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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갈리츠키에 대한 답변

타리크 알리(Tariq Ali)

<제트 매거진> 2000년 5월

원 제목 = (The Third Period In Outer-space: A Brief Comment On Boris Kagalitsk's Suicide)

 

영국의 세계적인 좌파 이론지 <뉴 레프트 리뷰>가 2000년 1월호를 계기로 전면적인 지면 혁신을 단행했습니다. 편집인 페리 앤더슨은 "갱신(Renewal)"이라는 글에서 자본주의, 특히 신자유주의가 전세계적 승리를 거뒀고 사회 변혁을 바라는 좌파 세력은 사실상 힘을 잃었다고 진단하고, 현 체제에 대한 순응도, 그렇다고 막연한 변혁의 희망도 아닌 "타협없는 사실주의"를 주장합니다. 이에 대한 반박 글에서 러시아의 좌파 지식인 카갈리츠키는 변혁을 포기하는 리뷰의 자살 선언이라고 비판합니다. 이에 맞서 리뷰의 편집위원 타리크 알리는 비현실적인 비판이라고 일축합니다.


 

 

나는 뉴 레프트 리뷰의 적절한 재창간에 대해 보리스 카갈리츠키가 분노를 터뜨린 것에 대해 황당해하지 않는다. 나는 그를 오래 전부터 알고 있으며, 그는 절제되지 못한 발언을 종종했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사랑스럽고 따뜻한 인간이다. 나는 80년대말 자신의 부인, 아이와 함께 런던을 방문한 그가 우리집 부엌에서 나와 격렬하게 논쟁을 벌인 것을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다.

 

나는 그가 고르바초프에 적대감을 보여 놀랐다. 고르비의 대안인 옐친이 믿기 어려울 정도로 타락했기 때문이다. 보리스는 옐친이라는 정치 공백기가 환영할만하다고 느끼고 있었다. 옐친 다음에는 좌파가 권력을 장악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는 당시 그에게 이런 태도는 정치적 자살행위같은 것이라고 말했고, 사민주의를 주요 적이라고 비난한 스탈린 3기와 타엘만스(Thaelmanns)가 1933년 파시스트들의 승리를 지적하면서 히틀러 다음은 우리 차례라고 한 정신나간 발언을 상기시켰다. 물론 보리스는 자신이 옳고 내가 틀렸다고 확신했다. 그러나 논쟁은 더 진행되지 못하고 중단됐다. 그의 아들이 바지를 더렵혔던 것이다.

 

나는 아장아장 걷는 이 아이의 말없는 행동이 자기 아버지의 환락적인 극좌주의에 대한 본능적 적대감을 명확히 보여주는 너무나 적절한 것이라고 말했던 것을 기억한다.

 

그 때 이후 많은 시간이 지났고 지금은 마피아가 러시아를 지배하고 있다. 대중은 불만에 차 있지만 겁먹고 있다. 블라디보스토크는 시애틀이 아니다. 그러나 보리스는 변한 것이 없다. 이제 그는 뉴 레프트 리뷰의 자살을 이야기한다. 그의 말대로 라면 과거 리뷰는 종종 피상적인 급진주의와 이빨 빠진 온건의 죄를 지었다. 그러나 이 잡지는 국제주의적이며 전세계 사회주의자들의 만남의 장이었다. 이제 잡지는 자신의 과거를 배신하고 도를 넘어섰다. 최근 내가 뉴욕에서 열린 사회주의학자회의에서 그를 만났을 때 그는 잡지 이야기는 거의 안했고 자신의 책 '유럽의 좌파' 출판을 거부한 버소출판사(Verso, 뉴 레프트 리뷰를 발행하는 곳)에 대한 개인적 불평을 털어놨다. 나는 이 사실을 전혀 몰랐는데, 그 책을 플루토프레스가 작은 3권의 책으로 출판해 잘 팔리고 있다는 말을 듣고 잘된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가 버소에서 거절당한 것에 화가 많이 났고, 특히 로빈 블랙번(Robin Blackburn)이 출판을 거절하며 보낸 편지에 적대감을 느끼고 있음은 알 수 있었다. 그러나 보리스의 원고를 거절하는 범죄를 저지름으로써 '버소의 자살'이 될 수 있었던 것이 별 생각없이 리뷰의 자살이 된 것이다.

 

우리는 지난 10년동안 뉴 레프트 리뷰의 변화와 재창간을 논의해왔다. 모든 사람이 필요성에 동의했지만 지난해 페리 앤더슨(Perry Anderson)이 캘리포니아대학 로스앤젤레스 분교에서 안식년 휴가를 받아 재창간을 관장할 때까지는 이를 추진할 힘이 없었다. 이제 일이 벌어졌고 새로운 디자인, 편집, 서평과 문화 관련 글의 보강에 대한 반응은 일반적으로 좋다. 앤더슨이 서명하고 쓴 논설은 놀랄 것도 없이 일부의 비판을 야기 했지만 그가 강조한 기본 논점은 슬프게도 잠시 외계에 쪼그리고 앉아있던 사람이 아니라면 부인할 수 없는 것이다. 지난 세기말 자본주의의 승리는 깜짝 놀랄만한 것이었다. 모든 체계적 대안의 붕괴를 명백히 볼 수 있다.

 

시애틀은 아주 기운나게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시애틀도, 그렇다고 프랑스의 파업 물결도 근본적인 상황변화를 가져오지 못했다. 과장하는 것은 절망만 키울 뿐이다.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를 인식하는 것은 현상을 수동적으로 수용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당연한 일이지만 뉴 레프트 리뷰 재창간 2호에서 제프리 아이작(Jeffrey Isaac)과 알렉스 칼리니코스(Alex Callinicos)가 벌였듯 앞으로도 논쟁을 계속할 것이다. 그러나 명백한 사실은 레닌이 '전쟁과 혁명'의 시대라고 했던 때와 전혀 다른 새 시대에 살고 있다는 것이다.

 

언제나 그랬듯이, 리뷰는 미국과 유럽연합내 미국의 동료들에 여전히 적대적이다. 편집위원회를 떠난 이들 가운데 많은 이는 새로운 질서에 잘 적응하고 있다. '갱신'에서 페리 앤더슨은 우리의 위치가 바뀌었음을 아주 분명히 보여줬다. 우리는 포크랜드 모험에 반대했으며 잡지 한호를 털어 새처와 그를 지지한 노동당원들을 강하게 비판했다. 우리는 걸프전도 똑같은 강도로 비판했으며, 보리스는 우리가 나토의 발칸반도 전쟁과 푸틴의 체첸 공격에 대한 우리의 태도를 상기해봐야 할 것이다.

 

보리스, 절망하지말라. 뉴 레프트 리뷰는 각 대륙 기고자들의 글을 앞으로도 계속 실을 것이다. 다만, 새 세대가 이해하기 쉽게 세심하게 편집하는 데 더 공을 들일 것이다. 우리는 마셜 버만이 '학구적인 까다롭고 우회적인 표현'이라고 한 것을 없애려고 노력할 것이다. 리뷰는 언제나 그랬듯 내용으로 평가받아야 한다. 자신의 옷을 더럽히면서도 보리스가 바보스럽고 주관적인 개입을 하지 않게 관심을 돌려줄 가까운 이가 없다는 것이 안타깝다. 외계에서 홀로 너무 외로우면 우리에게 돌아오라, 옛 친구여.

 

원문: www.zmag.org/tariqali.htm

번역: 신기섭

2004/07/15 16:48 2004/07/15 1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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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Subject: <뉴 레프트 리뷰>의 자살 먼 댓글 보내온 곳 2009/02/09 11:19

    보리스 카갈리츠키(Boris Kagarlitsky) 2000년 5월 원 제목 = (The Suicide of New Left Review) 영국의 세계적인 좌파 이론지 가 2000년 1월호를 계기로 전면적인 지면 혁신을 단행했습니다. 편집인 페리 앤더슨은 "갱신(Renewal)"이라는 글에서 자본주의, 특히 신자유주의가 전세계적 승리를 거뒀고 사회 변혁을 바라는 좌파 세력은 사실상 힘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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