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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역 냉정하게 보기

(내가 아는 한) 한동안 뜸했던 번역서 오역 문제가 최근 다시 불거졌다. 번역자가 신망을 얻는 사람이고 오역을 지적한 사람도 나름 유명인이어서, 더 관심이 갈 법한 사건이다. 나도 관심 있게 지켜봤다. 보면서 든 첫번째 생각은, 사람들 특히 ‘관중’들이 오역 문제를 좀더 냉정하게 바라보면 좋겠다는 것이다. 오역이 바람직하진 않지만 그 자체로 큰 불명예는 아니다. 오역 지적을 번역자 공격 행위로 보는 태도도 바람직하지 않다. 감정을 배제하고 냉정하게 보면 좋지 않을까?

 

이번에 오역을 제기한 이의 말대로 번역서의 오역 지적은 ‘소비자 운동’이라고 볼 여지가 있다. 공개적인 지적은 각성 촉구의 효과를 극대화하는 전략이다. 때로는 오역 때문에 독자들이 꺼려해서 괜찮은 책이 잘 팔리지 않는 일도 생길 수 있으나, 그래도 길게 보면 긍정적인 효과가 더 크다.

 

내가 문제라고 생각하는 것은 이런 오역 지적에서 한발 더 나아가려는 시도가 이 땅에 별로 없다는 점이다. (물론 한두 사람의 문제가 아니다.) 독자를 위해서건, 출판계와 번역자를 위해서건, 좀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질 때가 됐다.

 

“오역이 가득한 번역서들이 왜 계속 나오는가?”

 

이 질문을 냉정하게 따져보는 데에 있어서 가장 큰 걸림돌은 “오역은 번역자의 자질 문제다”라는 태도다. 내 경험에 비춰볼 때, 이는 엉터리 진단이다. 오역은 대체로 번역자의 자질과 큰 상관 없다.

 

1) 많은 오역은 시간이 촉박해서 생긴다.

나는 기한이 촉박한 번역은 하지 않는다. 그리고 애초 계약한 마감을 넘겨도 양해될 것 같아야만 일을 맡는다. 번역에 들어가기 전엔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짐작하기 어려운 까닭이다. 나는 적당한 단어 하나 또는 한 구절이 떠오르지 않아 두, 세시간씩 끙끙거리는 일이 흔하다. 외국인 이름 표기 때문에 몇시간씩 인터넷을 뒤지는 일도 있다. (어느나라 사람인지라도 알아야 외래어표기법에 따라 표기할 수 있으니까.) 물론 도저히 해석이 안되어서 한 문장을 몇시간씩 붙들고 있는 일도 흔하다. 학계에서 통용되는 용어를 찾으려 논문 뒤지는 일도 가끔은 있다.

 

내가 성실한 번역자라고 자랑하려는 게 아니다. (내가 집착이 조금 심하긴 한데, 내가 번역하는 책들이 잘 팔리지 않는 탓이 크다. 잘못을 고쳐 새로 출판할 기회조차 없는 번역자가 덜 욕 먹는 길은 한번이라도 더 보는 것뿐이다. 인기 없는 번역자의 슬픔이라고나 할까?)

 

이렇게 많은 시간을 들일 수 있는 번역자란, 재미 또는 사명감 비슷한 것 때문에 돈이나 시간 생각하지 않고 번역하는 사람뿐이라는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다. 번역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대부분의 전업 번역자는 이렇게 하면 굶어죽기 십상이다. 이런 식으로 일하면 한달에 200만~300만원 벌기도 힘들다. 게다가 느려터진 번역자한테는 번역 의뢰도 잘 들어오지 않는다.

 

2) 많은 오역은 출판사 편집자 또는 교정자가 잡아낼 수 있다.

내 경험으로 볼 때, 성실한 편집자는 번역자가 대충 넘어간 대목을 꼭 찝어낸다. 문제가 있는 번역문은 책 전체의 맥락을 이해하면서 꼼꼼히 읽으면 얼마든지 구별해낼 수 있다. 그래서 성실한 편집자나 교정자를 만나면 오역을 많이 줄일 수 있다.

 

3) 어떤 오역은 속수무책이다.

인문·사회과학 번역서의 경우, 번역자가 책 내용을 완벽히 소화해서 번역하기는 좀처럼 힘들다. 비록 관련 분야 전공자라고 할지라도, 책 전체를 완벽하게 이해하기는 쉽지 않다. 이 또한 어쩌면 너무 당연한 얘기다. 물론 다른 측면에서 보면 한국의 학문 수준 전반과 연관되는 문제이기도 하다. 누구도 알 수 없는 것들은 그냥 넘어가는 수밖에 없다. (내 경험을 덧붙이자면, 어려운 책을 고생해서 번역했더니 독자들이 “내용이 너무 어렵다”며 번역의 질을 탓할 때 가장 답답하다. 6개월 정도 붙들고 있으면서, 원문과 번역문을 합쳐 5번에서 10번 정도 읽어도 이해가 안되는 책을 무슨 수로 독자들이 단번에 이해하게 번역한단 말인가? 이런 심정이 들기 때문이다.)

 

이해를 돕기 위해 조금은 극단적인(?) 사례를 하나 들어보겠다. (아래는 <진실 말하기>에 실린 헝가리 학자, 가슈파르 미클로시 터마시(G.M. Tamas)의 글 ‘계급에 얽힌 진실 말하기’의 43번 주석 번역문이다.)

 

이것은 앤드루 러빈이 그의 흥미로운 책, A Future for Marxism? Althusser, the Analytical Turn and the Revival of Socialist Theory, London: Pluto, 2003에서 보지 못한 것이다. (존 로머 등에 나타나듯) 평등주의와 (나중에 G. A. 코언에게서 보이듯) ‘규범적인’ 정치 철학을 크게 법석을 떨지 않으면서 골치 아픈 맑스주의의 출구로 받아들인 러빈의 이 책에서, 1970년대에 초기 좌파 이론을 재창조하려고 시도한 두 명의 저자 곧 루이 알튀세와 G. A. 코언이 러빈의 영웅이 되어야 한다는 건 상당히 아이러니하다. (중략) 분석적 맑스주의에서 남는 분석적인 것은 그 무엇이 되었든지, 추천할 만한 것인 명료화 시도를 빼면 ‘시대물’의 느낌, 옥스퍼드의 경박함과 케임브리지의 속물근성의 결합일 뿐이다.

 

This is what Andrew Levine fails to see in his interesting book, A Future for Marxism? Althusser, the Analytical Turn and the Revival of Socialist Theory, London: Pluto, 2003. It is quite ironical that the two authors who in the nineteen-seventies tried to recreate a pristine left theory, Louis Althusser and G.A. Cohen, should be Mr Levine’s heroes in a book which accepts egalitarianism (in John Roemer and others) and ‘normative’ political philosophy (in the later G.A. Cohen) as an egress for wayward Marxism without any further ado. (중략) Whatever analytical remains from analytical Marxism is rather the ‘period piece’ feel, a combination of Oxford flippancy and Cambridge philistinism, besides a commendable striving for clarity.

 

도대체 한국에서 앤드루 러빈이란 학자를 아는 사람이 몇이고, 2003년에 나온 그의 책을 읽어본 사람은 또 얼마나 되겠는가? (물론 난 누군지도 모르면서 번역했다. 빼먹을 순 없으니까. 그래서 엉망이다!) 게다가 “시대물의 느낌(period piece feel)”은 도대체 뭐고, “옥스퍼드의 경박함과 케임브리지의 속물근성”을 아는 사람은 있을까? (내가 내놓고도 낯 뜨거운 번역문이니, 누가 멋지고 이해하기 쉽게 새로 번역해주면 정말 고맙겠다.) 그러니 독자들이 조금 더 너그러워지면 좋겠다.

 

물론 오역의 원인은 이밖에도 많을 것이다. 최소한의 언어 실력도 없으면서 성의마저 없는 번역자들도 분명 있을 것이다. 하지만 위에 제기한 1번과 2번 문제만 해결해도 우리의 번역 수준이 크게 나아질 거라고 본다. 이게 내 경험으로부터 얻은 결론이다.

 

이 두가지 문제는 어떻게 해결할까?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겠다. 다만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적인 문제로 보고 접근해야 하지 않겠냐는 게 내 생각이다. 이것이 내 문제 제기의 핵심이다.

2010/08/09 18:22 2010/08/09 18:22
23 댓글
  1. 전업번역자가/ 2010/08/09 20:18

    이런 식으로 일하면 한달에 200만~300만원 벌기도 힘들다=> 생각보다 꽤 많은 수입이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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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marishin 2010/08/09 20:54

      한달에 한권도 번역하기 힘들다는 뜻으로 쓴 겁니다. 사람마다 다른 게 변역계 현실이지만 어느 정도 경력이 있는 “진짜 전업 번역자”는 한권에 저 정도는 받을 겁니다. 그런데 한권을 한달에 끝내는 건 보통 중노동이 아닙니다. 노동 강도를 생각하면 많은 게 아니라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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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azrael 2010/08/09 20:45

    강유원의 번역서?? 항간에 떠도는 소문은, 학생이 번역을 해서라는 말이 있던데, 사실 여부는 모르겠어요...어쨌거나 오역은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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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Marishin 2010/08/09 20:59

      근거없는 소문은 삼가주세요. 그리고 제 이야기는 어떤 특정 사안과 무관한 것임을 감안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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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들사람 2010/08/09 21:41

      강유원씨 번역이 명성만 못하단 지적이 있죠 확실히. 강씨는 어려운 원문은 어려운 맛을 살리는 게 자기 번역의 원칙이다 보니 그런 거라고 주장하는데, 논쟁적인 주장임을 감안하더라도, 실제 사례를 들어보면 부실한 번역의 알리바이에 더 가까워 보이더라구요. 경험한 바로도, '기본적인' 텍스트 장악력이 떨어지는 친구한테 번역을 맡겨 교열자까지 애먹게 하는 것 같고요.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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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말걸기 2010/08/10 03:31

    잠깐 출판일을 했었는데 공감이 팍팍 되네요.
    하나 더하기 하면, 한국은 기본적으로 진지한 출판(시간을 충분히 들여서 완성도를 높이는 출판)은 어려운 것 같습니다. 번역자 뿐만 아니라 저자, 편집자도요. 책값이 싸지도 않은데 책 한 권 번역하거나 저술하는데 100만 원도 못받는 경우가 허다하니 어처구니 없는 출판 현실입니다. 편집자는 정해진 스케줄을 맞추는데(대부분 그렇게 되지도 않으면서) 급급하기 마련이죠. 책 만들어 보니까 서점의 그 많은 책들을 신뢰하기 어렵게 되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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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iraqi 2010/08/10 10:42

    하지만 돌베개 트윗을 보면 이번 강유원싸 번역은 이년전부터 계획된 것이라고 하네요. 뭐가 문제인지는 뻔한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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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marishin 2010/08/10 11:42

    2년전부터 계획했다는 게 2년동안 책 잡고 있었다는 소린 아닐겁니다. 그렇게 오래 잡고 있을 여유가 있는 편집자도 번역자도 한국에는 별로 없습니다. 제 번역서 하나도 2년 걸렸지만, 번역자 6개월, 편집자 1-2개월이었습니다. 번역자 6개월은, 위에 썼듯이 제가 강하게 요구한 결과였습니다. 저는 한량한(?) 번역자이기에 6개월이나 잡고 있을 수 있습니다. 대학교수 같은 분들이나 누릴 수 있는 호사를 누린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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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김홍식 2010/08/10 11:46

    저도 번역하는 사람입니다. 글을 읽어보면서 많이 공감하게 됩니다. 용어 하나를 해결하기 위해서 논문 대여섯 편을 공부해야 할 때도 있었으니 임의 말씀에 공감을 넘은 애환이랄까, 표현하기 힘든 동병샹련을 느낍니다. 말씀처럼 번역출판의 질에는 여러 가지 요인이 개입된다고 보지요. 가장 큰 원인은 번갯불에 콩구워 먹기식 상업적 출판문화라고 봅니다. 이 문제에서 부족한 작업시간, 열악한 번역료 결제 관행, 번역자의 노동을 단지 하도급 부품처럼 인식하는 태도, 책임감 없는 외주편집 등등이 도출된다고 저는 봅니다. 이에 대해 누가 반박한다면 다시 토를 달 생각은 없습니다. 어차피 지고 갈 현실을 각자 지고갈 수밖에 없는데, 말싸움할 시간은 더더욱 없다고 봅니다. 글쓴 분과 공감의 자료 삼아 제 기억의 흔적 몇 개 붙여봅니다. http://goo.gl/eNIR http://goo.gl/EEB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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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marishin 2010/08/10 11:51

    저에게 보통 요구는 3개월에 끝내다라는 겁니다. 하지만 전업이 아닌 제 기준으로 보면 3개월에 끝낼 수 있는 책은 거의 없습니다. 제가 이야기 들어본 바로는 전업 번역자도 별 차이 없습니다. 그들도 하루 10시간 이상 번역일 못한답니다. 인간의 물리적 한계때문에 집중이 안된답니다. 결국 절대 요구 시간이 무시된 채 번역서들이 나오고 있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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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회사원2 2010/08/10 13:53

    오랫만에 글을 올리셨네요. 모든 출판사가 그렇기야 하겠습니까마는 저임금 혹은 저비용에도 불구하고, 저자 번역자 편집자 등에게 과도한 열정과 희생을 강요하는 게 책 만드는 일이라는 소릴 들었습니다. 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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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marishin 2010/08/10 15:12

      아, 네. 너무 오래 글을 쓰지 않았는데, 마침 제가 관심 많은 오역 문제가 나와서 마음에 담아뒀던 이야기를 써봤습니다. 출판 환경은 참 답답합니다. 대형 출판사도 다름 없는지 모르겠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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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grainy 2010/08/10 22:39

    선생님 글에 너무 공감이 되어 괴로울 정도입니다. 뭐 하나 찾아보려고 몇 시간을 헤매거나 머리 쥐어뜯는 경험, 한낱 교정노가다도 숱하게 겪는 일인데 하물며 번역하시는 분의 노고는 상상이 되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받는 돈은 너무 적고... 일단 무엇보다 시간 문제만큼은 정말이지 넉넉하게 잡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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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marishin 2010/08/10 23:14

      잘 지내시죠? 저는 교정, 교열자가 더 존경스럽습니다. 번역자는 이름 올리는 허세라도 누리지만 교정자는 그런 것도 없는 데다가 원문도 아닌 번역문과 씨름을 해야 하잖아요. 융통성의 여지도 적으니 글을 고치는 것도 훨씬 까다롭고요. 돈 이야기는 해봐야 한심한 생각만 들고… 그래도 희망을 가져 보자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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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牛而先生 2010/08/10 23:29

    번역 중이신 모양입니다. 어떤 책인지 알 수 없고 맥락도 모르지만, 누가 되지 않는다면 다음과 같이 해볼 수 있을 듯 합니다.

    이 점이 앤드류 레빈이 A Future for Marxism?....에서 간과한 것이다. 이 책에서 레빈은 (로머 등이 말한) 평등주의와 (코언의 후기 저작에서 보이는) '규범적인' 정치철학을 맑시즘의의 대안으로 받아들였는데, 그가 변질되기 이전의 좌파 이론을 되찾으려 애쓴 알튀세와 코언에 크게 기대고 있는 점은 매우 역설적이다. (중략) '분석적인 맑시즘'에서 그 '분석적'이라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든 간에 분명하게 쓰려 했다는 점에서, 그리고 옥스포드 출신들의 얄팍함과 캠브리지 출신들의 무식함을 고루 갖추었다는 점에서는 주목할 만한 책이라는 느낌이다.

    번역이 아니고, 그냥 읽는다면 이렇게 읽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레빈이 쓴 책을 보면 맑스의 대안이라면서 맑스 원전을 보자는 말을 해댄다. 이 사람 책이라는 게 단순무식하기가 짝이 없다는 점에서는 당대 최고의 반열에 든다.

    철학이나 그런쪽 전공이 아닌데다 내용의 맥락을 모르지만, 위의 글만 보면 레빈이라는 사람을 엄청나게 공격하는 것으로 보이는군요.

    모르는 어구가 나오면 구글을 돌려보면 바로 알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period piece라는 것을 넣어보면(아마 아시면서도 예를 들기 위해 모르겠다고 표현을 하셨겠지요) 위키의 설명이 나오고, 그것을 문맥에 맞게 적절히 썼습니다. 보니까, 저자가 레빈이라는 사람이 아주 못마땅한 듯한데 아마 좋은 곳에서 좋은 대학만 나와서 비싼 연봉 받는, 세계를 이 모양으로 만드는 나라의 학자(레빈은 미국 출신, 콜롬비아대에서 공부)가 맑스의 대안을 거론한다는 자체부터가 마음에 안 든 것 아닐까 싶습니다.

    만약 위의 구절이 문맥상 중요하다면, 레빈이 평소 어떤 글들에서 어떤 주장들을 했는지 알면 보다 정확한 번역이 나올 것 같은데 구글링하면 해결이... : )

    역시 지적하신 대로 시간의 문제입니다. 게다가 요즘 인문사회과학 번역서의 번역비도 너무 적고, 모르는 사람들이야 가방끈 있다면 무조건 다 돈 잘 버는 줄 알고, 또 그런 측면이 없지 않아 있지만, 돈 있는 학자는 돈 있으니까 안 하고, 돈 없는 학자는 돈이 안 되니까 안 하고.... 그럼 번역은 누가 하게 된단 말입니까. 국민 모두가 공무원인 사회(사회주의)가 아니라면,노고에 대한 최소한의 대가가 있어야 가난한 학자도 살고, 사회도 살지요. 노동자는 임금협상이라도 하는데, 1년에 1천만원도 못 버는 학술번역인력들은 그런 얘기 하면 배운 놈들이 또 돈 얘기한다고 손가락질 받습니다. 이래서야 사회적 연대라는 것이 불가능하지요.

    여러 이유 중 공공도서관 정책이 좀더 큰 원인입니다. 도서관들도 사람 많이 온다는 게 증명되어야 도서구입비를 늘이는데, 그러려니까 엉뚱한 실용서, 참고서에 싸구려 소설들만 갖다 놓는 악순환이 계속 되고 있습니다. 예전부터 도박과(문광부 도서관박물관과, 지금은 이름이 바뀐 걸로 알고 있습니다만) 공무원들 만나면 도서관 정책을 바꿔야 한다고 힘주어 얘기하는데, 그들도 공감하지만 예산이 너무 적다는 말만 되풀이 합니다. 그 입장도 이해가 되지요. 그래서 중하위직들을 내편으로 만들어도 잘 안되는 것 같습니다. 결국 예산을 쥔 국회를 장악해야 하는 것이고, 그것만 잡으면 대충 끝나는 겁니다. 대장성 관료를 국회가 쉽게 꺾질 못하는 일본 사정이 그래서 그런 거죠.

    문화관광부 예산이 정부 예산의 1%가 넘은 게 김대중 정부 후반부터입니다. 문화재 및 사찰 때문에 정부에서 가장 많은 재산을 관리하는 부서가 문광부인데도 예산은 1%밖에 못 받는다는 사실... 그나마 방송및문화컨텐츠산업과 각종 DB구축 사업 때문이지 도서관 때문은 아니었습니다. 독자층이 넓은 문학을 포함한 인문과학 분야가 아닌, 사회과학 분야에서는 베스트셀러 작가가 30명 안팎이고, 300부 팔리면 잘 팔았다고 하니 어려운 학술번역서는 말할 것도 없죠. 저도 번역 중인 책이 두 권 있는데, 솔직히 학계에서 영어실력 의심 받지 않으려고 하는 것 뿐입니다. 도서관 도서구입비를 이 정부가 줄인다는 소문이 떠돌던데, 소문이기만 바랍니다. 서초동 국립중앙도서관 리모델링 해놓은 거 보면 기도 안 차더군요. 허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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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 牛而先生 2010/08/11 00:05

    앗, 알고 보니 전문 번역하시는 분인가 봅니다. 이거, 큰 실례했습니다. 옥스포드의 얄팍함과 캠브리지의 천박함이 도도한 댓글이 되어버렸군요. 하지만, 글을 읽는 다른 분들에게는 참고가 될 수도 있을 것 같아 그냥 남겨 두겠습니다. 아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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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marishin 2010/08/11 01:03

      좋은 지적 잘 읽었습니다. 저는 전문 번역자가 아니라 한량 번역자입니다. 하고 싶으면 하고 싫으면 말고. (참고로 저 대목은 이미 책으로 나와서 몇백권 팔렸고, 더는 개정할 여지가 없는 것입니다.) 지적하신 것처럼 공공도서관 문제가 참 중요합니다. 그래도 요즘 대도시의 몇몇 공공 도서관은 꽤 좋아졌습니다. 물론 아직 멀었지만요. 자세한 덧글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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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 ou_topia 2010/08/24 17:03

    데리다가 불렀던 노래를 다시 부르려는 것도 아니고, 또 님께서 다 아시는 것이지만 오역 문제는 글을 옮기는 일 자체가 어렵고 종종 불가능하기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다른 것이라면야 크레인을 사용해서라도 옮길 수가 있겠지만, 글은 옮겨놓고 보면 껍데기만 옮겨 놓은 것이라는 느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 아닌가 합니다. <옥스퍼드의 경박함과 케임브리지의 속물근성>의 사전적인 의미를 모를 사람은 없지만 이것이 진정 말하고 있는 것은 도대체 무엇인지 저도 궁금하네요. <옥스퍼드의 경박함>이 전통의 권위를 가볍게 여기고 고전을 나름대로 해석하는 옥스퍼드 대학의 전통을 이야기하고 있는지, 그리고 <케임브리지의 속물근성>이 신과 같은 경건의 대상을 불가지론적으로 깔아뭉개는 자세를 이야기하는지 모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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