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만에 쓰는 서평이다.


김상태 씨가 쓴 <어린왕자의 가면>을 읽고 몇자 적는다.

이 책에서 저자는 그동안 우리에게 잘 알려진 '어린왕자'라는 이야기에서

우리가 간과해던 어두운 이면을 어린왕자의 작가 생텍쥐페리의 삶과 연관지어 새롭게 해석하고 있다.

일단 주제만을 놓고 보면 남들이 다 좋다고 하는 것에 딴죽부터 걸고 보는

나와 같은 삐딱이 부류에게는 참으로 군침 도는 이야기일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만약에 내가 이 책을 이번처럼 페이스북의 어느 유명한 작가를 통해서 추천 받은 것이 아니라

내가 직접 서점에서 들춰보고 맛보아 가며 골랐다면 아마 내 수중에 있지는 않았을 것 같다.


이 책에서 제일 아쉬운 점은 주제를 전달하는 표현방법이었다.

작가는 어린왕자가 순수의 결정체가 아니라 오히려 그 반대인

오만과 배제의 폭력으로 점철된 '배척과 추방의 화신'이라고 하고 있다.

그것이 어느 삐딱한 상상력에서 비롯된 엉뚱하고 어설픈 해석이 아니라는 것도

생텍쥐페리의 여러 작품과 삶 그리고 관련 자료를 인용하여 충분히 증명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금 아쉬운 것은,

이야기의 처음부터 끝가지 화자의 거친 숨소리가 너무나 크게 들려왔기 때문이다.


이러한 주제의 책은 화자가 흥분하지 않고 조곤조곤 풀어나갈 때 그 충격이 배가된다.

화자가 독자에게 일방적으로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독자가 스스로 자신의 선입견을 깨고 새로운 빛을 볼 수 있도록

독자의 인식의 틀에 아주 가느다란 균열을 조금씩 내어가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때로는 화자와 정반대의 생각을 가진 이로 하여금

자신의 몸을 더욱 더 강하게 웅크려 조금의 균열도 허락치 않게 만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책의 화자는 자신이 깨달은 것들을 한꺼번에 쏟아내려는 듯 거칠게 달리고 있다.

마치 썰 잘 푸는 선배가 악거리집에서 한 두 잔 걸치고는

신입생들에게 대학 생활의 모든 것을 쉼없이 늘어 놓는 일장연설 같다고나 할까?


물론 이 책의 의도와 주제는 매우 훌륭하다.

이와 같은 신선한 시각이 우리 사회에 절실히 필요하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이렇게 서평을 쓰는 것이다.

과연 이 책의 화자가 그렇게 거칠게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아니면 반대로 이 서평을 쓰는 내가 괜한 딴죽을 걸고 있는지

그대가 한 번 판단해보라는 뜻에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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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1/18 19:24 2013/01/18 1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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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을 잘 쓰고 싶다. 둥글둥글 보듬아 줄 수 있는 글을 쓰고 싶다. 신형철의 산문집 <느낌의 공동체>를 읽다가 문득 든 생각이다. 내가 어쩌다가 평론집 같은 이 책을 샀는지는 기억이 잘 나지는 않는다. 평소 읽고 싶은 책 목록을 모아 두었다가 한꺼번에 구입하기 때문에 가끔 구입의도가 기억나지 않는 책들이 생긴다. 그러면 마치 깜짝 선물인 것처럼 여기며 즐겁게 읽어 보려 하는데, 문제는 그 선물이 내 마음에 쏙 든 적이 별로 없다는 것이다. 사실 <느낌의 공동체>도 처음에는 그랬다.

 

 이 책은  여러 시인과 시집에 대한 짧은 평론이 주구장창 이어지는, 그래서 뚜렷한 서사도, 일관된 서정도 없는 어지러운 모자이크 같았다. 하지만 고요한 곳(해우소)에서 혼신의 힘을 다해 한 편씩 음미해보니 어느새 점차 따스한 조각 이불보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러다 오늘은 급기야 질투심? 경외심? 같은 감정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내가 이제까지 쓴 글들은 거의 대부분 뾰족했다. 대학생 시절부터 난 송곳처럼 살고 싶었기 때문이다. 송곳처럼 정곡을 찌르는 검객이 되고 싶었다. 물론 평소에는 송곳의 나머지 부분처럼 둥글게 살고도 싶었다. 둥글지만 어둠이 가득할 때에는 번뜩이는 통찰력으로 빛을 발하는 허허실실의 대가! 그게 내가 꿈꾸던 나였다.

 

  하지만 세월이 갈 수록 난 찌를 줄만 아는 어른이 되어버렸다. 그것도 무딘 날로 말이다. 힘차게 찌르지만 고름을 터트리지는 못하는, 그래서 아픔만 배로 더해 버리는 어설픈 글만 쓸 줄 알게 되었다. 말이라도 둥글게 하면 좋으련만 안타깝게도 말도 글도 같은 길위에 나란히 걷게 되었다.

 

  나는 상대를 지적할 줄만 알았지, 상대를 품어줄 줄을 모르고 살았다. 아니 살고 있다. 사회의 부조리에, 아이의거짓말에, 동료의 무관심에 목청을 돋울 뿐, 생일을 맞이한 친구의 미소에, 소중한 것을 잃어버린 아이의 눈물에, 삶에 무게에 짓눌린 이웃의 한숨에 제대로 된 말 한마디 건네지 못했다. 내가 그들에게 할 수 있는, 하고 있는 말은 유아용 동화책의 어휘보다 못하다. 참으로 한심한 노릇이다.

 

  아이들에게 치유의 글쓰기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있다. 정작 나는 고통의 단어만 뱉으면서 말이다. 이제 나도 조금 더 둥글게 말하고 써야겠다. 정말 글을 '잘' 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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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9/05 20:45 2012/09/05 2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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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휴 동안 읽던 소설 두 권의 끝을 방금 봤다. 장강명의 <표백>과 김중혁의 <미스터 모노레일>! 두 소설 모두 후반부에 우유팩 차기가 나왔다. 예전에 술마시고 했던 종이컵 차기가 떠올랐다! 연속 30회쯤 차면 소설의 감동이 삐질하고 흐를 것 같다! 그러니까 결론은 '뭐든 좀 하자!'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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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9/12 01:48 2011/09/12 0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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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이층의 악당>을 볼 예정이신 분은

이 글이 영화적 재미 & 깊이를 반감시킬 수 있으니 보신 후에 읽어주세요...^^

 

일단 저는 이 영화에 대만족입니다.

 

 

영화 <이층의 악당>을 봤다.

단순히 코메디 영화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역시 한석규의 탁월한 선택이었다.

 

영화의 기본적인 서사는

엄청 비싼 도자기(찻잔)가 숨겨진 김혜수의 집에

유물을 비싼 값에 밀거래하는 한석규가

그 도자기(찻잔)를 찾기 위해 소설가로 가장하여 세를 들면서 벌이는 사건들의 연속이다.

 

이 스토리만으로도 충분히 재미가 있었다.

 

하지만 그 속에는 <달콤, 살벌한 여인>들의 최강희처럼 웃음을 가장한 근심, 걱정이 있었다.

우리에게 달콤한 재미를 던져 주지만 사실 그 안에는 씁쓸한 근심과 걱정과 고민이 들어 있던 것이다.

 

극중 인물들은 모두 각자만의 고민을 가지고 있다.

밀거래꾼에서 벗어나고 싶은 한석규,

아버지의 비자금을 날려버린 재벌 2세,

키가 작아 무시 당하는 송실장,

아직은 젊다고 생각하지만 할머니 취급을 당하는 옆집 부인,

예쁜 얼굴이 너무나도 필요한 김혜수의 딸과

우울증에서 벗어나고 싶은 김혜수까지...

 

영화 중간중간 이들의 고민이 얼핏얼핏 드러난다.

자신의 입으로, 혹은 상대의 모욕적인 언사로 말이다.

그리하여 각자 나름대로의 방법으로 해결해보려 하지만

그 고민은 끝까지 풀어지지 않는다.

 

찻잔을 차지하려 아무리 애를 써도,

조폭을 동원해 패고 훔치고 쫓아도,

키높이 구두를 신고 유치원 앞에서 키를 재어봐도,

야시시한 속옷을 입고 거울 앞에서 포즈를 잡아봐도,

그렇게 원하던 성형 수술을 받아도,

마지막으로 우울증을 벗어나려해도...

 

영화의 후반부 김혜수와 한석규의 고민이 해결된 것처럼 보인다.

한석규는 찻잔을 판 돈을 받게 될 것이고, 김혜수는 우울증에서 벗어났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들의 고민은 완전히 해소되지 않았다.

다만 다른 형태로 서로에게 전이되었을 뿐이다.

그리고 둘은 다시 같이 살게 된다.

결국 고민이 돌고도는 셈이다.

 

우리는 누구나 다 근심, 걱정, 고민이 있다.

다들 그것을 해결하려고 해보지만 사실 그것들은

속시원히 없어지지 않고 매번 모습을 달리하며 우리 주위를 맴돈다.

멀리 쫓아내고 싶지만 늘 우리의 이층에 머물고 있는 악당처럼 말이다.

 

영화의 마지막,

언젠가는 좋은 날이 올 거라 말하는 한석규에게

김혜수의 딸은 인생은 다 그런거라며 어쩔 수 없이 사는 것이라 답한다.

그렇다.

그렇게 우리는 고민을 안고, 근심을 지고, 걱정을 품고 사는 것이다.

 

 

(굉장히 인상 깊은 장면이었는데, 그 딸이 뭐라고 말했는지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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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1/28 23:02 2010/11/28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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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아람의 <소수의견>을 읽었다.

오랫만에 접하는 매력적인 소설이었다.

 

인터넷의 책소개를 보고 구입해 놓고서는 한동안 표지만 쳐다봤다.

법정재판을 다룬 내용이었기에 쉽사리 손이 가지 않았다.

 

그러다가 큰맘 먹고 집어 들었다. 마치 원양어선에 타는 선원이 기분이 들었다.

막상 첫 파도를 넘기고 보니 원양어선이 아니라 롤러코스터였다.

사람 마음을 들고 놓는 아찔한 내용이었다.

 

그렇다고 스토리 속에 감춰진 작가의 칼날이

놀이동산의 플라스틱 장난감 같이 무디고 가볍다는 얘기는 아니다.

그 안에 담긴 '진실'에 대한 작가의 '소수의견'은 매우 묵직했다.

 

내용 중에 의미 있던 구절을 적어본다.

 

<그때는 대한민국의 수만 개 법규 중 단 하나도 땅에 누운 자의 편이 아니라는 사실을 믿지 않았다.>

 

<시대가 바뀐 거예요. 이제 소수의견이 자기 자리를 찾을 때가 된 겁니다.>

 

<소수의견이 자기 자리를 찾을 때. 달이 해가 되는 때. 늙은 나무의 그늘로부터 새싹이 돋아나는 때.>

 

<국가는...실체가 없는 적이요. 적의 이미지만 있고 실체는 없을 때 증오는 발산되기 마련이지.>

 

<시간은 논리를 뒤엎는 위력이 있다.>

 

<이들은 단지 한 세기 전의 사고방식으로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을 뿐이다.

  자신들의 지지정당이  자신들의 이권을 대볂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판단할 능력도 안 되는 사람들.

  자기 아들이, 또 자기 손자가 희생되지 않는 한 현존하는 세계의 실제 모습을 회의해 보지도 못하고

  눈을 감을 사람들. 그들을 탓할 수는 없다. 그들 역시 피해자였다.>

 

<그 고민은 길 위에 있지 않았다. 길에 접어든 순간부터 갈 길을 정해져 있었다.>

 

<정의의 진짜 적은 불의가 아니라 무지와 무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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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0/16 21:50 2010/10/16 2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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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창 치열하게 고민하며 살던 20대 중반에는 송곳처럼 살리라 마음 먹었었다.

 

평소의 삶은 송곳의 몸통처럼 둥글더라도, 세상의 부조리에는 날카로운 끝으로 가차 없이 구멍을 내는 그런 송곳 말이다.

 

하지만 그로부터 반 십 년이 지난 지금을 반성하자면

 

송곳은 커녕 칼국수 반죽도 못 자르는 밀대가 되어 버린 듯하다.

 

체제에, 부조리에 反하는 듯하나 실은 그것을 넓게 펴는 밀대 말이다.

 

그러면서 속으로는 '나는 지금 순응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송곳이 쉽게 지나가도록 얇게 만드는 중이다.'라고 합리화하고 있다.

 

그렇게 때에 찌들어가던 중 우연히 지승호의 <가장 왼쪽에서, 가장 아래쪽까지>라는 김규항 인터뷰집을 읽게 되었다.

 

지금도 종종 사용하는 내 닉네임이 'B급좌파'인데, 이는 김규항 선생이 2001년 낸 칼럼집에서 그대로 표절한 것이다.

 

그만큼 그 당시에 나는 김규항의 시대정신에 매료되어 있었다.

 

그리고 지금은 다시 만난 그의 올곧은 정신에 회개(?)하게 하는 중이다.

 

이제부터 펼쳐질 이야기는 서평인 동시에 나름 신앙고백인 셈이다. (혹은 간증이라고 하나?)

 

 

김규항 선생은 이 인터뷰를 통해 '잘 살자!'라고 주장하고 있다.

 

대신 그 '잘'이라는 기준을 지금 세상의 가치관과 다르게 갖자고 말한다.

 

나 역시 그러한 생각을 하고 살았다.

 

여전히 잊지 않는 내 꿈이 바로 세계평화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군축을 통한 세계평화이다.

 

보통의 사람들은 이를 두고 허무맹랑한 공상이라고 한다.

 

하지만 그리스도교 신자인 나로서는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이다.

 

사람이 죽었다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고, 심지어 하늘에까지 올라간 걸 믿는 나는

 

모든 국가가 총과 칼을 버리고 행복하게 사는 것을 충분히 상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는 사람들이 아직 이런 생각을 안 하고 산다는 것이다.

 

'아직'이 아니라, '전혀' 안 하고 살고 있다. 오히려 평화보다는 긴장된 국가 관계를 선호하는 편이 더 강하다.

 

때문에 나와 비슷한 생각을 가진 동료들이 필요했다. 세상을 바꿀 새로운 생각을 가진 인재들이 필요했다.

 

이러한 지극히 '파시즘'적인 생각으로 난 교사가 되었다.

 

그리고 작년에 이어 올해 급훈도 '세계평화'이다.

 

그러나 현재의 나는 아이들에게 이러한 상상을 할 수 있는 교육을 제대로 못하고 아니, 안하고 있다.

 

공부 잘 해라, 선생님 말씀 잘 들어라 등은 기본이고,

 

이제는 좋은 대학 가려면 지금부터 열심히 해야 한다. 독서도 마찬가지다. 등의 철저히 세속적인 이야기를 서슴치 않고 있다.

 

그것도 나도 모르는 사이 자연스럽게 말이다.

 

그야말로 내 송곳이 내 손을 찌르고 있는 형국이다.

 

그와중에 <가장 왼쪽에서, 가장 아래쪽까지>를 읽게 되었다.

 

내 뒷통수를 후려 갈긴 이 인터뷰 말미에 김규항 선생은 이렇게 마무리 짓고 있다.

 

"'잘사는 게 뭐냐'는 질문을 잃어버리는 순간, 지배계급이나 부자들의 가치 기준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순간,

 

 우리는 그저 가련한 인생이 되는 겁니다.

 

 하지만, '잘사는 게 뭐냐'는 질문을 잊지 않을 때, 거꾸로 그들이 불쌍해지는 거죠."

 

그동안 나는 보물지도를 잃은 해적선처럼 산 것 같다.

 

그의 표현대로 도발성을 잃은 예술가이고, 책으로만 사유한 반쪽짜리 지식인인 셈이다.

 

 

21세기 광야에 울려퍼진 세례자 요한의 외침을 들었으니 이제 회개하고 다시 왼쪽으로, 다시 아래로 움직이련다.

 

다시 정신차리고 송곳으로 살겠다.

 

이를 위해 김규항 선생이 말한 것처럼 자기 성찰, 영성적인 삶도 함께 하겠다.

 

체게바라도 '진정한 혁명가는 사랑이라는 위대한 감성에 의해 인도된다.

 

살아 있는 인류를 향한 위대한 사랑을 구체적 사실로 전한시키기 위해 매일매일 투쟁해야 한다'고 하지 않았던가!

 

가장 왼쪽에서, 가장 아래에서 사람들과 함께 한 예수의 삶으로 다시 돌아가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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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3/30 22:38 2010/03/30 2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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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을 표절하라, 트래피즈 컬렉티브, 황성원 역(2009),  이후 .
▷거꾸로 생각해 봐, 홍세화 외 7명(2008), 낮은산
 
  책을 분기마다 몰아서 구입하는데, 사놓고 보면 의도하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비슷한 주제로 묶여 있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번에도 그렇다. 지난 번에 빌려 읽은 '학교개조론'을 시작으로 이번에 구입한 '거꾸로 생각해 봐'(이하 '거꾸로')와 '혁명을 표절하라'(이하 '표절')가 같은 맥락 속에 놓여 있었다.
 
  지긋지긋한 관절염같은 군 복무 시절, '미시사'라는 용어(혹은 영역)를 알고 거대한 정원에서 들꽃 무리로 눈을 돌린 적이 있었다.  정치사와 철학사같은 거대담론에만 의미를 두고 가슴 속에 흔적도 남기지 못하는 억지 독서를 하던 중,  '문화로 보면 역사가 달라진다.'라는 책세상문고를 보고 '아하' 체험을 하였더랬다. 그 후로로터는 가볍지만 머리를 '뎅~!'하고 울려주는 미시담론 서적들을 즐겨 읽고 있다. 오늘 언급할 책들도 여기에 속한다.
 
  인터넷 서점에서 제목과 저자만 보고 고른 두 책은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세상을 바꾸고자 하는 꿈을 가진 이들이 쉽고도 즐겁게 살아갈 수 있는 여러가지 방법들을 조곤조곤 이야기하고 있다.
 
  '거꾸로'는 홍세화를 비롯하여 한 번쯤은 이름을 들어봤을 법한 진보진영 인사들이 청소년을 상대로 쓴 사회비평서이다. 7가지의 주제로 묶인 이 글들은 모순이 되는 질문과 답을 함께 제시하고 어떻게 그 모순이 참이 될 수 있는지를 청소년의 시각에서, 그리고 반말(!)로 다정히 설명해 주고 있다. 사회, 문학, 정치, 경제, 의학 등 다양한 영역의 이야기를 알기 쉽게 풀어썼다는 것이 이 책의 장점이다. 중3 이상의 청소년이라면 쉽게 읽을 수 있으니 주변에 아이들이 있으면 생일 선물로 주기에 적당하다. (물론 생일 선물이 책이라는 것을 알게 된 아이는 '선물'이 아니라 '숙제'를 받았다는 '므흣'한 느낌을 가질 수 있는 부작용이 있다.) 지금 우리 반 아이들은 아직 어리기에 이 정도는 어려울 것 같고 나중에 고학년을 맡게 되면 학급문고로 비치하고 읽혀야겠다.
 
  '표절'은 아직 여는글 정도만 읽었지만, 대체로 '거꾸로'의 성인판(?)이라는 느낌이 든다. 이 책은 세상을 바꾸는 방법 이전에 자신을 바꾸는 방법을 이야기하고 있다. 여기서 '자신'이란 '살면서 일하고 있는 실제 세계와 가끔씩 엿보며 지내는, 꿈꾸는 세계들 사이에서 양다리를' 걸치고 있는 우리를 말한다. 웨스트민스터 성당 지하에 있는 성공회 주교의 묘비에 적혀 있다는 글귀

1처럼 세상을 바꾸려고만 할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부터 바뀌어야 함을 이 책은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거대한 폭발을 일으키려 하지 말고 작은 틈새에 뿌리를 내리는 것이 훨씬 더 가능성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나에게 틈새란 우리 반 아이들이 될 것이다.) 앞으로 펼쳐질 9가지 영역에 걸친 이 책의 읊조림이 나를 어떻게 변화시킬지 기대가 된다.
 
  이상 두 권의 책을 맛보았다. 나처럼 머리만 있고 몸뚱아리가 없는 B급 행동가에게는 유용한 정보가 되리라 믿는다. 여기에 만족할 수 없다면 '내가 춤출 수 없다면 혁명이 아니다.'와 '명랑이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도 함께 곁들이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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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영혼을 위한 닭고기 수프1에 나오는 내용으로 전문은 다음과 같다. '내가 젊고 자유로워서 상상력에 한계가 없을 때, 나는 세상을 변화 시키겠다는 꿈을 가졌었다. 좀더 나이가 들고 지혜를 얻었을 때 나는 세상이 변하지 않으리라는 걸 알았다. 그래서 내 시야를 약간 좁혀 내가 살고 있는 나라를 변화 시키겠다고 결심했다. 그러나 그것 역시 불가능한 일이었다. 황혼의 나이가 되었을 때 나는 마지막 시도로, 나와 가장 가까운 내 가족을 변화 시키겠다고 마음을 정했다. 그러나 아무도 달라지지 않았다. 이제 죽음을 맞이하기 위해 누운 자리에서 나는 문득 깨닫는다. 만일 내가 내 자신을 먼저 변화 시켰더라면, 그것을 보고 내 가족이 변화되었을 것을. 또한 그것에 용기를 얻어 내 나라를 더 좋은 곳으로 바꿀 수 있었을 것을, 그리고 누가 아는가, 세상까지도 변화되었을지! '텍스트로 돌아가기
2009/07/01 21:21 2009/07/01 2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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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개조론, 이기정(2007), 미래M&B

 

 

  옆자리에 계신 쌤의 추천으로 읽은 책으로, 우리 학교의 같은 국어과 쌤의 남편 분이시자 바로 옆 고등학교 국어쌤이 쓰신 학교문화 비판서이다.(결국 나랑은 아무 관련 없는 분이다...큼!)

 

  개조라 함은, 조직이나 구조 따위를 목적에 맞게 고쳐 다시 만드는 것을 말한다. 그럼 학교를 무슨 목적에 맞춰 고친다는 것인가? 저자가 주장하는 학교 개조의 목적은 바로 교육이다.

 

  재미있지 아니한가? 학교의 본래 목적이 교육이거늘, 어찌 다시 교육에 맞게 고친다는 것인가!

 

  저자의 주장에 따르면 지금의 학교(혹은 학교 문화)는 교육과는 먼 곳에서 '삽질'하고 있다고 한다. 학생을 가르치는 것은 저 대문 밖으로 쫓겨나 울고 있고, 행정 사무를 처리하는 것이 본처인냥 떡하니 안방에 들어 섰다는 말씀이다 이거다. 이제 학교문화에 혓바닥 좀 대어본지 고작 4개월차에 접어들지만, 고 사이에 느낀 바로는 저자의 주장이 대통령 선거 공약처럼 헛풍선만은 아니다라는 점은 확실하다.

 

  물론 모든 선생님들이 행정 사무에만 매달려 있다는 이야기는 절대 아니다. 대부분의 선생님들은(사실 생활지도부실이라는 별실에만 꼭 박혀 있기에 다른 부서 분위기를 확신할 수는 없지만) 교육에 더 많은 신경을 쓴다. 문제는 그 관심만큼 시간과 노력과 에너지를 쏟을 수 있는 여건이 제도적으로 아렵다는 것이다.

 

  나야 분위기 좀 살벌하고 애들하고 파이팅하는 일을 맡아서리 쪼까 불만이지만, 그래도 잡무가 거의 없는 부서에 있다는 점은 다행이라 생각하고 있다. 일과시간에 교과연구도 하고 수업준비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와 같이 이 학교에 배정받은 다른 신규쌤의 경우 끊임없는 학교사업 추진으로 날이 갈수록 몰골이 상접하는 안타까운 현실에 처해있다.

 

  잠깐, 주저리주저리 떠들다보니 뭔가 이상하다. 교사가 학교에서 교재연구를 하고 수업 준비를 할 수 있다는 것이 다행으로 여겨진다니? 오호라...이거 문제 있는 거 맞구나...(큼...마치 혼자 비트박스 하고 랩하면서 헤드스핀을 도는 쌩쇼 분위기다. 오랫만에 글을 쓰니 논리 전개가 이 모양이다.)

 

  암튼 이 책에서는 이러한 교사들의 공통된 불만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제도적 차원에서 논의하고 있다. 나처럼 미시적인(혹은 개인적) 차원에서 투덜거리고 조물딱거리는 교사에게 도움이 될 만한 내용이었다.

 

  내 꿈인 세계평화를 이루기 전에 할 일이 하나 더 생겼다. 학교 좀 손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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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6/22 22:43 2009/06/22 2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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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렀다.

 

 

중학생 시절 교보문고를 놀이터 삼아 유유자적 관람하던 중,

수입서적 코너에서 우연히 발견한 반고흐 작품집.

 

(그림과 설명이 적절하게 조합된 것으로 유명한

 taschen 출판의 'VAn Gogh-The Complete Paintings'이다.)

 

당시 가격으로 거금 25,000원(지금은 70,000원이네..)!!

용돈을 모으고 모아 큰 맘 먹고 덜컥 구입했다.

 

그 후 꼴에 본 건 있어가지고,

벽다방에서 코코아 한 잔 뽑아서는

햇볕 좋은 놀이터에서 우아하게 고희의 그림에 푹 빠졌더랜다.

 

이제 그 나이에 딱 두 배 된 오늘,

'매그넘 코리아 사진집'에 꽂혔다.

 

사진을 처음 배울 때부터 귀에 딱지가 지도록 들은

그 매그넘~~~!!!

그들이 한국을 찍었다....그것도 248장이나!!

(총 2400장 중에서 엄선한 사진 248장이란다...)

 

7월 중순 이후에 배송된다는데..이거 쫌 설레이겠는걸~!

 

 

그나저나, 사진전도 가야하는데...

혹시 관심 있으신 분 계신감유??? 같이 갈까요~!!

 

 

(사진출처 : 교보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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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7/04 23:17 2008/07/04 2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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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는 되풀이된다."

 과연 그러한가?

 

 다음은 간디의 '힌두 스와라지'의 일부이다.

 

 영국은 인도를 취한 적이 없습니다. 우리가 영국에게 인도를 넘겨준 것입니다.

영국인이 힘이 있기 때문에 인도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영국인을 붙잡

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이 명제를 입증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영국인들은 원래 무역을 하러 우리나라에 왔습니다. 바하두르(동인도)회사를

떠 올려 보십시오. 누가 그것을 바하두르로 만들었습니까? 영국인들은 애초

왕국을 건설할 때 아무런 의도도 없었습니다. 누가 그 회사의 직원들을 도와

주었습니까? 누가 그들의 은을 보고 마음이 혹했습니까? 누가 그들의 상품을

샀습니까? 역사는 이 모든 일을 우리가 했다는 사실을 증언합니다. 단번에 부

자가 되려고 우리는 그 회사 직원들을 두 팔 벌려 환영했습니다.

 

              -인도가 왜 식민지가 되었는가 하는 (가상)독자의 질문에 대한 답변

 

 "역사는 되풀이된다."는 말은 비슷한 역사적 상황에서 별다른 고민 없이 전례를

모방했을 때 실현되는 명제이다.

 지금의 우리나라는 당시의 인도와 비슷한 상황에 처해있다. 여기서 우리의 행동

에 따라 역사는 반복될 수도 있고, 역으로 변화할 수도 있다.

 현재 많은 사람들이 선택을 했고 또 그것을 실천에 옮기고 있다. 이제 남은 것은

우리의 주권을 위임 받은 자들의 결단이다. 그들의 결단이 우리의 선택과 일치를

이루면 우리는 새로운 역사의 주체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반대로 우리의 선택에

反하는 결정을 내리면 그 결과는 불을 보듯 뻔하다.

 

자, 이제 선택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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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6/02 22:16 2008/06/02 2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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