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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7/03

여성행진은 계속된다
- 빈곤과 폭력에 저항하는 7.3 여성행진
    
제작: 참세상

신자유주의와 전쟁의 시대, 여성들은 더욱 빈곤해지고, 더욱 많은 폭력에 노출되고 있다. 노동유연화가 확산되는 가운데, 여성들 대부분은 저임금과 열악한 노동조건에 시달리면서도 기본적인 권리조차 보장받지 못하는 비정규직이다. ‘가사와 직장생활의 양립’을 기조로 하는 정부의 여성정책은 여성을 가사노동의 1차적인 책임자의 위치에 고정시키며 이중의 고통에 시달리도록 하고 있다. 복지와 공공서비스가 축소되거나 시장화되면서 여성 빈민들은 더욱 가난해지고 있으며, 가사노동과 유사한 보살핌노동이 여성의 일로, 그것도 노동자로서 권리가 충분히 보장되지 않는 형태로 확산된다. 더구나 장애여성의 독립된 삶이 보장될 만큼 사회적 지원체계가 갖춰지는 것은 더욱 요원해졌다. 초국적 곡물기업의 시장지배력을 강화하는 것을 목표로 추진되는 WTO 농업개방과 이에 조응하는 정부의 ‘농업포기정책’으로 농가부채가 급증하고 농가소득이 급격히 감소함에 따라, 여성농민들은 농사, 가사노동에 더하여 소득을 보충하기 위한 부업까지, 3중의 역할에 시달리고 있다. 여성들의 빈곤이 전반적으로 심화되는 가운데, 다양한 형태의 성매매로 유입되는 여성들이 많아지고 있다. 여성들이 성매매로 유입되는 원인을 문제 삼지 않은 채 법과 제도로 성매매를 근절하려는 시도는 성매매 여성에 대한 도덕적 편견과 더불어 ‘성매매에 종사하는 여성’을 사회로부터 배제하고 폭력 속에 방치했다. 초국적 투기자본이 국경을 마음껏 넘나드는 시대이지만, 노동자들만큼은 ‘인종’과 ‘민족’이라는 이름으로 분할되어, 이주노동자는 노동권의 사각지대로 내몰리고 있다. 최근의 미국에 의한 이라크 침략전쟁과 수많은 무력분쟁은 여성에 대한 폭력을 강화하고 ‘성차별 이데올로기’를 더욱 강화한다.


이렇듯 여성을 억압하고 착취하며 배재하는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맞서 전 세계 여성들이 지구를 횡단하는 릴레이 행진에 나섰다. 브라질 상파울루에서 아프리카 부르키나파소까지 행진하면서 다양한 인종과 민족의 여성들, 각기 다른 직업, 신체적 특징, 성적 지향을 지닌 여성들이 국경을 넘은 연대를 실현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흐름에 동참하여 여성을 더욱 빈곤하게 만들고, 여성에 대한 폭력을 가중하는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멈추고, 전쟁을 중단하기 위해 함께 투쟁하는 여성이다. 이렇듯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는 데 여성의 힘은 필수적이며, 여성의 요구는 그 바탕이 되어야 한다. 노동자, 농민, 빈민, 장애인, 이주노동자, 성노동자, 동성애자 …. 다양한 이름이지만 우리는 함께 투쟁하고 한 목소리로 우리의 권리를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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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pan migrant union news^^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의 "방패", "가나가와 시티 유니온" (2)
무라야마 사토시 위원장이 한국에 전하는 메시지
 
가나가와 시티 유니온의 무라야마(56세) 위원장은 직접 조합원들의 노동 상담과 전화 상담을 받는다.

무라야마 위원장은 한국에 이주노조가 설립됐다는 것은 알고 있으나 조직력이 얼마나 있는지 궁금하다고 한다. 조합원들이 어떤 의욕을 가지고 있는지 모르기에 이주노조에 대한 평가를 하기 어렵지만, 제일 먼저 한국 노동법이 개인 노동자를 조직화하기 어렵다는 것이 문제로 생각된다고 전한다.

문제는 한국이든지 일본이든지 정부측이나 기업측이 외국인노동자들의 노동력을 필요로 하면서도 그들의 노동력만 이용하려 하는데 있다고 그는 말한다.

"노동자의 권리와 삶의 질을 충족 시켜주는데 고민하지 않고 소모품으로 노동력만 이용하고 버리려고 하는 것이 큰 문제다. 그러한 상태의 노동자를 노조가 조직화하고 문제를 함께 풀어야 한다. 이주노조가 생겼다면 앞으로 노조가 짊어질 여러가지 문제를 민주노총이 함께 해야 한다. 아마 민주노총이 이주노조를 받아들이기에는 시간이 더 필요할 것이다. 민주노총 측에서 더 많은 노력을 해야한다."

가나가와 시티 유니온도 지금와서 인정 받는 단계까지 오는데 어려움이 많았다고 한다. 무라야미 위원장은 덧붙인다.

"가나가와 시티 유니온은 지금부터 크게 발전할 가능성이 많다. 그러나 그중 30% 정도는 불행한 일을 당해 노조가 망할 위험도 가지고 있다. 이주노동자 자체가 신분적으로 불안정하기 때문에 조직화 하기 힘들다는 점 때문에 정부나 기업으로 부터 탄압과 불행한 일도 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30% 정도는 유동적으로 잘못될 가능성으로 본다. "

그는 한국의 이주노조가 민주노총에서 전면적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상태에서 단독 노조를 만들려고 할 경우 많은 어려움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 이주노조의 가장 큰 어려움은 조합원들이 모두 미등록 이주노동자라는 점이다. 문제는 단독으로 노조를 만들 경우 경영자나 정부와의 교섭 능력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일본의 SMP필리핀 노동조합의 경우도 미등록 이주노동자가 중심인 조합이다. 이들은 가나가와 시티 유니온의 지부로 존재하는데 그래도 위원장은 등록 이주노동자가 했다. 전체의 85%가 미등록 이주노동자이고 나머지 15%정도가 등록 이주노동자다. 이들은 단독으로 노조를 만들었지만 가나가와 시티 유니온이라는 "우산"아래서 안전하게 행동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고 결과적으로 기업과의 단체 교섭에 힘을 얻을 수 있었다.

일본 노동법에는 "국적이나 종교, 출신에 대해 차별하지 않는다."는 법률 조항이 있어서 미등록 외국인이라도 노동법상으로 조합에 자유의지로 가입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조합에서 결정할 일이지 정부가 간섭하지 못한다. 각 조합에서 조합원들의 판단에 따라 이에 대해 스스로 결정할 일이라고 한다. 일본 전체 2만개의 노조 중에서 30개 정도의 노조가 미등록 이주노동자를 받아들이고 있다. 그리고 10 년 정도가 지난 지금 이 노조들이 하나의 세력이 되어가고 있다.

무라야마 위원장은 이주노조가 평등노조의 이주지부로 힘을 더 키웠어야 했다는 아쉬움이 있다고 말한다. 민주노총이 이주노조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상태에서 단독 노조로, 그것도 전국단위의 노조를 조직화 한다는 것이 위험해 보이고 어려워 보인다는 것이다. 그는 이주노조가 전국 단위의 지부를 건설하는 과정을 민주노총이 적극적으로 지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주노조가 도움이 필요한 것은 바로 지금이다. 전국단위의 조직을 만들기 까지 큰 어려움과 위험이 있다. 이주노조가 전국단위를 만들고 나서 받아들여 주겠다는 민주노총의 의견은 좋은 말로 들리지 않는다. 한국인 노동자들의 도움 없이는 이주노동자 노동조합이 어려움을 극복하기 힘들다는 것이 가나가와 시티 유니온을 이끌어온 내 경험에서 할 수 있는 충고다."

현재 이시하라 동경도 지사가 "일본내 미등록 이주노동자를 절반 이하로 줄인다"는 말을 하면서 많은 이주노동자를 추방하려고 하고 있다고 한다. 이제까지는 정부가 가나가와 시티 유니온에 대해서 경찰 투입을 하지 않았지만 이제부터는 가능할 수 도 있다고 한다. 7년 전에도 탄압이 심했던 시절에는 정부가 가나가와 시티 유니온 사무실만 1년에 6번 뒤진적도 있다고 한다. 그러나 가나가와 시티 유니온의 이름으로 미등록 이주노동자 조합원들을 지켜낼 수 있었다.

무라야마 위원장은 한국에 있는 노동자들에게 말한다.

"10년 이라는 긴 시간 동안 가나가와 시티 유니온이 일본 내 미등록 이주노동자의 '방패'가 되어 주었듯이, 한국 노동조합도 이제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을 받아들이고 그들의 '방패'가 되어주어야 한다. 내국인 조합원들과 이주노조가 함께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미래를 올바르게 세우려면 이주노동자의 미래를 고민해야 한다. 이주노동자와 함께 가야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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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pan migrant union^^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의 "방패", "가나가와 시티 유니온" (1)
"모래 위의 노조"에서 "반석 위의 노조"로
 
동경에서 전철로 40분 정도 거리에 있는 가와사키에 위치한 "가나가와 시티 유니온" 사무실 외부 모습.

지난 1988년 경 일본의 외국인 노동자 문제가 사회문제로 크게 부각되기 시작했을 무렵이다. 일용직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이 전세계 80개국에서 일본을 찾아오게 된다.

이주노동자의 숫자가 늘어나니 당연히 여러가지 노동문제나 건강 문제가 생겨나기 시작했고 이들을 지원하는 NGO단체들도 생겨나기 시작했다.

요꼬하마 지역에도 이전 부터 이주노동자를 받아들이던 "가라바우가이 NGO" 가 있었는데 이들이 한국인 이주노동자를 지원하기 위해 한국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을 찾았다.

이때 마침 89년 부터 한국 마산의 스미다 노조의 일본 투쟁을 지원하던 방마리아(본명 방정옥, 68세)라는 한국계 일본인 여성을 알게 된다. 90년 6월 스미다노조의 일본 투쟁이 승리하면서 마리아씨가 NGO단체에 결합, 이주노동자에 관심을 가지고 있던 의헤하라 신부님과 함께 고도부지조 인력 노동자 시장에 찾아가게 된다.

요꼬하마 고도부지조는 오사카 가마가사끼조, 동경 사이아 지역 과 함께 일본 전체에서 일용직 인력 노동자가 많이 살고 있는 지역으로 손 꼽힌다.

고도부지 지역에는 특히 한국인 일용직 노동자가 많았다. 한국인 일용직 노동자는 88년과 89년에 갑자기 늘어나기 시작했는데 이들 대부분은 무비자로 입국하는 경우가 많았다.

한국인들은 산재나 다른 피해를 봐도 이상하게 NGO단체를 찾아오지 않았는데, 마리아씨가 한 사람씩 만나서 물어보니 당시 재일교포 조총련과는 접촉하면 안된다는 한국 정부의 위협이 원인이었다. 한국인 이주노동자들은 정부의 감시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피해를 입어도 주변에 도움을 청하지 못하고 있었다. 만약 조총련과 접촉하면 귀국하고 나서 자신과 가족이 큰 피해를 입을 수 있기 때문에 손가락이 잘리는 큰 산업재해를 입어도 NGO단체를 찾지 않았다고 한다.
이곳에서 마리아 어머니로 불리는 한국계 일본인 방정옥(68세)씨는 가나가와 시티 유니온이 처음 이주노동자를 받아들이도록 공헌했고 지금 까지도 한국인 상담 등을 해오며 이주노동자들의 어머니 역할을 하고 있다.

마리아씨는 처음에는 봉고차에서 이들의 상담을 시작했고 사람이 늘어나자 수에요시초 성당을 빌려서 매주 일요일 의료와 육아, 노동문제를 상담했다. 계속해서 노동상담을 원하는 이주노동자의 숫자가 더욱 늘어나자 마리아씨는 당시 가나가와 시티 유니온(지역 일반노동조합)의 무라야마 사토시 위원장(56세, 일본인)에게 이들의 문제를 의논했다.

당시 무라야마 위원장은 미등록 외국인 노동자들을 돕고 싶어 고민하던 중이었는데, 마리아씨가 이주노동자를 조합에 가입시키자고 제안 했을때 무라야마 위원장은 "예, 예 알겠습니다" 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그가 일본어로 두번 대답하는 것의 의미는 " 꼭 함께 하고 싶다"는 뜻이라고 한다.

가나가와 시티 유니온은 1984년 전국 조선업 관동지역 가나가와 시티 노동조합으로 처음 설립됐고 1994년 미등록 이주노동자를 노동조합원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일본의 경우 노조가입은 개인이 자유의지에 따라 누구나 가입할 수 있다고 한다. 비록 체류 비자가 없는 미등록 외국인 노동자라도 노조에 가입할 수 있다.

일본에서 미등록 외국인 노동자를 노조원으로 받아들이는 노조가 더 있다. 일본 전체에 개별 노동조합이 2만 개 정도 있다. 이중에서 개별노조로 한사람씩 조합원을 받아들이는 곳이 500개 정도 있는데 그 중 30개 정도의 노조가 미등록 외국인 노동자를 조합원으로 받아들이고 있다고 한다. 직종별로는 미등록 이주노동자를 받아들이는 곳이 처음에는 가나가와 시티 유니온과 같은 조선업 위주였으나 지금은 기계금속과 자동차 등 일반 직종에서도 미등록 이주노동자를 조합원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무라야마 위원장이 처음 미등록 이주노동자를 조합원으로 받아들이자고 제안했을 때 반대가 70% 였다고 한다. 반대하는 조합원 중에는 "사람이 곤란할 때 살린다는 것은 중요한 일이지만 그것이 노조가 짊어져야할 짐은 아니다."라는 의견이 많았다고 한다. 곤경에 처한 사람을 살린다고 해도 이것이 직접적으로 노조조직과 연결되서는 안된다는 비판도 있었다.

그러나 무라야마 위원장은 "꼭 미등록 이주노동자를 받아들이겠다. 안그러면 내가 노조에서 나가 새로운 노조를 만들겠다"고 하면서 까지 조합원들을 설득했고 결국 미등록 이주노동자를 받아들이게 됐다.

미등록 이주노동자를 조합원으로 처음 받아들이기 시작한 10년전에는 다른 노조에서 가나가와 시티 유니온을 "모래 위에 세운 노조다. 너무 어려운 실험을 하고 있다"며 실패할 가능성이 높은 노조로 평가했었다. 무라야마 위원장도 그 당시에는 자신이 없어서 이에 대해 반론하지 않고 꾹 참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실험 결과는 좋았다. 10년이 지난 지금은 사람들이 가나가와 시티 유니온을 " 반석위에 있는 노조" 라며 성공한 노조로 평가하고 있다.
남미에서 온 이주노동자들이 상담을 받으러 사무실에 왔다. 전체 조합원 800 여명 중 이들이 차지하는 숫자는 60% 라고 한다.

최근에는 일본 경제가 위축되면서 일본 정부나 노동운동계의 움직임이 이주노동자가 필요하다는 의견으로 돌아오고 있다고 한다. 노동시장에서 이주노동자를 확대하려는 계획이 늘어나고 있다. 고령자가 늘어나면서 경제적으로 노동인력이 부족해서 외국인노동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또 노동계에선 비정규직 노동자를 조직화하는 과정에서 외국인 노동자가 고용 불안정 , 하청 노동자, 단기간 고용 노동자이기 때문에 비정규직 문제와 맞물리는 점이 많아, 전노련과 전노협 모두 이주노동자의 문제를 큰 슬로건으로 내세우고 있다. 여러가지 면에서 외국인 노동자와 함께 일한다는 것이 지금의 시대에 맞다는 것이 무라야마 위원장의 주장이다.

그가 노동조합을 이끌어 오면서 제일 어려웠던 점은 미등록 이주노동자가 조합원의 다수를 차지하다 보니 경영자들이 용역이나 폭력배를 부르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었다. 이주노조가 "1일 행동"을 할 때면 경찰도 자주 찾아와서 신경이 많이 쓰였다고 한다. 이주노동자 조합원들의 신분이 불안정하고 일본에 대해서도 잘 모르기 때문에 노조를 신용하지 못했고, 경영자와 장기간 투쟁하는 경험도 없어서 장기간 투쟁할 힘이 부족한 경우가 많았다. 이런 처지의 조합원들을 짊어지고 일한다는 것이 쉽지는 않았다고 한다.

무라야마 위원장은 "시티 유니온이 걸어온 길을 돌아보면서 좋았던 점은 조합원의 수가 많다보니 상담률도 높고 '1일 행동'을 할 때도 함께 힘을 모으기 쉬웠던 것"이라고 한다. 가나가와 시티 유니온은 2년 전까지 1년에 200번이 넘는 "1일 행동"을 했다고 한다. 그의 말에 따르면 일본 전체에서 1년에 200번이 넘는 행동을 할 수 있는 노조는 가나가와 시티 유니온 뿐이라고 한다. 만약 동경 가스미까 지역 일본 중앙 정부청사가 있는 곳에서 "1일 행동"을 해야 하면 가나가와 시티 유니온이 제일 먼저 달려왔다고 한다. 시티 유니온 사무실이 중앙청사까지 지하철로 40분 거리에 놓여있기 때문이다.

일본 노조에서는 산업별, 기업별로 만명 정도의 조합원이 있다고 한다. 이들이 년 2회에서 3회의 행동을 하며, 거기에 1,000명 정도의 조합원을 동원하면 그것이 최대 치수다. 그러나 만약 조합원이 50명 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고 해도 년간 200회의 행동을 하게 되면 1,000명을 동원한 년 3회의 행동 보다 훨씬 높은 효과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이 무라야마 위원장의 의견이다.

일본 기업 내의 노조는 행동을 해도 노동조건 교섭이 대부분이라고 한다. 그러나 가나가와 시티 유니온은 자기의 문제 뿌만 아니라 다른 노동조합의 노동쟁의를 지원하고 전쟁반대 집회와 같은 반정부 집회에도 참가해 왔다. 이런 일을 기존의 기업 노조가 하려면 기업의 제정과 조합원들의 의식 모두를 재정비해야 하기 때문에 실행하기 어렵다고 한다. 무엇보다 조합원들의 의식을 개선하는 것이 힘들다고 한다. 그러나 가나가와 시티 유니온은 이런 일을 10년 동안 해내고 있다.

비록 사회적 약자인 미등록 이주노동자가 중심이지만 년간 200회의 행동을 10년 이상 유지한다는 것은 대단한 것이다. 이들이 비록 돈을 벌러 일본에 오는 것이지만 경영자들의 억압을 당하고 사회의 바닥까지 떨어지는 것을 경험하고 나면 그것에 대항할 용기가 생긴다. 그래서 다른 노조에서는 하기 힘든 행동을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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