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사회과학입문 시간...

'매춘의 일반화'라는 단어가 심히 거슬리면서, 점점 속이 거북해져왔다.

자본주의란 무엇인가.. 라는 강의주제..

자본주의는 시장사회의 특수한 한 형태이며,

그 결정적 요소는 노동력의 상품화, 즉 문학적으로 표현하면

매춘의 일반화라고 표현하시고는...

이후 노동력 상품화를 매춘의 일반화라고 계속 바꾸어 표현하시던

교수님.....

어떤 식으로든 의견을 표출하지않으면 밤에 잠을 못이룰것 같은

기분에 매춘의 일반화라고 굳이 표현하지 않으셨으면 한다라는

의견을 표명하였지만...

결국 교수님 생각은 노동력의 상품화 정도가 심화된 것은

사실상 매춘과 다를 바 없다는 것으로 단지 문학적 표현 이상의

함의를 가진다.

매매춘에 대해서는

내 속에서도 제대로 정리되지 않고, 늘 갑갑한 부분이 있는터라

이것저것 혼재된 생각 속에 논쟁은 흐지부지 종결되었지만,

상한 내 기분은 어찌할꼬...

 

결국 성을 사고파는 것이 정당한가, 아닌가는 사회적 합의일 뿐이라는 것인가.

마치 교육을 사고파는 것이 정당한가와 같은 논의수준으로??

 

기실 인간의 모든 것을 사고팔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노동력의 상품화이지만,

물론 그 속에서 성 역시 상품화되었지만,

(성의 상품화는 자본주의 이전부터 계속되어 오지 않았나...)

공장에서의 인권을 말살당한 노동이 매춘과 동급이다라고 얘기하는 것

맞는건가?

정리가 되지 않는다..................

나중에 다른 이들의 의견을 들어보는 것이 나을듯.... 에구 머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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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5/06 23:43 2005/05/06 23:43
 

글씨, 서도, 서예 이런 것들을 잘 모르는 제가 서도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좀 쑥스럽고 민망하긴 하지마는, 꼭 전문가적 식견만이 보는 것은 아니라는 변명과 함께 이야기를 시작할까 합니다.

이 글 ‘서도의 관계론’을 읽고 다시 신영복 선생님의 글씨를 보았습니다. 전체를 보면 조화로워 보이지만, 한 글자 한 글자 찬찬히 보면 처음에는 서도라는 것에 문외한인 저에게는 참.. 멋대로다 그런 생각이 들기까지 합니다. 보통 예전에 보던 글씨라는 것은 한글 워드의 정자체처럼 또박또박 정갈하게 쓰여진 것이 잘 썼다 느껴지는 것이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계속 한 글자 한 글자 바라보다 보면 글의 의미가 글씨에서 느껴지는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어떤 종류의 힘이나 호소력 같은 것이 느껴지기도 하고, 획일적이 아닌 것에서 오는 따뜻함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첫 획이 비뚤어졌을 때 그것을 버리고 새로 처음부터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그 다음 획으로 채우고, 첫 자의 잘못은 그 다음자로 채우고 한 줄 다 쓴 후에 그에 걸 맞는 다음 줄을 채워나가는 것이 글자 한 자 한 자를 완성으로 바라보는 것이 아닌 전체를 바라보기 때문에, 한 글자의 완성을 높이 사는 것이 아니라 다른 글자가 채워주는 것을 높이 사기 때문에 이 한 폭의 글이 정겹고 따뜻하게 느껴지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 글에서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말씀하시고 싶은 듯하지만, 저는 한편 서도라는 것은 사람의 삶과 같은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습니다. 지우거나 덧칠하거나 혹은 처음부터 새로 시작할 수 없는 것... 그와 함께 제 삶의 궤적을 다시 한번 머릿속으로 그려 봅니다.

처음 대학에 입학하고, 4년 정도의 대학생활과 그리고 사회생활 2년, 많은 이들이 그렇듯 20대 중반의 방황이 있었고, 제 경우에는 그 6년의 시간을 지워야겠다는, 사실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6년은 없었던 것처럼, 좀 괴롭더라도 잊어버리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자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몇 개월간의 잠수에서 빠져나와 조금씩 사람들을 다시 만나고 새로운 생활들을 시작하면서 있었던 사실을 없었던 것처럼 쓰레기통에 구겨 넣고 새 종이를 꺼내들어 새로운 글자를 쓰려는 순간에 다시 이전의 6년을, 예전에 썼던 엉터리 글자들을 다시 따뜻한 마음으로 긍정하게 되는 순간이 옵니다. 쓰레기통에서 다시 그것을 끄집어내어 꼬깃꼬깃 접혀진 것을 펼쳐든 순간 죽었다고 느꼈던 글자들이 새록새록 살아나서 생명력을 가지는 것이 보입니다. 그리고 아무것도 없는 새하얀 종이 위가 아닌 다시 그 자리에서 다음 글자를 쓸 수 있는 용기를 내 보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곤 마치 삶의 중요한 깨달음이라도 얻은 듯 만사에 긍정적이 되어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고민은 계속 되었습니다. 내 삶의 다음 글자를 무엇으로 채울 것인지, 어떻게 완성할 것인지 이러한 고민이었습니다. 그러던 중 지난번 이 시간 ‘한 발 걸음’을 함께 읽으면서 나 자신의 고민이 결정적 한계틀 속에 갇혀있었음을 알았습니다. 나의 고민은 나 자신의 완성이라는 것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못하고, 온전한 내 경험과 지식으로 만들어지는 내 사상과 삶의 완성 속에서 허우적거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바로 이부분에서 다시 ‘관계’를 생각해봅니다. 제 삶 자체가 계속 써내려가는 한 폭의 글씨이기도 하지마는 나를 형성하는 것은 도대체 무엇인가, 나를 규정하는 것은 무엇인가 라는 것을 다시금 생각해봅니다.

그리고 주변의 수많은 오뚝이들이 보입니다. 홀로서기를 외치며 혼자서 우뚝 서 있으려고 하는 오뚝이들 말입니다. 상대를, 어떤 집단을 대상화하고 그 속에서 자신마저도 대상화하고야마는, 나라는 존재외에 어떤 것도 믿지 못하고, 급기야 자기 자신도 믿지 못하는 합리와 과학의 논리에 갖힌 사람들을 봅니다. 그것이 어떠한 인간관계의 냉혹함이라던가 하는 가치판단의 문제가 아니라 내 사고체계, 그리고 근대사회의 철학체계가 그렇게 굳어져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ㄱ’이 어떤 의미를 가지지 않는 것처럼 나 자신, 그리고 개별인간을 넘어선 관계를 바라보는 일은 여전히 힘들기만 합니다. ‘묵을 갈 적마다 인과 인 간의 뜨거운 연계 위에 서고자 한다’는 말을 저 역시 삶에서 늘 가지고 가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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