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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 폭력/비폭력,운동권/시민의 이분법을 넘어

폭력/비폭력, 운동권/시민의 이분법을 넘어

[기고] 사제단의 구국 미사에 대한 기사를 보고

문성욱 textepolitique@hotmail.com / 2008년07월01일 5시36분

 

 

오늘 집회에 참여하지도 않은 주제에, 지금껏 남들보다 열성적으로 참여해온 것도 아닌 주제에 이런 말을 하는 것은 우스꽝스러운 일일지 모르겠다. 그러나 무슨 말을 할 필요가 있을 것 같아 어설픈 글을 시작한다.

 

그 '필요'를 느끼게 한 것은 월요일,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의 시국 미사에 대한 기사들이었다.

 

사제단은 정부의 행태를 통렬히 비판하면서, 시위대에게도 비폭력의 원칙을 지켜달라고 당부하고, "국민 속으로" 향하기 위해 청와대가 아닌 남대문으로 행진로를 잡았다고 한다. 어쩌면 그런 방침이, 당장 더 많은 사람들을 불러 모을 수 있고, 어쩌면 눈앞의 문제를 해결하기에도 적절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그걸로 충분한가 하는 의심은 지워지지 않는다. 그 의심의 정체는 미사에 참여한 어떤 시민의 말을 보고 분명해졌다. "사제단의 결정에 감동했다. 촛불 집회가 변질됐다는 말을 많이 하지만 사실 못 느끼겠다. 소위 조중동에서 그런 말을 많이 만들지만 실제로 경찰의 폭력 진압에 맞서 폭력적으로 대응하는 시민은 매우 소수다. 그리고 오늘 미사와 행진이 언론에 보도되면, 누구도 촛불 집회를 비난할 수 없을 게다".("남쪽으로 향한 촛불, 청와대를 버렸다", 《프레시안》)

 

촛불 집회가 이어지면서, 정치권과 언론이 던진 비난 가운데 가장 눈에 띄는 건 촛불 집회의 순수성이 퇴색되었다는 것이다. 그 순수성이란 필경, 집회의 문제의식이 미국산 쇠고기 수입이라는 처음의 현안을 넘어 정권 퇴진이라거나 공기업 민영화, 대운하 등의 사안으로까지 확대되었으며, 거기에는 '일반 시민'이 아닌 '운동권'의 입김이 작용하고 있다는 식의 논리에서 제기되는 것이리라.

 

이 논리와 짝을 이루는 것은 폭력/비폭력의 이분법이다. 그런데 이 이분법은 집회에 참여한 시민들 사이에서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6월 10일, 단지 '명박산성' 앞에 스티로폼으로 연단을 쌓아 올리자는 상징적 행위를 두고도 적잖은 사람들이 "비폭력"을 외치며 반대했던 것은 '비폭력'이 얼마나 경직된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가를 보여주었다. 그것은 비폭력이라기보다는, 차라리 전경이든 시위대든 아무도 다치지 않고 아무도 불쾌하게 하고 싶지 않다는 이상한 평화주의 ― 이 말을 여기에 쓸 수 있다면 ― 로만 여겨졌다.

 

물론 현 시점에서 비폭력이라는 원칙 자체를 부정할 까닭은 없다. 어쨌거나 아무도 다치지 않고 원하는 바를 이룰 수 있다면, 그게 가장 좋은 일임은 당연하다. 그러나 일단 묻고 싶은 것은 과연 그 비폭력의 정체가 무엇이냐는 점이다. "촛불의 힘은 비폭력에서 나온다"는 식의 말은 집회 초기부터 많이 되풀이되어 왔으나, 비폭력이 대체 무엇인지, 그것이 왜 옳은지, 비폭력의 경계는 어디까지인지에 대해 성찰하는 목소리는 어디에서도 들어본 기억이 없다.

 

그것은 차라리, 노동자나 운동권 등을 두고 언론이나 정치권의 보수주의자들이 흔히 사용하는 "폭력 집회"라는 용어를 떠올리게 한다. 그것은, 거의 모든 경우에 (때로는 시위대가 끝까지 폭력을 행사하지 않을 경우에도) '선제공격'을 감행했던 경찰의 폭력을 은폐하는 기만에 불과하며, 그들이 왜 그렇게 거리에 나설 수밖에 없었는지는 애당초 관심도 없는 야바위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 담론이 긴 세월 동안 끈질기게 유포되면서 '폭력성'은 그들과 '일반 시민'을 나누는 뚜렷한 경계선이 되었다. 폭력이라는 말은 그 자체로 모든 투쟁의 악덕을 증명했다. 동시에 그 폭력이 어떠한 것이었는지, 투쟁은 왜 일어날 수밖에 없었는지는 폭력의 딱지 아래서 매장되기 일쑤였다.

 

지금 집회 참가자들이 외치는 "비폭력"은 저 보수주의적 담론으로부터 결코 자유롭지 않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것은 집회 현장에서조차 운동권이 아닌 순수한 일반 시민이라는 자기의 정체성을 끝끝내 유지하기 위한 몸부림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고 그 몸부림을 계속하는 한, 우리는 보수주의자들의 말장난에서 벗어날 수 없다. 일부 참가자들의 돌출적 행동을 비폭력의 이름으로 비난할 때 자주 등장하는 "조중동에게 빌미를 제공해서는 안 된다"는 식의 논리는 현재의 비폭력이 원칙의 문제라기보다 보수주의적 담론과의 기이한 타협(?)의 결과임을 분명히 드러내며, 비폭력의 "힘"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바로 그 타협의 산물이다. (그 힘이, 타협이 순진한 착각에 지나지 않음은 보수언론이 한번도 촛불집회에 대한 비난을 멈추지 않았던 데서 알 수 있다.)

 

폭력/비폭력이라는 이분법이 얼마나 우스꽝스러운 것인지는 실제 상황을 살펴보면 금방 알 수 있다. 10일의 '스티로폼 연단'에 대해 양분된 반응을 보였던 것과 달리, 지금의 시위대는 나란히 서서 모래를 나르며 '국민토성'을 쌓고, 밧줄로 버스를 끌어당기는 등, 얼마 전까지 폭력이라고 비판받았던 행동을 하면서도 그것이 폭력적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 이처럼 사람들이 행동이 바뀐 것은 사람들이 폭력적이 되었기 때문이 아니라 경찰의 탄압과 이명박 정부의 변치 않는 독단과 같은 상황적 요인들 때문이며, 애초에 폭력/비폭력이 딱 부러지게 나눌 수 없는, 경계가 모호한 개념들이기 때문이다. 연행되기 일보직전인 옆의 사람을 구하기 위해 그 경찰을 밀치는 것은 폭력인가 아닌가? 살수차를 망가뜨리려고 시도하는 것은 폭력인가 아닌가? 이 질문들은 언제나 구체적인 상황 속에서 판단해야만 하는 질문들인 것이다. 더군다나 자기 스스로 지극히 폭력적이고 무차별적인 탄압을 서슴지 않는 경찰의 작태는 폭력/비폭력의 이분법이 얼마나 허구적이고 우스꽝스러운 것인지 스스로 증명해 보이고 있다.

 

이 중언부언 늘어진 이야기가, 사제단의 시국 미사에 대한 기사를 읽고 내가 느낀 불편함을 설명해준다. "비폭력 원칙"을 강조하는 건 종교인으로서 당연한 일일지 모르겠으나, 현 상황에서 그것은 오히려, 지금까지의 촛불 집회가 만들어 온, 폭력의 문제에 대한 실천적인 성찰의 가능성을 닫아버리는 효과를 갖는게 아닐까? 그 뒤에 남는 건 위에 인용한 시민의 말처럼, "경찰의 폭력 진압에 맞서 폭력적으로 대응하는 시민은 매우 소수"라는 식의 담론뿐이다.

 

그 담론은, 결코 성찰된 적 없고 정체도 불분명한 비폭력의 원칙을 기준으로 하여, 그 원칙에 해당되지 않는 시민들의 의견을 억압하고, 시민과 '시민이 아닌 자들'을 분리하는 기능을 할 수 있다. 그 점은 22일 새벽의, 방화를 시도한 한 집회 참가자를 시민들이 경찰에 인도한 사건에서도 얼핏 드러났던 바이며(<전경버스 방화시도 30대, 경찰에 넘겨야만 했나>, 《참세상》), 폭력뿐만 아니라 이런저런 사안에 대해 다수 참가자들과 입장이 다른 이들을 무조건 '프락치'라고 매도하는 경우는 집회 현장에서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폭력/비폭력의 이분법은,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운동권'과 '일반 시민'을 분리하려는 담론을 강화함으로써, 여러 사회단체와 노조의 운신을 제약하는 것이기도 하다. 운동권은 결코 '시민'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운동권과 시민의 이분법이 유지되는 한, 즉 '순수성'에 대한 강박을 놓지 못하는 한, 우리는 대운하ㆍ공기업 민영화 같은 '변질된' 사안들은 물론이고, 쇠고기 문제 자체도 해결하지 못할지 모른다. 그 문제는 결코 독립된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집회 초기, 시위에 참가한 중학생들을 향해 저녁 8시에 경찰이 "여중ㆍ여고생 여러분, 시간이 늦어 밤길이 위험합니다. 여중생ㆍ여고생을 집으로 보내 주십시오"라고 방송한 데 대해 학생들이 "우리 원래 야자 12시에 마쳐요"라고 응수했던 일은 미국산 쇠고기 수입이라는 문제가 학생들을 "12시"까지 괴롭히는 경쟁의 논리와 같은 맥락에서 벌어지는 일임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일례이다.

 

그 논리는 지금껏 운동권이 문제삼았던, '이윤'의 이름으로 비정규직을 양산하고 이주노동자의 절규를 무시하며 장애인ㆍ여성 등 수많은 '소수자'들의 고통을 외면하는 논리들과도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다.

 

그러므로 문제는 그저 폭력을 용인할 것인가 하는 점에 있지 않고, 이 글의 목적도 '화염병을 던지자'는 주장과는 거리가 멀다. 문제는 폭력/비폭력의 이분법, 운동권/시민의 이분법이, 집회 참가자들 사이에 소모적인 대립 구도를 만들고, 더 나아가 촛불집회 자체의 역동성을 경직시킨다는 점에 있다.

 

1999년 시애틀의 반세계화 투쟁을 다룬 <이것이 민주주의!>라는 다큐멘터리에서, 어떤 활동가는 당시 투쟁에 실로 다양한 사람들이 참여한 점에 대해, "다양성이 우리의 힘이었다"고 말한 바 있다. 그러나 다양성은, 그것이 개인과 집단 사이의 차이들을 인식하고, 그 차이들을 성찰과 토론의 대상으로 삼을 때만 힘이 될 수 있다. 그렇지 않을 때 다양성은 어떤 무비판적이고 획일적인 기준에 따라 '남'을 '우리'로부터 배제하는 독단론만을 낳게 될지도 모른다. 사제단의, 더할 나위 없이 용감하고 존경스러운 선택을 보면서도, 씁쓸해지지 않을 수 없는 것은 바로 그 까닭이다.

 

또한, 기본적으로 '종교단체'인 사제단과 대조되게도, 정작 노조나 여타 단체와 같이 정치적ㆍ사회적인 조직들이 무력한 모습을 보이는 것에도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수많은 조직들이 모인 광우병 대책위는 정부의 탄압에 맞서 방송차를 꾸리며 험난한 싸움을 계속하고 있지만, 과연 집회 현장에서 새로운 담론을 생산하거나 논의를 주도하는 역할을 했는가는, 내가 모르는 것일 수도 있겠으나, 미심쩍은 느낌이 든다.

 

민주노총 역시 총파업 출정식을 가지고 쇠고기 출하 저지 투쟁을 계속하고 있지만 그것이 폭넓은 호응을 불러일으키지는 못하는 모습이다. 대책위나 민주노총이 어떤 처지에 놓였는지, 향후 계획이 정확히 어떠한지도 모르는 입장에서 이런 식으로 말하는 것은 지나친 일임에 분명하지만, 그럼에도 이런 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그들의 싸움이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이다.

 

어떤 '지도'나 '조직화'가 필요해서가 아니라, 수십 년 동안, 누구보다도 앞장 서 싸웠던 그들의 경험과 그간의 숙고가, 촛불집회에 어떤 동력을 제공해줄 수는 없을까 하는 기대 때문이다. KTX 파업 현장에서의 연설에서 김진숙 씨가 한 말처럼, "오늘 촛불이 범람하는 광장이 있기까진 서서 노래 부를 한 뼘의 공간을 위해 보도블록이 짱돌이 되어야 했던 시절이 있었고, 광주에서 죽어간 친구들의 이름을 부르며 밤을 새워가며 마셨던 절망의 증거들이 낮이면 꽃병으로 환생하는 용기가 있어야 "했으며, "지금 소화기나 물대포를 폭력이라 부르기 까진 최루탄을 눈처럼 덮어쓴 채 창자까지 쏟아질 듯하던 구역질과 그 최루탄에 맞아죽은 이한열과 대공분실에서 물고문으로 죽어간 박종철과 쇠파이프에 맞아죽은 강경대와 군홧발에 밟혀죽은 김귀정이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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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폭력이란..

무화과님의 [겁쟁이 기회주의자가 되어버렸다. ] 에 관련된 글.

 

사실은 간단하게 댓글을 달았던 것 뿐인데 졸지에 자본가를 부러워하는 사람이 되어 버린 것이 처음엔 어이없고 나중엔 얼굴이 달아올라 그냥 대꾸 안 하기엔 머시기한 것이 되어 부렀다. -_-;;

그저 댓글로 쓰다 보니 너무나 길어져 괜스레 무화과님 블로그에 실례를 범할 듯 하여 댓글 쓰던 걸 걍 내 블로그로 가져와 버렸다.

참고로 어젯 밤에 쓰던 건데 자정이 조금 넘은 시간 진보넷 블로그 안 들어가졌다.

그리고 그 시간 광화문은 열라 싸우고 있었다. -_-;;

아, 어쨌든 간만에 블질 적응 안 된다. -_-;;

 

============

 

조커//

위의 제 댓글은 자본가에 대항한 투쟁에서 물리력(폭력적 수단)은 불가피하게 동원될 수 밖에 없다는 뜻으로 올린 것인데 너무 간단하게 쓴 나머지 자본가가 부럽다고 읽혔다면 그건 머 저의 탓이겠죠. -_-;; 

함에도 저의 글에서(제가 보기엔 그렇게 읽힐 소지가 전혀 없는데도 말입니다ㅠ) 자본가가 부럽다는 맥락을 '추측'하시다니 님의 추측이 저는 다소 당황스러울 뿐입니다.

 

 

어쨌든 비폭력을 대안적 행동으로 규정하고 있는 님은 폭력 그 자체는 이미 대안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하시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전 폭력적 수단을 포함한 모든! 물리력은 투쟁에 불가피한 요소로 생각하고 있는 것이구요.

여기서 후자의 폭력은 자본가정권의 손에 들려 있는 폭력적 수단(모든 영역에서의 법과 그 집행체계 등)의 의미로서가 아니라 그들에 대항하는 우리의 모든 수단, 즉 선전과 선동 그리고 조직의 영역을 포함하는 가운데 ‘일부’를 말하겠지요.

그것을 폭력이라는 단어로 압축하는 것은 범주가 좀 맞지 않은 듯 합니다.

함에도 저에게 있어 분명한 것은 폭력의 개념은 누가 그 수단을 틀어쥐고 있느냐에 따라 해석은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냥 님에 대한 댓글이라기 보다 제가 생각하는 폭력을 다시 이야기하면 뭐 이렇습니다.

촛불집회가 두달이 다 되도록 이어지고 있는 것은 일단 가진 놈들의 정권이 일방적으로(전 이걸 “폭력적으로”으로 쓰고 싶습니다만) 정책(쇠고기, 민영화, 대운하, 교육정책)을 입안/결정(혹은 시도)한 것이 원인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이런 경우가 이번 한 번뿐은 아니었던 듯 합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10년 전 노동법 날치기도 그랬고, 그 여파로 닥친 대규모 구조조정도 그랬고, 온갖 FTA체결도 그랬고, 모두 다 가진 자들의 법으로 가진 자들의 이익을 위해서 법과 정책이 마련되어 왔습니다.

그 결과 비정규직은 날이 갈수록 늘어가고, 취업 걱정에 어깨 쳐진 20대와 실업자들, 망해가는 중산층들은 거의 태반이 넘는 지경에까지 와 있죠.

전 이러한 것이 가지지 못한 자들에 대한 가진 자들의 폭력이라고 생각하는 겁니다.

(그것에 어떻게 무슨 대응을 했나 등의 문제는 일단 논외로 칩시다요)


그들의 폭력은 반드시 합법을 가장하고 있습니다.

권력을 틀어 쥐고 있는 자들은 결코 폭력과 합법을 혼동하는 것이 아닙니다.

합법이라는 미명 아래 마음껏 폭력을 자행하고 있는 것이지요.

만에 하나, 합법적이라 우겨댔던 것이 불법이라 판정이 된다 한들, 그 법은 결코 가지지 못한 자들의 편에 서지 않습니다.

결국 지금 이 곳의 법이라는 것 자체가 권력의 울타리 너머에 있는 사람들을 위해 존재하지 않는 것입니다.

따라서 합법적이라는 말은 투쟁에서 불필요합니다.

제가 노랫말(악법은 어겨서 깨뜨리리라~ 불법으로 투쟁하리라~)을 적었던 것은 우리의 싸움이 아무리 저들이 노래하는 합법적 영역에서 이루어지더라도 그들을 그것을 결코 우리 싸움을 합법으로 인정하지 않고 모두 불법으로 규정하므로 우리가 합법을 운운하며 싸울 필요가 없다는 말이었습니다.

물론 모든 합법적 영역의 투쟁이 그렇지 않지만 합법의 영역에 굳이 우리를 가둔다면 투쟁은 체제 내에 갇혀 버릴 가능성이 커지게 되고 그건 결국 지배계급에 대한 투쟁이라기 보다 지배계급과 협조하는 수준에서 마감되는 싸움이 될 여지가 커지게 됩니다.

하기에 저는 일상에서 자행되는 우리에 대한 그들의 폭력에  단호히 맞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다시 그래서, 합법은 투쟁에서 중요하게 고려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저항은 '적'들에겐 언제나 불법이니 말입니다


그렇다면 일상에서 전혀 보호되지 못하는 사람들은 그러한 폭력에 어떻게 저항해야 하는 문제가 남을 테지요.

그것은 결코 개인이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되지 못함은 누구라도 부정하지 못할 터.

현재의 촛불집회를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지 저로서는 아직 풀리지 않는 문제이긴 하지만, 일단 여지껏 그런 폭력들에 노출되어 왔던 개인들의 불만이 ‘쇠고기’라는 사안을 계기로 터져 나온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쇠고기로 시작된 촛불집회가 여러 가지 현안의 싸움으로 확대되고 있는 것을 본다면 말입니다.


잠깐 개인적 경험을 빌어 이야기하자면 촛불집회에서 이런 생각을 한 적이 있습니다.

정말 평화롭고 자유로운, 축제 분위기의 집회가 "합법적 영역에서" 정권의 일방적 정책에 제동을 걸고 전면 재협상의 성과를 얻어 온다면 그야 말로 “즐거고 기쁜 승리”겠다라고.

하지만 저에게 고민은 그 다음이었습니다.

첫 번째는 그것’만으로’ 가능할까 였고 동시에 가진 자들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것이었습니다.  

두 번째는 이런 싸움의 성과가 모든 영역에서 어떤 형태로 남을 지 말입니다.


제가 폭력적 수단을 거부할 필요가 없다고 한 것은 바로 첫번째 고민으로부터 였습니다.

싸움의 과정에서 비폭력이냐 폭력이냐 둘중의 하나를 선택하라는 논리가 아니라, 여러가지 싸움의 수단 중 하나라는 것이지요.

저는 도로를 점거하고 전경차를 끄집어 내고 청와대에 진출하려는 모든 시도들을 폭력적이라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분명 가진 자들은 그것을 불법을 거론하며 폭력이라고 명명하지요.

저들의 논리대로라면 우리는 "이미 폭력적입니다.”

여대생의 머리가 군홧발에 짓이겨지고 殺수차에 부상당한 사람들을 보면서 과연 끝까지 비폭력을 외쳐야 할까, 분노하는 사람들 앞에서 분노하지 말고 참자라고 말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된 것입니다.


조금 더 확대하면 이런 것이죠. 일방적 구조조정에 나와 나의 동료가 해고되고 노조활동을 할라치면, 혹은 확대될라치면 식칼테러에 집단구타, 방화는 기본에 온갖 참주선동을 일삼는 살인적 테러 앞에 “저들의 폭력에 휘둘리지 말고 비폭력 저항을 조직하자”라고 전, 절대! 말 할 수 없을 듯 합니다.

그렇다고 제가 똑같이 우리도 식칼 테러하자~라는 것이 아닙니다.

이 모든 것이 결국 가진 자들의 권력으로부터 비롯되는 것임을, 따라서 그들의 목줄을 죄는 모든 투쟁의 방법과 수단을 동원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싸움에서 항상 “진격~앞으로!”를 외칠 수는 없는 노릇. 때에 따라 후퇴하는 것도 하나의 전술이겠지요.

그러나 불붙은 싸움 앞에 싸움을 자제하자는 것은 저로서는 이해할 수 없습니다.(~조커님이 그렇다는 것은 아닙니다. 지금은 그저 그냥 저의 썰을 풀고 있을 뿐. )

혹여, 아직 싸움이 불붙지 않았다고 해서 폭력적 수단(공장점거와 라인중단, 파업을 포함한 모두)를 포기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외려, 그것이 곧 대중투쟁의 기폭제가 될 수도 있으니까요.  

전 싸움은 곧 물리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여기서 물리력은 말 그래도 물리적 힘의 행사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선전과 선동, 조직의 모든 영역을 아우르는 것을 말합니다.

저항을 만들 때 우리의 '적'들은 그것이 하나의 집단으로 움직이지 않는다면 크게 문제시 삼지 않습니다. 또한 우리가 하나의 집단으로 존재하더라도 그 집단의 성격을 협조적으로 만들 수 있다면 그 집단의 존재 자체도 부정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협조적으로 만들기 위해 온갖 교육과 선전/선동(회사에 충성을 다하게 하기 위한)을 아끼지 않죠.  

그렇다면 우리는 그것에 대한 우리의 교육과 선전/선동을 할 수 있어야 하는데 이것은 개인의 영역에서는 거의 불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대항을 위한 조직과 계획이 있고 그것을 실천하고 집행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우리는 "저항할 수 있습니다." 

저의 미천한 경험에 근거하면 가진 자들은 개인의 불만을 문제시 삼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개인의 불만이 확대되는 것을 두려워 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언론을 동원해 진실을 왜곡한 이데올로기를 유표하기도 하고 합법이라는 미명 하에 폭력적수단으로 싸움을 개박살내기도 하지요.  

그리고 그 불만을 넘어설 수 없을 때, 불만의 응집체로서의 조직과 그 모든 양식들을 자신의 날개 밑으로 포섭하기에 급급해 합니다.

자신의 적이 누구인지 명확하게 인지하고 있는 것은, 곧 계급적 자각을 명확히 인지하는 것은 바로 자본가 계급, 가진 자들과 그 정권이지요.

전 최근까지 대한민국에서(대한민국을 넘어 자본주의에서) 가장 계급적인 부대는 바로 자본가 계급이라고 말해오곤 했습니다. 이것은 그들이 부러워서가 절대 아니라 현재 벌어지고 있는 싸움을 목도할 때 우리가 그만큼 계급적이지도 원칙적이지도 않다는 것을 비꼬아 말한 것입니다.   

그런 자들과 싸우기 위해서는 우리의 목적이 분명해야 합니다.

우리가 겨누는 화살이 무엇을 겨냥하고 있는지 명확히 인식해야 합니다.

그 가운데에 우리의 행동방침은 여러 가지를 고려할 수 있는 것이구요.

전, 그런 가운데 폭력적 수단을 우리의 싸움에서 미리 배제한다는 것이 이해되지 않습니다.

...

 

말이 너무 길어졌습니다. 열라 졸립니다. ㅠ

두번째는 다음에 기회가 되면 다시 써야 겠습니다.

너무 두서없이 늘어놓은 듯 합니다. 지금 정신도 제 정신이 아닌데 말입니다요.

여기서 줄여야겠습니다. 졸립니다.

다음에 기회되면 다시 올리도록 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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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시국미사따위 믿지 않는다.

1.

 

엄마는 모태 신앙이시다.

엄마의 엄마 또한 모태 신앙이시다.

하기에 나 또한 모태 신앙.

사실 몇 대를 이어온 뿌리 깊은 천주교 집안이다.

주일마다 미사를 빠진 적이 없었고 하다 못해 수능 전 날에도 나는 어김없이 평일미사에 나가 주일 미사를 빠진 것에 대한 고백성사를 보기까지 했다.

오, 아멘.

 

2.

 

대학 새내기 시절.

엄니는 절대 들어가서는 안 될 곳을 세 가지 정해 주셨다.

학생회, 학회, 풍물패. -_-;;

그러나 나는 학생회와 학회에 들었다.

동시에 나는 수녀님과 어머니의 권유로 주일학교 선생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동시에 나는 학회에서 하던 세미나 책을 엄니의 불심검문에 의해 압수당했다.

머지 않아 모 투쟁에 결합해 있는 동안 구로서에서 집으로 전화를 하기까지 했다.

뭐, 부모님에게 한동안 아작나게 되었다.

장학금 받겠다는 조건으로 학생회 활동의 여지를 남겨 주셨고 내 대학생활의 여러가지 경험 중 하나의 차원으로 눈감아 주셨다.

 

3.

 

당시는 철거민 투쟁이 한창이었다.

살 곳을 잃어버린 사람들, 그저 자본의 논리에 따라 자신의 생존권을 포기할 것을 강요당했던 사람들.

나는 학교 선배들을 따라 철거민 투쟁에 결합하고 있었다.

매일같이 청량리에서 시꺼면 전경들과 청색 백골단을 마주하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철탑 망루--골리앗에서 한분이 떨어지셨다.

아직 아이들은 학교도 들어가지 않은 핏덩이들이었다.

용역깡패들이 몰려왔다.

언제나 그랬듯 전경들은 용역깡패를 비호했다.

골리앗에 불길이 치솟았고 급기야 망루 꼭대기까지 화마가 덮쳤다.

열사는 떨어졌다.

그리고 죽.었.다.

 

아직 어린 나에게는 그 모든 것이 이해되지 않았다.

이해하려 해도 이해할 수 없었다.

 

모든 것이 박살나 있었고 처음엔 무서웠다.

하지만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이 있다.

몇 푼 쥐어주는 돈 받아들고 또다른 달동네를 찾아가면 될 문제였을지 모른다.

하지만 살아있는 사람을 죽음으로 내 몬 자본가들과 그들을 비호하는 경찰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4.

 

주일이 되어 성당을 찾았다.

내 또래의 선생님들은 모두 대학생이었다.

내가 보고 겪은 일들을 이야기하면 모두가 대답이 하나같았다.

" 죄다 빨갱이들이 하는 짓이야. 너도 괜한 꼬임이 넘어가지 말고 그냥 성당에나 열심히 나오렴."

역겨웠다.

넘기던 술잔을 면상에 던져 주고 싶었다.

다만, 나보다 나이가 많았다는 이유로 홧기를 참아낼 수 있었다.

그 순간부터 종교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하느님의 대리인이라 했던 예수는 모든 사람을 사랑하라 했다 하고, 가난한 자의, 고통받는 자의 편에 서라고 했는데 그 종료를 믿는 사람들은 그렇지 않았다.

 

불똥은 엄니한테 튀었다.

성당의 여러 단체에서 활동하고 있는 어머니한테 미사 중 신자들의 기도에 철거민에 대한 기도를 넣으라고 했다.

엄니는 나의 고민을 받아주셨다. 

하지만 엄니 또한 후폭풍을 맞았다.

" 왜 그따위 기도를 넣었냐고."

 

나는 며칠 동안 공황상태에 빠졌다.

이것은 내가 18년 동안 알았던 하느님이 아니었다.

그 하느님의 종이라 하는 사람들이 그런 말 따위를 내뱉을 수는 없는 것이었다.

 

가난에 고통받는 사람이 국가의 폭력에 죽었다.

그럴 수는 없는 것이었다.

 

 

4.

 

주일미사.

교사 회의에서 나는 허위에 가려진 기도로 자신의 양심을 숨기고,  하느님을 방패 삼아 선량한 얼굴을 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조소를 퍼부었다.

 

" 내가 알고 있는 종교가 현실을 외면한다면 더 이상 나는 이 자리에 있을 이유가 없다."

" 당신들처럼 기도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면 나는 매일같이 기도하겠다. 하지만 행동하지 않는다면 아무것도 바꿀 수 없지 않은가."

" 세상의 약자를 위해 살라고 하는 것이 하느님의 뜻이라면 나는 성당안이 아니라 성당 밖으로 나가겠다."

 

소문은 성당에 삽시간에 퍼졌고 한차례 신부님과 수념님 한분과 언쟁이 있었다.

그 와중에 엄니는 묵묵부답.

 

다만, "미안하다."는 한 마디만 편지로 남기셨다.

 

 

5.

 

그리고 어머니는 막심 고리끼의 "어머니"를 읽어 보라고 추천해 주셨다.

 

 

6.

 

난 시국미사 따위 믿지 않는다.

선을 가장한, 민주주의를 가장한, 그런 시국 미사 따위는 믿지 않는다.

비정규직, 이주 노동자들을 외면하고 몰아낸 사람들을 믿지 않는다.

국민적 저항을 무마하려는 그들을 믿지 않는다.

 

난 그저 가장 약한 사람, 그러나 곧 세상의 주인이 될 가장 낮은 사람들을 믿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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