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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탕 바른 껍데기

이 글은 한번에 140자씩만 쓸 수 있는 트위터에 올린 것이어서 아주 압축적이다. 그런데 쓰고 보니, 주절 주절 늘어놓는 것보다 이렇게 짧게 쓰는 게 더 나은 것 같다. 앞으로도 이렇게 한 문단을 140자 이내로 써볼까 싶다.

 

* ----- *

 

우석훈의 <혁명은 이렇게 조용히>를 서점에서 훑었다. 20대를 위한 ‘시사적 수필’을 늙은(?) 사람이 진지하게 따지는 건 예의가 아니다. 이정도면 족할 것 같다. 시사 상식 없는 20대가 부담없이 읽겠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러면 큰일 난다.

 

우석훈의 주장은 한마디로 “20대가 스스로 권리선언문을 만들고 그를 관철시키려 혁명을 꾀하라”는 것. 다만 이 혁명은 멋지고 상상력을 자극하는 혁명이지, 구닥다리의 과격한 혁명이 아니다. 그건 ‘현실성’없단다! 그렇다고 치고, 진짜 문제는 알맹이다.

 

알맹이인 권리선언문은 없다. 그래도 4대 권리는 제시한다. 1. 일하고 싶을 때 일하는 유연성 있는 ‘노동권’ 2. 지하를 벗어나 햇볕보며 살게 해주는 ‘주거권’ 3. 문화 누리고 무상의료 받을 ‘복지권’ 4. 원대로 배울 수 있는 ‘교육권’.

 

우석훈은 이 엄청난(!) 4대 권리를 누리는 삶을 위해 싸우라고 한 뒤 “이 정도의 소박한 꿈도 혁명 없이 가능하지 않단 말인가? 그렇다. 우리는 지금 명박 시대에 살고 있다”고 끝낸다. (‘명박 시대’는 구시대적 토건국가의 시대로 읽어줘야 옳다)

 

노동권, 주거권, 복지권, 교육권, 이건 사소한 게 아니다. 20대에게만 필요하거나 그들만 원하는 게 아님은 물론이고. ‘과격한 계급투쟁과 혁명’의 역사가 목표로 한 것도 이것이었다. 이것만 되면 대부분의 민중은 더 바라지도 않는다.

 

계급적 투사들이 목숨 걸고 싸웠는데도 안되는 건, 이게 ‘자본의 독재’가 깨지지 않는 한 절대 이뤄질 수 없기 때문이다. 이걸 ‘코코 사넬의 혁명’처럼 멋지고 엣지있게 하라고 20대에게 말하다니, “불가능한 걸 요구하라”의 싸구려 변주인가?

 

<88만원 세대> 비판에 대해 공저자 박권일은 계급의 문제에 ‘세대론의 당의’를 입혔다고 변명했지만, 그 속편의 단독 저자는 ‘당의’가 본질임을 당당하게 드러낸다. ‘설탕 바른 껍데기’ 진짜로 믿다간 큰 코 다친다. 20대에게 전하고픈 내 진심이다.

 

2009/10/31 11:25 2009/10/31 11:25
20 댓글
  1. tnffo 2009/10/31 14:02

    '껍데기 믿다가 큰 코 다치는 사람'을 한 명이라도 더 줄이기 위하여, 이 글의 링크를 저의 지난 관련 (펌)글에 추가해 두겠습니다. 물론 그 글의 설득력 보강장치로 활용키 위함 입니다. 감사합니다. (행선지는 감춤니다, 이곳은 유명블로그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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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지나가다 2009/10/31 20:39

    네..훑어서 책을 읽으셨으니 이글도 그냥 흘러들어도 되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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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NeoPool 2009/11/01 19:45

    사실 ('패션좌파'들을 제외한) 20대들도 대부분 그 실체를 눈치까고 있다고 봅니다. 오히려 '우석훈'이라는 왜곡된 상징에 기대서 밖에 자기 목소리를 내지 못할 만큼 20대가 곤궁한 상황에 처해 있는 것이 알맹이, 진짜 문제겠죠. 오히려 제가 marishin님께 궁금한 것은 marishin님이 20대에게 전하고픈 다른 진심들인데요, 그런 것이 있는지, 있다면 어떤 것들인지를 알고 싶습니다. 얼마 전에 쓰셨던 '또 다른 착취'라는 글에서 '젊은이'(들)에 대한 일정한 태도가 드러나는 것 같은데 공부도 때가 있는 법, 착취당하고 있는 줄도 모르면서 징징대지말고 공부하라는 말씀 말고 다른 것이 있다면요. 무식과 무례와 오해를 무릅쓰고 직설적으로 여쭙자면 사실 marishin님께서는 우석훈이 싫거나 왜곡된 출판문화가 역겨울 뿐이지 '20대'나 그 '젊은이'에게 관심이 있는 것은 아니시지 않은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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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marishin 2009/11/01 20:42

      왜 관심이 없을 거라고 생각하시죠? 그렇게 생각하는 근거가 궁금합니다. (지난번의 ‘또 다른 착취’는 ‘특정인’에 대한 것입니다. 젊은이 전반과 완전히 무관한 이야기죠.)

      제가 20대에게 하고픈 말이요? 한마디로 하면 “껍데기에 속지 말라”는 겁니다. 속지 않으려면, 가짜와 진짜 구별을 할 수 있어야 하고 그러려면 무엇보다 공부해야죠. (여기서 공부는 책 읽고 수업 듣는 것에 국한된 말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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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NeoPool 2009/11/01 21:27

    저는 지난번의 '또 다른 착취'라는 글을 <뉴라이트 사용후기>를 낸 한윤형과 그가 자신의 블로그에 남겼던 코멘트에 관한 것으로 읽었습니다. 만약 그런 제 추측이 맞다면 저는 그 글이 젊은이 전반과 완전히 무관하지는 않다고 보았는데요. 한윤형이라는 '20대' 작가가 젊은이들에 대해 가지는 상징성이 있다고 보아서요.

    하지만 어쨋든 marishin님이 20대에게 관심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은 저의 성급한 판단이었던 것 같습니다. 긴 글을 통해서 그렇게 속단한 근거를 풀어보고 싶은 마음도 있지만 그 글은 marishin님에 대한 것이기 보다는 기성세대에 대한 것이 될 것 같고요, marishin님에게 제가 기성세대에 대해 가진 일련의 감정(한윤형이 어른들이 밉다고 남긴 코멘트와도 상통하는 부분이 있는)을 부당하게 투사한 것 같습니다. 다만 껍데기에 속지 않으려면 marishin님이 말씀하신대로 가짜와 진짜를 구별할 수 있어야 하고 그러려면 무엇보다 '공부'를 해야하지만, 지금의 20대는 그렇게 하지 않거나 혹은 그렇게 할 수가 없어서 애초에 문제가 되었던 것이 아니었던가, 그래서 우석훈이 팔릴 수 있는 틈새가 열렸던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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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marishin 2009/11/01 23:00

      ‘상징성’ 따위의 말을 쓰시는 이유가 있습니까? 저는 이상한 투사가 연상될 뿐입니다. 어떤 작가에 대한 글이라면 그렇게 받아들이면 됩니다. 어떤 작가에게 상징성을 부여하고 이것을 근거로 삼아서, 20대 전체에 대한 어떤 메시지라고 받아들이는 건 그저 논리적 오류일뿐입니다. 저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논리입니다.

      그리고 공부를 해야 하는데 하지 않거나 할 수 없는 이유는 뭐죠? 하지 않거나 할 수 없는, 20대만의 이유가 있나요? 별로 그럴 것 같지 않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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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NeoPool 2009/11/01 23:51

      네... 잘 알겠습니다. 공부를 해야 하는데 하지 않거나 할 수 없는 20대만의 이유, 그딴거 아마도 없겠죠. 깊이 생각해보지도 않고 감정이 앞서서 뻘플을 단 것 같네요. 좀 더 생각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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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oct 2009/11/01 23:02

    우파 뿐만 아니라, 지식인 계층(구좌파와 엘리트주의자)이 우석훈을 싫어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들의 공통점은 보수적, 권위주의적이라고 봅니다.
    생태주의와 여성주의와 문화주의를 지향하는 신좌파와 구좌파의 핵심적인 차이는 '변혁의 주체'를 누구로 보는가 하는 것인데, 우석훈은 당연히 생태주의자, 여성주의자, 젊은 문화생산자를 변혁의 주체로 보는 것이지요. 이 점에서 아직도 육체노동자를 변혁의 주체로 삼아 정치권력을 획득한 후 세상을 바꾸겠다는 구좌파의 관점과 다를 것입니다만.
    우석훈이 비교적 쉬운 책을 쓰는 것은 20대를 비롯한 대중의 독서수준을 고려한 것이라고 봅니다만, 그저 20대에게 설탕 발라서 약(책) 팔아먹는 사이비 약장수 취급하는 것은, 근거가 어디에 있는지 저로서는 좀 이해가 어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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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marishin 2009/11/01 23:59

      제가 생각하는 근거는 이 글에 모두 썼습니다. 그 이상의 근거는 없습니다. (제가 이 글에서 문제 삼고 있는 건 쉬운 글쓰기가 아닙니다. 가능하지 않은 것을 가능한 것처럼 말하는 것을 문제로 보고 있는거죠.)

      그리고 구좌파, 신좌파와 이 문제는 관련이 없습니다. 사실 우석훈은 별로 신좌파도 아닙니다. 아니 아예 좌파가 아닐지도 모릅니다. 그에게 변혁의 주체가 있다면, ‘세대’ 그 가운데서도 ‘20대’가 있을 뿐입니다. 좌파 가운데 이렇게 ‘세대’로 변혁 주체를 나누는 사람은 본 적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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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oct 2009/11/02 00:30

      "가능하지 않은 것"이라고 하셨는데, 80년대 운동권들도 가능하지 않은 것을 상상하며 박해를 감당했었는데, 개인적인 차원에서 그때보다 더 절박해진 20대 10대가 그러지 못할 이유가 무엇인지 이해가 안 갑니다.

      그리고 우석훈이 '20대'라는 '세대'를 '변혁주체'로 삼았다고 보지 않습니다. 기존의 노동운동과 진보운동이 놓치고 있는, 루저이자 비정규직 노동자들인 그들 중에서'도' 변혁의 주체가 나오기를 기대하는 것이라고 보았습니다.

      "아예 좌파가 아닐지도 모릅니다"고 하셨는데 저는 동의하지 못하겠습니다. 아예 "좌파"의 기준도 서로가 인정할 수 있도록 논의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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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marishin 2009/11/02 01:14

      제가 “가능하지 않은 것”이라고 한 것이 무슨 뜻인지는, 제 글에 이미 썼습니다. 말씀하시는 것과는 전혀 다른 맥락의 이야기입니다.

      두번째에 대해서는 우석훈의 이번 책을 보시면 조금은 이해가 될 수 있는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계급” 대신 “세대”를 단위로 삼는 이유가 나와있습니다. 저 사람은 정말로 “세대”를 중요한 기준으로 봅니다. 적어도 책에 써놓은 것을 보면 말이죠. “가치” 대신 ”화폐”라는 말을 쓰는 것도 같은 이유라고 쓰고 있습니다.

      세번째는, 당연히 저에게 동의하시면 안됩니다. “아닐지 모른다”(나도 확신이 없다는 뜻의 말)에 동의한다는 건 이상하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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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oct 2009/11/02 02:42

      "자본의 독재"를 부수지 않으면 작은 복지도 대부분 얻기 힘들 것이라는 것에 동의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자본과 싸우지 않는 것은, 그걸 모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알더라도 두렵거나 대기업 정규직의 혜택을 받고 싶기 때문이기도 할 것입니다. 근본적인 것을 이해하면 근본적인 싸움을 할 수도 있겠지만, 싸우고 싶지 않기 때문에 알고 싶지도 않은 경우가 현실에선 더 많은 것 같습니다.
      연대해서 저항과 싸움을 작게라도 시도해야 더 큰 싸움인 "자본의 독재"와 싸우는 주체로 성장할 수 있으리라 봅니다. 물론 어렵겠지만 지금 안 어려운 길이 어디에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두번째는, <혁명은...>을 아직 안 읽었지만 전에 나온 우석훈 책은 거의 다 읽었기에 가지고 있는 신뢰인데, 아직 다 안 읽어서 뭐라고 말하기 그렇습니다.
      세번째는, "동감"이라고 하면 괜찮겠습니까? 바쁜 세상에서 살아가야 하는 우리들은, 이성적인 판단은 어렵고 느리니 감각적인 취향의 판단에 의지해서, 뭉치거나 경계하며 사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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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marishin 2009/11/02 09:00

      뜻을 잘 알겠습니다. 한마디만 덧붙이면 “이성적인 판단은 어렵고 느리니 감각적인 취향의 판단에 의지해서, 뭉치거나 경계하며 사는 것 같”다는 지적이 유독 눈에 띄는군요. ‘감각적인 취향의 판단’이라, 답답한 세태를 압축적으로 담는 표현으로 다가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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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바람 2009/11/02 14:26

    노동권, 주거권, 복지권, 교육권! 가진 것 없는 사람들에게 참으로 절실한 문제이기는 하지만, 한편 참으로 국가주의의 냄새가 나는 것 같아 자칫 큰 위험에 빨질 수 있을 것만 같습니다. 정말 위험한 생각이라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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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행인 2009/11/02 15:00

    저 "소박한 꿈"을 언제까지 간직하고만 있어야할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386이라는 "세대"가 586이 되어가고 있는 지금도 현실은 업글이 안 되고 있다는 것만은 분명하죠. 지금의 20대라는 "세대"가 앞으로 20년 후에는 그 시대의 20대들에게 "세대"로 갈려 짱돌을 맞아야 한다는 것이 숙명이라는 것일지 궁금합니다. '당의'가 본질이었다는 것은 이렇게 너무나 쉽게 밝혀져버리는군요. 우석훈의 한계인 동시에 현실을 극복할 방향이 없다는 것으로 보여서 무척 답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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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marishin 2009/11/02 17:10

      답답하긴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20대가 희망이 참 없다는 생각, 그리고 그들에게 희망을 만들어주지 못한 ‘기성 세대’의 일원으로 미안한 마음도 큽니다. 다만 진정한 희망은 현실을 정확하게 아는 것에서부터 나올 수 있다고 봅니다. 너무 답답해 하지 말고, 현실을 정확히 파악하는 것부터 차근차근, 한발씩 함께 나아가면 좋겠습니다. 인생, 어떻게 보면 꽤 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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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bvond 2009/11/12 21:04

    자기자신은 여러 사람이 볼 수 있는 곳에서 누군가가 마음대로 정한 부류로 분류되기를 거부하실 분들이 어떤 사람에 대해서는 함부로 말하는 것을 보고 이 글을 올립니다. 저는 트위터나 블로그를 하지 않아서 부득이하게 이 곳에 쓰게 되었습니다.
    프로스포츠에는 관심이 없을듯한(관련 글들이 없는 듯 합니다.) 분들이 SK야구단의 김성근 감독에 대해 비난을 하는 것을 보고 몇 가지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이 글을 쓰는 이유는 김성근이 칭송 받아야 할 사람이라는 이야기를 하고자 함이 아니라 유독 혼자 비난을 들어야 하는 이유는 없음을 말하기 위해서입니다.
    1.한국국적을 가진 프로야구 지도자 중에서 '선수들의 생사여탈권에 가까운 권력을 가진자(감독말안들으면 당장 밥굶을 각오를 해야함)’가 아니며 ‘헌신과 열정으로 치장된, 서커스식 조련을 수행’한다는 문구에 해당되지 않는 사람이 있으면 이야기해 주십시오. 생사여탈권을 가진 자로부터 퇴출당하게 된 선수를 위해 각서까지 쓰는 감독, 퇴출당한 선수들이 마지막에 찾는 감독이 타 팀의 감독보다 유독 심하게 선수를 비인격적으로 대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2.이번 한국시리즈에서 언론플레이를 누가 했는지는 이 기사들을 보시면 알 수 있을 겁니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001&oid=295&aid=0000000315&
    http://news.nate.com/view/20091104n04591?mid=s1000
    오히려 굳이 갖다 붙이자면, 1999년에 있었던 이아무개 기자와 최아무개 교수의 일이 생각납니다.
    한 팀을 9번 우승시켰던 감독의 심판매수 발언 언론플레이는 어떻습니까?
    3.‘과거 부하 뒷통수를 공개석상에서 쓰다듬는’다는 이유로 ‘미친놈’소리를 들어야 한다면 카메라 앞에서 선수를 발로 구타하는 최다우승경력의 감독에게는 뭐라고 해야겠습니까?
    4.기업의 무노조정책을 비판하는 사람들은 과거 최동원, 양준혁, 송진우 등이 선수협 결성을 위해 힘쓸 당시의 선동렬, 이종범(KBS한성윤기자 글 참고)의 행동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해야 ‘자기모순’에 빠지지 않을까요?
    회사에서 노조에 대해 이 정도 말이라도 해주는 ‘상사’가 있습니까? 야구판에는 없었습니다.
    http://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baseball&ctg=news&mod=read&office_id=241&article_id=0001979742
    5.장원삼 트레이드 시도에서 보듯 모기업 특유의 편법을 쓰며 ‘승리에 광적으로 집착하는 늙은 여우’들인 모 팀의 사장과 감독은 ‘퇴출’시켜야겠지요? 이 트레이드에 관련된 두 팀 중 한 팀의 선수가 SK와의 시합을 앞두고 김성근 감독을 찾아가 투구동작 교정을 부탁하고 허락 받은 것을 보면 누가 더 승리에 광적으로 집착하는지는 명확합니다.
    6.‘언론플레이에도 능’하고 ‘별거 아닌거에도 말이 많은’ 감독이 ‘별것’인 일에 입다무는 대부분의 ‘야구인’보다는 욕을 조금 덜 먹어도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http://blog.naver.com/dhp1225/120068452981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0512165642
    경쟁사회의 비참, 강자 독식 논리, 승리에의 광적인 집착. 이런 것 때문에 프로스포츠가 불편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김성근 한 명에게 그와 같은 것들의 책임을 물을 수는 없습니다. 선수협, 사무총장 선임 관련 발언과 같은 것을 보면 그는 적어도 다른 이들보다 앞서 욕을 먹을 사람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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