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 털을 가진 고양이가 살았습니다. 빨간 고양이 탐은 고양이 마을에서 나고 자랐지만 그 어떤 고양이도 그에게 그루밍을 허락하지는 않았습니다. 그의 털색이 불운을 몰고 온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지요. 더 이상 자신의 꼬리와 술래잡기를 하지 않을 나이가 되었을 때 탐은 마을을 떠나기로 했습니다.

 

무작정 길을 나서고 제일 먼저 한 일은 주둥이를 높이 들고 우아하게 뻗은 자신의 수염을 바람에 맡기는 것이었습니다. 바람이 전해주는 무수한 고양이들의 이야기가 그의 수염으로 고스란히 전해졌습니다. 빨간 고양이 탐은 수염이 제일 흡족하게 떨리는 방향으로 몸을 틀었습니다. 세 번의 낮과 밤이 지난 후 도착한 곳은 어느 바닷가 마을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수염을 간지럽힌 것이 바로 바다를 가득 채운 생선의 비릿함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탐은 바다 가까이로 가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고양이 마을에서도 미움을 받은 그였기에 작은 몸 하나 숨길 수 없는 텅 빈 해변으로 나아간다는 것은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습니다. 때문에 사람들이 쌓아 놓은 그물 사이로 살며시 고개를 내밀어 저 멀리 흔들리는 바다를 그저 바라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습니다.

 

꼬리를 말아 앞발 위로 올려놓고 바다에 푹 빠져 있던 탐은 혀를 동그랗게 말며 하품을 하다가 깜짝 놀랐습니다. 웬 꼬마아이가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는 게 아니겠습니까? 탐은 두려웠습니다. 다른 사람들처럼 욕을 하며 돌을 던질지도 몰랐거든요. 그런데 그 아이는 예상과는 달리 잠시 동안 탐을 빤히 쳐다보기만 하고는 휙 뒤돌아 가버리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고개를 돌리는 그 짧은 순간, 탐은 아이 입가에 번진 작은 미소를 놓치지 않았습니다. 빨간 고양이 탐은 용기를 내어 그 아이를 따라 갔습니다. 고양이는 마음만 먹으면 누구도 눈치 채지 않게 걸을 수 있었기에 아이 몰래 따라가는 것은 큰 무리가 없었습니다.

 

조용한 골목길을 따라 깡충거리며 뛰어가던 아이는 빼꼼히 열린 대문 안으로 쏙 들어갔습니다. 탐은 담 위로 훌쩍 뛰어올라 아이가 들어간 현관을 아쉬운 눈으로 바라보았습니다. 아이가 다시 나오기까지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탐은 그 사이 아이에게도 버림받았다는 느낌에 크게 실망했습니다. 담 아래로 뛰어내리려 앞발을 허공으로 내딛는 그때 현관이 다시 열리고 아이가 나왔습니다. 그런데 탐의 눈에 비친 것은 아이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아이의 품에는 탐스런 주황색 털을 가진 고양이 한 마리가 얌전히 앉아있었습니다. 그 순간 탐의 수염이 다시 떨리기 시작했습니다. 고양이 마을을 떠날 때 자신을 이끌었던 그 떨림이었습니다. 두 고양이는 약속이나 한 듯 동시에 뛰어내리더니 서로를 향해 천천히 다가갔습니다. 둘의 사이가 가까워질수록 수염의 미세한 진동이 점점 커졌고 이윽고 심장에까지 다다르자 둘은 떨리는 마음을 주체하지 못하고 그르릉 그르릉 기분 좋은 소리를 내며 서로의 고운 품에 얼굴을 부비기 시작했습니다. 그 후 바닷가 마을에서는 빨간 고양이와 주황 고양이가 사이좋게 바다에 앉아 그들의 털만큼이나 고운 노을을 바라보는 모습을 매일 볼 수 있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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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3/26 21:51 2013/03/26 2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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