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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열린 기아차지부 임시대대에서는 올해 임금요구안과 특별요구안 결의를 중심으로 진행되었다. 이 중 불법파견 정규직화 안건은 상정되지 못했고, 기아차 해고자 4인의 복직은 일괄적으로 요구안으로 상정되지 못하고 분리되어 처리되었다. 특히 2·3차 하청노동자로 해고되었던 기아차비정규직지회 이동우 전 부지회장은 조합원 인정에 대한 논란으로 복직은 커녕 조합원으로 인정받기 위한 어이없는 투쟁을 벌여야 했다. 그러나 결국 조합원 인정은 보수적인 대의원들의 훼방과 집행부의 날치기 처리 속에 흐지부지되었다. 이동우 동지에게 이번 임시대대 투쟁과정과 그 속에서 느낀 심경을 들어보았다. |
지난 기아차지부 대대에서 불법파견 정규직화와 관련한 안건은 어떻게 처리되었나
기아차지부 집행부가 불법파견 정규직화 요구를 임금요구안이나 별도요구안으로 상정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기아차의 비정규직 동지들과 비정규직 투쟁에 헌신적이었던 정규직동지들이 현장발의로 불법파견 정규직화 안건을 특별요구안으로 확정할 것을 주문했다. 그렇지만 집행부는 공동요구안이 있기에 그렇게 처리하면 된다는 버티며 압박했고 다수 대의원의 동의를 받지 못하는 가운데 장시간 대대가 공전되면서 안건 상정을 성공시키지 못했다. 결국 “기아/현대 공투본의 사내하청 정규직화 요구안 쟁취를 목표로 사내하청 단위가 참여하는 특별교섭을 진행한다”로 결정사항을 남겼다.
올해 기아-현대 공동투쟁을 기획하면서 기아-현대 공동요구안으로 주간연속2교대제/비정규직 정규직화/재벌의 사회적 책임강화를 요구하기로 했다. 그런데 집행부는 공동요구안을 기아차지부의 임금 별도요구안으로 못박고 가는 것에 난색을 표했다. 특히 비정규직 정규직화 건에 대해서는 현대와의 공동요구, 공동투쟁 과정에서 풀 것을 주문했다.
그런데 주간연속2교대에 관련해서는 현대차지부와 기아차지부 모두 임금 별도요구안으로 동일하게 확정했다. 이는 무엇을 뜻하는 것인가? 통상적으로 지부의 요구안으로 결정되고 이것이 대대에서 확정되면 잠정합의하기까지, 마지막으로는 조합원총회에 부쳐질 때까지 지부 집행부는 대단한 규정력을 받으면서 투쟁의 과제로 받아 안아야 한다. 그런데 집행부는 비정규직 정규직화에 관해서는 이러한 규정력과 투쟁의 과제를 받으려 하지 않았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공동요구안에서 현대차지부가 줄기차게 ‘모든’이란 문구를 뺄 것을 요구했지만 그나마 비정규직3지회가 원하청연대회의에서 강력하게 요구해서 ‘모든’이란 문구를 누락시키지 않았다. 그러나 이미 현대차지부 요구안 발송이 끝난 후에 결정된 것으로 알고 있다. 이를 보면 기아-현대 공동요구안이 가지는 의미, 특히나 비정규직 정규직화 요구가 가지는 의미를 명확히 알 수 있다. 일단 공동의 요구로 가져가지만 기아, 현대 각 지부에서는 별도요구안으로 가져갈 만큼의 규정력이 떨어진다는 것, 나쁘게 말하면 일단 요구는 하지만, 되면 좋고 부분적으로 되면 체면치레를 하는 것이고 안되도 나쁠 것 없다는 것!
기아-현대 공동투쟁의 역사와 경험상 투쟁의 고비에서 각자의 노조일정과 조합원정서를 핑계로 대면서 각각의 결정으로 돌아서거나 공동요구 자체가 공문구로 전락해버린 경험이 많았다. 그렇기에 각각의 지부 별도요구안으로 공동으로 결정하고 책임도 함께 지는 모습으로 앞서의 투쟁과는 다른 모습을 기대했었는데. 의지를 의심하지 말라는 지부장의 말, 지부 집행부의 선의는 주간연속2교대와 달리 비정규직 정규직화 요구가 이렇게 밀리는 현실 속에서 빛이 바랠 수밖에 없다.
별도로 사내하청 정규직화 요구안 논쟁 과정에서 ‘모든’을 넣을 것인가 말 것인가가 치열하게 논의된 것으로 알고 있다. 현대차지부나 기아차지부가 ‘모든’이라는 문구를 뺄 것을 요구한 것은 요구안의 기대치를 낮추고 투쟁의 정리 과정에서 큰 논란을 피하기 위한 꼼수였다. 이에 비한다면 ‘모든’을 문구상으로 남긴 것이 의미가 있겠으나, 이 또한 명확하지 않은 것 같다. 관료들과 조합주의자들이 구상하는 ‘모든’의 의미와 2,3차 하청/청소/경비/식당 비정규직 노동자를 모두 포괄한다는 의미의 ‘모든’은 분명 다르며 투쟁과 정리과정에서 치열하게 대립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아예 ‘2,3차 하청/청소/경비/식당’을 명시하면서 조합원대중에게 우리의 요구를 명확히 하고 갈 필요가 있지 않았나 싶다.
동지의 조합원 인정 및 해고자 복직 안건은 어떻게 처리되었나
해복투는 임대 이전에 집행부의 해고자 요구건에 대해 비정규직투쟁에 헌신적으로 연대했던 정규직해고자인 이상욱 동지와 기아차비정규직지회 건설의 주역이었던 김수억 동지, 현장투쟁의 과정에서 부당징계로 해고된 윤주형 동지와 나까지 4인 모두 전원 복직을 요구하는 것으로 가져가자고 확인했다. 나에 대해서는 일단 지속적으로 집행부가 조합원 신분 논란 때문에 어렵다는 이야기를 해왔기에 이에 대한 준비를 하고 있었다.
집행부를 압박하기 위해 계속적으로 무산된 지부장과의 면담을 줄기차게 요구했고, 분회 대의원회의에 참가해 분회 전체의 요구로 한 사람도 누락 없는 복직요구안을 가져갈 것을 주장했다. 또한 지속적인 선전전과 홍보물을 발행했고 지부 임시대대 전에는 매일 중식선전전과 조합원인정/모든 해고자 요구안 상정을 위한 조합원 서명과 뺏지달기 사업을 조직했다. 또한 임시대대장에서 참관투쟁과 선전전, 대의원의 지지서명과 연대단위의 지지를 이끌어 냈다.
그러나 집행부는 철저하게 저는 기아차지부 조합원이 아니니 논의 자체를 하지 말 것을 주문하면서 나를 제외한 3인의 복직만 요구안으로 할 것을 주장했다. 이미 예상했던 집행부의 반응에 해복투의 현장발의 안건 상정을 지지하는 대의원과 김수억동지(지부 대의원)의 대응이 이어졌다. 지부 조합원이 아니라는 집행부의 근거가 무엇인지 따져 묻기도 하고 지금까지 투쟁과정을 이야기하며 대의원들의 만장일치로 처리할 것을 호소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집행부는 이러한 정당한 주장과 반박에는 제대로된 답을 하지 않고 말을 돌리거나 그렇게 결정한 근거를 요구하면 침묵하는 등 납득할 수 없는 모습을 보였다. 여기에 비정규직투쟁에 보수적인 대의원들의 끼어들기식, 논점일탈식 발언들이 속출했다. 사실이 아닌 이야기를 지어내며 갈등이라 표현되는 예전 비정규직지회 투쟁에 대한 증오를 공공연히 조장했다. 소위 말하는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갈등으로 수백의 정규직 조합원들에게 밟혔던 당사자가 갈등을 초래한 사람으로 둔갑했다. 조직통합에 끝까지 반대했지만 당시 조합원 총회의 결정에 따르겠다고 공식적인 유인물로 선언했던 것은 이야기되지 않은 채 이제는 왜 비굴하게 조합원으로 인정하라고 하냐는 식의 비아냥을 들어야 했다.
여기에 현장투쟁을 하다가 징계해고된 윤주형 동지에 대한 비토까지 섞이면서 논쟁은 정리되지 못하고 계속적인 공방으로만 일관되었다. 보수적인 대의원들은 집행부가 윤주형 동지까지 끌어안고 가는 것을 정치적인 의도가 있다는 식으로 호도하면서 지속적으로 해고자들에게 상처를 줬다. 대대장은 해고자들이 불쌍한 존재이며 다시금 전향적으로 집행부가 고민해야하는 시혜의 대상으로 전락한 것이다.
결국 금요일과 다음 주 월요일까지 이어지는 논쟁과정 속에서 집행부는 “이상욱/김수억은 요구안으로, 윤주형/이동우는 집행부사업으로” 하는 수정안을 던졌고 계속되는 반대발언과 항의에도 불구하고 날치기 통과시켜버렸다. 지속적인 해복투의 요구에도 불구하고 금번 대대는 해고자들을 가르고, 해고자들이 지부 요구와 투쟁에 걸림돌이 되는 불쌍한 존재로 전락시켰다.
조합원 인정 안건이 제대로 논의도 되지 않은 채 넘어갔는데 심정이 어떠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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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발의로 4명의 해고자 요구안 확정을 요구하면서 집행부의 입장이 완강할 것으로 예상했지만 직접 지부장의 입으로 “이동우동지는 우리 조합원이 아니기에 대대에서 논의하지 말라”는 말을 들었을 때는 절망적이었다. 아니, 절망감을 넘어 오물을 뒤집어쓰는 듯한 치욕감을 느꼈다.
집행부의 논리는 조직통합당시 2,3차 하청해고자였고 업체가 공장 밖으로 나갔었기에 지부 조합원으로 인정할 수 없다는 논리였다. 당시 기아차지부의 조직통합 사업은 금속노조 규약에 부합하는 1사1조직사업이 아닌 규약을 위반하는 직가입 형식의 조합원 빼내기였다. 그렇기에 집행부와 일부 보수적인 대의원들이 말하는 금속과 기아차지부 규약, 규정에 따른 이야기는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워진 상태에서 논쟁해야 했다. 그럼에도 이러한 논의는 치밀하게 따져지지 못했다.
백번 양보해서 집행부의 주장만을 따져 봐도 이 또한 기만일 뿐이다. 당시 나에 대한 징계해고는 원청이 비정규직지회를 깨기 위한 수많은 노조와해전략 중 하나였다. 조합원들이 있는 하청업체를 폐업시키고 열성조합원만 배제하고 다른 바지사장과의 재계약을 통해 노조를 와해시키는 방식! 2006년 비정규직지회 투쟁에서 2,3차 하청의 단협체결을 위해 우리 업체공정에서 라인을 끊는 투쟁을 전개하니 징계해고하고 그 부분만 다른 업체로 이관시켰던 것이다.
그렇기에 당시 비정규직지회는 노동조합 활동으로 인한 해고로 규정했고 원청과의 합의과정에서 회의록을 써서 해고를 철회시켰다. 그런데 다시금 원하청 사측은 공장 밖으로 복직을 주장하며 회의록을 파기했고 그렇게 노동조합의 공식 요구로 해고투쟁을 지속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조직통합을 한 비정규직지회의 요구안으로까지 상정되었던 2,3차 하청 해고자에 대해서는 승계하는 것이 타당함에도 다른 핑계를 대왔다. 업체가 공장 밖이라는 이유로 말이다. 그렇지만 조직통합 당시에도 비정규직지회에는 전년도 분사저지투쟁의 결과로 공장 밖에 100여명의 물류 조합원이 있었고 지금까지도 기아차지부 조합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이래저래 말이 되지 않는 상황이다.
조합원 인정이 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조직통합 당시 기아차지부 집행부를 구성하고 있던 이들이 현 통합집행부의 일원이다. 표면적으로는 조직통합에 끝까지 반대했던 경험 속에서 ‘감정적이고 정치적인 이유로 조합원인정을 거부한다’라는 말이 있다. 그런데 이는 그야말로 표면적인 것이다. 더 큰, 아니 더 본질적인 이유는 따로 있다. 집행부의 말로 확인된 것은 아니지만 2·3차 하청노동자를 조합원으로 인정하면 이들을 조직하고 요구를 관철시키는 투쟁을 전개해야 하는데 이에 대해서 부담을 느끼는 것으로 보인다. 이는 아직까지도 1차 하청 계약직 노동자들의 조합원 가입을 반려하는 사례를 봐도 여실히 확인된다. 안타깝지만 투쟁으로 조직하고 투쟁으로 승리하는 민주노조의 원칙, 계급적 원칙이 실종된 것이다.
금속노조에서는 동지의 조합원 인정과 관련하여 어떤 입장을 표명하고 있나
현재의 상황에서 어떤 입장인 것인지 구체적으로 확인하지는 못했다. 이미 조직통합 당시 금속노조의 입장이 대단히 기만적이고 절충적이었기 때문이다. 조직통합 당시 기아차지부의 직가입 추진에 대해 금속 중집회의에서 중단을 결정했지만 지켜지지 않았고, 기아차지부의 규약위반에 대해 말로는 잘못된 것이라고 이야기하면서도 실질적인 제재가 뒤따르지 않았다. 우리가 각급의 회의에 참관투쟁을 전개하면서 항의하고 비판하면 겨우겨우 입장이라도 내는 모양새였을 뿐이다.
1350여명의 비정규직지회 조합원 중 유일하게 내가 조직통합에서 빠졌던 2008년에 금속노조에 항의하면서 입장을 촉구했을 때에도 부당하고 규약에 어긋난 처사지만 지금 당장에는 어렵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오히려 당시 기아차지부 집행부가 감정적으로 대단히 민감하니 시간을 두고 처리하자는 소리까지 들었다.
그렇기에 이번 싸움에서 선전물을 통한 비판, 금속노조의 개입을 통한 올바른 처리를 촉구하는 수준 이상 나아가지 못했다. 항상적이고 지속적인 비판을 수행했어야 됨에도 지레 짐작해서 주요한 투쟁지점을 놓치고 간 것은 아닌가싶다.
대대 결과에 대해 조합원들이나 활동가들의 반응은 어떠한가
당연히 분노하고 안타까워들 한다. 이미 대대결정 전부터 현장조합원들은 당연히 조합원인데 왜 집행부와 일부 대의원들이 인정하지 않는 것인지 납득할 수 없다는 반응들이었다. 그렇기에 대대결정 이후 다시금 지부 집행부에 대한 비판과 불신이 쌓이고 있다. 조직통합 이후 비정규직의 요구와 투쟁이 축소되거나 거부당하면서 가지는 실망과 자조, 정당한 요구이기에 비판과 투쟁으로 나아가는 것이 아닌 “해도 안되는구나”라는 좌절이 생기는 것 아닌가하는 안타까움이 있다.
그래도 조합원 인정 관련해서 집행부사업으로 풀겠다는 대대결정이 투쟁의 여지는 있는 것 아니냐는 평가도 일부 있다. 물론 집행부사업은 그야말로 집행부의 의지에 따라 진행되는 것이기에 경계해야 할 부분이다. 그렇지만 여지를 이야기하는 동지들이 지금까지 함께 투쟁했던 동지들이기에 앞으로 계속 2,3차 하청 해고자의 조합원 인정과 복직, 나아가 2,3차 하청 노동자의 조직화까지 함께 할 의지로 이러한 평가와 이야기를 한다고 믿고 있다.
이번 대대에 조합원 인정과 복직을 위한 희망광장 및 투쟁사업장 동지들의 연서명이 조직되었다. 어떻게 조직되었나. 대대에서 어떤 영향이 있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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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규직지회 투쟁하면서 연대활동이 부족하지 않았던가하는 반성적 평가와 더불어 지부 내에서 말도 안 되는 상황이 버젓이 벌어지고 있는 것을 알리기 위한 흑심(?)을 가지고 희망뚜벅이 때부터 적극적으로 결합했다. 이 속에서 투쟁사업장 동지들에게 내가 조합원 인정이 되지 않는 상황을 알렸다. 처음 얘기를 했을 때는 많은 동지들이 이해 자체를 못했다.
한 동지의 말을 빌리면 “노동조합을 만든 사람이 그 노동조합과 통합한 노동조합에서 조합원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웃기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전후맥락을 이야기해야만 이해시킬 수 있었다. 그렇지만 투쟁사업장 동지들도 각급의 단위에서 민주노총, 금속노조 관료들과 크고 작은 투쟁을 했던 동지들이기에 깊은 공감을 보여줬다.
이런 것들이 대대에서 희망광장 성명서, 지지 현수막, 임대생방송 지켜보면서 SNS에 퍼나르고 비판하기 등으로 나타났고, 그 동지들의 투쟁에 해복투는 큰 힘을 받았다. 대대에서 어이없는 발언이 터져 나올때마다 SNS와 카카오톡에서 더 많이 흥분하고 비판하는 동지들의 글이 주루룩 올라왔고 그것들을 보면서 대대장에서 절망하지 않고 버틸 수 있었다.
이러한 연대조직은 사실 집행부 압박보다는 집행부에 대한 폭로를 통해 대중적 공감을 이끌어 낼 수 있었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둘 수 있다.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던 1사1조직의 본질을 다시금 재조명해내면서 무조건 1사1조직이 옳은 것이 아니라는 것이 대중적으로 확인되지 않았던가?
또한 공장 안팍을 오가는 연대와 공감은 우리 기아차 공장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최근 연행되었던 쌍용차 동지의 석방 탄원서를 조직했는데 단 서너 시간 만에 800여명을 조직할 수 있었다. 물론 대대가 진행 중이어서 조직이 용이한 측면도 있었지만 2/3 이상은 현장조합원들의 서명이었다. 활동가들이 발로 뛴 성과지만 그 활동가들을 발로 뛰게 만들고, 조합원들이 선뜻 서명하게 만든 원동력 또한 희망광장과 투쟁사업장동지들과의 연대가 꾸준히 진행됐고 알려졌기 때문이지 않았나 싶다.
해복투에서는 이번 대대 대응 평가를 어떻게 하고 이후 계획을 어떻게 잡고 있나
아직 해고자들 간의, 해복투를 함께 하는 동지들과의 평가가 진행되지는 못했다. 당장 함께 했던 동지들과 평가를 조직하는 것이 계획일 수 있겠다. 이 속에서 조금은 변화된 “조합원 인정과 해고자 전원 복직”투쟁의 계획을 내실 있게 짜야 한다. 또한 지속적으로 진행했던 연대활동을 확대해야겠고. 지금까지 그러했던 것처럼 무엇보다 공장 안팎 투쟁 과정 속에서 소외되고 차별받는 동지들에 대한 접근과 투쟁이라는 기조를 살려갈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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