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07/18 15:40

2008/07/18 메모

일본 만화인 백귀야행을 보다가 궁금했던 것이, 이 만화의 에피소드들에는 어쩜 이렇게 죽음과 삶과 미신이 그렇게도 그냥 섞여 있냐는 것이었다. 일본이라는 사회 자체가 (남한 사회에 비하면) 그런 걸까? 아니면 내가 우리 사회에서 나온 만화를 읽으면서 이 만화가 남한 사회의 정확한 반영이 아니고 그 한 단면이라고 아는 것처럼 일본 사회의 일부분일 뿐일까. 하긴 내가 경험한 삶이라는 것도 죄다 도시에서의 삶이다. 누군가의 죽음을 병원 영안실이 아닌 집에서 맞이하는 것을 경험해 본 것은 두 번 뿐이다.
물론 어머니는 말씀하신다. 무슨 소리니. 집에서 장례치르는 것이 보통 일인 줄 아니. 옛날에 네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너는 두살이고 네 동생이 엄마 뱃속에 있는데...(이하 생략)
지금의 도시 생활은 출생과 육아와 교육과 놀이와 죽음과 일상의 여러 부분들을 떼어내어 공공의 영역(자본이 관여하는 영역도 들어가겠지)이 관리하고 있다는 얘기도 있지만.

음 아니 그냥 하고 싶었던 얘기는...
아이를 키우는 데 한 마을이 들어간다는 달군의 얘기.
공적인 부분과 사적인 부분을 분리해내어 공적인 영역에서는 사적인 부분을 드러내지 않는 것이 미덕인 현대 도시의 혹은 가부장적인 사회. (내가 일하는 곳은 아빠들만 있는 곳이고, 아이 얘기는 잡담하다가 자랑하려고 나오는 경우는 있어도 아빠가 집에 전화해서 육아나 교육에 대해 잔소리하는 일은 없었다).
가족중심주의 사회 혹은 조금 다르지만 가족 이기주의라는 인식.
자기 가족을 챙기기 때문에 엄마는 공적인 영역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
혹은 이렇게 될까봐 두려운 결혼하지 않은 혹은 결혼한 여성.
혹은 여성만 이 문제를 두려워하기.


그래서 다시 엄마들은 육아에 대해 이야기하기.
엄마들이 육아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분리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아이키우기는 사회적인 영역이기 때문에 얘기하는, 아이 키우기에 대해 경험을 하거나 늘 곁에서 전수받을 수 없어서 모여서 얘기하다보니 사회적인 영역이 된, 엄마가 아이키우기는 신성하고 소중한 것이라는 늘 존재하던 인식에 기대어 이야기하는, 혹은 살다 보면 도저히 구분될 수 없는 영역이라 섞이기 시작하는, 즉 엄마들이 사회에 많이 나왔기 때문에,

아이를 키우는 데 한 마을이 들어간다는 달군의 얘기로 다시 돌아가보면
아이키우기에 대해 인상적이었던 어떤 분의 말씀이 겸손을 배운다는 것이었다. 자기 혼자일 때는 자기 하나야 어떻게든 자신이 책임질 수 있는데, 아이를 키우는 것은 도저히 자기 혼자 할 수 없고, 그래서도 안 되는 일이라는 얘기. 전통사회의 구성원들이 아이키우기에 동참했던 것은 그 사람들이 현대인;들보다 착해서이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아이키우기는 공동체의 일이라는 암묵적인 합의가 있고 또 누구나 결국은 아이키우기 대열에 들어가야 하기 때문에 결국은 필요한 품앗이였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다시 아이를 키우는 데 들어간 마을의 구성원은 여성이었을까 남성이었을까.

어떤 이에게 지지를 보낸다는 것은 그래서 그 이가 속한 집단에 지지를 보낸다는 것은 뒤집으면 그 집단과 적대관계에 혹은 대칭에 놓인 집단을 비난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조심스럽다. 적대관계라면 차라리 낫지. 나도 내 입장을 정하기가 조금 더 쉬우니까.
한편으로는 내 판단에 대해 나 자신도 책임을 지지 않으려는 것은 아닐까 생각이 많아지기도 하지만, 비혼의 삶, 특히 비혼의 여성에게 비난이 되지 않기를 바라면서 엄마들에게 지지를 보낸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