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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깅하는 사람들은 여기 사람 사는지도 몰라"
기사입력 2010-01-14 오후 4:56:08
▲ ⓒ프레시안 |
<한강 송전탑 위엔 사람이 살았어> 작사/작곡/노래/연주 소히 한강 송전탑 위엔 사람이 살았어 그 위에선 누굴 위한건지 폐허들이 보였어 폐허 속에서 울고 있는 사람들이 있었어 법 앞에서만 고갤 떨구는 사람들도 보였어 우리는 이렇게 같은 한강을 바라보며 어쩌면 이렇게 다를 수 있을까 한강 송전탑 위엔 사람이 살았어 송전탑 옆을 지나 조깅하는 사람들도 보였어 그들은 여기 사람 사는지도 몰라 죽을 것 같은 마음으로 살고 있는데 우리는 이렇게 같은 한강을 바라보며 어쩌면 이렇게 다를 수 있을까 내가 받은 상처 시간 지나가도 잊혀질 수 없어 긴 시간 정말 힘들었으니까 우리는 이렇게 같은 한강을 바라보며 어쩌면 이렇게 다를 수 있을까 |
홍대 앞에서 활동하는 다양한 장르의 뮤지션들이 2009년 대한민국의 현실을 음악으로 표현한다. 매주 화, 목요일 <프레시안>을 통해서 발표될 이번 릴레이음악 발표를 통해서 독자들은 당대 뮤지션의 날카로운 비판을 최고의 음악으로 만날 수 있을 것이다. (☞관련 기사 : "다시 음악으로 희망을 쏘아 올리다") <편집자> |
2010.03.13 14:03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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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보사노바를 하는 가수라 한다.
복많게도 이번 두리반 공연에서 소히를 직접 보았다. 아~보사노바 스러운 기타연주도 매력이었다.
가수 소히, 그 봄바람을 베낀 노래에 대하여... | |||||||||
보사노바 싱어송라이터 소히와의 감성 인터뷰 | |||||||||
가수 소히는 봄바람같은 목소리를 지녔다. 시린 귀를 부드럽게 스치고 여린 솜털들을 어루만지는 봄바람처럼 그녀의 목소리는 일부러 지어낸 기교가 없이도 사람의 마음을 잔잔히 흔드는 마력을 지녔다. 그런 그녀가 얼마 전 2집 앨범을 들고 왔다. 2집 앨범은 탁월한 송메이커 이한철이 프로듀서를 맡아 제작한 앨범으로 타이틀 곡 '그럼 그렇지'는 발랄한 분위기에 현 세태를 풍자한 가사가 돋보이고, '산책'은 소히의 시적인 감수성이 잘 묻어난다. 그녀는 국내 음악계에서 보기 드문 싱어송라이터다. 보사노바 아티스트가 귀한 국내에서 기존의 보사노바 앨범들이 대부분 카피곡 위주였다면 그녀는 한국과 브라질의 감성을 잘 녹여내 '한국적 보사노바'를 맛깔나게 들려준다. 문화저널21은 합정동에 있는 작은 카페에서 가수 소히를 만나 그녀의 음악세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봤다. '한국적 보사노바'란 어떤 색깔인가. 나라마다 가지고 있는 색깔이 있다. 일본에는 일본만의 감성이 있고, 영국에는 영국 특유의 감성이 있다. 나는 브라질 음악을 하고 있지만 한국만의 감수성과 멜로디 라인을 통해 브라질 음악을 표현하고 있다. 브라질 음악을 어떻게 하면 한국적으로 만들까 생각하며 굿거리 장단, 자진모리 장단 등을 연구하기도 한다.
책 읽는 것을 좋아한다. 예전에는 시와 소설 등 문학을 주로 읽었는데 사회문제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여성학, 사회학 서적도 즐겨 읽는다. 최근에는 자기계발서도 읽고 있다. 1집과 이번에 발매한 2집 'MIGLE'을 비교한다면? 1집에선 음반사의 의도가 살짝 들어가서 재즈풍의 느낌이 있었다면 2집에서는 보다 내가 하고 싶었던 보사노바 음악을 표현하는 데 주력했다. '한강 송전탑 위엔 사람이 살았어'라는 노래가 화제가 되기도 했다. 콜트콜텍 기타 노동자들이 양화대교 옆에 있는 송전탑 위에 올라가 투쟁을 할 때 그 아래서 공연을 한 적이 있다. 그 위험한 송전탑 위에 사람들이 있는데도 사람들이 아무런 관심도 없이 자기 할 일을 하면서 지나가는 모습을 보고 많은 생각을 했다. 한강을 거니는 사람들은 대부분 나들이를 나온 사람들이다. 그런 한강에서 목숨을 건 싸움을 하는 사람들을 보며 '같은 공간에서 어쩌면 이렇게 다를까'하고 생각했다. 어떤 이들은 그 노래를 듣고 소히씨를 민중가수로 생각하기도 한다. 나의 전체적인 음악을 들어보면 분명 다르다고 느낄 것이다. 하지만 민중가수라고 생각한다해도 나로서는 불만이 없다. 민중가요도 다양해져야 한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음악적 형식이 비슷한 민중가요를 듣다가 '이런 민중가요도 있네'라고 느낀다면 민중가요가 다양해지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평소 사회적 문제에 관심이 많은가. 음악활동을 하면서 사회문제에 자연히 관심을 갖게 됐다. 음악을 통해 소외된 이웃들에게 조금이나마 위로를 전할 수 있다면 좋겠다. 1집을 만들 당시 20대였는데 2집을 들고 나온 지금은 30대다. 30대에 들어서 음악적으로 달라진 점이 있다면. 20대 때는 음악이 좋아서 한다는 생각이었지만 30대에 들어서는 음악을 하는 자세가 더 치열해졌다. 좀 더 완벽주의가 되려고 하는 거지. 또 예전엔 음악에 대해 막연하게 생각했다면 지금은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를 더 구체적으로 생각하게 된 것 같다. 음악에서 8~90년대 아날로그 감성이 느껴지는 것 같다. 옛 감성을 좋아한다. 90년대에는 인간에 대한 따뜻함과 그리움의 감성이 있었다. 팝적인 음악과 사회비판적인 노래 등 다양한 음악들도 있었는데 지금은 그런 노래들을 공중파에서 들을 수가 없다. 점점 획일화되고 있는 것 같다. 특유의 자연스럽고 깨끗한 창법이 인상적이다. 마치 조미료가 안 들어간 정갈한 음식 같은 느낌이랄까. 기교 섞인 노래보다는 목소리 자체를 깨끗하게 전달하고 싶다. 또 목소리의 모서리를 최대한 없애 좋은 목소리를 전달하기 위해 노력한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나같은 가수들은 노래를 못 부른다고 생각한다. 다양한 기교와 고음처리를 해야만 노래를 잘한다고 생각하는 분위기가 참 힘들다. 평가를 그런 식으로 받아야 하니까. 나는 내 목소리를 맑고 깨끗하게 전달하면서 오래오래 노래하는 보컬이고 싶다.
아르바이트를 그만 둔지는 몇 달됐다. 음악활동으로 많은 돈을 벌 수는 없지만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다는 것 만으로도 행복하다. 좀 더 대중의 입맛에 맞는 음악을 할 생각은 없는지. 대중의 요구를 배제하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하면서 최대한 접점을 찾고 싶다. 이번에 나온 음반은 대중들과 충분히 소통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낸 음반이다. 만약에 성과가 그렇지 않다면 어떻게 접점을 찾을 것인가를 고민해야 할 것 같다. 대중에게 알리기 위해 방송 출연을 할 생각도 있다. 예전에는 얼굴이 많이 보여지는 것이 창피하고 그랬는데 나이가 드니까 용감해지는 것 같다. 앞으로도 보사노바 음악을 할 생각인가. 처음엔 락밴드로 음악을 시작했고 그 다음엔 흑인음악을 했다. 관심이 가는 음악이 계속 변했기 때문이다. 앞으로 어떻게 변하게 될지는 예측불허다. 보사노바 음악도 워낙 다양해서 지방마다 특색이 다르기 때문에 보사노바 음악만으로 다양한 변화를 보여줄 수 있을 것 같다.
직접 만나본 소히는 모딜리아니 그림에 나오는 여인처럼 목이 길고 신비로운 이미지였다. 속삭이듯 조용한 목소리, 잔잔한 미소. 그녀는 마음이 여려서 사람들 앞에서 노래를 부를 때 긴장이 많이 된다고 한다. 모서리 없는 목소리만큼이나 마음에도 모서리가 없는 것 같았다. 그녀는 이란성 쌍둥이다. 쌍둥이 남동생과 자주 만나지는 않는다. 그녀는 합정동에 산다. 홍대와도 가깝고 한강과도 지척이다. 동네 카페에서 혼자 책을 읽으며 시간을 보내는 것은 그녀가 좋아하는 일들 중 하나다. 문화저널21 배문희 기자 baemoony@mhj21.com |
어차피 그 이후 다시 만나지도 않았어. 만날 수가 없었어. 다시 만나면 의도치 않게 흔들릴 것만 같은 내 마음 때문이었어...언젠간 재결합해 다시 잘 살고 있을지도 모른단 건 알고 있었지
사랑하는 마음이나 미워하는 마음은 옅어져갔지만 정체 모를, 한동안 알았었던 사람으로서의 정이랄까? 기억?그렇게 안정되게 살길 바랬었지
새로운 가족을 하늘로부터 맞이한 소식을 블로그에서 접하니 묘하게 궁금해진다.
상상못한 낯선 일이기도 하다. 그라는 사람에게는... 하지만 좋은 일이지.
참 이상한 마음인게다. 그는 재결합을 하겠다고 했고 그래서 나는 그와의 인연을 어렵사리 끊었었고.
그는 다시 그의 가족에게로 돌아간 것일까? 난 정확하게도 모른다. 석연치 않은 구석이 조금 있었으니.
그 이후 한번도 보지 않길 잘 했어 하지만 언젠가 한 번 춤명상 후 생각이 나 문자메세지를 보냈지... 그리고 얼마 전에도. 하지만 전화는 받고 싶지 않더라구.
그런데, 한 번 받았어. 할머니가 돌아가셨다고 했고, 내가 전화를 받아서 고마웠다고 했어. 그 이후론 전화를 받지 않고 하지 않았지. 2년 사이 그의 부모와 할머니가 돌아가셨어..
사실 그는 나의 좋은 친구이자 선배였었지만 하지만 절대 어떤 면에서는 만나지 않아야 할, 맞지 않는 사람이었어. 그래도 좋은 조언자였어.
그래, 이젠 확실히 마음 속으로 그의 안정과 행복을 빌어주겠어. 그래야겠어.
나와 타인 사이에 존재하는 과거의 기억이란 복잡미묘하고, 떠올릴 때면 아프기도 해.
그래서 그런 기억을 만드는 것이 괴로워.
만들고 싶어질 때면 나는 그냥 문을 닫게 돼.
어떤 순간이 올지 알 수 없는 삶.
여인들과의 관계는 동지적이고, 복잡미묘한 기억을 덜 만들지만
남자와의 관계는 그렇지 않아. 뭐,당연한 거지. 자꾸 끄달리게 된다구.
굴러다니던 깔때기를 발견. 득템.
사무실 말통 하나 들고가야겠음.
요강을 비울 때 말통에 깔때기를 꽂고 비우면 되겠군 드디어 해답을 찾았다
핫핫핫
사무실 앞 조그만 텃밭에 꽃씨를 뿌렸다.
메마른 가슴에 꽃씨를 뿌려요~ **
농장에는 오늘 파종한다는데 난 사무실 일이 있어서 못 가고 있다.
그런데 비가 온다. 그래, 안 가서 다행인건가...
몸쓰는 일이 조금은 더 익숙해진다면. 그것은 다행인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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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침은 자전거와 버스로 환승해 출근했다.자전거로 15분만 달리면 버스정류장이 나오고 거기에서 버스를 타면 10분 후면 사무실 앞에 도착한다. 가장 이상적인 방법으로 보인다.ㅋㅋ
나는 운이 좋다. 이 정도 교통환경이면 교통 좋은 거다.
몇 가지 구상을 해 본다.
어떻게 하면 활용할 수 있을까 요러한 구상을 해보는 것이 재미다.
어제 마당에 구덩이를 팠다. 이미 배설한 것을 처리하는 구덩이다. 강아지똥 및 애들 것+언니것은 요강이 있으니 거기에 일을 봐서 비우면 된다. 그것은 큰아이가 하기로 했다.
여기에 동의해주는 언니는 역시 가리는 게 없고 마음이 고운 분이다.
내가 뒷물을 한다고 이야기를 했을 때에도 "그래? 우리 애들도 하면 좋겠다."이런 이야기를 바로 하셨던 분이다.
왠만큼 깊게 파서 될런지...는 모르겠다 하하.
그리고 마당 귀퉁이에 야외 배설용 구덩이를 하나 더 팠다. 이것은 그 자리에서 배설하는 것이다.
아니면 요강을 마련해서 일을 보고 비우는 것이다. 배설의 방법은 일단 두 가지가 나온다. - 배설용 구덩이에 파거나 요강에 파서 구덩이에 묻거나...하지만 내가 눈 똥을 요강을 비우면서 확인해야 한다는 단점이 있다.똥을 누고 요강에 쌀겨를 좀 뿌릴까? 그러면 덜 거북하겠지 ㅠ.ㅠ.
그것보다, 아무리 언니가 거부감이 없다고 해도, 어떤 게 언니나 애들이 보기에 덜 불편할 것인가 가 중요하다.
"똥이 더럽다고 생각하는 것은 - 일단 냄새를 제외하고 모양만 봤을 때 - 본능적인 반응인가, 학습된 반응인가? " 얼마 전부터 생각해오기 시작한 탐구주제인데, 아직 답은 못 찾았따. 그리고 본인의 똥냄새는 그런 대로 참아줄만하다... 이것도 신기하다. -.-;;
오줌을 말통에 받아서 삭히는 게 좋다고 했는데, 화장실 구조상 그렇게 할 수가 없다. 새로 지을수도 없구. 구덩이에다 일을 봐서 삭혀서 그 흙을 쓰는수밖에... 텃밭 비료를 마련해야 하므로 어떻게든 오줌과 똥을 다시 텃밭에 돌려주고 싶다...
요새 재미난 것을 알게 되어서 탐구중이다. 빈집이라고...
나도 한동안, 그리고 지금도...그런 공간을 꿈꾸었기에...
내가 살아가는 집이라기보다 , 어느 정도 뜻이 비슷하고, 거처가 필요한 사람들이 함께 모여 사는 곳...
그곳이 집이다.
나는 내 집을 소유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지금 사는 집도 언니네가 고친 것을 나는 그냥 몸만 들어가 살고 있는 것이다. 대신 나의 방식대로 요리와 청소를 부지런히 하는 것으로 보답한다. 언니는 미안해하지만...(너무 착한 사람이다..)
진안에서도 그 비슷한 생활을 했을 때 아주 많은 것을 배웠고 즐거웠다.
물론 정서적인 부분이나, 대화와 토론에 있어서 어려운 난관들도 있었지만
남녀가 물론 다른 집을 쓰지만 여성과 남성, 여동생과 언니 오빠들과 함께 산다는 것은 정서적인 외로움을 충족시켜주고 이성과의 대화도 하게 해 주는 그런 대화거리와 시간,공간이 가능하기 때문에 좋은 점이 많았다. 그것을 불편해하는 사람들도 있었고 개인 방을 원하는 이들도 있었지만 함께 사는 것의 불편함에 무뎌서인지 나는 그저 그렇게 살만했다.
그러나, 내가 피해를 조금 주었을게다.
변온동물이라 보일러를 켰다 껐다 하면서 다른 사람의 발을 실수로 밟는 일도 있었기 때문이다.
잠자리에서만큼은 내가 불편해서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 불편하게 되는 경우가 생긴다는 것이 컴플렉스이긴 하다.
지금도 언니와 아이들 둘과 강아지와 한 집에 산다
우리는 가족이 아니지만, 가족보다 더 유대감이 느껴진다
성품이 좋으시고, 배려심이 있어서다.
강아지가 한밤중에 짖어서 잠을 설치는 것이 딱 한 가지 문제라면 문제겠다.
어젠 밭을 일구었는데 큰아이가 자기는 일을 좋아한다며 나서서 괭이질도 하고 삽질도 했다.
보기 드문 어린이다. 아버지가 농사를 짓는 것을 보고 자라서 일이 낯설지가 않댄다.
둘째는 이제 초등학교 1학년이라 귀엽지만 땡깡 부리는 걸 보면서 나중에 내가 아기를 키우고 대할 때 많은 참고가 되리라는 것을 느꼈다.
행복하다
또 다른 사람들과의 동거생활
여자들만의 생활이라는 것이 주는 안정감
그리고 또 한 친구 부부네 집은 손님들이 많아서 가끔 손님들과의 대화가 간절해지면 그 집으로 놀러가면 된다. ㅎㅎ 그래서 오늘은 그 집으로 고고씽이다.
어느 새 나는 또 다른 이들과 한 집에서 생활한다.
솔직히 혼자 사는 것은 재미없다... ㅠ.ㅠ
하지만 결혼이나 동거생활은 하고 싶지 않다. 왜인지...
남자와 살기에는 아직 마음의 준비가 안 됐나보다.
여성성을 갖고 있는 남자라면 조금 나을까?
나는 진안에서의 생활을 통해서 조금 부지런해졌다. 그리고 요리실력과 의지도 조금 늘었다.
그래서 지금은 청소가 습관화가 되었다. 같이 사는 건 여러모로 많은 것을 배우고, 느끼게 해준다.
그것이 비록 안 좋은 경험일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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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니라
자발적인 뭔가 즐거울 것 같은 일..을 하고 싶다.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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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노래도 목소리도 너무 좋아요.부가 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