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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경험한다

 

 

 

시골에 내려와 산지 꼬박 한달에 가까운 시간이 흘렀다

이 곳에서 하루를 보내면서

난 고등학교를 졸업 이후 처음으로

 

 

같은 시간에 기상하고

같은 시간에 세끼 밥을 먹고

계산하며 하루의 시간을 사용한다

 

 

 

지난 사년간은 벼락같이 흘러왔던 시간이었다

일이 있는 시간에 맞추어 일어나고, 혹은 일어나지 못하고

일을 끝내는 것에 맞게 시간이 지나가있을 뿐이었다

점심약속과 저녁약속, 회의 일정을 기준으로 하루는 쪼개어질 뿐이었다

꼭 무엇이 싫다, 혹은 좋다. 그런건 아니고

그냥. 난 그랬는데.

 

 

 

 

 

아침에 일어나면 커텐을 젖히며 하늘을 보고 창문을 열어 공기의 습도를 느끼며 오늘의 날씨는 어떨까를 가장 먼저 생각한다. 하룻동안 읽어야 할 책이나 혹은 할 일들을 늘어놓고 어떤 것을 먼저할까 선택하고 하고싶은 일들을 느릿느릿 하나씩 하나씩 해나간다. 덜되면 덜 된대로, 일찍 끝나면 별자리책도 힐끔 들여다보면서-

 하루하루가 지나갈 수록 '이 동네 사이클'에 익숙해져가는 것이 놀랍다.

 

시골의 하루는 서울과 너무 다르다

아직 열시밖에 안됐네, 가 다반사였던 서울 생활에서

벌써 열시네, 얼른 잘준비 해야지, 가 되어버렸다

시골에선 아침에 일어나지 않으면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할머니한테 밥도 얻어먹지 못하고, 일도 하지 못하고, 하루가 짧아서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날이 되어버린다

난 지금까지 아침에 무언가 활동 한다는 것이 어색할 때가 많았는데.

 

 

 

 

고추잎을 따고 하루가 다르게 비좁아져가는 옥수수밭 길을 지나며, 찔레꽃이 지고 밤꽃 냄새가 넘실대고 망촛대가 높이자라가는 모습을 보며, 새까맣게 열렸다가 세찬 바람에 새까맣게 바닥을 물들인 오디열매를 보면서 하루의 시간을 꼭꼭 눌러담아 경험하고 있는 중이다

해가 뜨고 바람이 불고 달과 별이 뜨는 시간이 변해가는 걸 느끼면서

점점 커져가는 나방의 모습을 보면서

뭉글뭉글하게 내가 경험한 시간이 저 모든 것에 꼭꼭 담겨있다고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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