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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평론에 대해서

이 글은 '번역본 한권 낸 적 없는 번역 평론가'라는 말에 대해서 논의가 오고간 한 게시판에 쓴 글인데, 쓰다보니 번역에 대한 '내 생각'의 중요한 단면들이 담겨 있어서 여기에도 올려놓는다. 관련 논의는 http://allestelle.net/forum/topic.php?id=587에서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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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본 한권 낸 적 없는 번역 평론가'라는 말에 대해서.

 

이런 말을 하면 일반 독자는 거부감을 느끼는 것 같습니다. “번역에 대해 모르면 찍소리 하지말라”는 말 정도로 받아들이게 되기 때문인 것으로 생각합니다. 저 또한 저 주장에 동의하지만, 이런 뜻으로 하는 소리는 아닙니다.

 

1.

먼저 다른 평론가들과 달리 '번역 평론가'는 (사실상!) 존재할 수 없다는 점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평론이 가능한 조건은 '작품'과 '작품에 대한 해석'이 (일정 부분) 독립적이라는 점 때문입니다. 쉽게 말해, '작품'이 등장한 뒤에는 그 작품을 '나름대로 해석할' 권리가 제3자에게 있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작품'을 몰라도, '작품'을 만들어본 적이 없어도, 누구든 그걸 보고 '제 나름대로 해석'할 수 있는 겁니다.

 

하지만 번역은 이와 본질적으로 다릅니다. 번역 작업은 원 저작에 대한 '해석'입니다. 그러니까 '번역 평론'은 '원 저작에 대한 해석'에 대해 '해석하기'입니다. '해석'에 대해 논하려면 '원 저작'을 알아야 한다는 건, 이로부터 당연히 도출되는 결론입니다.

 

그래서 '번역 평론가'가 될 수 있는 '적합한' 자격을 갖춘 사람은 1) '해당 저작'에 대해 잘 아는 '관련 전문 학자' 2)'해당 저작'을 원문으로 공들여 읽은 사람들 전체(굳이 이름 짓자면 '아마추어 평론가')입니다. 이를 생각해보면, '전천후 번역 평론가'란 거의 존재할 수 없습니다. (제가 앞에서 '번역 평론가'가 사실상 존재할 수 없다고 한 말은 이런 뜻입니다.)

 

2.

그런데 '번역본 한권 낸 적 없는 번역 평론가' 문제는, 이보다는 조금 낮은 차원의 '번역 평론' 단계에서 더욱 중요한 문제입니다.

 

이 단계란 '원 저작에 대한 해석'의 방법론을 논하는 단계입니다. '방법론'이라고 했지만, 여기에는 많은 문제가 얽혀 있습니다. 예컨대 이런 문제들입니다. 1) 원문에 충실할 것인가 아니면 독자들이 이해하기 쉽게 번역할 것인가 2) 원문의 문체를 최대한 살릴 것인가 아니면 '번역자' 나 자신의 문체를 세울 것인가 3) 한국어에는 없는 외국어 문장 구조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영어의 관계대명사절을 한국어로 어떻게 옮길 것인가 따위) 4) 기존에 한국에서 통용되고 있는 고유명사 표기법, 책 제목, 전문 용어 따위를 그대로 수용할 것인가 등등...

 

이런 방법론으로 가면, 번역해보지 않은 사람의 주장은 참고 사항 이상의 의미가 없습니다. (저 또한 번역해본 사람으로서 솔직하게 말하는 겁니다.) 왜냐하면 문제는 정말 간단하지 않고, 정답도 없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이런 문제에 있어서는 '외부 요인'도 상당히 작용합니다. '외부 요인'이란 예를 들면, 어설프게 아는 출판사 사장의 고집, '우리말다워야 한다'는 점에만 목매는, '무식하고 경험없는' 편집자, '책을 좀 팔아보자'는 (출판사, 편집자, 번역자 또는 이들 모두의 일치된) '욕심', 노동 착취라고 밖에 할 수 없는 '헐값의 번역료', 번역자 일반에 대한 무시 따위를 말합니다. (물론 형편없는 외국어 실력으로 번역한다고 나서는, 무모한 번역자들의 폐해도 분명합니다. 또 그걸 '윤문'으로 얼렁뚱땅 해결하고 마는 출판사들의 문제도 있습니다.)

 

3.

그런데 요즘 한국에는 이와 관련된 돌림병 한가지가 유행하고 있습니다. “번역은 무조건 쉬워야 한다”, “웬만한 수준의 독자가 읽어서 이해되어야 한다”는 '쉽게 쉽게 병'이 그것입니다.

 

이쯤까지 논하다보면, '번역 평론'을 논하는 것이 무의미하게 느껴집니다. 많은 사람이 '쉬운 게 최고'라고 떠드는데, '번역 평론'을 논하는 게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제가 알기로는 저 유명한 알라딘 블로그 주인도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번역은 이해하기 쉬워야 하지만, 원문이 어려운 책을 쉽게 번역하는 건 가능하지 않습니다. 또 상당한 배경 지식이 필요한 문제를 논하는 책을 배경 지식이 없는 독자가 이해할 수 있게 번역하는 건 가능하지 않습니다. (물론 배경 지식은 고사하고 해당 외국어와 한국어도 제대로 구사하지 못하면서 성의도 없는 사람이 번역자 행세하는 것도 한심한 일입니다.)

 

그런데도, 요즘 한국에서는 어느때보다 '번역 비평'(또는 번역 평론)이 활발합니다. 이렇게 번역 비평이 활발한 현상은 역설적으로 '반 지성주의'의 징후가 아닌가 싶습니다. “이해가 안된다”, “너무 어렵다”는 상투어만 남발해도 평론이 된다고 생각하는 게 아닌가 의심스러울 정도입니다.

 

4.

마지막으로 오해의 소지를 없애기 위해서 드리는 말씀인데, '단편적 오역 지적'은 웬만큼의 언어 지식과 성의만 있으면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일입니다. 그리고 번역자로서, '오역 지적'은 더없이 환영하는 바입니다. 물론 '단편적 오역 지적'과 '평론'은 구별되어야 합니다.

 

 

2009/08/31 16:11 2009/08/31 16:11
15 댓글
  1. 서울비 2009/08/31 18:39

    번역이 원텍스트와 동가가 아니라 하나의 해석작업이라는 근대적 인식에 대해서는 찬성하고, 열렬히 손을 들어주고 싶습니다. 다만, 해석이 전달에 선행한다거나 해석이 전달을 구성한다는 등의 발상에는 고개가 쉽게 끄덕여지지 않네요.

    사실, 번역에 있어서 단편적 오역만큼 치명적인 것은 없다고 봅니다.
    그것은 환영해야할뿐만 아니라, 그러한 단편적 오역이 반복되는 것을 지난하게 지적하고 습관적 오역을 검토하는 밑작업이야말로 번역을 검토하거나 비평하는 일에서 중요한 일 아닐까요?

    제게는 단편적 오역을 지적하여 진의를 밝히는 것만으로 전천후 번역비평이 아니라는 인식도 옳지만, 또 한편으로는 도대체 단편적 오역을 바로잡는 일과 번역 비평 사이가 그렇게 먼 것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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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marishin 2009/09/01 00:33

    오역 바로잡기가 번역 비평의 기초라는 점은 명백하지만, 번역 비평은 '오역 바로잡기'와는 차원이 다른 문제입니다. 비평은 필연적으로, 책 전체를 엄밀하게 읽고 따지는 방대한 작업일 수밖에 없습니다. 제가 '번역 비평'을 굉장히 거창한 것으로 포장한다고 생각하실지 모르지만, '고전'에 대한 연구와 재번역 작업에 기초가 되는 학문 작업이 바로 '번역 비평'의 하나라고 할 수 있습니다. 기존 번역에 대한 분석, 번역 용어에 대한 재검토, 외국의 번역서들 검토 등과 같은 일을 제대로 하지 않고는 진정한 재번역이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런 일은 외국에서만 하는 것도 아닙니다. 예컨대 강유원의 <경제학-철학 수고> 같은 책이 이렇게 나온 겁니다. (이 작업 성과에 대한 평가는 물론 또 다른 문제입니다만.)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원전 번역 작업을 하는 사람들도 아마 이런 '번역 비평'을 분명히 거쳤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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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2009/09/02 01:00

    안녕하세요? 대체로 무슨 말씀인지 알겠는데... (대체로 동의도 하고요)
    "예컨대 강유원의 <경제학-철학 수고> 같은 책이 이렇게 나온 겁니다" 부분은 좀 이해가 안 가네요. 강유원씨가 철학(헤겔) 전공자인 것도 알고, 또 그분이 책 꼼꼼히 보신다는 것도 대충은 짐작하는데... "경제학"에도 정통하신가요? 아니면 그걸 번역하는 과정에서 경제학에 정통한 사람들의 도움을 받은 것인가요? 그것도 아니라면... "기존 번역에 대한 분석, 번역 용어에 대한 재검토, 외국의 번역서들 검토 등과 같은 일"과 관련해서만 하신 말씀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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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marishin 2009/09/02 09:55

      <경제학-철학 수고>는 경제학 책이라기보다 철학 책입니다. 제가 저 책을 거론한 것은, 기존 번역 분석, 용어 재검토, 번역의 원칙 등과 같은 측면에서 말 그대로 '번역 비평', 조금 더 넓게 보면 '텍스트 비평'을 전제로 한 결과물이라는 측면 때문입니다. 사실 '번역 비평'을 가장 철저하게 해야 하는 이들이 번역자들입니다. 이는 꼭 재번역의 경우만 해당하는 것은 아닙니다. 제가 번역한 <탈근대 군주론>도 비슷한 노력을 바탕으로 한 결과물입니다.(이 책은 수많은 저자들을 인용하고 있기 때문에, 이미 한국에 번역되어 나온 그 책들을 어느 정도 검토하지 않고는 번역이 불가능했습니다. 물론 결과물은 아주 초라한 것이었습니다.)

      번역자와 이른바 '평론가'가 차이가 있다면, 번역자들은 자신의 '번역 비평'을 공개하지 않고 '번역 비평'의 결과물만을 공개하는 반면, 평론가들은 '결과'를 전제로 하지 않는 홀가분한 처지에서 '번역 비평'을 결과물로 공개하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진지한 번역자라면, 이 두가지 '번역 비평'이 얼마나 다른지 아주 잘 알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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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qualia 2009/09/02 05:04

    마리신(marishin) 님, 안녕하세요. 처음 뵙겠습니다. 마리신 님의 블로그를 발견하게 돼서 매우 기쁘게 생각합니다.

    윗글 「번역 평론에 대해서」를 읽고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되는군요. 전체적으로는 마리신 님의 의견에 동조 · 공감합니다. 하지만, 약간은 달리 생각하는 점도 있습니다. 이에 관해서는 다음에 댓글을 올려보도록 하겠습니다.

    제가 조금 전에 마리신 님의 다른 글에 댓글을 하나 올린 것이 있습니다. 즉 마리신 님의 「‘은/는’과 ‘이/가’에 대해 다시 한번」이라는 글에 댓글을 올렸습니다. 다만, 이번의 제 댓글은 문제의 마리신 님 글에 “국어학도”라는 분이 올리신 논박성 댓글을 겨냥한 것입니다. 저는 그 댓글에서 “국어학도” 님의 두 가지 주장을 논파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제가 그를 수도 있습니다.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마리신 님께서 「‘은/는’과 ‘이/가’에 대해 다시 한번」이라는 글에서 펴시는 주장에 저는 일부는 동의할 수도 있고 일부는 반대할 수도 있습니다. 저는 제가 “국어학도” 님께 드린 댓글에서는 아직까지는 마리신 님의 주장에 관한 한 중립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다음에 시간이 나면 마리신 님의 주장에 대한 제 견해를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더불어 그 논쟁에 참여하신 또 다른 한 분 “유배지” 님의 주장에 대해서도 제 의견을 밝혀보도록 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지금 2009. 09. 02. 수요일. 새벽 05시 02분. 맑은 듯.
    콸리아 / 퀄리아 / qual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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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gaudium 2009/09/02 09:27

    옘/ '로미오'는 읽었는데, '줄리엣'은 아직 못읽은 분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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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marishin 2009/09/02 09:59

      '로미오'가 '철학'인가요? 순서로 보면 '로미오'가 경제가 되어야 하는 것 같은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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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9/09/02 17:06

      생각해보니 로미오도 줄리엣도 아직 제대로 읽어본 적은 없는 것 같네요. ㅋㅋ

      하지만 <경제학-철학 수고>는 나름 열심히 읽은 것 같습니다. 앞서 marishin님은 이 책을 두고 "경제학 책이라기보단 철학 책"이라고 하셨는데, gaudium님은 오히려 그 둘이 그리 다른 게 아니라고 하시는 것 같군요. 뭐 둘 다 좋습니다만... 제가 이해하기로는 <경제학-철학 수고>는 상당히 경제학적인 저작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번역한다는 것은, 비록 분량은 얼마 안 되지만 매우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어려움은 첫째로 그 "경제학" 때문입니다. 다른 건 관두고 이렇게 여쭙겠습니다. 강유원씨께서는 번역과정에서 혹시 <경제학-철학 수고>에서 인용되고 있는 경제학자들의 저작들을 직접 보셨나요? 여기엔 Adam Smith와 같이 매우 유명하고 또 그 저작을 쉽게 손에 넣을 수 있는 저자만 포함되는 게 아님은 물론입니다. 더구나 강유원씨는 스미스의 <국부론> 등을 마르크스가 집필당시에 봤던 당시의 프랑스어 번역판으로도 보셨나요? marishin님은 "번역 비평", "텍스트 비평" 말씀을 하셨는데, 그렇다면 어떤 의미에서는 그보다 한결 더 "기본적인" 사항에 해당하는 위 질문들에 대해 두분이 어떻게 답하실지 궁금하군요.

      말이 난 김에 좀 더 해보면... 제가 지적하고픈 <경제학 철학 수고>의 번역과 관련된 두 번째 어려움은 그 저작 자체의 역사와 관련이 있습니다. 쉽게 말해, 그 책이 겪어온 원고발견에서부터 오늘에 이르는 그 나름의 역사, 그 책이 마르크스주의 논쟁사에서 나아가 20세기 지성사 일반에서 갖는 의미 등에 대한 것이죠. 과연 강유원씨는 이런 문제를 어떻게 받아들이시나요? 충분히 고려하셨다고 생각하시나요?

      끝으로... 번역 텍스트의 문제입니다. allestelle.net에 올라와 있는 pdf 파일을 보니, 강유원씨는 MEW에 있는 것을 텍스트로 삼았다고 하셨네요. 좋습니다. 그러나 강유원씨도 MEGA라는 어떤 면애서는 좀 더 완결된 판본이 있다는 것을 아시겠죠? 그리고 이와 같은 출간 및 재출간 작업을 통해서, <경제학 철학 수고> 텍스트 자체에 대한 여러 연구들이 나왔다는 것도 (물론 국내에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지만) 아시는지요? 저는 이런 사항들을 고려하는 것이 marishin님께서 말씀하신 "번역 비평" 또는 "텍스트 비평"의 일환이라고 생각하는데, 강유원씨는 이런 것들을 번역과정에서 어떻게 처리하셨는지도 궁금하네요.

      저는 기본적으로 강유원씨의 새번역이 나온 것을 환영하는 입장입니다. 그러나 여러 면에서 아쉬움이 좀 있었는데(하지만 이 아쉬움들이 모두 강유원씨 책임은 아닙니다), 그 일부를 좀 풀어놓아 봤습니다. 더구나 marishin님께서 강유원씨의 <경제학-철학 수고>를 기본이 갖춰진 번역이라고 예를 드시기도 했고요. 하지만 제 생각엔, <경제학-철학 수고>와 같이 그야말로 기구한 팔자를 가진 책과 그냥 시중에 떠도는 다른 책들과 "기본"이 같을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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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marishin 2009/09/02 18:42

    옘님이 지적하신 사항들은 모두 번역 작업을 하는 데 있어서 중요한 문제입니다. 거론하신 것을 모두 다 한다면, 거의 “완벽한 번역 비평”의 토대 위에서 번역을 한 것이 될 겁니다. 그런데 '옘님'이 말씀하신 것 전체를, 번역이 아니라 평생의 연구 차원에서 모두 하는 학자도 별로 없습니다. 혼자서 모두 완벽하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니까요. (실제 마르크스 연구하는 학자들로 특정 부분에 집중합니다.)

    그러니 지금 말씀하시는 것은, “번역 비평 작업으로서의 번역”이라는 주제를 넘어섭니다. 굳이 말하면 “완벽하고 이상적인 번역”이라는 주제에 해당할 겁니다.

    실제에 있어서 번역자는 선택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제 경험에 비춰서 이야기해보면, <탈근대 군주론>에 인용되는 학자들이 수도 없이 많습니다. 제 선택은 1)1차적으로 인용문을 기준으로 번역하고 2)한국어로 번역된 것이 있으면 찾아서 보고 3)용어나 개념에 대해 쓴 논문들을 뒤져본다는 3단계 작업이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번역문을 최종적으로 손 봤습니다. 하다하다 안되면, 관련분야를 공부한 학자 몇명에게 직접 도움을 요청하기도 했습니다. (물론 인용문 가운데 중요한 것은 이렇게 했지만, 사소한 인용문은 모두 세단계를 거치지 않은 경우도 많습니다. 사소하지진 않지만 번역도 되어있지 않고, 논문도 찾기 어려운 경우도 부지기수입니다. 그땐 영어자료라도 뒤지는 수밖에 없죠. 꼭 찾아내는 것도 아니지만요.)

    이렇듯, 번역은 '번역 비평'을 대 전제로 하되, 목표가 학문 연구가 아니라 '번역문'이라는 결과물이기 때문에, 계속 선택하고 버리는 작업을 피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이거 해보지 않으면 모른다고 하는 겁니다. 정답과 같은 방법론도 없구요.

    강유원님의 작업에 대해서는 저도 들은 바가 있지만, 제가 답할 것은 아니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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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9/09/02 20:04

      상당히 실망스러운 답변이군요. 솔직히 제가 위에서 "질문" 형태로 덧글을 달았지만, 그런 식의 질문이 제대로 답변될 거라고 생각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marishin님의 "변역 비평 작업으로서의 번역"과 "완벽하고 이상적인 번역"의 구분은 억지스럽군요.

      저는 "완벽하고 이상적인 번역"이 아니라 "번역의 기본"에 대해 말씀드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경철수고> 같은 책과 "시중에 떠도는 다른 책들"에 그 기본이 같을 수는 없다고도 했습니다. (노파심에 덧붙이자면, <탈근대 군주론>이 후자에 해당한다는 것은 아닙니다. 대충 말이 그렇다는 거죠.)

      다시 한 번 분명히 말씀드리지만, 저는 위에서 제가 열거한 사항들이, 적어도 <경철수고>와 같은 책의 번역과 관련해서는 "기본"에 해당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위에서 제가 언급한 정도라면, "평생"을 들일만한 일도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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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marishin 2009/09/02 21:22

    옘님, 성급하시군요.^^ 20세기 지성사에서 갖는 의미까지 따지는 게 '번역의 기본'이라고 생각하는 건 자유지만, 실망은 강유원씨 답변을 듣고 해도 늦지 않습니다.

    그리고 한가지 이상한 것은, 질문이 제대로 답변될 거라고 생각하지도 않으면서 질문한 이유는 뭡니까? 설마 사람 가지고 놀자는 거는 아닐거라고 믿습니다만, 적어도 앞으로 제 블로그에서는 이런 일이 없기를 기대합니다. 저는 이 블로그에서 성실하고 솔직한 대화와 토론을 원하는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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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9/09/02 21:36

      관련분야에 관심이 있는 연구자라면 "<경철수고>가 20세기 지성사에서 갖는 의미"는 따로 공부를 해서 애써 알아낼 문제는 아닙니다. 그리고 다시 반복하지만, <경철수고> 정도라면 그런 사항을 따질만한 이유가 충분합니다. 하여튼 별 이상한 방식으로 꼬투리를 잡으시네요. 어디 다른 문제도 그렇습니까? 전체적으로 봐주세요.

      그리고 강유원씨의 답변은 별도의 문제입니다. 저는 그분한테 실망한 게 아니라 marishin님의 답변에 실망한 겁니다. 이미 말씀드렸듯이, 제가 보기엔 marishin님의 답변은, 특히 그 "구분"은 상당히 "억지"스럽습니다.

      기왕에 이렇게 별로 쓸데없는 방향으로 말꼬리를 트시니까 저도 (불필요한 오해가 자라나는 것을 막기 위해) 덧붙이자면, 만약 marishin님 말씀대로 제가 강유원씨한테 질문을 한 거라고 이해하셨다면, 성급한 것은 제가 아니라 marishin님이죠. 왜 남한테 한 질문에 공연히 답을 하셨나요?

      더구나 이에 더해 성실, 솔직 운운까지 하시는 것은 심히 이해하기 어렵군요. 혹시 그런 문제가 그렇게 중요하시면, 저보다는 저 위에 gaudium님에게 먼저 주의를 주셨어야죠. 하여튼 저도 짜증납니다. 이 일로 다시 이곳을 들르는 일은 없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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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gaudium 2009/09/02 23:56

    옘 님의 번역본 기대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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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marishin 2009/09/03 09:10

    덧글을 쓰고 나서 생각하니 제가 과하게 반응한 듯 합니다. 그래서 삭제했습니다. 옘님, 상한 마음 푸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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