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on 2005/01/13 09:19
Filed Under 내 멋대로 살기

* 이 글은 간장 오타맨...님의 [LCD 작업장 타이노동자 집단 ‘앉은뱅이병’] 에 관련된 글입니다.

오늘 아침... 나갈 준비를 하면서 슬쩍 보려고 틀어놓은 TV 뉴스에서 밑으로 흘러가는 기사속에 [외국인 노동자 '앉은뱅이병' 집단 발병]이라는 자막이 눈에 박혔다.

 

'앗! 저건... 이런... 잘 됐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언제였는지 정확히 기억이 나진 않지만 한 한달쯤 됐으려나?

연구소 사무처장의 전화를 받았다. 다산 인권센터에서 연락을 받았는데 이상한 증상으로 이주 노동자들이 고통받고 있다는 것이었다. 사무처장 동지한테 들을 이야기는 LCD모니터를 닦는 작업인지를 하는 여성 노동자 5명인가가 걷지를 못한다는 것이었다.

 

자세히 물어보니 정규직들이 다들 휴가를 가고 난 후 남은 이주 노동자들이 물량을 채우느라 거의 15시간 이상의 장시간 노동을 하고 난 후부터 조금씩 생긴 증상이고, 물질안전보건자료를 상근 동지가 찾아봤으나 도대체 뭔지 모르겠고, 이미 3명은 타이로 돌아간 상황이라고 했다.

 

이것저것 물어보니 환기 장치도 없고, 밀폐된 공간에서 장시간 쉬지도 못하면서 일했다고 한다.

 

이상함을 느낀 이들은 근처의 유명한 대학병원 정형외과인지 신경외과인지를 찾았고 '별 이상이 없다'는 대답을 들었다고 했다. 이런 상황이 되다 보니 인권센터에서는 직업병이 맞는 것 같은데 이를 어찌 밝혀내야 할지... 직업병으로 인정이 안되더라도 치료는 해야 될 텐데 치료비는 어찌 해야 될지가 고민이 되어 연구소로 연락을 취한 모양이었다.

 

이렇게 전화로 상황을 대충 전해들은 나는 뭔가 유기용제에 의한 신경독성이 생긴 것이라 생각했고 정형외과나 신경외과가 아닌 산업의학과로 가야 한다고 얘기했다. 거기다가 치료비 문제까지 걸려 있으니 치료비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데로 가야 되겠다고 얘기하며 외국인 노동자 의료공제회 일을 도와주고 있는 우리 의국 선배의 대학병원을 알려주고 선배에서 이런 저런 상황을 알려주는 전화를 했었다. 선배와 나는 직업병의 집단 발병, 그것도 신경독성의 뭔가가 틀림 없다는 심증을 굳혔다. 그리고 나는 잘  부탁한다는 말을 남겼었다.

 

이후 문득 생각나 확인해보니 이주노동자들은 오지 않았다는 선배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지역에서 진료를 받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오늘 TV에서 기사를 본 것이다.

 

당시 내 머리속에 떠오른 단어는 '괴질'이었다. 그래... 원인을 모르면 괴질이라 하지.

문송면군이 수은 중독으로 죽었을 때도,

원진 레이온에서 이황화탄소 중독으로 많은 사람들이 고통받을 때도, 처음에는 괴질로 시작되었을 거다. 이유도 없이 시름시름 앓는다... 는 표현이 적합한...

 

결국에는 흔하게 사용되는 노말헥산이 원인이었다고 한다. 매년 진행되는 특수건강검진에서 흔하게 하는 항목이지만 이런 사례를 직접 경험한 적은 한번도 없었다. 도대체 얼마나 고농도에 장시간 노출되었길래 이런 '괴질'이 생긴건지 안타깝다.

 

하지만 이 기사를 보면서 나는 나의 무심함이 부끄럽게 느껴졌다. 이 상황을 접했으면서도 병원을 소개해주는 정도 이외의 역할과 관심을 보여주지 못한게 죄스러웠다. 이국땅의 젊은 여성 노동자들이 시름시름 앓고 있었고 걷지도 못하고 있었는데 내가 한 것이라고는 전화한번 없었다. 최소한 직접 상근자와 통화해서 어떤 상황인지 자세히 물어보고, 직업병이 맞으니 좋은 해결책을 찾아보자고 얘기할 수 있었다. 나한테는 그럴만한 지식이 있었고 사용할 수 있는 자원도 있었다. 한번 가서 그 여성동지들을 만나볼 수도 있었다. 그런데 나는 그저 전화 몇 통을 했을 뿐이다.

 

노동보건운동을 한다면서, 2005년 비정규 관련 사업을 하겠다면서...

여성 이주노동자들의 '괴질'에 둔감했다. 병원을 소개해주면 된다라고 생각했다.

여전히 문송면군 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는데 이게 어떤 의미인건지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 건지 무엇을 할 수 있을 건지 생각을 안했다. 정말 부끄럽다.

 

이런 둔감함은 죄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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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1/13 09:19 2005/01/13 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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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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