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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만의 재회..

 

그래..

벌써 3년이 지났다.


내 기억에서 지우고픈 그 일은 2004년 그렇게 일어났고.

선택적 기억상실증에 걸린 나는

무의식적인 본능으로 내가 아팠던 일들을 선택적으로 삭제했다.

살아남기 위해서...


주변과 관계, 동지와 사랑. 운동과 생활의 전반을 돌아보게 했던

그일은 아무렇지 않게 나에게 왔었다.

난 정말 그 일이 그렇게 나를 옭아메게 될 줄 몰랐다.

정말이지...

운동한지 십수년이 되었지만, 한번도 잠수라는 것을 타본적이 없던 내가

당시 일주일을 잠수했었다.

집에서 혼자먹는 술이 너무 싫었다.

누구랑도 이야기 하고 싶지 않았고,

그렇게 앓았다.

술과 눈물이 뒤섞여..


죽을거 같은 암흑이었다. 

주변 관계는 모두 실선에서 점선으로 멀어져갔다

쟁점과 논란, 분석과 추측, 무슨무슨 이론을 들먹이며

그(녀)들이 떠들어대는 것이 싫었다.

아무런 해답도 실마리도 없던 그사건은

무수한 논란만 남긴채 미해결로 남았다.


그리고,

난 선택적 기억상실증을 부여잡았다.

잊자..

잊자..

그렇게 되지도 않는 비정규법안폐기를 위한 총파업을 조직해야 한다는

변명을 하면서 관계를 끊었다.

운동으로 또 몰입한거다. 정신없이 거리에서, 천막에서, 삼실에서..


한 친구가 지리산완주를 하자고 했었다.

맘도 달래고, 정리좀 하라구..

난 그때 이정세에서 무슨 지리산이냐고 했던거 같다.


그리고, 그렇게 잊혀졌던 기억은

1년이나 지난뒤에 한사람에 의해

간신히 간신히 꼬메놓은 실밥이 터졌다.

‘조직적 보복’이라는 한마디에..


난 그게 아니었는데 말이다. 

정말로,,,

그게 아니었는데 말이다..


아무런 문제제기도 하지 않았었다.

하고싶지 않았다.

또 수많은 논란을 만들어내고, 내 상처따윈 전혀 안중에 없는

그런 사람들과 이야기 하고 싶지 않았다.

그 뒤 그 사람과는 말을 섞지 않았다.

그게 그냥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



몇일전 울산에서 그 사람과 말을 텄다.


왜 그랬을까?

왜 말을 섞었을까?

이젠 괜찮아진건가?

이해와 연민같은게 생긴걸까?

비쩍마른 그사람이 왠지 짠하게 느껴졌다.


또 다시 복잡해 지는건 싫다.

단순명쾌하고 살고잡은데..

쿨하게...

정말 쿨할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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