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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격 이후... 테러 대항 전쟁

(After the Attack ... The War on Terrorism)

편집진(by The Editors)

<먼슬리 리뷰> 2001년 11월호, 53권 6호


 

 

지난 9월11일 뉴욕의 세계무역센터와 워싱턴시의 펜타곤에 대한 테러공격에 대해 우리가 직접적으로 할 수 있는 말은 거의 없다. 단지 전적으로 비인간적이며 어떤 의미에서건 옹호할 수 없으며 깊은 조의를 오래도록 표하게 만드는 폭력행위가 있었다는 말만 할 수 있다. 이런 테러리즘은 이 세상에서 제거되어야 한다. 어려움은 이를 과연 어떻게 제거할 것인가에 있다. 테러리즘은 테러에 대한 맞폭력을 만들어내며, 미국은 오래동안 이 죽음의 게임에서 한쪽 편이 되어왔다. 희생자이기보다는 가해자인 경우가 많았다.

 

10월7일 아프가니스탄에 군사 공격을 개시함으로 이미 시작된, 테러에 대한 세계 대전이라는 형식의 보복 전략은 앞으로 몇달, 몇년동안 이 비극을 더욱 심화시킬 것이 분명하다. 이런 연유로, 미국 군국주의와 제국주의의 실체를 조명하는 것은 어느 때보다 더 중요하다. 그와 함께 군국주의와 제국주의가 자국민의 감시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선전 선동의 기능도 조명해야 한다.

 

군국주의와 미국 자본주의 (Militarism and U.S. Capitalism)

미국이 현대의 로마라고 할 만큼 전 지구 차원의 제국이라는 점은 수정처럼 분명하다. 적어도 1940년대 이후 미국은 세계 최대의 군사, 경제, 정치적 힘을 유지하는 한편 심지어 확장하려고 투쟁을 벌여왔다. 오늘날 미국은 전세계 군사비의 3분의 1을 쓰고 있다. 또한 주도적인 국제 무기상이다. 또 2차 세계대전 이후 지금까지 그 어느 나라보다 많은 지역에서 더 많은 이들에게 죽음과 파괴를 비처럼 퍼부어 댔다.

 

다음의 것들을 한번 보라. 미국은, 중앙정보국이 이끈 무수한 반군 진압 작전을 빼고도 1945년 이후 지금까지 70번이나 해외에서 군사작전을 펼쳤다. 중동과 이슬람 지역에서만 지난 20년 동안 미군은 이런 일들을 했다.

 

* 1981년 리비아 제트기 격추

* 1982년 다국적 군 소속으로 시나이반도에 군 병력과 장비를 보냄

* 1982년 레바논에 해군 파병

* 1983년 리비아를 직접 활동 대상으로 한 조기경보기를 이집트에 파견

* 1984년 페르시아만에서 이란 전투기 격추를 돕기 위해 사우디 아라비아에 조기경보기 지원

* 1986년 리비아에 미사일을 발사해 폭격

* 1989년 리비아 전투기 격추

* 이란-이라크 전쟁중에 쿠웨이트의 유조선 호위

* 1991년 이라크와 걸프전 벌임

* 90년대에 수를 셀 수 없을 정도로 이라크를 폭격하고 미사일로 공격

* 1992년 (이라크를 목표로) 쿠웨이트에서 군사작전 실시

* 1992년 소말리아에서 군사작전 수행

* 1998년 수단의 몇 안되는 의약품 공장 가운데 하나를 미사일로 공격해 파괴

* 1998년 아프가니스탄에 있는 오사마 빈 라덴을 향해서 다탄두 순항미사일을 60대 발사

* 2001년 아프가니스탄에서 전쟁 시작 주1

 

걸프전쟁 중에 10만여명의 이라크 민간인이 살해됐고 이 전쟁 이후 미국의 경제 제재로 50만명 가까운 아이들이 숨졌다. 이스라엘의 영토 확장 야망을 통제하기 거부하고 이스라엘에 매년 수십억달러의 군사 지원을 함으로써 미국은 팔레스타인 인민들에 대한 테러 전쟁의 주요 참여자로 자처했다.

 

무엇이 이런 제국주의적 공격을 설명하는가? 우리가 이 지면에서 수없이 거론했듯이 미국 자본주의는 2차 세계대전 이후 자신의 제국주의적 이해를 뒷받침하고 경제를 부양하기 위해 거대한 군사비 지출에 의존하게 됐다. 이런 면에서 보면, 소련의 붕괴에 따른 냉전의 종식은 미국 지배계급에게는 긍정적인 결과 뿐 아니라 부정적인 결과도 가져왔다. 한해 수천억 달러에 달하는 막대한 군사비 지출을 "악마의 제국"(evil empire)이 사라진 뒤에 어떻게 정당화 하겠는가? 이것과 긴밀히 연결된 것이 경쟁 관계인 자본주의 국가들의 미국 경제력에 대한 도전이 점차로 거세지고 있다는 점이다. 냉전 시기에 이 나라들은 광범한 냉전 동맹이라는 환경에서 전반적으로 미국의 목적에 종속되어 있었다.

 

소련 붕괴 이후 지금까지 미국 지배계급은 그래서 제국주의적 구도를 합리화 할 냉전의 대체물을 찾아왔다. 다양한 대안이 제시됐다. 테러리즘에 대한 전쟁, 이른바 "깡패 국가"에 대항한 싸움, "문명의 충돌"(사무엘 헌팅톤이 제시한 이슬람과 중국 대 서방), 전세계 마약밀매에 대한 전쟁, 인도주의적 개입. 이 모든 것은 크게 만족스럽지 않았지만, 군사비 지출이 냉전 이후 급격하게 주는 것을 막는 데는 충분했다. 다행히, 신이 보낸 선물이 1990년 사담 후세인의 쿠웨이트 침공이라는 모습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싱겁게 거둔 승리는 너무나 완벽하고 너무나 압도적이어서, 후세인은 더 이상 미국의 전세계적인 군사 행동을 정당화 하는 데 필요한 그럴듯한 위협으로 작용하지 못하게 됐다. 콜린 파월 장군은 1991년 이 문제를 이렇게 말했다. "깊이 고민해 보라. 악마가 부족하다. 악당이 부족하다." 주2

 

미국 권력층이 이를 해결할 수 없는 딜레마로 봤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으로부터 몇주 전에만 해도 (소련과 맺은 탄도탄 요격미사일 협정을 폐기하고) 대 미사일 방공시스템을 구축함으로써 군사비 지출을 대폭 확대하자는 부시 대통령의 제안은 의회에서 심한 반대에 직면할 듯 해 보였다. 물론 공화당과 민주당 모두 그동안 군사비 지출 확대를 꾸준히 지지해온 것으로 봐서, 부시가 제시한 계획의 대부분은 의심할 것도 없이 마지막에 관철될 것으로 여겨지긴 했어도 말이다.

 

세계무역센터와 국방부에 대한 테러 공격은 이제 이 모두를 바꿔 버렸다. 미국은 새천년의 첫번째 전쟁이라고 추켜세워진 것을 위해 만반의 채비를 하고 있다. 경제 침체와 불확실성의 증가로 어려움을 겪던 월스트리트에 진정으로 좋은 뉴스 한가지는, 미국의 군사비 지출이 사실상 하룻밤 사이에 치솟았고 가까운 장래에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는 점이다. 그래서 군수품 업체의 주가가 치솟고 있다.

 

테러 공격의 충격과 두려움이 엄습했지만, 미국 지배 계급은 금새 이를 냉전 시대에 버금가는 새로운 전세계적 군사 성전의 기회로 삼았다. 그래서 한치의 지체도 없이 전쟁의 불길을 부추겼다. 군국주의적 대응은 세계무역센터 북쪽 건물이 무너지기도 전에 이미 돌처럼 굳건히 결정됐다. 2001년 9월20일 전국 대상 연설에서 부시 대통령은 오사마 빈 라덴과 그의 테러 조직이 이번 공격을 했다고 내비쳤고 아프가니스탄 탈레반 정부에 대해서도 자신들의 적을 보호해주면 공격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위협했다. 그러나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부시는 "60개 이상의 나라에 수천명의 테러리스트들이 있다... 이 나라들은 이제 결정을 해야한다. 우리 편에 설지, 테러리스트 편에 설지를. 오늘부터 테러리즘을 보호하거나 지지하는 어떤 나라도 미국에 적대적인 정권으로 취급될 것이다."라고 선언했다. 미국은 극적인 군사 공격과 비밀 공작도 배제하지 않는 "언제도 경험해 보지 못했던 장기간의 작전"에 들어갔다. 지상군이 투입될 예정이었으며, 희생이 예상됐다. 미국은 "필요한 모든 전쟁 무기"를 적들에게 사용할 것이었다. (이 발언은 의도적으로 핵무기 사용도 배제하지 않았다.) 부시는 "신은 중립적이지 않다"고 주장함으로써, 범죄자에 대한 성스런 보복이라는 친숙한 기독교적 개념을 환기시켰다.

 

그러나 이 발언 뒤에는 여전히 더 무서운 현실이 자리잡고 있다. 의회는 단 한명 (캘리포니아 출신의 바바라 리 의원)의 반대 속에 부시에게 잘못 정의된 전쟁을 치를 권한과 더불어 적 자체를 정의할 권한을 부여했다. 그런데 적은 이미 전세계 범위에서 제기되고 있었다. 전쟁을 벌일 것임을 부시와 그의 행정부는 분명히 했고, 전쟁은 많은 나라에서 벌어질 것이었다. 이 전쟁은 (테러리스트를 찾는 어려운 일보다는 목표를 찾기 쉬운) 나라 전체를 상대로 하는 수준까지 확장될 것이었다. 하지만 미국 대중은 여전히 오사마 빈 라덴과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 이외의 누가 추가로 적이 될지, 또는 미군이 아프가니스탄에 이어 어느 나라를 칠지 전혀 모르고 있다. 그래서 부시의 발언은, 특정한 지리적 경계나 무기 사용에 대한 도덕적 견제, 미국이 상대할 적의 숫자나 유형에 대한 제한도 없는 일련의 군사 개입에 근거를 제공하는 것이다. 이 행동의 첫번째는, 내각 수준의 국내안보국을 창설하는 것을 포함해 연방 정부의 국내 보안 문제 개입 권한을 크게 강화하는 계획이다.

 

미국 지배계급이 쟁점 몇가지에서 의견 차이를 보일 가능성이 있다. 군국화 정도, 이번 전쟁에서 목표로 삼을 나라 숫자, 미국 시민의 자유 침해 정도 등에서 말이다. 아마도 미국의 우방국가에서 군국주의를 누그러뜨리라는 압력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는 정도의 문제일 뿐이다. 미국의 권력 엘리트는 미국 군사력의 전세계적 확장과 전세계에 걸친 강력한 보복을 강하게 지지하는 것이 분명하다. 미국이 힘을 전세계에 걸쳐 제국주의적으로 투여함으로써 만들어내는 "치명적인 잠재력을 지닌 제국주의 국면'이라고, 이스트반 메스자로스(István Mészáros)가 그의 책 `사회주의와 야만'에서 부른 그 상황을 전세계가 실제로 직면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제국의 선전 (The Propaganda of Empire)

성인의 보편적인 선거권이라는 제약이 있는 자본주의 사회의 핵심 긴장 관계는 형식상 평등주의적인 정치와 불평등한 경제를 어떻게 조화시키느냐다. 권력을 쥔 이들이 관심을 기울이는 문제는 아주 오래된 것인데, 그것은 소수 부자들이 누리는 특권을 가난한 다수에게서 어떻게 계속 박탈하느냐다. 민주주의에선 체제 위기 때에만 폭력이 해결책이 될 수 있다. 더 일반적으로는 해결책이 이념이나 선전선동에서 나와야 한다. 요점은 대중을 비정치화하거나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행동하지 못하게 속이는 것이다.

 

민주적인 자본주의 사회가 주요한 제국일 때는 문제가 더욱 커진다. 대중들이 제국의 비용을 감당하도록 설득해야 한다. 비록 혜택을 정확히 지목하기 어렵더라도 말이다. 피할 수 없는 전쟁을 맞게 될 때는, 대중에게 싸움에 나서 제국을 위해 목숨을 버리겠다는 확신을 심어줘야 한다. 민주주의의 조건이 있는 상황에선, 제국주의의 목적과 본성에 대해 솔직하고 정직해서는 이런 목표의 달성에 도움이 안된다. 그래서 영국에서는 제국이 인자한 "백인 남성의 짐"(white man's burden)으로 정당화됐고, 미국에선 제국은 존재하지도 않는다. "우리"는 단지 전세계적인 자유와 민주주의와 정의라는 대의를 지킬 뿐이라는 것이다.

 

미국에서 국제 전쟁과 제국에 대한 대중적 지지를 얻기 어렵다는 것은 이미 증명됐다. 19세기말 이후 미국 정부는 여러번에 걸쳐 시민들에게 전쟁에 나설 수밖에 없는 이유를 설득하려고 애썼다. 제1차 세계대전, 한국전쟁, 베트남전쟁, 걸프전쟁의 경우 정부는 대중들의 적당한 분노를 촉발하려고 세련된 선전 활동을 벌였다. 당시에 권력층은 전쟁 목표에 대한 지지를 얻기 위해서라면 정부가 거짓말을 할 필요도 있다는 것을 충분히 납득했다. 이 점은 그 이후 역사적 조사에서도 검증된 것이다. 이 모든 경우에서 언론은 군국주의와 제국의 최고 선전 기관임이 증명됐다.

 

이런 정황은 9월11일 이후 언론 보도를 이해하는 데 필요하다. 역사적 기록은 권력에 봉사하는 거짓말과 절반의 진실이 봇물 터지듯 등장할 것임을 예상하게 한다. 이는 바로 우리가 겪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정부의 통제에서 벗어난 것을 자축하기 좋아하는 미국의 뉴스 매체들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군국주의와 제국주의의 노골적인 선전기관이 됐다.

 

이 선전 공세의 범위를 파악하는 한가지 방법은 진정으로 독립된 자유 언론이 존재하는 민주 사회라면 9월11일 사건 같은 것에 어떻게 반응할지를 따지는 것이다. 위기의 순간에 민주적인 언론 체계라면 당면한 문제 각각에 대한 정확한 사실을 제시해야 한다. 또 권력층과 권력을 장악하려는 자들을 의심해 봐야 한다. 또 위기 대응책을 폭넓게 논의할 바탕을 제시해야 한다. 시민들이 문제를 파악하고 가능한 최선책을 결정할 수 있도록 역사적 배경과 정황을 보여주는 것도 포함해서 말이다. 모든 매체가 이렇게 할 필요는 없지만, 개별 매체로 구성되는 전체 언론 체계는 더 많은 사람들이 이런 정보를 얻을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 그런 자유 언론은 대법관 휴고 블랙(Hugo Black)이 한번 언급했듯이 "지배자가 아니라 지배당하는 이들에게 봉사"할 것이다.

 

이번 공격이 너무나 갑작스럽고 잔인했다는 점을 인정하더라도, 자유, 독립언론에게 기대할만한 이런 반응은 9월11일 이후 몇주 동안 미국 언론 전체에서 전혀 나타나지 않았다.

 

이와 반대로, 언론에 나타난 마니교적인 그림(the Manichean picture)은 이러했다. 인자하고 민주적이며 평화를 사랑하는 국가가 자국의 자유와 풍요로운 삶을 시기한 미치광이 악마 테러리스트의 무자비한 공격을 받았다. 미국은 군 병력과 비밀 조직을 즉각적으로 늘려야 한다. 또 살아있는 범인을 확보해 조사해야 한다. 그리고는 전세계의 테러리스트라는 암을 뿌리뽑고 파괴하기 위해 장기전을 준비해야 한다. 논리상 국내외 모두가 범위 안에 들어가는 미국의 정당한 보복 행위를 돕지 않는 이들을 범죄자들의 공범으로 여긴다. 또 그들도 당연히 범죄자들과 같은 운명에 처하게 될 것이다.

 

이런 총체적 왜곡 보도의 이유는 음모이론을 훨씬 넘는 것이며, 우리나라 주요 언론매체를 아주 소수의 아주 크고 힘있는 이익 추구 기업들이 지배하고 있다는 점과 함께 미국의 직업적 언론의 관행이 지닌 약점을 보여준다.

 

직업적 언론이 등장한 것은 대략 100년전인데, 독점 언론 소유주들이 믿을만한 "비당파적인"(non-partisan) 언론을 제공함으로써 자신들의 사업을 보호하려고 직업적 언론의 등장을 부추겼다. 직업적 언론은 당파성이라는 오점을 피하기 위해 공식적이거나 신임을 받는 취재원을 기사의 바탕으로 삼았다. 기자들은 권력층이 하는 말과 그들의 논쟁거리를 기사로 썼다. 그래서 기사가 권력층에 편향되는 경향을 띄었다. 기자가 엘리트들이 하는 말과 그들의 논쟁을 보도하면 직업적 기자가 된다. 공식적인 논란의 범위를 벗어나서 다른 전망을 제시하거나 엘리트들이 선호하기 않는 문제를 제기하면 더 이상 직업적 기자가 아니다. 대부분의 언론인들은 공식적인 취재원의 속기사가 되는 것을 자신들의 주요 임무로 받아들이기 때문에, 이것이 민주주의로선 문제가 된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한다.

 

공식 취재원에 대한 의존과 함께, 전문가들 또한 정책을 설명하고 논하는 데서 중요한 요소이다. 특히 이번 일처럼 복합적인 사건의 경우 더 그렇다. 전문가들은 정보를 권력층에 의존할 뿐 아니라 거의 전적으로 권력층이 규정한 이들이며, 그들에게 부여된 주요 목적은 권력층의 여론을 표현하는 것이다. 9월11일 이후 "전문가"들의 분석 범위는 군과 정보기관 내부자와 지지자들에 한정됐는데, 그들로서는 군사적인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이 명백하게 자신들에게 이롭다는 점이 거의 인식되지 못했으며 비판적으로 검토되지도 않았다. 무엇이 적절한 대응인가를 놓고 민주당과 공화당 사이에 논쟁이 붙지 않았기 때문에, 군사적 접근법이 유일한 대안으로 제시됐다. 자긍심이 있는 언론인의 입에서 가장 먼저 나와야하는 명백한 질문은 이 범위를 넘어서는 것이다. 어떤 근거로 이미 많은 예산을 쓰면서도 9월의 공격을 막지 못한 군과 중앙정보국에 수백억달러를 더 주면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고 믿어야 하는가?

 

앞으로 몇주, 몇달 동안 엘리트 계층 내부에서 논쟁의 범위가 확대될 가능성은 있다. 중동과 전 세계에서 미국의 장기 목표를 달성하는 데 비생산적임이 드러나게 될 군국주의와 주전론의 질주에 제동을 걸어야 한다는 "자유주의"와 "국제주의"적인 태도를 일부가 취하게 될 것이다. 이런 방식을 선택하는 이들은 어쩔 수 없이 다음과 같은 주장을 펼 것이다. 미국은 누구도 맞서지 못할 강력한 군사력 뿐 아니라 훨씬 더 세련된 평화적 조처를 통해서 잠재적인 적들의 "가슴과 마음"을 사로잡아야 한다고 말이다. 그러나 근본적인 쟁점은 분명히 금기로 남을 것이다. 힘의 궁극적인 원천인 군의 구실에 대해선 의문이 제기되지 않을 것이다. 미국이 세상에서 아주 독특하게 인자한 세력이라는 개념도 반박 당하지 않을 것이다. 미국이, 그리고 이스라엘 같은 나라를 대리인으로 삼지 않는다면 오직 미국만이 자신이 원하면 언제든지 다른 나라를 침공할 권리가 있다는 전제 또한 논쟁거리가 되지 않을 것이다. 미국의 군사 행동이 국제법을 어기는 것임이 거의 확실한데, 이에 대한 우려는 원칙에 입각해 제기되는 것이 아니라, 다른 나라들에게 입법자로 인식됨으로써 얻는 미국의 이익을 해친다는 단 한가지 이유 때문에 제기될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1960년대와 1970년대 미국의 베트남 침공 보도를 상기해야 한다. 1965년 미국이 본격적으로 지상군을 투입해 침공했을 때부터 1967년말 또는 1968년초까지 언론 보도는 전쟁 선전의 "큰 거짓말"을 보여주는 고전적인 사례이다. 전쟁은 좋은 것이며 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해 꼭 필요했다. 전쟁에 반대하는 이들은 하찮게 여겨졌고 소외당했으며 왜곡됐고 무시당했다. 1968년에 언론보도는 반전에 대해 좀더 관대해졌다. 이런 분위기는 전쟁에 대한 대중들의 반대 여론이 커진 점을 어느 정도 반영한 것이지만, 이보다 더 영향을 끼친 것은 당시 미국 권력층 사이의 분열이었다. 뉴욕 월가와 워싱턴 정가의 일부가, 장래의 이익에 비해 전쟁 비용이 너무 크다고 인식하고 발을 빼는 쪽을 지지한 것이다. 언론보도는 여전히 엘리트들의 의견에 한정되어 있었다. 미국은 여전히 자신이 원하는 나라를 침공할 "007"식의 권리가 있었다. 유일한 논쟁거리는 베트남 침공이 이 힘을 적절히 쓴 것이냐 아니냐였다. 베트남을 침공한 미국의 바로 이런 생각이 도덕적으로 잘못된 것이라는 생각은 여전히 금기였다. 여론조사 결과 이런 생각이 일반 대중들 사이에서 드물지 않다는 것이 드러났는데도 말이다.

 

제도권 언론의 또 다른 결함은 정황 설명을 저주라도 되는 양 피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이런 경향이 생긴 것은, 사건의 의미 있는 정황과 배경을 적절하게 제공하게 되면 언론인의 견해가 특정한 편으로 규정되고, 직업적 언론이 피하려고 결심한 자유롭고 개방된 토론의 여지가 생기기 때문이다. 그래서 중동 문제처럼 가장 많이 보도되는 사건에 대해서조차 미국인들은 자주 보도되지 않는 다른 사안과 마찬가지로 무지하다. 언론은 사건에 대한 이해와 충분한 정보에 바탕을 둔 행동을 유발하기보다는 혼란과 냉소, 무관심을 만들어낸다. 특정 사건에 대한 보도는 서로 관련이 없는 단편적인 사실들의 나열이 되는 경향이 있고, 이는 무기력을 유발하기엔 최적의 처방이다. 직업적 언론이 그렇게 상황 설명에 인색한 것은, 엘리트들의 전제를 충실히 따르게 하는 데 도움이 된다.

 

9월11일 이후 언론이 정황 설명을 그렇게 하지 않은 것은, 어떤 기준으로 볼 때도 놀라운 것이다. 오사마 빈 라덴과 그의 테러조직에 대한 상세한 보도가 많았고,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공격의 성패와 관련된 요소들에 대한 심층 보도도 많았지만, 다른 면에서는 찬장이 빈약하기 그지없었다. 다음의 것들을 생각해보라. 거의 틀림없이 세계에서 가장 앞장서는 테러 세력인 미국의 구실에 대한 보도는 통제당했다. 예컨대 1998년, 국제사면위원회는 한 보고서를 내놨다. 이 보고서는 미국이 그 어떤 나라나 조직 못지 않게 전세계의 잔인한 인권 침해에 책임이 있다는 것을 분명히 했다. 그 인권 침해에는 고문과 테러의 후원과 국가 폭력도 포함된다. 주3 사우디 아라비아와 쿠웨이트의 부패한 정권 지지와 팔레스타인에 대한 이스라엘의 공격 지지 및 자금 지원의 끔찍한 기록은 미국내 거주자 대부분의 시야 밖에 있다. 오사마 빈 라덴에 대한 적절한 정보 곧 그가 아프가니스탄에서 소련에 맞서 온갖 수단을 동원에 싸울 때 파키스탄을 통해 미국 중앙정보국의 지원을 받았다는 사실조차도 거의 거론되지 않았고 전혀 주목받지 못했다. "온건한 국가"와 "이슬람 극단주의자"로 나누는 극단적인 단순화는 논외로 하더라도, 이슬람교와 아랍 세계의 본성이 이질적인 것들의 혼합이라는 사실을 언론을 통해 어렴풋이라도 알 수 있었던 미국인은 거의 없다.

 

직업적 규범 이외에도 미국 언론 기업들은 미 제국이 자연스러운 것인 양 만드는 데 협조하는 제도권의 환경 안에 존재한다. 이런 거대 기업들은 신자유주의적 지구화와 (미국 이외 지역에서 이들 기업의 매출이 급격히 늘고 있다) 미국이 세계 초강대국의 지위를 유지하는 덕을 직접적으로 보는 수혜자들이다. 실제로 미국 정부는 무역 및 지적 재산권 협상이 벌어질 때 지구적 규모의 언론 기업들을 앞장서서 대변한다. 이런 기업들이, 미국의 군사력과 자본주의가 결코 인자한 세력이 아닌 이 실제 세계에 대한 이해를 제공하는 건 이론적으론 가능할 수도 있다. 하지만 실제로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일이다.

 

요약하자면, 정부, 군부, 언론기업은, 지구상 최대의 군사 세력이 제한 없이 수행할 테러에 맞선 전쟁의 필요성, 불가피성, 미덕을 팔아먹는 데 함께 열중하고 있다. 그들은 대중의 지지를 얻어야 하지만, 무기를 내려놓게 만드는 단순한 진실을 말할 여유는 없다. 대부분의 미국인은 자신들의 지속적인 명예에 걸맞게 그런 군국주의적인 대응을 신용하지 않는다. 그래서 선전이 필요한 것이다.

 

미국의 군국주의와 제국주의에 반대하고 무시무시한 환경에서 평화를 촉진하려고 하는 이들에게 길은 분명하다. 우리는 군국주의적 거짓말을 폭로하고 전쟁을 되돌릴 수 있는 폭넓은 연대를 구축해야 한다. 우리가 주춤거리고 워싱턴의 장군들을 멈추지 못한다면, 인류가 치러야할 대가가 날로 더해질 것임을 역사는 보여준다. 그 대가의 대부분은 가장 가난하며 가장 착취당하는 지역의 무고한 사람들이 피를 흘리는 것이다.

 

* 엘런 콜리어 (Ellen C. Collier), 미국 군사력의 해외 사용 사례, 1798-1993, 의회 연구조사 서비스, 의회 도서관, CRS 이슈 브리프, 1993년 10월7일 - http://www.fas.org/man/crs/crs_931007.htm. 의회 연구조사 서비스는 1945년부터 1993년까지 미군의 해외 파병 사례 66건을 기록하고 있다. (1798년에서 1993년까지는 모두 245건이다) 이 기록은 지난 8년동안 수정되어서 현재는 1945년 이후 지금까지 모두 70건 이상이 됐다. (See Ellen C. Collier, Instances of Use of United States Forces Abroad, 1798-1993, Congressional Research Service, Library of Congress, CRS Issue Brief, October 7, 1993 - available online at http://www.fas.org/man/crs/crs_931007.htm. The Congressional Research Service lists sixty six instances of the employment of U.S. military forces abroad over the period 1945-1993 (245 over the period 1798-1993). This list has be updated for the last eight years, bringing the total since 1945 to over seventy.) 본문으로 돌아가기

* 토론토 스타 1991년 4월9일치에서 인용. 데이비드 깁스, "워싱턴의 새로운 개입주의", 먼슬리 리뷰, 53권(2001년 9월), 15-37쪽도 보라. (Quoted in Toronto Star, April 9, 1991. See also David N. Gibbs, "Washington's New Interventionism," Monthly Review, 53 (September 2001), 15-37.) 본문으로 돌아가기

* 국제사면위원회, 미국: 모두를 위한 권리 (런던: 국제사면위원회, 1998), 특히 7장과 8장을 보라. http://web.amnesty.org (Amnesty International, The United States of America: Rights for All (London: Amnesty International, 1998), see especially chapters 7 and 8. Available online at http://web.amnesty.org) 본문으로 돌아가기

 

원문: www.monthlyreview.org/1101edit.htm

번역: 신기섭

2004/07/11 16:10 2004/07/11 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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