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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6/07/20
    나, 지금 여기에.(1)
    mush
  2. 2006/07/17
    나이 서른에 우린, 세상에 편입되어 간다.
    mush
  3. 2006/07/14
    [동영상] 현장을 사수하라!
    mush
  4. 2006/07/08
    나를 봐, 피투성이가 되었어.(4)
    mush

나, 지금 여기에.


 

 

 

 

#. 기억

 

과음이다.

오랜만에 들이킨 빈속의 소주가 내 위장을 괴롭히더니 급기야 식도를 타고 씹어 삼켰던 것들을 게워내게 한다.  

불과 몇 시간 전 맛나게도 먹었던 오돌뼈 우동볶음이 형태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변해 있다.

약간의 악취도 동반했겠지. 그건 기억나지 않는다.

난 취했었거든.

 

순식간에 지나가버린 1년.

난 과음했던 게야.

너무 급했던 게야.

기억나지 않아.

너무 아팠거든. 그래서 기억이 지워졌나봐.

 

든든한 친구 녀석이 함께해서 였을까.

의미를 알 수 없는 눈물이 눈꺼풀을 비집고 기어나온다.

눈물 덕분인지 그럴 필요는 없었는데 통곡까지 한 듯 하다.

 

취했군.

머, 서러웠던 게 많았나보지.

 

수화기 너머로 해장은 했냐는 녀석의 걱정에 별 일 아니라는 듯 허허~허탈웃음 한번 날린다.

 

 

##. 낯익은 기억

 

간간히 들러보는 싸이트에서 보았던 집회공지를 어렴풋이 기억해낸다.

간신히 술을 깬 새벽녘,

짜증스럽게 부슬거리는 비를 맞고 도착한, 퀴퀴한 자취방 냄새가 너무나도 정겨운,

후배네서 잠자리 들기 전, 수박을 먹는다.

 

내 기억에서 사라진 두 시간을 돌려줘.

그나저나 너도 낼 거기 가지? 같이 가자.

 

마침 그녀의 현재 남자친구이자 내가 그토록 귀여워했던 토실토실하고 열성이었던 후배가 뚱뚱한 동네 아저씨로 변해 있었다.  

수박을 건네며, "수박은 살 안 쪄. 먹고 너도 낼 같이 가자."

그러나 이제 그 녀석도 내키는대로 몸을 움직일 수 없게 되었다.

 

하긴, 일상은 그렇게 사람들을 중독시켜 간다.

 

 

###. 오래된 기억, 그리고 현실

 

비가 우라지게도 많이 온다. 퍼붓는다.

밥먹고 가자는 나의 성화에 아이들이 내심 좋아라 했다고 위안하며 도착한 서울역은, 번잡했다.

순간 새삼스러웠다.

그러나 멀리 있지 않은 기억은 다시 생생해졌고, 그것은 현실이었다.

몇 년이 지나도 변함없는 풍경. 그리고 기억.

 

시선은 쉬이 앞을 향하지 못하고 신발이 젖는다는 핑계로 아스팔트 바닥에 꽂힌다.

그 조그만 확성기 하나 없이 목에 핏대를 세우는 그들의 소리가 바로 앞에서 들리건만,

어설픈 주먹질만 허공을 헤맨다.

그렇게 광화문까지 걸어갔다.

 

혼자 빠져나와 아는 사람이라도 없나 기웃거려보지만,

예전에 잠시 같이 했던 한 동지만 만났을 뿐이다.

제대 후 무얼 하고 있는지 물어보고 싶었지만, 괜스레 이야기가 길어질 듯 하여 담배 하나 나눠 피고 집회장을 다시 배회한다.

 

조금씩 거리를 두는 것은, 그만큼 나이 먹었기 때문일까.

나이를 먹었기 때문에, 이미 해 볼 만큼 다 해보았기 때문에,

거리를 두는 걸까.

다만 시선을 자신에게 고정시키고 있을 뿐인가.

고개를 치켜 세우고 사람들의 표정을 읽어 보지만 답은 쉽게 찾아지지 않는다.

하긴, 언제부터인가 나는 그것 때문에 답답해 하고 있었다.

 

 

####. 나, 여기에

 

혼자 빨빨거리고 다니는 것에는 익숙해져 있던 차였다.

누군가를 만나면 그동안 어떻게 살았는지 썰이라도 풀 수 있어 좋고,

만나지 못하더라도 혼자이기에 맘대로 활보하고 다닐 수 있어 좋다.

 

예전만큼 절박은 느껴지지 않지만, 예전만큼 날카로운 눈빛을 찾기가 쉽지 않지만,

단 하나, 두려워하지 않음은 느낄 수 있었다.

 

두렵지 않아.

헤쳐 갈 수 있어.

 

느낄 수 있었다면 나에겐 그것이 해답일지 모른다.

무수한 사람들 틈에 껴 있던 그 순간, 난 다시 시작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절박했다 했지만, 절박하지 않았던 것이다.

무수히도 부딪쳐 깨졌다지만, 아직 부딪쳐 보지도 완전히 깨져보지도 않았던 것이다.

 

해답은 멀리 있지 않다.

바로 여기에.

지금, 바로 여기에.

두려워 하지 않는다면, 뭐든 할 수 있겠지.

인정하면 되는 거다.

 

나, 지금 여기에 발딛고 서 있어. 일어났어.

힘들지만 이제 걸어가야지.

뛰어갈 날도 있을거야.

그래, 뛰어갈 수 있을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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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서른에 우린, 세상에 편입되어 간다.

 


 

 

 

 

 

1. 만남

 

실로 오랜만이라 느꼈던 것은 그동안 내가 그 만남에 소홀했기 때문이다.

반가움 반, 불편함 반으로 부딪힌 소주잔은 한 시간 사이 금새 십수잔으로 바뀐다.

낮술까지 더해진 지라 취기가 금방 오를 만도 하건만 쉬이 취하지는 않는다.

반가움은 낯설음으로 바뀌고, 유쾌함은 불편함으로 순식간에 뒤바뀐다.

감정의 기운이 이쪽으로 저쪽으로 왔다갔다 하는 사이,

시간은 벌써 새벽 세 시를 치닫고 있었다.

이제는 좀 거나하게 취한 듯도 했다.  

 

 

2. 스무살

 

그리고 스물 하나, 스물 둘, 스물 셋...

혈기 왕성한 나이, 물불 가리지 않을 나이, 원칙과 꿈을 가지고 있던 나이.

이제 막 대학에 발을 들여놓고 만났던 사람들은 모두가 동지였다.

거리에서 같이 뛰고 거리에서 함성을 외쳤다.

거리에서 함께 싸우고 거리에서 밤을 지새웠다.

무언가 꿈을 가지고 있던 나이.

그래서 거침없었던 우리.

 

하지만 이제,

그런 우리는,

없다.

 

 

3. 서른

 

모두가 서른이었고 서른을 넘었다.

서른을 코앞에 두는 나는 그들 눈에 여전히 투덜거리는 아이일 뿐일지도 모른다.

불온한 꿈을 꾸는 것은 철없는 것으로 치부된다.

꿈과 현실 사이를 방황하는 것은 여전히 미성숙한 아이의 성장통일 뿐이다.

 

갈수록 절박해지는 집안문제를 누가 외면할 수 있을까.

누구라고 편하게 사는 삶이 부럽지 않을까.

누구라고 안정된 직장과 예정된 수순을 밟고 싶지 않을까.

그 모든 것에서 비껴 있는 삶은 그저 미성숙한 사고에서 비롯된겐가.

 

나는 알지 못한다.

그이들 눈에 내가 어떻게 비추던지 간에 나에게,

당신은 미성숙하다고, 철이 없다고, 말을 해서는 안된다.

적어도 거리에서 쌓아온 동지애가 아직도 남아 있다면 말이다.

 

 

4. 현실

 

내 손에 쥐어져 있는 무기는 아무것도 없다.

어쩌면 쥐어주는 무기조차 나는 아직 때가 아니라는 이유를 대며 거부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고 싶은 것을 찾아 헤매다가 결국 모든 것을 놓아 버릴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때서야 현실과 타협하며 세상에 편입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지금은 그러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그렇게 세상에 물들어갈지도 모를 미래는 가능성의 일부일 뿐이다.

그러나 다시 움켜쥔 주먹 우뚝 세우고 바리케이트 앞에 설 미래 또한 가능성의 영역이다.

그리고 그것은 가능성과 더불어 의지의 영역이다.

누구의 말처럼, 지금을 살면, 되는게다.

천천히, 조금씩, 나를 준비하면 되는게다.

 

 

"현실을 돌아봐. 지금의 너를 봐. 너는 행복하니?"

 

나는 그런말을 듣고 싶지 않았다.

 

"괜찮아, 너는 잘 할 수 있어. 너를 믿어."

 

나는 이 말이 듣고 싶었는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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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 현장을 사수하라!

mms://bijeonju.jinbo.net/media/pa711.wmv

 

: 현자전주 비정규직지회 전면파업돌입 영상 편집본 

  

  

  

  

--- 들불도 단 한점 불꽃으로부터 

  

비정규직 투쟁이 절정을 치닫던 4년 전.  

이후 투쟁의 급속한 썰물을 타면서 등장했던 대공장 사내하청투쟁.  

그러나 그마저도 이렇다할 싸움이 전개되지 못했던 2년 전. 

그리고 지금.  

  

투쟁의 절정에서마저 옥쇄는 부정당하기 일쑤였건만.  

그러기에 전주 비정규직 동지들의 투쟁은 과감한 일보다.  

사정을 자세히 알지 못하지만,  

또다시 내부에 균열이 일어나는지도 모르지만,  

그래서 결정적 순간에 옥쇄를 접을지도 모르는 노릇이지만,  

과감한 일보는 분명 이미 성과로 남을게다.   

  

단협체결과 해고자복직이 요구건만.  

그조차도 듣지 않는다.  

인정하지 않는 노조, 거부당하는 활동가/해고자.  

두려워하는게다.  

그 요구조차도 수용할 수 없을 정도로 그들은 옥쇄를 감행한 '노예들'이 더 큰 반란을 일으킬까 두려운게다. 

  

끝까지 투쟁해서 반드시 승리할 것이다.  

단협체결! 해고자 원직복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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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봐, 피투성이가 되었어.

트랙팩님의 [성폭력 생존자에 관한 지지와 연대] 에 관련된 글.

 

 

0. 오랜만에

 

블로그에 오랜만에(?) 글을 쓴다.

사실 눈팅을 계속 하던 차였다.

그냥 지나치려고도 했었다.

그런데 차마 그럴수가 없었다.

 

 



1. 여자

 

나는 여자다. 나는 여자다. 나는 여자다.

그래,

나는 여자다.

 

그러나 내가 여성이라는 인식을 갖게 된 것은 그다지 오래 되지 않았다.

생물학적으로만 여자라 인식했을 뿐 나는 스스로를 여성이라 인식하지 못했다.

아니, 인식하지 "않았다"는 표현이 정확할지 모른다.

 

남성과는 무언가 다른 대우--꼭 집어 말할 수 없지만 차별받고 있다는 느낌을 수도 없이 "느껴왔지만",

그것이 나 개인의 '느낌'이 아니라 '현실'임을 "인식하게 된" 것은 최근 몇 년 사이었다.

내가 비로소 여성이라는 인식.

내가 여성이기에 받아 왔던, 내가 여성이기에 당할 수밖에 없었던,

단지 "그대가 여자라는 이유로" 내가 당했던 수많은 상황들.

그것은 참담했고 패배적이었으며, 그러기에 다른 한편 분노를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2. 그럴 의도는 아니었어.

 

그럴 의도는 아니었어.

너에게 그런 상처를 안겨줄 의도는 아니었어.

 

그러나 나는 상처를 입었다. 그것은 결과였다.

그가--그들이 그럴 의도를 가졌던 가지지 않았던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나의 상처는 그들이 내뱉는 말 한 마디로 치유될 수 있는,

그렇게 허허 웃으며 넘겨낼 수 있는,

그런 것 따위가 절.대. 아니었다.

차라리 내 앞에서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리며 눈물을 흘리는 편이 훨씬 더 인간적이다.

 

그럴 의도는 아니었어.

-- 그 주둥아리를 닥치기 바래. 아가리를 찢어버리기 전에.

 

 

3. 재생, 재생, 무한반복, 재생.

 

겨우 초등학교 1학년 짜리 아이를 두고 치맛속을 더듬는,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 동네 속셈학원 선생의 탈을 쓴 변태새끼의 쳐죽일 작태는 둘째치더라도.

여고시절 학교 안에서 떠도는 무수한, 미스테리한 사건의 진상을 따지는 것은 둘째치더라도.

남학생이 판치는 캠퍼스 안에서 여학생으로 살아남기 버거워 스스로 남성화를 자처하는 여성들을 일상으로 목격하는 것은 둘째치더라도.

믿었던 사람에게 당하는 성추행의 경험이 얼마나 피해자를 외부와 단절시키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무렇지 않게 거리를 활보하는 가해자가 심심찮게 발견되는지는 둘째치더라도.

거절을 거절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튕긴다는 자의적 해석으로 끝끝내 "자신이 목적한 바"를 "이루고야 마는" 이상한 뇌구조의 정신병자들이 지천에 깔렸음은 둘째치더라도.

 

항상 여성은 왜, 당하는 거지?

왜 나는 그런 상처를 기억하고 있는 거지?

왜 우리는 그런 상처에 아파해야 하는 거지?  

무한반복되는 상처의 기억은 멀리 있지 않다.

바로 옆에, 나와 내 주변에서 항상 일어나는 조용한 사건들이다.

그러나 사건은 언제나 미해결. 공소시효 만료. 꽝꽝꽝.

그리고 다시 반복.

 

 

4. 나는 그녀를 알지 못한다. 그러나 그녀는 나고, 나는 그녀다.

 

그녀가 얼마나 힘들게 고개를 치켜세우고 눈빛을 칼날같이 벼리는지,

마음으로 느껴진다.

그녀가 받은 상처, 그 상처의 고통을 모두 이해할 것 같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는 없지만.

나 또한 그러한 상처들에서 자유롭지 못하기에,

나는 그녀를 감히 이해한다고 말하고 싶다.

 

무한반복되는 여성 개인들의 상처가 더 이상 자신의 것으로만 머무르지 않았으면 하는 바램뿐이다.

그녀가 내딘 한걸음은 그래서 더없이 소중하다.

상처받은 모든 여성에게, 나에게, 우리에게, 소중하다.

 

그녀의 선택과 결정을 지지한다.

구체적으로 어떤 방식으로 지지를 표할지 고민은 되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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