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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5/11/01
    [펌]쿠르드족, 또다른 피압박민
    풍~
  2. 2005/11/01
    귀국과 더불어...쿠르디스탄 이야기
    풍~
  3. 2005/11/01
    여기는 디아르바크르입니다.
    풍~

[펌]쿠르드족, 또다른 피압박민

시민의신문에서 펍니다.


이라크에 있을 때였다. 필자가 터키의 쿠르드족과 처음 인연을 맺은 것은 터키를 통해서 이라크에 들어가던 중에 만났던 한 친구가, 이라크의 마흐무르라는 곳에 터키 쿠르드족 게릴라의 무장 캠프가 있다는 이야기를 해 준 것이다.

터키의 쿠르드족이 극심한 탄압을 받고 있다는 이야기를 주워들은 적이 있기에 평소에 약간의 관심을 갖고 있던 차라, 잘됐다 싶어서 바그다드 들어가는 길에 잠시 방문을 하였다. 그런데 웬걸? 게릴라의 무장 캠프라는 마흐무르 캠프는 너무나 평화롭고 조용하지 않은가? 군사훈련이 실시되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마을 공터에서는 아이들이 뛰어 놀고 있었다.

잠시 후 만난 캠프 관계자에게 게릴라의 무장 캠프라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너무나 평범한 난민캠프니 어찌된 일이냐고 물어보자 웃는다. 그러면서 터키 정부의 ‘프로파간다'라고 이야기를 하면서 캠프 이곳 저곳을 안내해 준다.

캠프를 돌아보면서 너무나 평범한(사실 난민 캠프가 평범할 수는 없는 곳이지만, 여러 난민 캠프들을 방문할 기회가 있었던 필자에게는 평범하게 느껴졌다. 마치 이라크 사람들에게는 전쟁 상황이 평범한 상황이듯이.) 난민 캠프라는 필자의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곧바로 발견할 수 있었다.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만을 유일한 소망으로 꿈꾸며 하루하루를 그저 살아나가는데 급급한 다른 난민캠프와는 달리 이곳 사람들은 여기서 대안공동체를 가꿔 나가고 있었다. 모든 것이 부족한 상황에서도 이들은 아이들의 교육에 가장 먼저 모든 것을 투자하고 있었다. 1만 여명이 생활하는 이곳 캠프에서 자신들의 손으로 직접 지은 학교들이 초등학교에서 고등학교까지 여러 개가 있었고, 하루에 30분에서 1시간 정도 공급받는다는 물을 아끼고 재활용하여 캠프를 푸르게 가꿔나가고 있었다.

캠프의 가장 중심지에 해당하는 곳에 여성들의 쉼터가 마련되어 있었고, 이곳은 금남의 집은 아니지만 여성들의 휴식에 방해되지 않도록 남성들은 대단히 조심을 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이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는 청소년들을 위한 회관을 짓기 위한 공사가 자원봉사자들의 손에 의해 뙤약볕 아래서 진행되고 있었다.(사실 학교의 교사들도 모두 급여를 받지 않는 자원자로 이뤄져 있는 등, 이곳에서의 대부분의 활동은 자원에 의해 이뤄진다.)

또한 필자를 안내해줬던 친구는 환경을 오염시킨다는 이유로 깡통에 드는 음료수를 마시기를 거절하는 등 도저히 난민의 모습이 아니었다. 지난 십여 년 간 캠프를 세 차례나 옮겨서 지금은 이라크의 쿠르드 지역 제일 변방인 이곳까지 밀려왔을 정도로 동족인 쿠르드족에게서조차 별로 환영을 받지 못하는 처지였지만, 이들은 한번도 희망을 버린 적이 없다고 했다. 난민촌을 둘러본 후 필자에게 소감을 묻자 '난민촌이 아니라 대안공동체를 둘러본 것 같다.'고 소감을 말하니 배꼽이 빠져라고 웃는다. 웃음이 많은 사람들이다.

바로 난민촌을 벗어나 차로 20-30분만 가면 현재 무장 저항 세력의 새로운 집결지로 알려진 모술에 도달할 수 있을 정도로 혼란스러운 지역에 위치하고 있었지만, 이곳에서는 그런 흔적을 전혀 읽을 수 없었다.

잠시 후, 마을의 관계자들과 간담회를 갖고 이것저것 질문을 퍼부었다. 그들은 모든 것이 부족한 난민촌 생활이지만, 유엔의 지원을 받고 있기에 먹고사는 것은 문제가 없다고 했다. 이들이 가장 시급하고 필요한 문제로 꼽은 것은 청소년 교육이었다.

고등학교까지는 어떻게 스스로 학교를 세워서 가르치고 있지만, 대학교육을 시킬 교육기관이 없기에 난민촌 밖의 대학에 보낼 방안을 찾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마을 전체를 통틀어 컴퓨터가 단 한 대밖에 없고, 그나마 인터넷이 들어오지 않아 아이들에게 컴퓨터 교육을 전혀 시키지 못해 안타깝다고도 했다.

시간에 늦어 다음에 다시 들러 더 많이 돌아보고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기로 한 후 아쉬운 발걸음을 돌려야만 했다. 짧은 방문이었지만, 이곳에서 받은 감동은 필자가 터키의 쿠르드족에 대해 지속적인 관심을 갖도록 만든 계기가 되었다.

비록 같은 쿠르드족이라고는 하지만, 터키의 쿠르드족과 이라크의 쿠르드족은 여러 면에서 많이 달랐다. 지난 걸프전과 이번 전쟁에서 이라크를 침략하기 전, 쿠르드족의 협력이 필요하다고 느낀 미국이 터키의 쿠르드족에게 협력을 요청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터키의 쿠르드족은 전쟁의 명분을 들어 거절했고 결국 미국은 이라크의 쿠르드족과 손을 잡았다.

터키 정부의 엄한 박해 속에서도 터키의 쿠르드족은 이라크의 쿠르드족에게 항상 연대를 표하지만, 상대적으로 정치적인 안정을 누리고 있는 이라크의 쿠르드족은 마흐무르 난민촌의 사례에서 보듯이 터키의 쿠르드족에게 별로 큰 관심을 갖지 않는다.

이라크의 두 쿠르드족 지도자는 아랍권의 다른 정치지도자들처럼 유력 가문 출신으로 가문의 이해를 대변하는 정치를 하고 있지만, 터키 쿠르드족의 지도자인 압둘라 오잘란은 비록 지금은 감옥에 갇혀 있지만 전체 터키 쿠르드족의 존경과 지지를 받고 있었다.

터키 정부에 의해 그 지도자들이 몇 차례에 걸쳐 암살을 당하고 정당 자체도 해산 당해 이름을 네 번이나 바꿔야 했던 터키의 쿠르드족 정당은 터키내의 다른 정당들보다도 훨씬 더 민주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비록 쿠르드족이 이 지역의 몇몇 나라에서 흩어져 살고 있기는 하지만, 가장 많은 수가 터키에 살고 있고, 또한 역사적으로나 문화적으로 터키의 쿠르드족이 살고 있는 디야르바크르가 전체 쿠르드족의 중심도시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터키의 쿠르드족과 디야르바크르를 포함한 인근 지역을 이해하는 것은 전체 쿠르드족을 이해할 수 있는 키워드가 된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또한 터키의 유럽연합 가입 협상에서 가장 큰 걸림돌로 거론되는 것이 사이프러스와 함께 쿠르드족 문제라는 사실에서 알 수 있듯이 이곳 쿠르드족의 문제는 중동지역 뿐 아니라 유럽에까지도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국제적인 문제이다.

쿠르드족이 독립을 시도하면 3차 세계대전이 일어날지 모른다는 관측을 하는 전문가들이 많다. 쿠르드족이 구소련 지역을 포함 6~7개 국가에 흩어져 살고 있고, 수백만 명이 유럽 등 다른 서방 나라에 흩어져 살고 있음을 감안한다면 이는 결코 허황된 예측은 아니다.

또한 역사적으로도 터키의 쿠르드족 거주지역은 이라크의 쿠르디스탄과 함께 북부 메소포타미아 문명에 해당하는 지역이다. 메소포타미아라는 단어의 의미는 ‘두 강의 사이’라는 의미이고 이 두 강은 터키의 쿠르드 지역에서 나란히 발원하여 2000여 km를 흐른 후 이라크의 바스라에서 다시 만난다.

북부 메소포타미아 문명은 이라크의 남부 메소포타미아만큼 화려하지는 않지만, 시기적으로는 남부 메소포타미아에 오히려 앞서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는 인류 문명사에서도 대단히 중요한 지역이다.

사실 쿠르드족 문제는 팔레스타인 문제와 함께 중동지역의 가장 민감한 문제로 평가받고 있지만, 이 문제가 국제화하는 것을 바라지 않는 터키 정부의 집요한 노력의 결과 한국을 포함한 국제사회에 터키의 쿠르드족 문제는 거의 알려지지 않고 있다.

불과 4-5년 전까지만 해도 외국인 여행자가 이 지역을 방문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지난 십 수년 간 거의 4만 명에 육박하는 쿠르드족 사람들이 터키 정부군과 터키 정부의 사주를 받은 이슬람 무장 세력에 의해 학살당했고 이들 중 대부분은 민간인이었다.

세상에서 가장 악랄한 인종탄압 정권으로 평가받고 있는 이스라엘에서 2차 인티파다 이후 이스라엘 정부가 학살한 팔레스타인 수가 3천명에 미치지 못한다는 사실을 감안한다면 쿠르드족에 대한 탄압이 얼마나 극심한지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며칠 전에는 터키 중부 지역에서 한 한국인 여행 안내인이 터키 동부지역에 관한 한 관광객의 질문에 대답을 하면서 ‘쿠르디스탄’(쿠르드족의 거주 지역을 일컫는 말로 국제적으로는 평범하게 사용되는 용어이다.) 단어를 단지 언급했다는 이유로 터키인 여행 안내인에게 구타를 당한 일이 발생하기도 했다.

즉 쿠르드족을 인정하는 발언을 하면 외국인조차도 폭행을 당하는 것이 현재 터키에 살고 있는 쿠르드족이 처한 현실인 것이다. 또한 터키에서 가장 진보적인 정당으로 평가받는 터키 공산당조차도 쿠르드족 문제에 있어서는 터키의 다른 보수 우익 정당들과 똑같은 입장을 취한다.

필자는 앞으로 몇 차례에 걸쳐 터키의 쿠르드족과 인근 지역에 살고있는 쿠르드족에 관해 글을 쓸 예정이다. 터키의 쿠르드족에 대한 한국 사회의 관심과 연대를 기대하면서, 이 지역의 문화와 이들의 생활 그리고 이들이 받는 정치적인 억압 등과 함께 이 지역에서 발생했던 여러 가지 해프닝들을 한국의 독자들에게 가감 없이 전달할 생각이다.

터키=아쉬티 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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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국과 더불어...쿠르디스탄 이야기

  2005년 7월 9일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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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6일 오후 6시경 인천공항에 도착했습니다.

버스타고 집에 오니 9시쯤 되더군요. 서울의 교통체증을 보름만에 겪다보니 참 힘들더군요. ㅎㅎㅎ

귀국일정을 너무 빡세게 잡아서 지금까지도 여독이 풀리지 않고 있습니다. 한국시간 기준으로 설명을 드리자면 새벽 2시경 디아르바크르 공항으로 출발해서 새벽 4시경 비행기를 타고 이스탄불 공항에 새벽 6시경 도착한 뒤 앞으로도 한달 반동안 터키에 남아 또 다른 활동을 준비하고 있는 '지선'씨와 만난뒤 아침 8시경에 이스탄불을 출발해서 오후 6시경에 인천공항에 도착할 예정이었습니다.

비행편으로만 16시간동안 시달리는 일정이었는데요.

디아르바크르에서 무려 1시간 30분이나 비행기가 연착되는 바람에 하마터면 귀국하지 못할뻔 했습니다. 30여분만 더 연착되었어도 귀국못했을 것이라는...


디아르바크르에서의 경험은 말로 표현하기 힘듭니다만, 세상에 이런 일이...라는 TV 프로그램을 보는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그 동안 터키는 2002월드컵을 통해서 '한국과 형제국가'라는 이미지와 더불어 이스탄불등을 통해 알려진 유명한 관광지, 그리고 PKK등의 활동을 통해 알려진 민족분쟁 정도로 알고 있었습니다. 이번 방문을 통해 너무 많은 것을 알게되고 터키 정부에 대해 분노가 치솟을 뿐입니다.

그동안 터키에 대해 속은것만 같은 느낌입니다.

쉽게 설명을 드리자면, 터키내에서 쿠르드 민족의 위치는...

 

박정희 독재정권과 일본제국주의 강점기를 합쳐 놓은것과 같았습니다.

지금은 터키가 EU에 가입하기 위해서 상당히 많은 유화정책을 쓰고 있어서 잘못판단하기 쉽지만 더 지능화된 통제시스템이라도 판단됩니다.

쿠루드 민족에게는 쿠르드어라는 고유의 언어가 있습니다만, 몇 년전까지만해도 쿠르드어를 쓴다는 것 자체가 범죄행위가 되는 그런 국가였다고 합니다. 지금이야 유화정책때문에 쿠르드어를 배우고 쓰는것이 불법은 아니지만, 학교를 포함한 관공서, 정당, 국가기관 그 어느곳에서도 쿠르드어를 사용할 수 없습니다.

이스탄불에서 방문했던 DEHAP(데하프,민주민중당:쿠르드민족이 주축이 되어 만든 합법정당. 터키에서는 쿠르드 민족을 위한 정당은 불법이기 때문에 노동자등 소외계층을 위한 정당으로 합법적 틀내에서 만들어져 있다. HADEP(하데프,민중민주당)이 해산된 뒤 간판만 바꿔달았다고 봐도 무방함) 이스탄불 지역 대표가 5.1 메이데이 포스터에 단 한줄의 쿠르드어를 사용했다는 이유로 재판에 회부되어 있을 정도입니다.

유화정책을 쓰기 이전에는 더욱 엄혹한 상황이었다고 합니다. 심지어, 쿠르드 전통담배(예전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가 피우던 쌈지담배와 비슷함)를 피운것이 세금을 내지 않은 불법담배를 피웠다는 죄목이 되어 경찰에 체포되어 고문끝에 죽음을 당한 경우도 있었다고 합니다.

유화정책을 쓰고 있는 지금도 상황은 별반 나아지지 않고 있습니다. 저희가 방문한 '평화의 어머니(Mother of Peace)'라는 단체는 한국의 민가협, 유가협과 비슷한 단체였는데요. 한국보다 상황이 더 비참하다고나 할까요.

큰 아들이 PKK소속의 게릴라라면 작은 아들은 징집되어 정부군 소속이 되어 서로 죽고 죽이는 그런 현실속에서 만들어진 비극적인 단체입니다. 저희가 터키를 방문하고 있던 그 즈음에도 그리고 한국에서 편하게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이 순간에도 터키군의 PKK 게릴라 소탕작전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PKK는 벌써부터 터키 정부에 평화협상을 제안한 상태입니다만, 정부는 평화협상엔 전혀 관심이 없고 쿠르드 민족 문제가 불거지지 않도록 쉬쉬하기에 바쁠 뿐입니다.

귀국하던 마지막날 평화의 어머니가 주최하는 집회에서 PKK의 당수인 오잘란을 석방하라는 구호가 터져나오자 마자 경찰은 구호를 멈추지 않으면 체포하겠다는 협박을 방송할 정도였습니다. 터키에서 '오잘란', '쿠르디스탄'이라는 단어는 금기되어 있습니다. 다른 구호를 외칠때는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다가 '오잘란'이라는 말만 나오면 체포한다는 협박방송을 하는 터키 경찰이었습니다.
집회현장을 보면서 너무나 어이없었던 것은 경찰이 너무나 당당하게 캠코더를 들고 집회 주동자를 촬영하는가 하면, 군 정보부로 보이는 자들도 캠코더를 들고 당당히 촬영을 하는 것이었죠. 심지어는 집회장 주변에는 터키군의 헬기가 정지한 상태로 한참동안 떠 있기도 했구요.

캠코더로 촬영하는 경찰을 제가 캠코더를 촬영을 하자 곧바로 경찰이 다가와 촬영을 중단하라고 협박하기도 하더군요. 제가 외국인이었고, 마침 기자증이 있어서 아무런 위해는 없었지만 만약 쿠르드인이었다면 곧장 체포되었을 것이라고 합니다. 실제 그들중의 한 경찰은 집회도중 저를 내내 촬영하기도 했습니다.

나중에 집회참석자도 아닌 저를 촬영한 것에 대해 항의하자 '도대체 무엇이 문제냐'라고 대응하더군요. 대사관에 연락하겠다고 협박하니까 무엇을 원하느냐고 해서 제가 촬영된 부분을 삭제해달라고 요청하니 '맘대로 해봐라'라고 하더군요.

한국과 비슷하면서도 차원이 다른 그런 경찰들이었습니다. 참 깜빡했는데, 집회장에서 그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경찰이 총기를 휴대한 상태로 대기중이었습니다. 한국으로 치면 전경과 같은 집단이었는데요. 거의 경찰특공대 수준이더군요.

집회장에 간 것만으로 목숨의 위협을 느껴야 한다고 할까요. 디아르바크르는 그런 곳이었습니다.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발상지, 도시가 된지 9,000년된 도시, 사람이 살기 시작한지 12,000년된 곳 디아르바크르는 현재 그런 모습으로 그렇게 있었습니다.

그날 집회를 주도한 사람들은 한 달 후쯤 잡혀가 경찰의 고문을 받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그나마 정부의 유화정책이 이루어져 그렇습니다. 아니면, 집회를 했다는 것만으로 전원이 잡혀갔을 것이라고 합니다.


더 웃기는 일은...

터키는 지방자치가 꽤나 잘 되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디아르바크르를 비롯한 쿠르디스탄 지역이라고 불리우는 지역에는 100여개가 넘는 도시,마을의 시장이 데하프 소속의 쿠르드인이기 때문입니다. 그 정도라면 거의 자치정부 수준이 아닐까 하고 순간 착각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착각이었습니다.

'거버너'라고 불리는 직책을 알기전에는 말입니다. 디아르바크르를 예로 들자면, 지방자치에 의해 당선된 시장이 있고 정부에서 파견된 거버너가 있는 것이지요. 일종의 총독쯤 되는 사람인것이지요.

그래서 거의 모든 실권은 거버너가 독차지하고 있지요. 경찰과 군대, 그리고 거버너가 연계된 통치를 하고 선거를 통해 당선된 시장은 거의 허수아비나 다름없는 것이지요. 그래서 기껏 할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이 문화사업이나 복지사업정도나 할 수 있을까... 그것도 아주 제한적으로...

디아르바크르만 하더라도 그 동안 터키정부의 발표로는 인구가 50만정도라고 해왔습니다만, 최근 민선시장에 의해 조사 발표된 인구가 150만입니다. 쿠르드민족은 산악지대에서 생활하는 민족입니다. 터키정부는 그 동안 꾸준히 산악지대에서 쿠르드민족을 몰아내기 위해 노력해 왔고 지금도 그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마치 베트남 전쟁에서 한국의 군인들이 베트콩의 근거지를 없앤다는 이유로 마을을 불태워 없애버렸듯이 정부군은 지금도 동부산악지대의 쿠루드 마을을 없애고 있습니다. 그렇게 유입된 인구가 모두 도시의 최하 빈민층이 되어 있는 것이지요. 정부는 상황조차 파악하지 않고 있으니... 실업률 60~70%가 빈말이 아니란 것을 두 눈으로 확인하고 왔습니다.

 

더욱 심각한 것은...

극심한 실업률탓인지 아동노동이 극심하다는 것입니다. 시장을 방문해도 가게를 방문해도 아동이 노동하지 않는 곳을 발견하기 어렵습니다.

저임금으로 부려먹기 쉬운 점과 한 푼이라도 집안에 보탬이 되고 싶은 마음이 합쳐져 이루어지고 있는 아동노동은 그 사태가 너무 심각했습니다. 어딜가나 아이들은 딱 두 가지였습니다.
또래 아이들과 어울려 놀고 있거나 일을 하고 있는...

그나마 좀 사는 집의 아이들은 노는 것이고 그렇지 못한 집의 아이들은 노동을 하는 것이지요. 그 숫자가 제가 본 것으로 거의 반반이거나 아동노동이 더 많다고 느껴졌습니다. 시장을 가거나 버스정류장을 가건, 식당을 가건 일하고 있는 아이들이 보였고, 심지어 과일을 사기 위해 마켓에 갔을때에도 무게를 달아 가격표를 붙여주는 사람이 댓살쯤 되어 보이는 아이였습니다.

마음이 그래서였을까요. 대부분의 아이들이 일하고 있는 것으로 보였습니다.


디아르바크르를 비롯한 쿠르디스탄지역은 아주 부유할 수 있는 환경을 갖추고 있습니다.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발상지, 만리장성에 이어 세계에서 두번째로 긴 디아르바크르의 성벽이 있습니다. 또한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박해를
피해 동굴집을 파고 살았던 유적이 남아 있고, 디아르바크르 자체가 기원전 7000년경에 만들어진 도시입니다.

뿐만아니라 터키 석유매장량의 60%이상이 쿠르디스탄지역에 매장되어 있고, 티그리스-유프라테스로 이어지는 수자원 역시 쿠르디스탄지역에 집중되어 있다. 터키정부로서는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지역일 것입니다. 지금도 터키정부는 티그리스-유프라테스 유역에 3개의 댐을 건설하여 이라크, 시리아와 마찰을 빚고 있으며 또 다른 댐을 건설계획중에 있습니다.

이런 쿠르디스탄 지역이 터키에서 가장 못사는 지역입니다.


아마 앞으로 계속 쿠르드 민족에게 많은 관심을 가지고 대할것 같습니다.

이글을 읽는 여러분도 많은 관심을 가져 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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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 디아르바크르입니다.

지난 7월 쿠르드에 방문하고서 남긴 글입니다. (작성일 2005년 7월 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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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 디아르바크르입니다.

디아르바크르는 쿠르디스탄의 수도라고 불리우는 도시로..인구 약 200만으로 추정되는 도시입니다.

하지만 10개의 상점가운데 1~2개만이 열리고, 실업률은 60%에 달하는 아주 열악한 상황에 있습니다.

이라크 전범재판 참가팀을 모두 한국으로 보내고 저희(CGA 평화활동가 지은과 저)는 이스탄불에서 데하프라고 불리우는 '민주민중당'과 '인권연합', 쿠르드 문화센터인 '메소포타미아 문화센터'등을 방문하며 디아르바크르를 방문할 준비를 했습니다.

순조롭게 준비가 되어 가는 듯하다가, 디아르바크르로 떠나는 비행편이 매진되어 버스로 이동하느냐, 기다렸다가 비행기로 이동하느냐로 고민을 했습니다만...

버스이동시 24~28시간 가량 소요된다는 말에 하루를 기다렸다가 비행기를 타고 이동키로 결정하고, 어제 디아르바키르로 왔습니다.

다행히도 데하프 이스탄불 지부에서 데하프 디아르바크르 지부로 연락을 해주어 데하프 당원이 마중을 나오게 되어 큰 문제 없이 디아르바크르에 도착했습니다.

디아르바크르에 도착하자마자 그 동안 연락이 되지 않던 '한상진'씨가 곧바로 연락되어 한상진씨의 집으로 이동하여 짐을 풀고 편안한 하룻밤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오늘, 저희는 하산키프라는 곳에 다녀왔습니다. 하산키프는 쿠루드족의 전통적인 동굴주거형태가 남아 있는 곳으로, 쿠르드족의 역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필수적인 코스라고 생각됩니다.

뙤약볕아래 방문한 하산키프는 등산을 하는 기분으로 올라가서 그들의 주거형태와 역사를 되돌아 보게 되었습니다.

만들어진지 몇 년이 되었는지 짐작조차 할 수 없는 그 곳은...
터키정부의 고의적 외면으로 인해 쿠르족의 생활이 무척 힘이 드는 그런 곳이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이스탄불보다 하산키프의 광경이 더욱 관광할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엄청나게 펼쳐진 대자연과 그 속에서 적응하며 살아온 쿠르족의 생활, 그리고 그것을 가로지르는 강은 그 자체만으로도 관광가치가 충분했습니다.

하지만, 터키정부는 쿠루드족의 실체가 국제적으로 드러나는 것이 두려워서인지 그 흔한 관광책자에 하산키프에 관한 내용은 있지 않습니다.

하산키프뿐만 아니라 이곳 디아르바크르에도 아주 오래된...알려져 있기로 가장 오래된 모스크가 있고, 세계에서 만리장성 다음으로 긴 성벽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몇 년이나 된 것인지, 아니 그런 것이 있는지조차 알려져 있지 않은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성벽에 관해서는 여행책자에 잠시 언급된 것을 보긴 했습니다만, 그 외의 다른 정보는 거의 얻질 못했었지요.

저희는 오늘 하루동안 하산키프에서 돌아온 뒤 쿠르드 민족의 문화센터를 찾아보고, 그 곳에서 쿠르드 음악그룹을 하는 친구들을 만나 음악도 듣고 대화를 나눈뒤, 다른 곳으로 이동하여 또 다른 친구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머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영어를 몹시 못하는 관계로 저는 거의 알아듣지 못했습니다.

내일도 여러 일정이 있을것으로 예상됩니다.

내일일은 또 내일 뵙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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