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사노동과 계급의식
이재유, '계급의식의 형성과 보편화에 관하여 -맑스주의를 중심으로', 박사학위논문, 2006.
글은 내용이나 형식에서 자신에게 걸맞게 써야한다. 자기 주제 파악을 못하고 쓰면 내용을 떠나서 잘못된 글이다. 그래서 이 글은 애초부터 잘못됐다. 문외한이 철학 박사학위논문에 대해 평하는 글이기 때문이다. 잘못된 글임을 뻔히 알면서 쓰는 건, 논문을 보내준 저자의 성의 때문이다. 변명을 덧붙이자면, 논문의 문제의식이 아주 흥미있게 느껴졌다는 점도 작용했다.
제목만 보면 의도가 선명히 드러나지 않지만, 상당히 야심적인 의도를 담고 있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계급 기반과 계급의식 형성 기반의 불일치 때문에 노동자들이 실패했고, 자본의 공세 속에 신음하면서도 반격하지 못하는 처지에 놓였다는 것이다. 그리고 자본의 공세에 맞서기 위해선 계급 기반과 분리되지 않는 계급의식을 형성하고 이를 통해서 자본주의를 넘어서는 전망을 지녀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저자에 따르면, 쟁점은 '어디에서' 계급의식이 형성되어야 하느냐다. 저자는 시발점을 '공장 밖'(시민사회), 더 좁혀서 말하면 '가족'에서 찾는다. “노동자 계급이 계급을 형성하고 계급의식을 가질 수 있는 장소는 노동자가 자기 자신을 생산하는 장소”이고 이 장소는 다름아닌 가족이다. 가족은 시민사회(공장 밖)의 기초이며 계급의식의 맹아를 지니고 있다. 가사노동은 임금노동과 전혀 다른 논리로 작동한다. 곧 “서로의 동의에 의해 능력만큼, 그리고 필요한 만큼 배분하고 배분받는다. 그 자원은 자본처럼 가족 구성원 중 어느 누구에게 사적으로 소유되지 않는다.” “개인의 보편적 발전에 기반하며 공공의 사회적 생산성을 사회적 부로서 복속시키는 데 기반하는 자유로운 개인성”의 사회가, 가족 관계에 그 씨앗을 품고 있다는 것이다.
그럼 이제 문제는 어떻게 이 가족의 인간관계를 사회적으로 확대시켜 나갈 것인가가 된다. “개별 가족을 뛰어넘어 시민사회 속에서 어떻게 사회화시킬 것인가?” 그 답의 실마리는 가사노동의 주 담당자인 여성의 조직화이다. 다시 말해 여성이 거의 전적으로 담당하고 있는 가사노동을 공공화, 사회화시키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자본의 측면에서 공적이고 사회적인 것, 즉 상품화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여성의 가사노동은 자본이 지향하고 있는 바와 정반대되는 지향점을 가지고 있고, 그리하여 이 가사노동이 노동자 계급의 자기 생산을 통한 노동자 계급의 헤게모니를 구체화시키게끔 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임금노동과 가사노동의 차이에 주목하고 가사노동을 계급의식 형성의 기반으로 삼는 시각은, 문외한인 글쓴이로서는 처음 접하는 것이다. “프롤레타리아는 재산도 없고, 아내와 자식과의 관계도 이제 더 이상 부르주아적 가족 관계와는 아무런 공통점이 없다”(엥겔스, '공산주의의 원칙') “우리는 프롤레타리아가 보다 고차적인 가족 형태로서 살아가고 있으며 남편과 부인들 그리고 어린이들간의 보다 훌륭한 관계를 경험하고 있다는 생각을 기억한다”(프리가 하우그[크?], '공산주의당선언에 대한 페미니즘적 접근') 등의 인용을 볼 때, 분명 노동자의 가족은 자본가의 가족과 다르다. 다만 이를 저자의 주장으로 발전시키는 건 또 다른 문제일 것이다. 아무튼 이것이 전적으로 새로운 시각인지 여부는, 읽은 게 변변치 못한 글쓴이는 모른다.
그런데 한가지 아쉬운 건, 저자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사노동의 사회화'가 어떤 것인지 구체적으로 드러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상품화를 의미하지 않는다는 걸로는 아무래도 부족하다. 자본이 가사노동을 지속적으로 상품화함으로써 '돌봄 노동'( 또는 '보살핌 노동')의 영역을 야금야금 침투해 들어간다는 점을 지적한 어슐러 휴즈 또한 뚜렷한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는 걸 보면, 이는 저자만의 한계는 아닌 듯 하다. 다만 저자가 “이 글이 좀더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설득력을 가지려면 그람시에 대한 보다 폭넓은 이해들이 필요하다”고 했는데, '가사노동의 사회화'를 가능한 한 구체화하는 것 또한 현실적인 설득력을 높이기 위한 과제라고 생각한다.
또 한가지, '가사노동'에 대한 평가도 좀더 세밀해야 한다고 본다. 가사노동이 남성들에게 '하찮고 귀찮은 일'로 여겨지는 걸 뼈저리게 느끼는 뭇 여성들은 쉽사리 저자의 평가에 동의하지 않을지 모른다. 그들에겐 '가사노동 떠넘기기'와 '가사노동 띄워주기'가 동전의 양면일 수도 있다. 가사노동 그리고 노동자의 가족이, 임금노동과 자본가의 가족에 비해 '본질적' 우월성을 지니고 있는 것과 '현실적' 우월성을 지니고 있는 것은 별개라는 점도 남는다. 자본은 이미 노동자 가족관계 또한 심각하게 훼손하고 '오염'시켰음이 분명하다면, 강조할 부분은 본질적 우월성이 아니라 오염 제거 방법인지 모른다.
글쓴이가 아는 범위에서만 말하자면, 이와 관련해서는 어슐러 휴즈의 <싸이버타리아트> 1장 '신기술과 가사노동', 2장 '살림용 기술 : 해방자인가 속박자인가'를 참고할 수 있겠다. 휴즈는 “가정은 소외되고 짜증나며 긴장되는 노동 환경의 피난처가 되고 오락과 휴식, 정서적 지원, 성적 자극과 기쁨을 제공하는 장소가 되기를 사람들은 기대한다”고 했다. 또 이렇게 쓰고 있다. “정서적 욕구를 만족시키는 것이 이제는 금전적 관계의 일부가 됐음에도, 여전히 이 욕구의 충족을 돌보는 책임은 주부들 몫이다. 가정이 행복하지 못하면 주부 잘못이고, 가정을 행복하게 만들려면 가사 노동에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 한다. 임금 노동이 더 따분해지고 더욱 단순반복적인 작업이 되고 스트레스가 커질수록 이런 욕구 또한 커진다. 그런데 임금 노동이 이렇게 힘들어지는 추세는 새로운 기술 도입의 직접적인 결과다.” 가사노동 문제, 만만한 게 아니다.
아마도 이 논문은 누구나 쉽게 접하기 어려울 것이다. 다만 이 논문의 기본 문제의식에 대해선, 저자의 다른 논문 '마르크스의 생산력 개념에 대하여'(<시대와 철학> 11권 2호, 2000년 가을호)를 참고할 수 있겠다. 이 논문은 여기에서 구할 수 있다.
이밖에 이 논문의 주제와 긴밀하게 연관되지 않지만 참고문헌 가운데 하나인 '아리스토텔레스의 노동-사회철학과 정치이론'(최형익) (<시대와 철학> 11권 1호, 2000년 봄호)도 흥미있다. 하나 더 꼽는다면, 프리가 하우그[크?]의 '공산주의당선언에 대한 페미니즘적 접근'이 있다. 그리 길지 않은 이 글은 <선언 150년 이후>(보리스 까갈리쯔끼 외 지음, 이후, 1998)에 실려있는데, 영어본은 여기에서 구할 수 있다.
덧붙임: 이재유씨의 박사학위논문 축약본이라고 할 수 있는 논문이 <진보평론>에 실렸습니다. 25호인 2005년 가을호에 실린 글인데 최근(2006년 4월10일)에 인터넷을 통해서 공개됐으니, 관심있는 분들 참고하십시오. 계급의식과 노동자 계급의 자기 생산, 그리고 여성의 조직화
4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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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단상.
먼 댓글 보내온 곳
2006/03/17 12:49
marishin님의 [가사노동과 계급의식] 에 관련된 글. 원문을 안읽고 코멘트를 한다는 것은 거의 대부분 잘못을 저지르게 되지만 그래도 흥미있게 읽었다. 가족안에서 계급의식을 가진다는
미류 2006/03/21 10:27
비슷한 이야기를 어떤 강좌에서 듣고 깜짝 놀란 적이 있습니다. 과연 '가족 관계'가 새로운 사회의 씨앗을 품고 있을까요?
가사노동이 임금노동과는 달리 아직 상품화되지 않은 노동이라는 점에서 가사노동을 어떻게 사회화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새로운 사회에 대한 실마리를 열어줄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가사노동의 담지자를 자연스럽게 여성으로 설정하고 그녀를 부양하는 노동자의 계급의식형성의 기반을 가족으로 바라보는 접근방식이 새로운 사회의 씨앗을 영글게 할 지는 모르겠어요. 여성노동자에게는, '가족' 밖에서 가족을 꾸리는 노동자들에게는 어떨지...
이미 토론이 되고 있을 꺼라 생각했는데 덧글이 없네요. 아쉽습니다.
marishin 2006/03/21 17:48
이 논문을 한참 읽는 와중에 미류님이 쓰신 글 봤고, 저는 그 글에 깜짝 놀랐습니다. 제 문제의식은 '가족'밖의 가족까지는 미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른바 '가족' 내부에 한정해도 가사노동이 그리 간단치 않고, 저로선 이것도 버겁습니다. 가사노동에 '거의 전혀' 기여하지 못하는 개인적 문제까지도 겹쳐있어서요.
덧글이 없는 건, 이 논문의 문제의식조차도 낯설거나 간단치 않아서인 건 아닐까요? 아무튼 덧글을 주시니 너무 반갑습니다. 딴에는 심혈을 기울여 문제제기성으로 썼는데 반응이 없는 게 서운하던 차였는데^^
wingederos 2006/04/20 14:48
이 '이재유'가 블로그를 돌아댕기시는 그 '이재유'신가?
marishin 2006/04/20 16:37
wingederos님, 맞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