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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6/02/03
    노래 한 자락
    풍~
  2. 2006/02/03
    어디에 있든 그들은 디아르바크르의 시민.
    풍~
  3. 2006/02/03
    오르한 파묵을 가두지 말라
    풍~
  4. 2006/02/03
    [펌]살람에게서 온 편지…이라크의 지금
    풍~

노래 한 자락

몇 년전이었습니다.
이 노래를 듣고 많은 영감을 얻었었는데, 오늘 여러분께 이 노래를 들려드립니다.

자알 들어 보시고...

가사도 한 번쯤 음미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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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부기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살 맛 안나도
그래! 참고 한 번 살아보자~
어떻게든 되겠지?
아무리 생각해 봐도 어찌 될 것 같진 않지만

요즘 정치인들 줄대기 하면서 머리 속이 빙글빙글(빙글빙글)
요즘 신문들 자기 편 챙기면서 뱃가죽이 디글디글(디글디글)
아저씨는 리스트라 스트레스에 죽어가고
아줌마는 치맛바람에 성형 수술까지 도데체 이렇게 가다간
이나라 끝장 나버리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은 있지있지(있지있지)
그런 사람들이 이런 세상 보고 참고 있을리 없지
언젠가는 좋은 세상이 올거야
그럼~그럼! 반드시 오고 말고
이런 바보같은 시대가 계속될 리가 없지

대한민국 부기우기 너를 위해 노래할께
자~자! 손에 손을 잡고 신명나게 놀아보자
대한민국 부기우기 우릴 우습게 보지마~! 하고 외쳐봐
언제까지 착하고 순하다고 생각지마!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살 맛 안나도
그래! 참고 한 번 살아보자~
어떻게든 되겠지?
아무리 생각해 봐도 어찌 될 것 같진 않지만

착하게 사는게 좌우명이라 말하면 등돌리고 키득키득(키득키득)
정의라는 말을 입에 담기조차 쑥스러워 얼굴이 울긋불긋(울긋불긋)
꿈과 희망을 말하기 부끄러운 세상
그러니 이나라가 이모양 이꼴이지
도데체 이런 바보같은 나라 누가 만들었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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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묵히 맡은 일 열심히 하는 사람 바보같다 게걸게걸(게걸게걸)
사람에게 이용당하고 돈에 이용당해 중심은 간데없고
아마도 모두들 그런 인생들이 허무할거야!
그렇다고 그냥 이대로 물러서면 안되지
자~!
이 시점에서 혁명 한 번 일으켜 볼까~

대한민국 부기우기 너를 위해 노래할께
자~자! 손에 손을 잡고 신명나게 놀아보자~
대한민국 부기우기 나를 위해서도 노래해줘!
자~자! 손에 손을 잡고 대한민국 불러보자~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살 맛 안나도
그래! 참고 한 번 살아보자~
어떻게든 되겠지?
아무리 생각해 봐도 어찌 될 것 같진 않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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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부기우기 너를 위해 노래할께
자~자! 손에 손을 잡고 신명나게 놀아보자~
대한민국 부기우기 나를 위해서도 노래해줘!
자~자! 손에 손을 잡고 대한민국 불러보자~

대한민국 부기우기 너를 위해 노래할께
자~자! 손에 손을 잡고 대한민국 불러보자
대한민국 부기우기 우리 모두를 위해 노래하자
자~자! 손에 손을 잡고 신명나게 놀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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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에 있든 그들은 디아르바크르의 시민.

어디에 있든 그들은 디아르바크르의 시민.

이스탄불에서 만난 한 가족은 쿠르디스탄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나를 친구로 맞아 들였다. 10년 전, 터키군에 의해 살던 마을에서 쫓겨나 어쩔 수 없이 이스탄불로 이주한 그들 가족과의 만남은 내가 쿠르드인이 아닌 한국인임을 인정하게 만들었다.

가족 가운데 막내인 로나이는 10년 전 엄마의 뱃속에 있었다. 터키군은 마을을 소개시키는 과정에서 수류탄과 비슷한 종류의 폭탄을 던져 넣었고 그것 때문에 집안에 있던 많은 사람들이 죽거나 다쳤는데, 로나이는 그 영향 때문인지 읽고 쓰기가 잘 안된다고 한다. 이제 스무 살밖에 되지 않은 미네는 10년 전 친구들이 총에 맞아 죽어가던 모습이 아직도 눈앞에 떠오른다고 한다. 운이 좋아 살아남은 이 가족은 십년 전의 아픔을 그대로 간직하며 살아가고 있었다.

벨긴과의 대화 도중에 내가 시비를 걸었다. 말보로를 피우는 밸긴에게 미국이 이라크를 공격하고 있는데 그런 미국의 정부를 뒤에서 돕고 있는 회사가운데 말보로도 있다고. 그리고, 쿠르드 문제에 있어서도 미국이 뒤에서 조종하고 있을 것이라고. 이것 때문에 시작된 몇 시간의 토론은 참 힘들었다. 영어-터키어, 터키어-한글, 터키어-영어 사전을 다 꺼내 펼쳐놓고 한 마디 때문에 몇 분씩 확인해가며 이루어진 토론에서 스스로 한국인임을 시인할 수 밖에 없었다.

벨긴은 쿠르드족의 자치를 인정하는데 미국이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라크에서 쿠르드족이 미국과 함께 전쟁을 치른 뒤 자치주를 인정받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스스로 미국이 싫지만, 현재 터키 내의 쿠르드족 문제에 있어서는 쿠르드족이 존재하는 것을 터키 정부가 인정하는 것만으로도 무척이나 힘들다고 한다. 나는 이라크에서의 전쟁에 쿠르드족이 자치를 얻어냈지만, 그 댓가가 전쟁의 동맹으로서 참전하는 것이었고 그로인해 수많은 이라크 민중이 죽어간 것을 지적했지만, 벨긴은 ‘어쩔 수 없다’는 말만 되풀이 했다.

이라크에서도 사담의 통치아래 얼마나 많은 쿠르드인들이 죽어갔는지 모른다. 쿠르드 지역에 화학가스를 살포해 수만 명을 몰살하는가 하면 끊임없는 학살이 이어졌었다. 에르빌을 비롯한 전 세계 석유 매장량의 6%가 매장되어 있다고 알려져 있는 키르쿠크, 모술 등의 지역이 모두 쿠르디스탄 지역이기 때문이다. 터키에서 이루어졌던 쿠르드족 학살, 소개 작전 역시 터키 석유 매장량의 60% 이상이 쿠르드족 거주 지역에 매장되어 있기 때문이다.

쿠르드족은 석유 때문에 학살과 점령에 시달렸고, 앞으로도 계속 억압될 예정이다. 전 세계에 석유가 없어진다 해도 쿠르족의 앞날은 순탄치가 않다. 중동지역은 앞으로 석유보다 물로 인한 분쟁 가능성이 더욱 높다. 이라크 지역 등은 석유보다 물이 비싼 형편이다. 이미 석유 고갈에 대비하여 대체에너지 개발 등 여러 방법들이 강구되고 있지만, 물은 대체 자체가 불가능하고 생명유지에 필수적이므로 중동지역은 물로 인한 분쟁이 심각하게 대두되고 있다.

물의 통제권과 관련한 분쟁은 이미 시작되었다. 중동의 젖줄인 유프라테스, 티그리스는 고대 메소포타미아 지역이며 지금의 쿠르디스탄 지역이다. 몇 해 전 터키가 수많은 메소포타미아 유적을 수장시키며 티그리스 강에 댐을 건설했으며 그로 인해 티그리스 강의 통제가 가능해졌다. 그것 때문에 이라크와 시리아의 정부는 터키에 강하게 항의했고 터키 정부는 매일 일정량의 물을 흘려보내기로 합의했다. 하지만, 터키 정부는 하산 케이프 지역에 다시 거대한 댐을 만드는 일을 진행 중에 있다. 이 댐이 완성되면 수많은 유적들이 한순간에 수장될 뿐만 아니라 터키정부가 마음만 먹으면 이라크와 시리아 지역으로 단 한 방울의 물도 흘려보내지 않을 수 있다. 터키 정부가 완벽에 가까운 친미정권이며, 이란과 시리아가 반미정권임을 생각하면 앞으로 물분쟁이 어떤 방향으로 발전될 지 불보듯 뻔한것 같다.

불행히도 쿠르디스탄은 중동지역의 젖줄인 유프라테스, 티그리스의 발원점이며 그 상류에 위치하며 세계에서 가장 많은 석유를 매장하고 있는 지역이다. 만약 쿠르디스탄이 독립한다면 중동지역에서 가장 강력한 국가가 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오래동안 지배 받은 역사의 영향으로 미국의 영향권에 들지 않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터키 쿠르디스탄 저항의 핵심인 PKK는 반미성향을 가지고 있으며 지난 이라크 전쟁과 관련 미국의 참전 요청을 거절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렇듯 쿠르드 민족의 미래는 불투명한 상황이지만 그들은 쿠르디스탄의 시민으로서 자부심을 가지고 살아가는 듯하다. 그들과 지속적으로 만나기 위해 교환한 e-mail 주소에는 “amed”라는 단어와 “21”이라는 숫자가 중복되어 있었다. 이상하게 여긴 나에게 그들은 이렇게 설명해 주었다.

“Amed”는 쿠르디스탄의 수도라고 불리는 디야르바크르의 쿠르드식 명칭이며, “21”은 자동차 번호판의 Amed 지역번호라고...
그들은 지금 쿠르디스탄에서 밀려나 이스탄불에서 살아가지만, 집안에서는 항상 쿠르드어를 사용(내가 방문했을 때만 쿠르드어를 전혀 모르는 나를 위해 터키어를 사용해 주었다)하고 e-mail 주소하나에도 쿠르드인임을 기억하며 살아가고 있는 그들을 보며 그들 자신 가운데 희망이 존재함을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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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한 파묵을 가두지 말라

오르한 파묵을 가두지 말라

터키의 쿠르드·아르메니아인 대학살 비판한 뒤 기소되자 세계적 작가들 구명운동…유럽연합 가입 위해 헌법 개정했지만 독소조항 추가돼 표현의 자유는 제자리걸음

▣ 아테네=하영식 전문위원 youngsig@teledomenet.gr

지난 12월16일, 터키 이스탄불에서 열린 오르한 파묵의 재판은 전세계의 시선을 집중시켰다. 특히 유럽연합에서는 네 명의 의원단을 비롯해 수많은 유럽의 문인들이 그를 지지하기 위해 재판정의 방청석을 채웠다. 하지만 재판부는 터키 정부가 재판 진행 문제에 대해 결정한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이유를 들어 재판을 내년 2월6일로 연기했다.

전세계 문인들이 분노한다

지난 2월6일 스위스의 일간지 <타게스 안차이거>와의 인터뷰에서 오르한 파묵은 “3만 명의 쿠르드인과 100만 명의 아르메니아인이 터키에서 죽임을 당했다”고 말했다. 인터뷰 기사가 나오자마자 터키 정부는 즉각 그를 기소했다. 담당검사 펙메지는 “파묵은 터키의 정체성과 터키 군대, 나아가 터키 전체를 적대시하는 근거 없는 주장을 퍼뜨렸다”고 기소 사유를 밝혔다. 터키의 전신인 오토만제국이 1915~23년에 저지른 아르메니아 대학살과 지금도 지속되고 있는 쿠르드 민족에 대한 박해를 비판하는 건 터키 사회에서 금기시된 사항이다.

오르한 파묵의 재판 연기가 결정된 뒤, 그리스 최대의 문학조직인 그리스문인협회의 발티모스 회장이 전화 인터뷰에 응했다. 그는 먼저 “터키가 유럽에 가입하기를 희망하는 사람 중 하나”라고 밝히면서 오르한 파묵 사건에 대한 의견을 밝혔다. 차분하게 얘기를 시작했지만 나중에는 치가 떨리는 듯한 강경한 목소리가 전화상에서도 느껴질 정도로 그는 흥분해 있었다.

“세상에, 유럽연합에 가입하기를 원하는 나라에서 어떻게 표현의 자유를 억압할 수 있는지 도저히 상상도 할 수 없다. 유럽은 오래전부터 사상이나 감정을 자유롭게 표현하는 문화를 자랑스러워했다. 특히 작가의 표현에 대한 자유는 더욱 존중돼왔다. 작가가 글을 쓰기 위해 필요한 가장 중요한 조건은 절대적인 자유이다. 이런 일이 21세기에도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이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다”면서 분노했다.

그리스문인협회는 오르한 파묵의 기소에 대한 항의서한을 지난 11월 터키 정부에 전달했다. 이와 더불어 오르한 파묵에 대한 기소가 취하될 때까지 유럽연합의 문인조직들과 연대해 터키 정부를 압박하기로 결정했다고 발티모스 회장은 밝혔다.

그리스뿐만 아니라 전세계의 문인들도 오르한 파묵의 기소에 분노했다. 특히 노벨문학상 수상자들인 주제 사라마구, 가브리엘 마르케스, 귄터 그라스는 오르한 파묵을 지지하는 서한을 터키 정부에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그 밖에 움베르토 에코, 카를로스 푸엔테스, 후안 고이티솔로, 존 업다이크, 마리오 리오사 등도 오르한 파묵의 기소를 철회하기를 요구하는 편지를 터키 정부에 전달했다.


△ 오르한 파묵의 재판이 시작되기 전 유럽연합 감시단의 의장인 카미엘 외를링스(가운데)가 기자들에게 연설하고 있다. 재판은 내년 2월로 연기되었다. (사진/ EPA)

재판이 연기된 직후 국제펜클럽은 즉각 성명을 내어 재판 연기가 오르한 파묵이나 다른 작가들에게 또 다른 억압으로 작용한다고 밝히고 기소를 즉각 철회할 것을 촉구했다. 재판 연기 결정은 파묵의 사건과 같은 유형에 자주 등장한다. 보통 몇 달에서 몇 년까지 재판을 연기하면서 시간을 끌다가 작가가 패소하면 감옥에 가고 승소하더라도 유야무야 끝나게 된다.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 작가는 심리적 압박으로 인해 집필 활동에 상당한 위축을 받을 수밖에 없고 다른 작가들에게도 심리적인 위협이 된다.

터키의 정체성, 형법 301조의 비극

오르한 파묵에 대한 재판이 세계적인 관심을 집중시킨 이유는 단연 그의 유명세에 있다. 그는 올해의 가장 유력한 노벨문학상 후보로 올랐고 그동안 유럽에서 내로라하는 문학상들을 모두 휩쓸어왔다. <침묵의 집>은 프랑스에서 유럽문학상을 받았고 <하얀 성>은 영어로 번역된 뒤 국제적으로 유명해지는 계기가 됐다. 1994년에 출판된 소설 <새로운 인생>이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터키에서는 독보적인 인기작가로 자리를 굳히게 됐다. 그리고 최근 발표된 두 소설 <눈>과 <내 이름은 빨강>은 터키어로 쓰인 작품으로는 처음으로 전세계 40개국의 언어로 번역돼 출판되면서 세계적인 작가로서 자리를 굳혔다.

오르한 파묵이 기소되고 나서야 표현의 자유가 억압받는 터키의 상황이 전세계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터키의 유럽연합 가입이라는 정치 일정은 가장 기본적인 인권인 표현의 자유 문제에 부딪혀 갈 길을 잃고 말았다. 유럽연합 가입을 위해 그동안 협상을 벌여온 터키 정부는 각 부문에서 유럽연합이 요구하는 기준에 맞추기 위한 개혁을 추진해왔다. 특히 인권 문제의 개선에서 유럽연합의 끈질긴 압력을 받아온 터키 정부는 지난 6월 표현의 자유를 규정한 법률을 개혁했다. 하지만 유럽의 인권단체들은 터키 정부가 유럽연합 가입을 위해 이전의 법률을 전시용으로 형식적인 개정만 했을 뿐, 다른 독소조항을 추가하면서 전혀 달라진 것이 없다고 비판의 목소리를 높여왔다.

오르한 파묵을 전격적으로 재판에 회부시킨 법률은 개정된 형법 301조로 인권단체에 의해 독소조항이라는 강력한 비판과 더불어 폐지의 압력을 받아왔다. 301조는 터키의 정체성과 터키 의회에 대한 공공연한 모욕은 6개월 내지 3년의 징역형에 처하고, 터키 정부와 사법부, 군부와 보안조직에 대한 공공연한 모욕행위는 6개월 내지 2년, 이 밖에도 터키 국민이 외국에서 이를 행했을 때는 1년이 추가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사상의 표현이 비판을 하기 위한 목적이라면 범죄에 해당되지 않는다는 모호한 규정을 마지막에 넣어두었다. 이 규정을 해석하는 주체는 검사나 판사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이 비극이다. 301조에 의해 기소된 오르한 파묵은 재판을 거쳐 4년의 징역형을 선고받고 투옥될 처지에 있다.             
 


△ 파묵(왼쪽)의 기소 사실은 터키의 인권 상황을 세계에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파묵은 터키와 유럽의 화해에 기여했다는 공로로 독일출판산업조합으로부터 '평화상'을 받았다. (사진/ EPA)

오르한 파묵만이 아니라 지난 10월7일에는 흐란트 딘크가 형법 301조를 어겼다는 이유로 6개월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흐란트 딘크는 아르메니아어 주간지인 <아고스>의 편집자이자 기자로 터키의 국가 정체성을 모욕한 기사를 썼다는 이유로 기소당했다. 지난 3월에는 터키의 한 대규모 일간신문의 시사만화가인 무사 카트가 에르도간 터키 총리를 실로 만든 공 안에 갇힌 고양이로 비유한 만화를 그렸다는 이유로 총리에게 고소를 당해 350만원 상당의 벌금을 문 사건이 일어났다. 지난해에도 한 시사만화가가 에르도간 총리를 자문위원들에 의해 끌려다니는 말로 그렸다가 고소를 당한 유사한 사건이 있었다. 이런 필화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언론사들은 이를 정부의 경고장으로 받아들여 알아서 자체 검열을 강화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학살 인정은 유럽연합 가입 조건

오르한 파묵의 인터뷰 사건은 터키 언론의 표현의 자유에 대한 의지를 가늠할 수 있는 중요한 기회이기도 했다. 오르한 파묵 사건이 터지자마자 이미 정권에 길들여진 터키의 대언론사들은 오르한 파묵을 연일 강도 높게 비난하면서 극우 민족주의자들의 비이성적 테러행위를 부추겼다. 극우 민족주의자들은 세계의 이목이 집중된 오르한 파묵의 재판정에 몰려와서는 폭력적인 추태를 보이는 사태를 연출했다.

터키 정부가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이유는 과거사를 부정하고 덮어두려는 의도 때문이다. 그렇다고 과거사가 터키의 의도대로 덮이거나 부정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오르한 파묵을 구속해 그의 입을 막는다 해도 과거사가 부정되는 것은 아니다.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의 많은 나라에서는 이미 아르메니아 대학살을 의회에서 통과시켜 승인한 바 있다. 이 국가들은 아르메니아 대학살의 인정을 터키의 유럽연합 가입의 전제조건으로 삼고 있다.

        

 


예술가에게 가장 위험한 나라

2005년 들어서만 50여명의 언론인과 작가들이 기소당한 터키

표현의 자유에 대한 터키 정부의 탄압은 그동안 터키와의 군사경제적 이해관계를 고려한 미국과 영국의 의도적인 외면으로 세계에 잘 알려지지 않은 사안이었다. 특히 언론인들에 대한 터키 정부의 검열과 탄압은 잔인하게 자행돼왔다. 국제펜클럽은 터키에서 2005년 들어서만 50여 명의 언론인과 작가, 출판인들이 기소당했고 지금도 오르한 파묵 외에도 13명의 작가들이 재판 중에 있다고 밝혔다. 그동안 터키에서는 수많은 언론인과 작가들이 장기수로 투옥되거나 암살당하는 사건들이 무수히 일어났다. 터키는 역사적으로 예술가들에게 가장 위험한 국가로 악명을 떨쳐왔다. 지금까지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언론인과 작가들이 터키 정부의 공격 목표가 돼왔다.

터키가 낳은 가장 위대한 시인으로 추앙받는 나짐 히크메트는 공산당의 비밀당원으로 구속돼 15년의 징역형을 선고받고 복역했다. 그의 출판물 또한 금서로 지정됐는데 그가 죽고 난 2년 뒤인 1965년까지 금서로 묶여 있었다.

그리고 터키의 저명한 작가 오르한 케말도 1939년에 그의 정치적 의견 때문에 5년을 감옥에서 보내야 했다. 나짐 히크메트를 감옥에서 만나 그를 사사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또 1993년 7월1일에 일어난 사건은 터키 국민들과 세계를 경악시켰다. 당시 터키의 이슬람 원리주의자들로 조직된 한 무리는 좌파적 성향을 지닌 콩트작가인 아지즈 네신을 공격하기 위해 그가 참가한 축제 장소를 공격했다. 이로 인해 36명의 예술가가 죽고 24명이 중상을 입었다. 아지즈 네신은 탈출하지 못하고 경찰관과 소방관들에게 붙잡혀 구타를 당했다.

어릴 때부터 장님으로서 극작가이자 시인, 변호사로 명성을 떨친 에스베르 약무르데렐리의 사례는 터키의 표현의 자유 억압을 잘 드러내준다. 터키 정부의 쿠르드 민족 탄압에 항의했다는 이유로 1978년부터 1991년까지 13년 동안 감옥생활을 했다. 석방된 뒤 반정부적 저작활동을 했다는 이유로 1998년에 다시 투옥됐지만 국제사면위원회의 지속적인 항의로 2001년에 석방됐다. 그가 감옥에서 보낸 햇수를 모두 합하면 17년이 된다.

최근 들어서는 출판인인 파티 타스가 1990년대 쿠르드 활동가들을 겨냥한 터키 정보부원들의 불법적인 살인행각이 포함된 책을 발행했다는 이유로 6개월의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또 라집 자라쿨루는 2005년에 아르메니아 대학살을 다룬 도라 사카얀의 <아르메니아 의사의 경험>을 터키어로 번역한 책을 발행했다는 이유로 기소됐다. 재판이 내년 2월15일로 미뤄졌지만 여전히 6년 징역형에 처해질 운명에 처해 있다. 작가이자 출판인인 자라콜루는 이미 1971년 반정부적인 저작활동으로 3년 징역형을 겪었던 전력이 있고, 1995년에는 그의 출판사 건물이 이슬람 극우주의자들에 의해 완전히 불에 타 잿더미가 되는 공격을 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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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살람에게서 온 편지…이라크의 지금

이라크의 지금.

 

이라크 상황을 알기 위해서는 
잠시 동안 실제 이라크에서 살고 있는 사람이 되어야만 합니다.
실제 이라크 사람들의 고통을 느끼기 위해서는,
아주 잠깐만이라도 이라크 사람이 되어 살아 보아야만 합니다.
 

 여러분들은 이라크 전쟁 발발부터 현재까지 일어난 대부분의 일들에 대해선 잘 알고 계실 겁니다. 하지만 그저 일반적인 수준에 그칠지도 모르겠습니다.
지금 제가 말하고 싶은 것은 여러분들이 지금까지는 전혀 듣지도 보지도 못한 것들에 관해서입니다.
나는 미국인들이 말하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이라크 국민으로써 이번 전쟁의 결과에 대해서 말하고자 합니다.
누구나 알다시피 이번 전쟁은 테러리스트들이 자신들의 권리를 요구하면서 일어나게 된 것이라지요?
우리 이라크인들도 이러한 생각에 대해서 지지한다고 말합니다. 그 이유는 보통 어느 누구도 테러리스트들을 반대한다는 것 이외의 다른 말들은 감히 꺼낼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사실 우리는 미 점령이 있기 전에 테러리스트들을 본 적은 없습니다.
우리는 테러리스트의 의미를 정확히 알지 못합니다. 이 모든 것들은 미국이 자신들을 위해서, 즉 미국인들이 더 잘 살기 위해서 일으켰음이 자명합니다.
혹 그들이 이라크를 생각하는 뭔가 다른 의도가 있었다 하더라도, 그들이 이라크 민중들을 위한 일들은 전혀 수행하지 않는다는 점을 생각해 보면 제 말뜻을 이해하리라 봅니다.
결국 이번 전쟁은 이라크 민중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미국과  다른 동맹국들의 이익을 위해서 일어난 것이라고 볼 수 밖에 없습니다.

 전쟁 발발 3년이 지난 지금, 이번 전쟁에서 과연 그들이 무엇을 저질렀는지, 이로 인해 이라크 민중들이 얻은 것은 무엇인지에 대해서 나는 간단한 목록으로 대신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진실은 여기 있습니다.

 

 전쟁 전         

1. 이라크는 전체적으로 안보상황이 좋았습니다.
2. 우리는 가족들이 함께 거리를 마음껏 활보할 수 있었습니다.
3. 정부는 이라크 민중들에게 매 달 무료로 식량을 배급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식량이란 우리가 기본적으로 필요한 음식들 모두를 말합니다.
4. 이라크 석유는 무료나 마찬가지였습니다. (220리터가 1달러 미만이었음.)
5. 수도와 전기료는 3개월동안 2달러 미만이었습니다.
6. 이라크 내 모든 서비스는 정부에 의해서 상시적으로 실행되었습니다.
7. 하루 22시간동안 전기가 공급되었습니다.

 

 일단 여기까지만 쓰도록 하겠습니다. 더 이상 말하다 보면 목록이 엄청나게 길어질 테니까요. 그러니 지금 당장은 단지 사람들에게 너무나 중요하게 영향을 끼치는 것들 일부만 알려드리는 정도로 하고, 이제부터는 전후 시기 사정에 대해서 말씀드리지요.

 전쟁 이후

1. 우리에게 안보란 더 이상 없습니다.
2. 가족들이 다함께 거리 위를 다닐 수조차 없습니다.
3. 새 정부는 식량배급을 중단했습니다.
4. 현재 석유가는 220리터에 50달러입니다.
5. 3개월 동안 쓴 전기료는 약 50달러에 달합니다.
6. 서비스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7. 하루에 우리가 전기를 쓸 수 있는 시간은 총 4시간입니다.

지금부터는 점령 이후 더 악화된 이라크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이라크는 피, 살인, 사망, 테러리스트 그리고 온갖 고통들 그 자체입니다.
위와 같은 끔찍한 기억들이 우리 가슴 속에 남는 것이 전부인 것만은 아닙니다.

바로 이라크 아동문제입니다. 지금 이라크 어린이들은 플라스틱 권총으로 노는 것을 아주 즐거워합니다. 왜냐구요?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그들은 길거리에서 언제나 권총을 찬 군인들을 늘 보아왔기 때문입니다.
여기 어린이들이 그들에게서 배우는 것들이 과연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교육, 컴퓨터, 노래 그런 것들일까요? 하다못해 음악이라도?
그들이 음악을 배우기는 합니다. 여기 아이들이 배우는 음악은 펑펑 터지는 소리들입니다.
그들은 펑 터지는 것들이라면 모든 종류의 이름들을 다 꿰차고 있어서 아마도 여러분들에게 상세히 가르쳐 줄 수도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우리와 비슷한 역사적 경험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더 이상 저를 통해 듣지 않아도 현재 우리가 점령으로부터 겪는 그 밖의 다른 고통들까지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지금 이라크에서는 하루에 50명이 넘는 사람들이 목숨을 잃습니다.
이만큼은 그저 평범한 하루에 지나지 않습니다. 우리는 정말 많은 친구들을 잃었는데, 지금까지 우리들의 일상에서는 3만명 이상의 사람들이 죽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감옥안에서는 이보다도 훨씬 많은 수천 수만명의 사람들이 어떤 이유도 없이 감금되어 있다는 것 또한 잘 알고 계시지요.

 우리에게 가장 심각한 문제들에 대해서 지금까지 말씀드렸는데요, .
아, 우리는 미래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알 수 없다는 것을 이제 당신도 잘 알겠지요.
더 이상 우리의 미래가 어떻게 될지는 어느 누구도 몰라요. 그저 어둠만이 남아있습니다.
모든 만물이 어둡게 보일 뿐이에요. 앞에 펼쳐진 이 길의 끝은 깜깜합니다.
이 길을 걸어가도 끝이 어둠뿐이라는 것을 마음 깊이 알게 되었다면, 어떻게 앞으로 걸어가는 일을 계속할 수 있겠어요!

 이것이 바로 내가 미국과 또 여러분들의 정부가 동참해서 만들었다고도 볼 수 있는 점령 속 삶의 일부입니다.
내가 이라크인으로써 드는 생각은, 우리는 점령과 함께는 결코 평화롭게 살아 갈 수 없다는 점입니다.
이라크 민중들을 위한 진정한 평화를 만드는 것이란, 우리 모두 힘을 합쳐 점령군들을 완전히 철수시켜 내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의 군대 역시 마찬가지로 철수되어야 합니다.  

 나는 한국인 여러분들이 우리를 도와주는 데 최선을 다해 줄 것이라고 믿습니다.
이라크에서 점령을 종식시키려면 여전히 여러분들의 도움이 절실합니다.

 이라크로부터 상처를 딛고 평화롭게 살아가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제발 도와주세요.  


2006년 1월 22일
이라크 바그다드에서
살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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