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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칸분쟁 이해를 위하여

이 글은 개인적으로 몇년동안의 과제였던 발칸분쟁에 대한 기초 정리를 위한 것이자, 곧 번역할 어떤 글의 이해를 돕기 위한 것이다.

 

유고슬라비아는 역사적으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과 오토만 제국의 경계지역이며, 혼란과 경쟁, 증오가 존재한 땅이다. 티토가 유고 연방으로 이들을 묶어 통치할 동안 다양한 민족들이 평화롭게 공존했으나, 티토 이후 다시 분열해 1992년 슬로베니아, 크로아티아, 마케도니아,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가 분리 독립했다. 그리고 코소보 지역을 포함한 세르비아와 몬테네그로가 신유고연방을 구성했다.

 

이 과정에서 유고에는 두번의 피비린내 나는 전쟁이 벌어졌다. 첫번째는 1992년 4월부터 1995년 10월까지 계속된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전쟁이고, 두번째는 1996년부터 1999년까지, 좁은 의미에서는 99년 3월부터 6월까지 북대서양조약기구의 세르비아 공습을 의미하는 코소보 전쟁이다.

 

이 두번의 전쟁은 워낙 많은 변수들이 얽히고설키는 양상을 띠었기 때문에 간단히 정리하기 힘들다. 먼저 분쟁에 거의 개입하지 않은 슬로베니아와 몬테네그로, 마케도니아를 뺀 나머지 국가 또는 지역 곧 세르비아, 크로아티아,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코소보의 인종과 종교를 파악하는 것부터 정리할 필요가 있다.

 

세르비아는 그리스정교를 믿는 슬라브계 세르비아인들이 주축을 이루고 있다. 크로아티아는 가톨릭교도들이 많으며 전통적으로 스스로를 유럽에 속한다고 여긴다. (실제로 과거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에 속했다.) 크로아티아인들은 같은 발칸반도 지역이더라도 자기들의 땅 동쪽에 있는 지역을 모두 동양(오리엔트)으로 취급해왔다. 자신들의 땅을 서양의 동쪽 끝이라고 여긴 것이다. 특히 세르비아에 대해 이렇게 생각하며, 이는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전쟁을 이해하는 데 참고가 될만한 사항이다.

 

진짜 복잡한 지역은,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와 코소보다. 세르비아와 크로아티아 중간에 위치한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는 이슬람교도가 지배적인 가운데 세르비아와 크로아티아계가 섞여 사는 다문화 지역이다. 코소보 또한 유고 남부에 위치한 작은 나라 알바니아 출신의 이슬람교도들과 세르비아인들이 섞여 사는 자치지역이다. 코소보는 알바니아와 국경을 맞대고 있다.

 

보스니아 전쟁과 코소보 전쟁을 이해하려면, 이런 복잡한 문화 속 다양한 세력들의 충돌을 고려해야 한다. 이 두번의 전쟁이 사악한 세르비아인들에 의해 촉발됐다고 단순하게 정리하는 것이야말로, 아메리카와 유럽의 지배세력이 바라는 것이다. 그들은 지금도 끊임없이 이런 단순한 '악마 만들기'에 열을 올리고 있다.

 

보스니아 전쟁을 가장 잘 상징하는 말은 아마도 인종청소다. 특정한 민족이 자신들만의 나라를 만들려고, 함께 살던 다른 민족을 몰아내는 걸 의미하는 인종청소는 1990년 크로아티아에서 시작됐다는 게 정설이다. 그러나 극단적인 형태는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에 있던 세르비아계가 촉발했고 이에 자극받아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와 크로아티아에서도 같은 형태의 인종청소가 나타났다고 한다. 아무튼 인종청소는 누구 하나를 탓할 것 없이, 한동안 발칸반도를 휩쓸던 폭력 형태다. 다만 이 과정에서 발생한 희생자가 몇명인지는 그 누구도 정확한 정보를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고 봐야한다.

 

두번째 벌어진 코소보 전쟁은, 1996년부터 99년까지와 99년 3-6월의 성격이 판이하다. 96년부터 이 지역에서는 알바니아계 사람들이 주도한 코소보 독립 시도와 이를 저지하려는 세르비아인들의 충돌이 이어졌다. 알바니아계 이슬람교도들은 이를 민족해방 투쟁이라고 규정하나, 세르비아인들은 테러 행위로 본다. 이 와중에 서구 세력들은 알바니아계를 지지했다. 다만 코소보의 독립을 지지하지는 않았다. 서구 세력은 세르비아의 야만행위를 중단시킨다는 명분으로 99년 3월 세르비아인들에 대한 무차별적인 폭격을 개시했다.

 

나토의 공습은 두가지 측면에서 아주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첫째는 나토의 이름으로 치러진 첫번째 전쟁이라는 점과 서유럽 국가들이 유엔의 승인이 없는 침략행위에 참여했다는 점이다. 이는 나토의 의미, 서유럽 집단방위체제의 성격, 유럽연합의 대외정책 등과 관련해 의미심장한 일이다. 이에 대해서는 수전 왓킨스가 쓴 대륙의 떨림 (한글 번역본)의 '마스트리히트와 사라예보' 부분을 참고할만 하다.

 

나토 공습과 관련해 중요한 두번째 의미는 이른바 '인도주의적 전쟁' 개념의 파장이다. 이에 대해서는 타리크 알리가 묶어서 낸 책 <<전쟁이 끝난 후>>(국제연대정책정보센터 옮김, 이후, 2000; 원 제목은 Masters of the Universe)에 자세하게 언급된다. 참고로 이 책에 '인도주의적 전쟁: 범죄를 처벌에 꿰맞추기'(Humanitarian War: Making The Crime Fit The Punishment; 이 글은 한글 번역본에는 실리지 않았다. 영어 원문은 여기)'를 쓴 다이애나 존스톤은 다른 글에서 이렇게 언급하고 있다.

 

보스니아 전쟁은 아마도 '인도주의적 개입'이라는 개념이 어떤 잘못이 있는지를 예시하는 사례로 보는 게 바람직하다. '인도주의적 개입'이라는 이념은, 강대국들로 하여금(오늘날의 세력 관계에서는 아메리카를 의미한다) 다른 이들의 이익을 위해서 단호하게 행동하도록 설득할 수 있다는 걸 암시한다. 이는 환상이다. 게다가 고공 폭격에 바탕을 둔 아메리카의 개입 방식은 그 성질상 '인도주의적' 작전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인도주의적 개입' 요청의 기대감은, 아메리카의 군사력을 자기 편으로 끌어들이기를 기대하는 세력간의 분쟁을 악화시킬 위험이 있다. 알리야 이제트베고비치[보스니아의 이슬람계 지도자로서 보스니아 대통령을 역임했다: 옮긴이]가 아메리카의 개입을 끌어낼 수 있다고 믿게 되지 않았다면, 그는 절충안을 도출하려고 했을 것이다. 보스니아 분쟁이 쓸데없이 길어지지 않았다면, 1995년 세르비아의 스레브레니차 점령[스레브레니차 사태는 세르비아의 이슬람교도 학살을 뜻하는데, 서구 언론들은 나치의 유대인 학살에 버금가는 것으로 묘사하지만 과장됐다는 주장도 끊임없이 나온다: 옮긴이]은 생겨나지 않았을 것이다.

 

한편 유고 분쟁은 서구 좌파들이 크게 나뉘는 결정적인 계기라는 의미도 지닌다. 좌파에 해당하는 세력들조차 대부분 이 전쟁에 찬성했고, 전쟁에 반대한 이들은 극소수에 불과했다. 매체로는 프랑스의 진보적 월간 신문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영국의 좌파 학술지 <뉴레프트 리뷰> 등을 꼽을 수 있다. 인물로는, 타리크 알리와 로빈 블랙번 같은 <뉴레프트 리뷰>쪽 인사들, 이들과는 이념이 다른 좌파 학자 알렉스 캘리니코스, 프랑스의 로베르 레데케르(<현대> 편집위원), 레지 드브레(미테랑 대통령 자문위원) 등이 있다. 독일인 가운데는 좌파 정치인 오스카 라퐁텐이 대표적이다. 아메리카에서도 이 전쟁에 반대한 인물은 손에 꼽는데, 놈 촘스키와 지오반니 아리기(뉴욕주립대 사회학과 교수), 좌파 잡지 <먼슬리 리뷰>쪽 사람들 정도이고, 캐나다 학계에선 경제학자 미셸 초수도프스키와 정치학자 엘런 메익신스 우드가 있다.

 

이런 정도로 일단 정리하면, 발칸반도 사태에 대한 다양한 의견을 비판적으로 접근할 기초는 다진 게 아닌가 싶다.

 

덧붙여서, 발칸분쟁에 대한 서구의 개입을 비판한 이들을 주류 언론이 어떻게 취급하는지 알려면, 영국의 일간 신문 <가디언>의 촘스키에 대한 중상모략에 관한 짤막한 글 촘스키의 수난을 참고하면 된다. (그런데 뒤늦게 본 이 글의 댓글들, 경악할 정도의 정치적 해석이다.)

2006/01/30 22:33 2006/01/30 22:33
9 댓글
  1. 2006/01/30 23:27

    다섯 째 문단에서 "크로아티아는 가톨릭교도들이 많으며 전통적으로 스스로를 유럽에 속한다고 여긴다. ... 크로아티아인들은 자기 땅의 동쪽을 동양(오리엔트)으로 여긴다."이 잘 이해가 안가는 데요, 크로아티아인들은 스스로 유럽에 속한다고 믿으면서 동시에 동양에 있다고 생각한다는 것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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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marishin 2006/01/30 23:37

    오해가 없도록 고쳤습니다만, 여전히 이상한가요? 아무튼 자기보다 동쪽에 있으면 무조건 동양(오리엔트) 오랑캐(?)로 본다는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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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2006/01/30 23:55

    이제 이해가 갑니다. 고대 그리스의 기준으로보면 크로아티아도 '바르바로이'일텐데 괴이한 발상이군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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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나그네 2006/01/31 17:53

    안녕하세요..http://kcm.co.kr/bethany/clusters/8002.html
    이곳에도 (좀 예전것이지만) 정보가..흠..국가관련 정보는 기독교단체가 좀 근접해요..(난 무실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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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marishin 2006/01/31 18:48

    나그네님, 알려주신 사이트도 참고할 것들이 있어 보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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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luna1968 2006/02/01 16:24

    좋은 자료 감사합니다. 제게 너무 필요한 자료였습니다. 새해복 많이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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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지나가다 2006/02/27 22:51

    서울대 '철학사상'에 주정립 선생이 쓴 글입니다. 이것도 참고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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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구화시대의 인권과 국가주권:코소보 사태에 관한 하버마스의 논의를 중심으로(http://philinst.snu.ac.kr/thought/19/07.pdf) / 주정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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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marishin 2006/02/28 14:08

    지나가다님, 훌륭한 논문 자료 소개 고맙습니다. 찬찬히 읽어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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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마마 2006/09/06 17:48

    중2사회 공부 자료 감사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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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Subject: 발칸분쟁 먼 댓글 보내온 곳 2006/02/01 16:23

    marishin님의 [발칸분쟁 이해를 위하여] 에 관련된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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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 진보 진영의 글을 번역해 공개하는 걸 주 목적으로 하지만 요즘은 잡글이 더 많습니다. marish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