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 날이 연달아 있으면 꼭 어딘가로 떠나고 싶어하는 이상한(?) 습성상 2년에 한번은 추석에 지리산이나 설악산 같은 산에 갔다. 올해는 어영부영하다 보니 산에도 못가고 짧은 연휴 급한 일을 약간하고 밀린 책을 읽고 영화를 보면서 지냈다. 아직 오늘까지 하루가 남아 있기는 하지만 오늘은 다른 일도 하면서 지낼 생각인지라 8월 즈음부터 추석까지 오가는 기차안에서나 잠깐 잠깐 난 시간에 본 것들에 대한 기록을 일단 남겨본다.
#1. 우리는 사랑일까 (알랭 드 보통, 1994)
알랭 드 보통이 1994년에 쓴 책이고 2004년에 국내에서 출판된 책이다. 그의 사랑 3부작인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와 '키스하기전에 우리가하는 말들' 사이에 나온 책이다. 비슷한 시기에 샀던 것 같은데 두 편을 읽고 나니 약간 시들해져서 한 구석에 그냥 두었다가 최근에 다시 읽었다. 내가 처음에 그의 소설을 읽었을 때 그가 당연하게도 '여자'라고 생각할만큼 사람들의 심리와 그 주변의 관계들을 세밀하게 관찰해서 글을 쓴다는느낌이었다.
'우리는 사랑일까' 도 역시 알랭 드 보통이라는 생각이 들만큼 남녀이 연애의 시작부터 끝을 참으로도 섬세하게 묘사하고 있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의 관찰자적 시선을 중간 중간에 등장시켰다. 소설속 화자인 그녀가 그와 그녀의 관계를 객관화해서 살펴보고 이야기하는 방식은 소설뿐만 아니라 실제의 연인관계에서도 그래야 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든다. 읽으면서 나의 다양한 관계들도 생각이 나서 적당히 감정이입도 되고 즐겁게 읽었다. 근데 약간 이상했던건 읽을면서 내가 계속 이 소설의 남성에게 더 감정이입이 되고 내가 주변에서 들었던 이야기도 그 남성의 특성과 비슷하다는 것이었다. ㅎㅎ
#2. 직업으로서의 학문 (막스 베버, 2006)
1917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강연을 정리한 원고이다. '직업으로서의 정치'를 읽고나서 궁금증이 들어 읽어보게 되었다. 읽은 결과, 첫 느낌은 '아... 난 자격이 부족하구나. 직업으로서 학문을 삼을 수 없겠다.'라는 생각이었다. 어영부영 이 자리에 서 있는 사람으로써 요즈음 느끼고 있는 정체성의 혼란과 자괴감, 그리고 나의 역할과 삶에 대한 고민이 마구마구 밀려들었다. 이 바닥에 발을 디디고 계속 있는 이유는 오로지 '방어'에 불과할 뿐이며 그이들을 대표할수 있는(과연 내가 그럴 자격이 있느가의 문제와는 별개로) '사회적 발언권'을 유지하는 것에 불과할 뿐이라는 생각이 마구 물밀듯이 들이닥쳤다. 베버의 글은 이런 나의 가슴에 수십톤짜리 철근을 내려 놓는 것 같았다.
1900년대 초반임에도 불구하고 학자 또는 교수가 되는데 필요한 요행을 언급한다는것에 뜨끔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기에 필요한 것이 아마도 소명의식이지 않을까? 그렇지만 그 소명의식의 기준이 되는 것이 무엇일까? 이 부분에서 나는 베버의 의견에 동의하기가 쉽지 않았다. 학자의 역할이 사실 판단이라는그 지점 말이다. 베버는 가치 판단을 하고 강단에 서서 그 가치를 '설파'하는 것은 지도자이거나 선동자라고 했다. 학자는 사실판단에 근거해서 학생들이 판단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합리적이고 민주적인 세상이라면 너무나도 당연한 말이다. 학자로서 다양한 견해와 의견들을 소개하고 이의 장단점을 이야기해줌으로써 학생들이 가치판단을 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 말이다. 솔직히 나도 대부분의 강의는 이렇게 진행하려고 애를 쓴다. 학생들에게 나의 가치판단을 강하게 얘기한다고 해서 그것이 그렇게 잘 먹히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학생들에게 부작용만 클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끔은 그런 이야기를 하고 싶어지기도 한다. 왜냐면 그런 균형 감각을 모든 사안에서 유지하기에는 너무나 어려운 세상이고 균형감각을 유지하거나 중립을 지키는것은 결국 저들의 편에 부지불식간에 서게 되는것이라는 생각이 크기 때문이다.
베버의 이러한 주장은 저쪽 편에 서서 자신의 학문과 권위를 이용하는 사람들에게 경종을 울리기 위한 것이기도 하겠지만 그 반대편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될 수 있다. 학문의 한계를 베버는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베버가 살아있다면 이런 의견을 가진 나에게 어떤 말을 해 줄 수 있을까?
" 학문영역에서는 순수하게 자신의 주제에 헌신하는 사람만이 <개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학문은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문제, 즉 '우리는 윤리적-당위적으로 무엇을 해야 하는가? 우리는 윤리적-당위적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문제에 대해 어떤 답도 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사실로 하여금 말하게 하는> 척하면서 자신의 입장을 암시한다면 그것은 가장 악의에 찬 방법일 것입니다."
"대학교수의 의무가 무엇인지를 ... 우리는 그에게 단지 다음과 같은 것을 통찰할 수 있는 지적 성실성을 요구할 수 있을 뿐입니다. 즉, (1) 사실확인, 수학적 및 논리적 사실들의 확인 또는 문화적 재화들의 내적 구조의 확인과 (2) 문화의 가치 및 그 개별적 내용의 가치에 대한 물음과 문화공동체 및 정치적 조직 안에서는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라는 물음에 대해 대답하는 것, 이 양자가 전혀 이질적인 문제라는 사실을 통찰하는 지적 성실성을 요구할 수 있을 뿐입니다."
"우리 학자들은 여러분들에게 명료성을 얻도록 도와줄 수 있습니다. 물론 이 말은 우리 자신이 명료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전제하고 있습니다.... 실천적으로 이러저러한 입장을 취할 수 있다는 점, 만일 사람들이 이런 또는 저런 입장을 취한다면, 그 입장을 실제로 실현하기 위해서는 학문의 경험에 비추어 볼 때 이러이러한 수단을 사용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점, 그렇지만 그 수단 자체가 아마도 당신이 거부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그런 것일 수도 있다는 점을 명백하게 해줄 수 있습니다."
"우리는 개개인에게 그 자신의 행위의 궁극적 의미에 대해 설명하도록 유도할 수 있으며 아니면 적어도 개개인이 그 런 설명을 할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습니다.....삶은 오로지 저 신들 상호간의 영원한 투쟁이 될 수밖에 없다는 기본상황 말입니다. 이것을 산문적으로 표현하자면, 삶에 대해 우리가 취할 수 있는 가능한 궁극적 입장들의 상호 함치 불가능성 및 이 입장들간의 투쟁의 불가능성이라는 기본상황, 따라서 우리는 필연적으로 이 입장들 가운데 하나를 위해 결단을 내려야만 한다는 기본상황입니다. 이러한 사정하에서 학문이 어떤 사람의 <천직>이 될 가치가 있느냐 또 학문 자체가 객관적으로 가치 있는 <소명>을 갖고 있느냐 하는 것은 또다시 하나의 가치판단의 문제이며, 따라서 강의실에서는 이에 대해 아무 것도 말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자 할 경우, 이 질문에 대한 긍정적 대답은 그 전제조건입니다."
이런 좋은 말들도 많았지만 가장 인상적인 것은 이 글의 목차였다.
- 학자가 되는 길의 외적-내적 조건 : 능력과 요행 / 열정과 소명의식
- 합리화 과정과 학문의 발전 : 주지주의적 합리화 / 근대학문과 '의미'의 문제
- 사실판단과 가치판단 : 강단과 정치 / '가치 다신교' / 교수와 지도자 / 학문의 가능성과 한계
#3. 영화들
- 국가대표 : '킹콩을 들다'처럼 뻔한 스포츠영화지만 스키점프라는 소재가 주는 박진감이 영화를 살린 듯. 그리고 전형적이지만 착한 캐릭터들이 영화의 결을 풍부하게 만들었다고 할 수 있다. 점프를 할 때의 화면은 정말 멋졌다.
- 애자 : 실제 모녀가 아닐까 싶게 닮은 캐스팅이 좋았던 영화. 엄마와 딸이라는 묘한 관계를 참 섬세하게 잘 풀었다 싶었다. TV 보면서 티격태격하는 장면도 디테일이 좋았다는. 최근 50대 여성의 행복의 조건중에 하나가 '딸'이라는데 역시 아들 키워봐야 소용없다는 생각만 들더라.
- 이태원 살인사건 : 홍기선 감독의 영화는 언제나 그렇긴 하지만 참으로 직접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있는 사실을 있는 그래로 풀어내는 것이 얼마나 섬뜩하고 무서운지를 보여주는 영화였다. '사실'이기 때문에 더 무서운 영화였다.
- 내사랑 내곁에 : 살을 빼는 것 자체가 연기인 김명민은 그 독기가 무섭더라. 몸 자체로 연기를 하는 느낌이었다. 생각보다 별로 슬프지도 않고 아름답지도 않지만 그런 잔잔함을 연기하는 배우들도 좋았다. 황진이 이후 하지원이 멋지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이번 연기는 한층 깊어진 것 같았다. 박진표 감독의 사실에 기반한 '울컥'하면서 발랄한 멜로영화들이 이제는 좀 덜 '울컥'해지면 발랄함도 덜해진 느낌이었다. 역시 '죽어도 좋아'가 제일이다.
- 불꽃처럼 나비처럼 : 시대의 지도자가 될뻔했던 여인인 명성왕후의 한 때를 그린 듯한 느낌이다. 그녀의 각성과 지성이 영화에서는 하나의 배경이 된 것 같아 아쉽기는 했지만 말이다. 만화가 원작이라고는 하지만 너무 만화같은 대결 장면들은 안습이었고 무명이라는 무사와의 감정도 별로 절절하지 않았다. 차라리 사실적으로 명성왕후의 정치적 면을 중심에 두고 그녀의 사랑을 적당히 버무렸으면 더 좋은 영화가 되지 않았을까 싶었다.
- 10억 : 이국적인 배경에서 벌어지는 잔인한 서바이벌 게임이라는 소재가 신선했다. 다만 각각의 참가자들에게 조금 더 많은 개인적인 사연을 부과했다면 마지막의 반전같지 않은 반전이 더 효과적이었을지도 모른다. 식스 센스 이후 빠져있는 반전에 대한 강박은 이제 버릴때가 되지 않았나?
- 업 : 역시 픽사의 애니메이션이다. 즐겁고 희망차고 유머러스하며 귀여운 영화다. 게다가 꿈을 쫓으며 죽을 때가지 살아가는 할배와 과학기술에 대한 어처구니 없는 믿음과 고집의 비극이라는 정치적 소재가 부딪히는 묘한 앙상블까지. 강추!
- 블랙 : 현대 인도영화의 전형을 보여준다. 누구나 알고 있는 헬렌켈러의 이야기를 차근하게 풀어내는 감각이 좋았다. 듣지도, 보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어린 소녀와 듣고, 보고, 말하기도 하지만 소통이 불가능한 알츠하이머 병을 연결시키면서 그 사이에 야릇한 감정을 넣어 놓은 것도 좋았다. 물론, 그녀가 개인 입주 과외교사를 붙여줄 수 있고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졸업을 할 때까지 계속 대학 등록금을 줄 수 있고 졸업후 취직을 못 한다고 해도 충분히 먹고 살만큼 엄청난 부자집의 딸이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는 생각에 조금 불편해지기는 했다. 그렇지만 충분히 재미있고 감동적인 영화였다.
- 불신지옥 : 피가 난무하지도 않고 사다코가 튀어나오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충분히 서늘하고 무서운 영화였다. 최근 한국 공포영화들은 너무 뻔해서 놀랍기만 할 뿐 서늘하진 않았는데, 정말 잘 만든 공포영화다. 복도식 아파트의 좁은 칸에 갇혀 사는 인간들이 어디에 지지하고 무엇을 믿는가에 대한 물음에서 시작한 이 영화는 충분히 서늘하고 무섭고 또한 신선했다. 감독이 이용주라는 신인이라던데 참 괜찮고 완성도 높은 데뷔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 키친 : 화사하고 발랄한 영화였다. 일본 순정만화의 전형같은 영화였다.
- 잘 알지도 못하면서 : 홍상수의 영화가 더 발랄하고 재미있어지는 느낌은 나만 가지고 있는 건가? 일상의 구질구질함은 여전하지만 벌어지는 사건들 속에서 헛 웃음이 나오는 경우가 많아지는 게 사실이다. 비겁하고 구질구질한 남성이 보여주는 찌질함이 점점 재미있어지고 그런 남자들의 모습에 헛 웃음이 나는건 역시 나도 나이를 먹고 있다는 증거가 아닐까 싶다. 생활의 발견 이후 제일 재미있었다.
- 숏버스 : 섹스와 관계 속에서 정체성을 찾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 자신의 욕구에 솔직하는게 얼마나 어려운지에 대해서 생각하게 만드는 영화였다.
#4. 르누와르 전
르누아르의 풍경화, 정물화, 인물화, 누드화 등 다양한 유화가 꽤 많은 수가 왔다. 물론 생전에 워낙에 다작을 한 화가이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오르세, 워싱턴 내셔날 갤러리, 개인소장 품까지 다양하게 가져온 전시회 기획자의 자금력이 대단하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이런 대규모의 기획전들이 돈이 된다는게 확실하니까 이렇게 투자를 하지 싶으면서도 약간 씁쓸한건 어쩔 수 없었지만 전시의 구성과 기획, 내용 등이 지난 클림트전보다는 훨씬 좋았다.
르누아르는 확실이 어떤 각도에서든 '여성'을 잘 아는 화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그린 풍경과 정물들이 주는 감동에 비해서 여성을 그린 그림이 주는 느낌이 완전히 달랐다. 여성에게도 그리고 여성과 남성의 관계에서도 세심한 관찰력이 느껴지는 그림이었다. 거기에 붉은색이나 파란색으로 생동감을 살려내는 그림들이 좋았다. 그렇지만 내가 제일 마음에 들었던 그림은 아래의 그림이다. 따뜻한 시선이 느껴지는데다가 풀숲에 푹 쌓여 있는 듯한 느낌도 좋았고 한 구석에 강을 배치하면서 여유를 살려낸 구도가 좋아서이다.
#5. 지킬 앤 하이드
브래드 리틀의 공연으로 봤다. 광고는 오리지날인 것처럼 했지만 알고보니 브래드 리틀을 탑으로 세워 호주에서 배우들을 캐스팅한 이번 아시아 투어용 특별팀의 공연이라고 할 수 있겠다. 원래는 조승우가 하는걸 보고 싶었는데 기회가 안 닿아서 못 봤고, 이번팀이 지방순회 공연을 온다길래 큰 맘 먹고 보게 되었다.
결과는 대만족. 브래드리틀도 노래를 정말 잘하고 감정 표현도 멋진 것 같았다. 거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소리가 참 좋은 것 같았다. 원작에 비해 드라마틱하게 편곡한 것도 훨씬 대중적으로 느껴지는 것이 사실이었다. 브래드 리틀도 그렇지만 사실 나는 루시 역의 배우에게서 더 감동을 느꼈다. 새로운 삶과 인생을 바라던 그녀의 절절함이 느껴졌다. 간만에 본 뮤지컬... 느낌이 너무 좋아서 행복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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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 2009/10/04 15:5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학자나 교수는 "되어가는" 거라고 믿어요.
그런 게 다 완성된 사람들만 학자나 교수가 될 수 있는 건 아닐테니까.
아마도 자격이라면,
그 "되어가는" 과정에서 해미가 말했던 혼란, 자괴감, 고민을
기꺼이 제몫으로 안으려는 자세가 아닐까요.
아참, "애자"를 본 분들은 어째 다 하나같이 해미처럼 말하데요. "아들 키워봤자 소용없어"라고. 참 신기한 일이지...
'그 되어가는 과정'이 쉽지가 않고 고민이 많아집니다. 아슬아슬한 줄을 타면서 잘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이도저도 아닌 상황이 아닌가 싶어서요. 고민이 크면 움직이기라도 해야되는데 오히려 더 가라앉는 느낌이라고 할까? 뭔가 계기와 매듭이 필요한것 같다는 생각이 많이 드는 요즈음입니다.
비봉준 2009/10/04 17:2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정규 베버리언들을 위해 인쇄공이 되어볼까?
fessee 2009/10/05 08:5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들키워 봐야 소용없다"는 말에 동의 하는 1男
심지어 아부지한테도 소용 없다능... ㅠ..ㅠ
봉준 2009/10/05 14:1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연꽃을 든사람에게 따뜻한 시선이 필요하다.
그보다 더 따뜻한 시선이 위 그림에서 느껴진다.
따뜻함은 생동감으로 돌아오게 되는가?
광장의 시선은 더욱 따뜻하며 그 따듯함의 생동감은 한사람의 용기를 주는 노래에 있다.
덕수궁에서 나오면 용산에 판화전이 있다!
azrael 2009/10/09 16:3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나는 일 그만두고 공부 시작할 때 '직업으로서의 학문'을 읽고서는 학문을 직업으로는 하지 말아야지 생각했었다는...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