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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적한..

#1.

총회가 끝났다.

1년에 한번하는 총회..

고거 준비한다고 눈코뜰새 없이 바빴지만..

정말 뭘준비했던 걸까 싶기도 하다.

행정적으로 늘 해왔듯이 그렇게 준비한 건 아닌지..

성원이 딱 찼다.

모두 내가 아니면 안되는 구나를 생각했을까?

모인 동지들중에 한명만 없어도 조직이 움직이지 않는..

그런 상태다..

우리는 아직 딱 이만큼이다.

 

 

#2.

'그런데에 갔다오면 한참을 앓아...'

눈물이 핑 돌았다..

그런데를 갔다오면 한참을 앓아야 한다는...

내가 바로 '그런데'에 오라고 했다...

내가 잘 못한걸까???

우린 참 질긴 인연이다..

 

 

#3.

가족을 만난다..

잃어버렸던 가족을..

사촌언니, 오빠를 찾았다..우연히..

 

어제 통화를 했는데..

'오빠는 한번도 널 잊은적이 없다...하나밖에 없는 동생인데..'

라는 통화음성에 덜컥 울어버렸다..

 

 

 

 



우리들은 실제 팔촌정도는 되는거 같다..

그치만 어렸을적 항상 같이 놀았고, 같이 다녔다.

한살위인 오빠와 3살위인 언니..

고3때인가 오빠는 재수를 했고, 언니는 대학을 포기하고

우리는 방학때면 늘 같이 다녔다

난 워낙 집을 싫어했던지라,,

신설동 언니집에서 학원을 다녔고,..

당시 신설동에 입시학원같은것들이 많았다.

오빠는 공부를 잘했었던것 같다. 공부를 잘했던 오빠덕에

오빠와 함께 학원을 다니는것에 대해 전폭적 지지를 했던것..

 

선명한 기억하나..

딱 요맘때였던 거 같다.

신정을 전후한 때거나, 구정을 전후한 때거나 암튼 설즈음이었으니

난 입시에 떨어졌고, 재수를 하겠다고 집에다 이야기 했다.

엄마는 반대를 했고,,,

친구와 신설동에 갔다가 큰이모 집에 들렀고,

친구는 밖에 카페에서 기다리고,,,

난 잠시 이모집에 들렀다.

그 잠시 동안 이모가 불러서 그 이야기를 했다.

이야기를 듣는내내 심장이 쿵쾅거리고, 세상이 노래졌었다.

방에 깔려있던 담요를 덮도 옹기종기 모여있었다.

큰이모가 이야기를 했고, 언니와 오빠가 같이 앉아있었다.

그 상황이 지금도 너무나 선명하다.

그러나 큰이모앞에서 티를 낼 수가 없었다.

큰이모는 내가 다 아는줄 알고 한이야기였고,

난 그날 처음 듣는 사실이었고..

그리고 어떻게 그 집을 나왔는지 모르겠다.

친구가 기다리는 카페에서 한참을 울었다.

그리고..

이야기를 했다.

 

그리곤 엄마와 극도의 상황으로 갔다.

결국 재수를 하게됐다. 아빠의 허락으로..

재수하는 내내 엄마는 한번도 도시락이라는 걸 싸준적이 없었고,

'그렇게 해도 나에게 나쁜년이라고 할 사람이 없다'는 엄포를 놓았다.

재수하는 동안 놀이터에서의 소주와 새우깡으로 간신히 재수생활을 버텼다.

인생의 낙오자라는 패배감..

내 삶에 대한 절망...

부모 복없다는 자학...

 

그러면서 연락이 끊겼다..

서로 바빠서겠지..

그 이야기를 했던 큰이모를 원망하진 않는다.

더군다나 언니, 오빠가 나에게 해준것은

친 남매, 자매 이상으로 나에게 잘 해줬었으니까..

 

'미국으로 간 줄알았어...'

 

'...'

 

'결혼했니?'

 

'아니..혼자야..'

 

'오빠는 결혼해서 아기도 있는데...

우리 와이프가 널 잘 알아..내가 매일 이야기 했으니까..'

 

'...'

 

이게 가족이라는 걸가?

 

살기 바빠서 그랬겠지...

아둥바둥 살아야 했으니까..

살아남아야 했으니까..

그땐 운동하느라고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것들이,,

지금생각해보면...

어찌 그리 억척같이 살았는지..

 

갑자기 지난 15년이 필름처럼 지나간다..

 

15년만에 만나서 우리는 무슨 이야기를 할까??

그 세월을 다 어찌 이야기 할 수 있을까???

그 세월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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