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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5/02/26
    사지가 잘려나가도 참아야 한다?
    mush
  2. 2005/02/09
    지랄도 가지가지(3)
    mush

사지가 잘려나가도 참아야 한다?

제목을 써놓고 보니 다시 섬뜩해진다. ㅡ.ㅜ

 

 

1. Hanna's War

 

때는 대략 일주일 전쯤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개인적 사정으로 회사를 그만둔지 며칠되지 않은 그 때, 나는 낮밤이 뒤바뀌어 밤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었다.

무의식적으로 켠 TV에서는 야시시한 영화들이 방영되고 있었고, 나는 괜찮은 영화가 없나 싶어 이리저리 채널을 돌리고 있었다.

 

마침 '한나의 전쟁'이라는 영화를 발견했고, 영화는 중반스토리를 치닫고 있는 듯 했다.

영화의 배경은 2차 세계대전 시기의 헝가리였고, 주인공은 이십대 초반의 한나라는 이름을 가진 유태인 여성이었다.

당시의 사정을 자세히 알지 못하는 관계로 설명이 정확하고 충분하지 않지만 정리해 보면

;그 당시의 헝가리는 나치독일에 충성을 맹세한(?) 정부에 의해 반유태인 정책이 그대로 적용되고 있었고 이에 따라 유태인들은 나토로 내몰려 하루하루를 긴장속에 살고 있었다

;주인공 한나는 헝가리가 아닌 팔레스타인 유태인 정착촌에서 살고 있었는데(영화를 중간부터 봐서 주인공이 어떤 연유로 그곳에서 살았는지는 잘 모르겠다. -_-;;), 그녀의 어머니는 여전히 헝가리에 남아 있는 상황이었다

;그녀의 어머니와 마찬가지로 많은 수의 헝가리 거주 유태인들은 나치스의 폭압속에서 지난한 탄압을 받고 있었다

;한나와 그의 동료(동지)들은 그/녀들을 구출하기 위해 헝가리 잠입을 시도한다

;그들의 계획(활동)은 굉장히 비밀적이었고 조심스러웠으며, 헝가리 정보경찰과 게쉬타포의 감시망을 피하기 위해 연락망과 접선경로를 모두 암호화/비밀화했고, 적발시에는 중요한 문서와 자료의 소독은 필수였으며 그 최후의 대처를 위해 자살용 권총을 모두 소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내부의 동요하는 분자들이 늘 그러하듯, 그들은 자신을 포함한 조직의 계획보다 자신의 안위와 생명을 더욱 중시했다. 이 과정에서 한나는 동료의 사실상의 배신으로 말미암아 정보경찰에 발각, 끌려가고 만다. 그리고 그 동료는 결국 나치의 총에 맞아 최후를 맞는다

;헝가리 정보경찰은 직감적으로(-_-;;) 한나가 이야기하듯 영국군 소위가 아님을 깨닫고, 헝가리 국적을 가지고 있음과 본명을 이야기할 것을 끊임없이 추궁한다. 혹독한 매질과 잠안재우기, 손톱뽑기 등의 참혹한 고문속에서도 한나는 끝까지 자신의 신분을 밝히지 않는다

;그러나 그녀가 끝내 자신의 본명을 말하게 되는 결정적 고문(그 때 잠깐 졸아서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으나, 전기고문 아니면 벌겋게 달아오른 인두로 살을 태우는 고문 둘 중에 하나였던 것 같다)이 그것이었다. 한나는 자신을 그렇게도 못 살게 구는 고문관에게 본명을 말하게 된다. 그러나 그 이외의 것은 발설하지 않게 되는데...

;어찌 되었든 한나가 그 처절한 고문을 버티어 내면서 고문관들은 그녀에게 더 이상의 고문을 자행하지 않게 된다. 다만, 그녀의 어머니의 안위를 내세워 그녀에게 협박아닌 협박을 하게 된다

;그러나 그 어머니에 그 딸이라 했던가. 그녀의 어머니는 외려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을 시도하며 딸의 선택과 결정에 자신이 방해되지 않게 하려 한다

;이 후의 줄거리는 2차 세계대전이 종료로 치닫던 시기 한나가 재판장에서 이야기했던, 그녀의 굽히지 않는 신념으로부터 자신이 재판관들에게 받았던 그 심문을 당신들이 머지 않아 받게 될 것이라고 말했던 것 때문이었을까. 재판관들은 일주일 후에 잡힌, 형을 확정하는 재판(이걸 모라고 하던데.. 용어가 기억안남. -_-;;)에 모두 참석하지 않는다. 이에 따라 그녀를 그렇게도 고문하고 회유하던 장교들은 재판결과가 나오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를 자신들의 직권으로 총살형에 처하게 된다. 러시아 군대가 부다페스트로 진격하고 있을 그 때에.

 

영화의 줄거리는 대략 이렇다.

이렇게까지 길게 영화의 줄거리를 설명한 데에는 이유가 있다.

영화를 보고 나서 얼마 후에 꾼 꿈 때문이다. 

 

 

2. 사지가 잘려나가도 참아야 한다.

 

이것은 2시간여의 낮잠을 자면서 꾼 꿈인데, 일어나보니 웃옷이 식은땀으로 흥건히 젖어 있었다.

잠에서 깨어나서도 한동안 멍하니 앉아 있으면서, "이게 도대체 뭔 꿈이다냐"를 되뇌였다.

 

꿈의 줄거리를 요약해 보겠다.

;나는 지금 한명의 남자와 두 명의 여자와 함께 있다. 그들의 인상착의는 기억나지 않는다. 남자와 여자라는 성별만이 구분될 뿐이다. 그들과 나는 서로 알고 있으나 관계가 그다지 밀접하지는 않다  

;장소는 밖이 훤하게 보이는 2층 혹은 3층 높이의 방이다. 방 안에는 침대 하나가 덩그러니 놓여 있고 이상한 비닐포대 하나가 바닥에 깔려 있다

;그런데 나는 세명의 남녀를 지켜보고 있다. 그들은 그 방에 있고 나는 없다. 그들은 내가 있는지 없는지 모르는 것 같으나 나는 그들을 지켜보고 있다

;그런데 남자가 방안을 나가고 여자둘이 무엇인가를 이야기한다. 한 여자는 끊임없이 이야기하고 한 여자는 그 이야기를 들으며 간간히 고개를 끄덕인다. 곧 그 남자가 들어온다. 손에는 칼같이 날카로운 것들이 쥐어져 있다

;남자가 들어오자 여자는 비닐포대에 눕고 남자는 그녀의 사지를 잘라내기 시작한다. 그리고 나선 덩그러니 남은 몸뚱이의 살갖을 벗내내기 시작한다. 사지가 잘리고 있는 그녀는 뭐라뭐라 말하는 것 같은데 그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장면이 바뀌어 이제 내가 그 방에 있다. 한명의 남자와 한명의 여자, 그리고 내가 거기에 있다. 장면은 이전과 정말 똑같이 반복된다. 남자가 나가고, 여자가 나에게 뭐라뭐라 계속 말한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 이야기에 동감한다(그런데 그것이 무슨 이야기였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_-;;). 그리고 우리는 남자가 돌아오길 기다린다

;그런데 남자가 오지 않는다. 한 여자는 불안해하며 "왜 안오지?"를 연신 말하고, 나는 그때부터 불안해진다

;이를 어쩌지, 사지가 잘려야 하다니, 거기다 살갖까지 벗겨져야 하다니, 왜 이래야 하는거지, 사지가 찢겨나가면 이제 어떻게 살아야하지, 차라리 죽는게 나을거야 등등. 나는 꿈을 꾸는 와중에도 생생하게 그것을 되뇌이고 있다

;그 때 그 여자는 나에게 잠깐 기다리라며 남자를 찾으러 갔다오겠다고 한다. 나는 한동안 방안을 서성이며 고민하다가 결국 방에서 나오고 만다. 거리는 죽 뻗은 대로에 간간히 골목길이 있는 곳이었고 나는 앞만 보고 무조건 달린다. 한참을 달리다 뒤를 돌았더니 두 남녀가 나를 쫒고 있다. 나는 지나가는 택시를 잡아 타고 나서는 중간에 버스를 갈아타고 기차를 탄다. 기차에 오르고 나서 나는 꿈을 깬다

 

오! 맙소사!

도대체 이게 무슨 꿈이란 말이냐. 등짝이 땀으로 홀딱 젖은 모습에 다시 한번 놀란다.

 

 

3. 참아야 한다, 참아야 한다?

 

그 꿈의 기억이 너무나 생생해 섬뜩하기만 하다.

나의 심리상태가 엉망인지, 아니면 머지 않아 닥칠 좋지 않은 불행의 기운을 암시하는 건지, 단순히 영화의 고문장면이 깊게 각인되어 꾼 꿈에 불과한지, 도대체 이 꿈의 정체가 무엇이란 말이냐.

 

그런데 내가 갈등했던 그 순간, 그 순간의 고민들이 현재에도 이어지고 있다.

활동에 있어 자신이 원하지 않는, 일정의 희생이 필요한 부분은 당연히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러한 희생을 단순히 개인적인 것으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함께 어깨걸고 있는 동료들과 전개하는 모든 활동이 승리로 마감되게 하기 위한 것의 일환으로 사고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것이 개인의 모든 것을 앗아가는 형태로 드러난다면, 더 이상의 활동이 불가능해질 정도의 희생을 요구하거나 혹은 노동마저도 못할 정도로 육체적인 것까지 빼앗아가는 형태의 희생을 요구하는 것은 거부해야 되고 할 수 있어야 한다.

정말 몇 분 후에 내 사지가, 내 동의하에 잘려나간다고 생각하자, 나는 정말 죽고 싶었다.

그들의 정체가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기분 드러운 꿈임은 틀림없다.

 

덕분에 나는 지금의 나를 되돌아볼 수 있는 기회를 다시 잡았다.

무어, 이건 꿈때문에 그런 것은 아니지만 자기성찰의 재료중의 하나가 며칠전의 꿈이었다는 것은 사실이다.

 

혹독함 속에서도 자신을 잊지 않고, 동료를 배신하지 않고, 승리의 그 날을 위해 하루하루 치열하게 살았던 그녀, 한나처럼, 그렇게 살기 위해 다지고 또 다져야겠다.

아싸~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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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랄도 가지가지

1. 완전 악질 1 - 자본가 개새끼들

 

악질도 이런 악질이 없다.

일하는 곳은 12시간 맞교대다. 뭐, 이건 다른 사업장도 거의 비슷하니 그러려니 하자.

한달 내내 쉬는 날은 기대하지 않는 것이 좋다.

2주 주야교대 때는 완전 초죽음이다.

교대 주에는 무조건 16시간~19시간을 내리 일해야 한다.

한달 내내 풀가동시키는 기계에 내 몸도, 나의 동료의 몸도 이미 기계가 되어 버렸다.

기계는 기름칠이라도 한다지만, 우리는 기름칠할 건덕지도 없다.  

 

얼마전, 앉은뱅이병에 걸린 화성의 태국노동자 소식에 회사는 난리법석이었다.

왜냐하면 추가로 앉은뱅이병에 걸렸다고 확인된 중국인 여성노동자 3인이 내가 다니는 곳의 노동자들이었기 때문이다.

노말헥산 뿐 아니라 갖가지 위해약품들을 손에 달고 사는 작업자들에게 지급되는 것이라곤 그 흔한 마스크도 없었다.

노동부에서, 엠비시에서, 검찰에서 불시에 들이닥친다는 소식에 작업장 한 구석에 들입다 쌓아놓은 약품들을 숨기느라 바빴고, 지급하지도 않았던 마스크를 착용하라고 닥달이었다.

 

한동안 소란스럽던 회사가 잠잠해지자, 이제는 '낭비와의 전쟁'을 위시로 6시그마 시스템을 정착하겠다며 출근시간을 한시간여 앞당긴다.

전체 작업자를 6-7명의 팀체계로 나누고, 최소의 낭비성과를 올리는 팀에게 포상을 준다는 명목으로 각 팀별 경쟁을 부추긴다.

팀내에서도 제일 적극적인 사람과 제일 소극적인 사람을 매일 뽑아 '상부'에 보고하도록 하여 팀내 경쟁도 불붙이고 있다.

 

거의 하루가 멀다하고 '사장님'과 관리자들의 훈시가 이어진다.

원자재 값의 상승, 원달러 환율의 하락(원청에서 지급되던 돈이 이제는 달러로 바뀐다고 한다), 각종 낭비요소의 증가 등으로 회사의 자금사정이 점점 나빠진다고 한다. 니미.

그래서 우리는 무조건 낭비요소를 제거해야 하고, 불량률도 낮추어야 한다. 씨팔.

그러지 못하는 작업자와 팀은 회사에서 쓸모없는 부품이 되어 버려 결국 축출대상이 되어 버린다.

일하는 것만으로도 피로가 쌓이는데, 완전 울트라 캡숑 전천후 작업자가 되어야 한다.

그로 인한 스트레스가 상당하여 그만둔 작업자들도 꽤 된다.

 

에이. 열받아.

그래서 예전에 노조결성의 시도가 몇 차례 있었다고 한다.

한번은 이주노동자들이 퇴직금 지급문제로 집단행동을 한 적이 있었다고 했고, 다른 한번은 회사에 불만을 가진 사람들 몇이 모여 노조결성을 도모하다 발각되어 모두 쫓겨났다고도 했다.

내가 입사하고 나서 얼마 되지 않아 또 한번 회사가 발칵 뒤집힌 사건이 있었는데, 라인 작업자중 한 사람이 회사 홈페이지에 회사에 대한 불만을 노골적으로 쓴 것이 화근이었다.

그 다음날 각 공장의 작업자들을 한데 모아 아침부터 저녁까지 협박 아닌 협박-싸이버 수사대에 다 의뢰해 놓았다; 불만의 내용을 볼 때 그 사람은 금방 손에 꼽힌다; 자진해서 불만을 공개적으로 게시한 이유를 설명하면 이 선에서 눈감아 줄 수 있다; 그러나 그렇지 않을 경우, 민형사상의 책임을 물을 것이다 등등-을 해대었다.

몇번의 노조결성이나 집단행동의 시도가 묵사발된 것을 본 상태에서 그런 협박을 들은 전체 작업자들은-나도 물론 그랬다. ㅡ.ㅜ- 완전, 쫄았다.

 

지금 하고 있는 회사의 모든 조치들이 정말 짜증 그 자체다.

회사가 살아야 여러분이 산다는, 위대하신 자본가님들의 절대명제는 여기서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듣고 있다.

무엇이 되었든 쌓여있는 불만을 최고 형태로 드러내는 건, 사직서 한장 날리며 욕 한번 날려주는 게 끝인 이 곳.

조직되지 못한 사업장의 노동자들은 그렇게 기계처럼, 노예처럼 살아간다.

눈에 훤히 보이게 목줄을 죄어오지는 않는다.

노말헥산처럼 그렇게 천천히, 아무도 모르게, 자신 마저도 모르게 야금야금 노동자들의 살을 파먹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눈에 보이지 않는 공격들이 씨알도 먹히지 않는다고 해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노릇은 아니다.

무엇인가 해야 한다.

 

 

2. 완전 악질 2 - 민주노총 나리들

 

요즘엔 회사에서 돌아오면 씻고 바로 뻗기가 일쑤다.

그러다 보니 인터넷은 물론이고 뉴스보기도 힘들다.

그런데 이게 왠일인가!

며칠전 민노 임시대대 소식을 듣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암울하다, 암울하다, 매번 투쟁이 그렇게 개박살나면서 절절히 느꼈다지만, 이수호 집행부의 작태를 보니 정말 암울 그 자체였다.

 

한 여성 노동자가 대의원 '나리들' 앞에서 절절히도 호소했던 그 말, 나는 대의원도 아니다; 나는 그 흔한 노조도 없는 사업장에서 일하고 있는 노동자다; 70만 조합원의 대표들인 대의원들의 의견을 존중한다; 그러나 조직되지 못한 사업장의 1400만, 아니 1300만 노동자들은 지금 민주노총의 결정에 따라 목숨이 결정된다; 지금 나는 표결을 부결시키러 단상에 올라온 것이 아니다; 이건 표결로 결저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왜 그걸 모르는가; 사회적 교섭안이 통과되면 어떤 결과가 이어질 지 왜 모르는가; 얼마나 더 당해야 알겠는가.

나는 어떤 말들보다 그 말이 가장 절절히 다가왔다.

그런데 그 말이 절절했던 건 아마도 나의 무능력에서 비롯되는지도 모르겠다.

민주노총에서 사회적 교섭안이 부결된다면, 그리고 총파업 투쟁이 민노대대에서 결의된다면 만사가 해결될지도 모르는 그 기대감, 참으로 무기력한 기대감때문에 나는 그 말이 절절했는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해서 그 여성노동자도 그럴 것이라는 말은 아니다.

그 누구보다도 치열하게 현장에서 싸우고 있는 동지라고 나는 굳게 믿는다.

 

단상을 점거한 동지들의 그 절절한 심정을 왜 모르겠는가.

나 같아도 그 자리에 있었다면 단상에 함께 올랐을 것이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우리는 거기까지였다.

무엇을 할 것이고, 어디에서 시작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그리고 그 실천계획이 우리에게는 부족하다.

아니, 없다고 말하는 게 더 솔질할 수도 있겠다.

 

지금 이 자리에서 사회적 교섭안이 가결되면 민주노총은 한국노총보다도 못한 조직으로 떨어질 것이라는 어느 대의원의 발언, 그러나 당일의 모습을 보면 이미 민주노총은 나락으로 떨어졌다.

악질은 멀리 있지 않았다. 그래도 동지일 거라, 어쨌든 함께 가야 할 '자'들이라 생각했던 사람은 너무 많았다.

상층에 기대할 것은 없다.

새로운 시작은 윗대가리에게 기대할 수 없음이 명백히 판명되었다.

새로이 일구어야 한다면 가장 아래에서부터 일구어야 함이 더욱 명확히 확인되었다.

 

 

3. 나는, 그리고 우리는

 

한 달여를 우울모드속에서 허우적댔다.

내가 갈 길이, 우리가 가고 있는 길이 명확히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주위의 난장판들이 나를 더욱 힘빠지게도 했고, 딱히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쉬이 찾지 못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런데 바꾸어서 생각하기로 했다.

내가 가지 않는다면, 우리가 가지 않는다면 아무도 가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너무 많은 걸 알아버린 지금, 나는 내가 원하는 걸 더욱 뚜렷이 알아가고 있다.

내가 원하는 것이 바로 노동자계급이 원하는 것이리라 믿고 있다.

 

어느 동지의 말처럼, 노동자계급의 소수파는 '그들'이 될 것이다.

역사는 지금을 뚜렷이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역사는 지금 내가, 우리가 어떻게 실천하느냐에 따라 다르게 서술될 것이다.

 

구정이라 모처럼 쉬는 오늘, 마음은 여전히 편치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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