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우울한 새해

2006년 새해가 밝았다.

새해는 내가 손꼽아 기다렸던 해이다. 채용검진 실시 의무가 폐지되기 때문이다.

 

작년 가을이던가.. 연구실에 앉아있는데 간호사가 전화를 통해 당황한 목소리로 나를 찾았다. 잠깐 내려와 달라는 것이다.

 

내려가보니... 간호사 왈, 청력검사를 받던 사람이 좀 이상해서 보니 보청기를 착용하고 있더라는 것이었다.  그 사람은 채용검진을 받고 있던 중이었다.

 

충주에 채용검진을 통해 사람을 가차없이 잘라버리는 몇몇 대표적인 사업장이 있다. 그중 이 사람에게 채용검진을 받게 한 사업장이 가장 대표적인데, 이 사업장은 회사 내에 정규직과 협렵업체 직원을 동시에 부리고 있다. 협렵업체 직원은 정규직원의 임금의 채 반정도에 지나지 않으며, 일도 물론 더 고되다. 이 회사에서 협렵업체 직원들을 관리하는 방식은 매우 세련되어서, 협렵업체 직원 중 '눈에 드는' 사람을 골라내 정규직으로 채용한다. 그러므로 협력업체 직원들을 기를 쓰고 열심히 일한다.

 

이렇게 열심히 일해서 관리자의 눈에 들었다 하자. 하지만 마지막 통과관문이 남아있는데 그것이 바로 채용검진이다. 이 회사는 간 수치가 조금 높아도, 혈압이 조금 높아도, 귀가 조금만 나빠도 모두모두 탈락이다. 의학적 근거는 물론 전혀 없다. 그런거 상관없이 모두 채용을 거부당한다.

 

보청기를 사용했던 그 사람도 이러한 회사의 사정을 역시 잘 알고 있던 협력업체 직원이었다. 몇년전 자신이 운영하던 회사가 망하고 여차여차해서 충주로 내려와서 이 협력업체에 취직해 여러 대우에서 그나마 나은 정규직으로 '신분상승'을 하기 위해 진짜 열심히 일했다고 한다. 남들 안 하는 야근에 힘든 일 도맡아하면서. 자식 둘에 처와 함께 생활하는데 100만원 조금 넘는 임금으로 어려웠지만, 그래도 정규직이 되면 생활이 나아지니까 이를 악 물고 버티었다고 했다.

 

그렇게 일한 덕분에 이분은 관리자의 눈에 들었고, 결국 채용검진까지 받게 되었다. 면접까지 통과했고, 마지막 관문만이 남은 것이다.

 

그런데, 전에 사업할 때 좀 시끄러운 일을 했기 때문에 자신의 귀가 안 좋은 것을 알고 있었고, 그래서 만약 이대로 채용검진을 받았다간 떨어질 것이 불을 보듯  뻔한 것이었다. 그래서 고민고민하다가 이비인후과에 가서 자신의 한달치 월급의 두배가 훌쩍 넘는 2-300만원 하는 보청기를 며칠전에 마쳤다는 것이다...

 

그 이야기를 들으며 가슴이 미어졌다. 철저하게 노동자들을 분할해서 관리하는 사업장의 비인간적인 방식,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이런 방식을 달게 감수하고 생존하기 위해 버틸 수 밖에 없는 상황...

 

그런 노동자에게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최대한 판정문구를 잘 써주는 것 밖에 없었다.

 

얼마가 지난 뒤 그분에게서 연락이 왔는데... 떨어졌다고 했다.

 

 

그리고... 올해는 채용검진 실시 의무가 폐지되었지만, 사업장에서 의뢰하는 건에 대해서는 여전히 채용검진을 실시하라고 한다. 나같이 짬밥이 부족한 의사의 의학적 소신은 병원의 수익논리 앞에 무릎을 꿇을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올 한해 시작이 나는 지나치게 우울하다. 채용검진실시 의무가 페지되었으므로 채용검진으로 사람을 자르지 않던 사업장은 당연히 채용검진을 안할 것이다. 그러나 채용검진으로 사람을 자르던 사업장은 물론 당연히 계속 할 것이다.

 

내가 왜 산업의학과를 하는가. 난 무엇을 위해 산업의학과 의사가 되었는가....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