정해, 이 재단은 그에게 업톤 싱클레어(Upton Sinclair)상을 수여했다. 다음은 그의 발언을 편집한 것이다. -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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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달전 뉴욕의 한 극장에서 흥분한 부부가 나에게 다가왔습니다. 그리고는 "이제 기쁘시겠군요"라고 말하더군요. 그들이 뭐라고 답할지 의아스러워하면서 "뭐 때문에요?"라고 말했죠. "당신의 네이더가 부시를 우리에게 안겨줬잖아요." 내가 랄프 네이더를 지지한 것이 마치 배반이요, 모독이요, 헌법을 희롱한 것과 같은 일이라고 생각하는 성난 자유주의자들의 공격을 받은 것이 물론 처음은 아닙니다. 선거를 앞두고 나와 수전 (서랜던)은 뉴욕타임스의 의견난에서 공격을 받았죠. 네이더 지지를 포기하라는 내용의 협박성 팩시밀리를 유력한 여성운동자에게서 받기도 했습니다. 선거 일주일전에는 할리우드의 유력한 브로커의 전화도 받았어요. 그는 네이더에게 전화해서 사퇴하도록 하라고 종용했습니다. 사퇴하면 자신이 녹색당에 10만달러를 기부하겠다고도 하더군요. 나는 우리가 전화한다고 흔들릴 사람이 아니라고 말해줬죠. 또 이건 개인적 영향력이나 거래를 위한 정치활동이 아니라고 했죠. 녹색당은 그런 기부금을 받지도 않을 거라고 덧붙였습니다. 선거가 끝난 뒤엔, 네이더를 지지한 사람들은 가난한 이들을 걱정하지 않는 최악의 리무진 자유주의자(limousine liberals)라고 비난하는 유명한 배우의 글도 읽었습니다.

 

네이더를 지지하는 것은 쉽지 않았습니다. 동료나 사업 관계자들이 우리에게 분명히 전달한 메시지는 네이더 지지의 대가를 치를 것이라는 점이었습니다. 그럴까요? 전 몰라요. 선거 뒤에 앞에서 말한 할리우드의 거물이 공개적으로 우리 아이 하나에게 훈계를 했습니다. 또 알게 뭡니까, 엄청난 파티에 우리가 초대받지 못했는지.

 

그래서 어쩌자는 거죠? 방어적으로 투표를 하다가 어느 순간 모든 공화당원들은 악마의 화신이라고 깨달은 사람들의 이런 반응을 충분히 이해는 합니다. 제가 좋아하는 사람들이기도 하고요. 8년전에라면 저도 똑같이 나를 설득했을 겁니다. 그러나 그 사이에 내가 생각을 바꾸도록 만든 수많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시애틀 시위 뒤에 친구들과 대화하고 나서, 또 워싱턴시에 수전과 함께 갔다온 뒤에, 국제통화기금-세계은행에 반대하는 활동가들과 대화하면서, 5번가의 갭 상점 앞에서 갭의 노동착취에 대한 전단을 뿌리던 13살짜리 어린이와 대화한 뒤로, 또 클린턴 집권기에 민주당이 꾸준히 우경화하는 것을 지켜보면서, 저는 깨닫게 됐습니다. 이번에는 전략적으로 투표하는 대신 양심에 따라 투표해야겠다고요.

 

오늘 진정 중요한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새로운 운동이 대학에서, 유럽의 좌파 사이에서, 전세계 인권 단체들 사이에서 서서히 자리잡고 있습니다. 1999년 시애틀 시위, 2000년 워싱턴의 국제통화기금-세계은행 반대 시위, 또 기업들이 세계 경제정책과 환경정책을 결정하기 위해 모이는 곳이면 어디서든지 나타나는 시위는, 언론들이 묘사하는 것과 달리, 단지 일부 급진주의자와 무정부주의자들의 활동이 아닙니다. 이런 밀실의 결정이 지구의 미래를 위한 싸움의 최전방이라고 생각하는 학생, 환경보호운동가, 노조, 농민, 과학자, 기타 시민들의 광범한 연대가 태동하고 있습니다. 이 운동은 아직 초보단계지만, 18세기 노예제 폐지운동가들의 초창기 싸움처럼 도덕적으로 호소력있는 것입니다. 또 1850년대 초반 노동 현장의 안전을 위해 싸운 노동운동가들의 활동만큼 중요한 것입니다. 또 기업들이 우리 환경을 광범하게 파괴하고 있음을 미국 대중에게 처음 경고한 과학자들처럼 거부할 수 없는 것입니다. 두당 모두로부터 과도한 비난을 받고 있는 이 운동을 언론은 무시하고 비판했습니다. 이 운동 지지자들이 경찰 등 정부기구로부터 학대받고 체포되고 심지어 살해당하고 있는데도 말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강고함 때문에 우리는 결국 이 나라에서 노예제를 폐지하고, 최저임금제를 도입하고 사회보장을 갖추고 실업보험을 도입하고 환경에 대한 책임과 작업장 안전을 도모하는 법을 만들 수 있었습니다.

 

이 모든 문제에서 진전이 있었지만, 지금 우리는 위험한 작업장과 노동착취 공장에서 이뤄지는 아동 노동과 노예노동이 재현되고 있음을 목격합니다. 또 미국에서 진보에 저항하던 때와 똑같은 기업 풍토 때문에 제3 세계에서 부도덕한 환경 파괴가 나타나고 있음도 목격하고 있습니다. 이윤과 경제성장을 위해 우리의 기업들은 세계경제에 접근해서는, 이 모든 문제를 1850년 수준으로 돌려놓는 방법을 찾아낸 겁니다. 북미자유무역협정,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 협정, 세계무역기구가 부여한 자유무역과 보호조처 덕분에 가능해졌고 더 대담해져서, 우리는 외국에서 이런 문제를 키우고 있습니다. 우리 경제가 호황을 누리고 있는 때에 이런 생각을 포용하는 것은 불편한 일입니다. 우리의 공식 언론들이 이에 대해 쓰지 않고 있는 것 또한 명백합니다. 그러나 거리에서 사람들이 소리치고 있고, 이 시위대의 주장은 반박할 수 없는 도덕적 무게를 지니고 있습니다. 랄프 네이더는 이런 문제에 대해 논하고 이 새 운동을 자신의 것으로 감싸 안을 수 있는 유일한 후보였습니다. 이 점이 수전과 내가 그에게 투표한 이유입니다.

 

지난해 선거는 우리를 중요한 교차점으로 몰고갔습니다. 치열한 접전은 이 나라에서 선거가 부패하고 조작됐으며 불법적으로 진행된다는 것을 폭로하는 돌을 들어올렸습니다. 실로, 지난해 가장 비현실적이고 우스운 순간은 피델 카스트로가 선거 감시단 파견을 제안했을 때입니다. 플로리다에서 벌어진 명백한 선거 부정은 차치하고라도, 인종 차별이 몇년동안 선거에서 나타났다는 것이 잠깐 주목받았습니다. 아프리카계 미국인 선거구에 장애물을 설치하는 것이든, 아니면 아프리카계 미국인 이름이 선거인 명부에서 사라진 것이든, 저소득층 선거구의 비효율적이고 구닥다리 투표기계든지, 또 아니면 대법원이 당파적 정치기구라는 점이 폭로된 것이든지, 모두 똑같은 모습을 보여줍니다. 미국의 힘있는 지배계급은 민주주의를 두려워한다는 것을 말입니다.

 

민주주의를 두려워하는 이들은 '악마' 공화당원이다라고 제가 말했을 만한 때가 있었죠. 그러나 2000년 대선과 우리가 네이더를 지지한 데 대한 반응들을 겪은 뒤에 제가 깨달은 슬픈 사실은, 여기에 민주당원도 포함시킬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민주주의만 두려워하는 것이 아닙니다. 절대 다수는 아닐지 몰라도 많은 민주당 엘리트들은 이상주의도 두려워합니다. 저는 당내 진보세력을 제지하고 내부 의견차이를 감내하지 않으며 지난 50년동안 가장 중요하고 영향력이 컸던 소비자운동가를 악마로 만들려고 하는 당에 대한 커다란 존경심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러나 놀랄 것 없습니다. 20세기 초에도 비슷한 반응이 있었으니까요. 같은 운동가 업톤 싱클레어가 캘리포니아 주지사 선거에 나섰을 때 말입니다. 민주당의 힘있는 브로커들은 그를 고립시키려고 온갖 짓을 했습니다. 지지한다고 해도 마지 못한 것이었고, 어떤 이들은 심지어 공화당의 상대 후보 프랭크 메리엄을 지지했습니다. 언론은? 그들은 업톤을 악마로 만들었고 그를 반기업적이라고 했으며, 독선가라고 했습니다. 많이 들은 소리죠?

 

내가 만난 네이더 지지자 대부분은 진지했으며 자신들의 삶을 네이더 지지에 헌신한 이들이었습니다. 이들은 논란의 여지가 크고 어려운 쟁점을 둘러싼 투쟁의 한 가운데 있습니다. 그들의 정치 참여는 그들을 비판하는 것으로 마무리지은 이들보다 훨씬 더 존경받을 가치가 있습니다.

 

베트남 전쟁을 끝내기 위해 싸우고 여성의 권리를 위해 싸운 세대의 재판관적이고 거만한 태도는 실망스럽고 맥빠지게 하는 것이지만 이해할만은 하죠. 그러나 빌 클린턴이 그 세대가 줄 수 있는 최고라는 생각에는 동의할 수 없습니다. 또 나는 자신들 주변의 새로운 운동의 중요성을 아직 인식하지 못한 그 세대의 진보세력들 속에 잠재적인 힘이 남아있다고 믿고 싶습니다. 부당한 전쟁에 저항한 베트남전쟁 시대의 아이들이 자기 보호, 곧 전쟁에서 목숨을 잃지 않으려는 것 이상의 문제에도 관심을 기울인다고 믿고 싶습니다. 또 성 문제가 노동착취 공장에서 현저히 작용하고 있으며 성 문제가 사람을 노예로 만드는 데 명백히 작용하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는 여성운동가들이 이 문제 또한 자신들의 쟁점으로 인식하고 재생산의 권리를 후보 검증의 유일한 기준으로 보는 것을 넘어서기 시작할 것이라고 믿고 싶습니다. 나는 또 더 높은 이상, 전세계와 관련된 이상이 우리 모두를 움직이게 할 것이라고 믿고 싶습니다.

 

제3의 정당 모색 시도를 시작하도록 도왔으며 기업의 인심좋은 부자 아저씨들의 기부금과 지구의 미래를 맞바꾸지 않을 젊은이들은 우리 시대 핵심 쟁점에 관해서 민주당과 공화당이 연합하고 있다고 믿습니다. 이 새 운동은 기존 정치에 대한 거부이며, 진보적인 진영의 반응을 고려할 때 무서운 암시를 담고 있는 것에 대한 거부인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 부모 세대와 같아졌습니까? 우리가 기존세력인가요? 우리는 기존 현실입니까? 이상과 꿈을 지닌 이들을 냉소적으로 거부하고, 이상주의자들에게 이번 선거에서 당신들의 자리가 없다고 말하며, 전략적으로 투표하라고 주장하고, 우리의 꿈을 감당할 수 없다고 하며, 차악을 선택하라고 하는 현실말입니다. 극장에서 제가 만난 부부, 의견난의 칼럼니스트, 할리우드의 거물, 유명한 배우는 4년마다 자신들의 후보를 위해 북을 쳐대고, 선거에서 지면 우리의 문명이 종말을 고할 것처럼 상대 후보를 헐뜯습니다. 그들은 동성간 결혼을 거리낌없이 지지하는 후보에게는 표를 주지않을 동성애자 칼럼니스트이고, 공화당원이 차지한 백악관에서는 더 이상 하룻밤 묵으면서 몇사람에게만 영화를 상영하지 않을 거물이고, 자기가 속한 노조의 파업을 지지하기 위해 시위하러갈 방법도 못찾을 가난한 이들을 걱정한다고 고백하는 배우입니다.

 

나는 안락의자에 앉아있는 활동가를 존경하지 않습니다. 갭 상점 앞의 타협하지 않는 어린이를 존경합니다. 나는 그들의 이상과 열정과 전망을, 중도파가 되고 싶어하는 민주당의 통합을 위해, 사형을 지지하고 기업의 복지를 위해 사회복지를 파괴하는 민주당을 위해, 노동운동의 중심을 분열시키는 경제체제 구축을 돕는 민주당을 위해 양보할 준비가 안되어 있습니다.

 

민주당 상원의원 몫인 정치적 용기의 실현이 버몬트 출신 공화당원 몫이 되는 현실이 너무나 당혹스럽습니다. 아마도 이제 정치적 성향 때문에 사람을 악마로 만드는 일을 중단하고 자기 내면의 목소리를 따르기 위해 정치적 미래를 내던지는 의원의 모범을 따를 때인가 봅니다. 또 기존 정치를 거부하고 우리 풀뿌리들의 가슴을 따를 때인가 봅니다. 또 가능해보이지 않는 곳에서 연대를 이룰 때인가 봅니다.

 

이는 정의를 위한 긴 싸움입니다. 진정한 변화를 이루는 것은 풀뿌리 운동입니다. 어떤 풀뿌리 운동도 이상을 타협하지 않았습니다. 진정한 변화는 워싱턴의 칵테일 파티나 백악관 링컨 침실에서 일어나지 않습니다. 이는 힘들고 혼란스러우며 심한 동요가 요구됩니다. 노예제를 없애는 데는 100년이 걸렸고 어린이 노동착취를 없애고 최저임금을 쟁취하는 데도 100년이 걸렸습니다. 이 운동은 이제 막 시작됐습니다. 그러나 이 운동은 활력이 넘치고 사그라들지 않고 있습니다. 문이 우리에게 활짝 열려있습니다. 이는 넘기 두려운 문턱이지만 꼭 필요한 것입니다.

 

 

원문: www.thenation.com/doc.mhtml?i=20010806&s=robbins

번역: 신기섭

2004/07/11 15:24 2004/07/11 1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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