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서운 칼날 같은 글
아래는 문학평론가 조영일의 글, “글이 아니라 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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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질문만큼은 던지고 싶다. “현재 한국작가들이 취하는 이중적 태도(국민을 학살하고 이 땅을 아우슈비츠로 만든 이명박 정부에 대한 ‘급진적 태도’와 그런 정부를 옹호한 선배작가에 대한 ‘관대한 태도’)는 도대체 어디서 오는 것일까?” 만약 오늘날 한국의 작가들이 함께 해결해가야 할 중요한 과제가 있다면, 바로 이런 모순 자체가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이런 문제에 눈을 감은 채로 이루어지는 반(反)이명박(그리고 친(親)노무현)적 발언들은 ‘정치적 올바름’을 과시하는 기회가 될 수는 있을지 모르나 결코 문학적으로 올바른 행위라 할 수 없다.
필자는 최근 책에서 현재 중요한 것은 ‘문학과 혁명’이 아니라 ‘문학과 국가’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이와 관련하여 문학인들에 대한 공적지원금을 제도화한 황석영을 ‘한국문학의 총체적인 보수화’를 이끈 인물로 비판한 바 있다. 이런 나의 주장에 대해 문단의 반응은 시큰둥한 것 같다. 이는 진보적인 작가나 문학권력을 비판하는 비평가라고 해서 크게 다르지 않다. 오늘날 현실적으로 국가의 지원금이 없이는 문학하기가 힘들다는 것이다(까놓고 말해, 안 받은 사람이 거의 없다는 말이기도 하다). 물론, 어떻게 보면 국가는 ‘소수예술’을 지원할 의무가 있다. 예를 들어, 전통예술과 같은 경우는 국가의 지원마저 없다면 명맥이 완전히 끊길지도 모른다. 나는 이런 부분까지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여전히 대중과 소통가능성이 존재하며 스스로도 그것을 강조하는 데에 열심인 문학가들이 스스로를 옭아매는 일에 앞장서거나 또는 그 결과만을 조용히 받아들이는 태도는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하지만 백번 양보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학에도 상업성과 무관하게 보호되어야 할 영역이 존재할지도 모른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물음을 던져 본 적이 있었던가? “왜 그 보호주체는 항상 국가여야만 하는가?” 최근 인구에 회자되는 말 중에 ‘승자독식사회’라는 단어가 있는데, 그 말이 가장 극단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곳이 바로 한국문단이다. 한국의 문학출판시장은 지독한 ‘선택과 집중’에 의해 굴러가고 있으며, 이 과정에서 생긴 패자들은 국가의 지원금으로 그럭저럭 버티는 구조이다. 따라서 정권이 바뀐 후 생긴 여러 변화(주로 문학관련 예산축소)가 다수의 패자들에게 어떤 위기감을 고취시켰음은 자못 분명하다. 물론, 이런 해석은 지나친 감이 없지 않아 있다. 그러나 이런 해석이 아니고서는 문학인들이 왜 노무현 정부 때는 시종 침묵을 지켰는지 수수께끼가 되고 만다.
[출처] [이슈논쟁] 한국문학의 선언 (웬만하면 이렇게 많은 분량을 가져다 싣지 않지만 카페에 가입하지 않으면 읽을 수 없는 글이여서, 특별히 이렇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