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09/15 10:15

오래된 SF - 라마 2

걸작으로 칭송받는 [라마]와 달리 라마의 저자 아서 클라크와  젠트리 리가 함께 쓴 라마 2는 좋은 평가를 못 받고 있다. 좋은 평가를 못 받고 있다는 온건한 표현이고, SF팬들 중에 쓰레기라고 폄하하는 사람도 꽤 봤다. 뭐 나중에는 둘 사이가 별로 안 좋아져서 마지막으로 갈수록 젠트리 리가 거의 혼자 썼다는 얘기도 있고;

나는 꽤 재미있게 읽었는데 쓰레기라는 다른 사람들의 의견은 어떤가 싶어서 찾아본 적이 있었는데 쓰레기란 말만 있고 왜 쓰레기인지는 얘기가 별로 없어... orz

그냥 재미없다는 얘기도 있고(하지만 SF팬들이 정말 재미없는-_- 책들도 SF라는 이유로 꽤 관대한 것을 생각하면 좀 의외;)

전편인 라마와 분위기가 너무 달라서 싫다는 의견도 있고(분위기가 많이 다르긴 하다. 하지만 별개의 책으로 괜찮은 것 같은데 말이지)

아서 클라크의 책이 아니다라는 의견도 있고(그러니까 별개의 책으로 치면 재밌지 않냐고;;; 확실히 인공지능 컴퓨터가 더 인간적으로 느껴질 정도인 아서 클라크의 세계와는 달리 인물들은 자주 충돌하고 감정은 불안하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재미있었던 의견은 주인공의 행동에 성적인 내용이 나와서 거부감이 든다는 의견이었다.

마치 정치적으로 올바른 것을 고려해서 선정한 듯한 라마 2의 주인공은 유색인종인 여성이다. 뭐 자기네 동네에서는 고귀한 출신인데다 올림픽에서 금메달도 따고 학력도 출중하고 우주 비행사까지 된 배경을 생각해보면 특이한 배경의 우주비행사들에게 따라붙던 인간승리 드라마의 주인공같기도 하지만;

 

첫번째 라마가 지나간 후 다시 지구에 라마가 다가오고, 전편과 마찬가지로 라마 탐사대가 출발한다. 하지만 전편과는 달리 사고로 인해 라마에는 네명의 지구인이 남겨지고 만다. 한명은 사고로 죽고 남은 세명이 라마의 양육;을 받으며 다년간 우주여행을 하면서 받아든 라마의 결론은, 우주 저 너머의 어딘가에 있는 초지성적인; 존재가 보낸 유인우주비행을 할 수 있을 정도의 지능을 갖춘 생물들을 채집;하기 위해 보낸 채집통이라는 것.

암튼 이 채집통을 타고 수십년의 우주비행을 하면서 우리 주인공은 라마안에서 사랑도 하고 딸도 둘을 낳는데, 채집의 주체가 기다리는 곳까지 가는 시간, 그리고 그곳에 있는 더 큰 채집판에서 사는 동안 딸들이 좀 더 유전적으로 안전한 자손을 얻도록 하기 위해 다른 두 사람을 설득하여 남편이 아닌 사람과의 사이에서 아들을 얻는다. 이 부분이 거북하다는 평가를 받는 부분이다.

여성인 주인공이 자신의 유전자를 잘 남기기 위해 애쓰는 경우는 처음 본 것 같고, 그것이 적나라한 표현이 아닌데도 읽는 사람에게 '성적인 내용이 나와서 거북하다'는 기분이 들게 한 것이 아닐까 싶다.

큰 채집판;에서 우주의 백과사전을 만든다는 이 채집의 목적을 이해한 주인공은 채집을 돕기 위해 세번째 라마를 타고 지구로 돌아가 지구인들에게 관찰용 이주단지로 이주하자고 설득한다-_-a 뭔가 인디펜던스 데이같은 전개를 바란 것은 아니지만 초지성적인; 존재를 대하는 우리의 태도;;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는 대목이다. 이 존재들에게 우리는 인간앞의 박각시나방같은 존재이니 닥치고 가만히 있는 게 맞는 것일까-_-a 걍 개인 맘대로 하면 되나-_-a

 

초지성적인 존재에 비하면 한없이 무지한 인간이라서 그런지, 주인공은 이 존재의 감시에 대해서도 매우 무감하다. 라마안에는 스캐닝 능력을 갖는 무수한 미생물들이 떠다니고, 이 미생물들은 매순간 라마 내부 전체를 이 존재에게 스캐닝해주는데 일상 생활의 모든 부분을 이 존재가 감시하고 있다는 것에 대한 주인공의 태도나 생각마저도 매우 담담할 뿐이다. 인간 대 인간 사이의 감시와 인간 대 비인간 사이의 감시를 비교하는 일이 어떤지 어렵지만.

 

감시를 상상하는 것은 SF에서 꽤 자주 등장하는 부분이다. 미래에 대해 상상할 수 있는 나쁜 모든 것을 그리고 있는 [1984]의 대형은 건물 곳곳에 있는 텔레스크린을 통해 감시하고 텔레스크린의 가시 영역으로 나오라고 호통친다. 지하에 있는 군사기지가 배경은 [핵폭풍의 날]에서는 역시 곳곳에 설치된 스피커와 마이크를 통해, 대화중에 나오는 '민감한 단어'에 대해 반응하는 소박한 감시가 등장한다.

감시가 일상화된 사회의 사람들은 어떨까. 유리로 된 건물 안에서 살아가며 파트너와 합의 아래 당국에서 섹스의 허가를 받았을 때만 분홍색 커튼을 내리는 [우리들]의 사람들은 '은혜로운 분'의 존재앞에 감출 것이 없다고 생각하려 애쓰며 살아가지만 늘 불안해한다. 반면 유전자 한 무더기인 시절부터 관리받아온 [멋진 신세계]의 사람들에게는 감시도 없고 감시에 대한 불안도 없다. 감시할 필요도 없고 감시에 대한 불안도 없는, 모든 사회 구성원이 체제내화되어 있는 궁극의 멋진 신세계. 그래서 이 소설의 화자는 외부인일 수 밖에 없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