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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당에 씨앗을...(19)

9일째 되었습니다.

위원장님 얼굴을 잘 볼 수 없습니다.

마음 한 켠이 어두워져서 그렇기도 하고

눈 앞이 침침해져서 그렇기도 하고

많은 분들이 찾아오셔서 그렇기도 합니다.

 

낮이나 밤이나, 많은 손님들에 둘러싸여 계신 인기남 되셨습니다.

위원장님, 원래 이렇게 인기 많으셨죠? ^^

 

생협에서 나오신 두 분.

오늘은 잘 인사도 못드리고 말씀도 많이 나누지 못했습니다.

 

 

사제단식도 벌써 6일이 되었고

이 글을 올리는 시간이면 7일째 되는 겁니다.

 

위원장님도, 신부님들도 여유가 있으신 듯 하지만

제 마음은 조금씩 여유가 사라져가는 것 같습니다.

 

이런 경험이 없었기 때문일까요.

한 존재가 여러 사람과 뭇 생명들을 위해 일주일 열흘씩 굶는 다는 게

제겐 매번 충격적인 일입니다.

 

 

 

저녁.

친구가 작업을 많이 해 두었더군요.

 

이제 사람들이 지나다니면서 한 마디씩 합니다.

"와!"

"스고이!"

"왓츠 댓? 댓츠 얼~썸!"

알아본 결과, 다 같은 말입니다.

 

 

 이 친구는 워낙에 그림그리는 걸 좋아한다고는 하지만

해야할 일이 쌓여있고 밀려있고 마감칠 게 3개나 된다고 하는데

그냥 집에 있으라고 해도 자꾸 여기서 그림을 그립니다.

그러면서 오늘은 한 일도 별로 없다며 밥 얻어먹는 것도 미안해하고 그럽니다.

 

꿈틀대는 강물이, 고흐가 그렸던 별이빛나는 밤에-- 그림에서 봤던 것 같기도 합니다.

모든 강렬한 것들은 일렁이고 꿈틀대며 저렇게 흐르는 형국입니다.

제 아무리 시멘트가 천하무적인 것처럼 떠들어도, 저런 흐름을 막을 수는 없을 겁니다.

 

위원장님의 밝은 얼굴을 더 뵙고 싶은데

이제 정말 카메라를 잘 들이댈 수 없습니다.

 

 

 물론, 제가 늦게 나가서 죄송해서 그렇기도 했습니다... 쩝.

 

대신 전문 찍사님께서 날마다 위원장님 초상 사진을 찍고 있습니다.

 

자, 자, 분위기 잡아주시고요~

 

날마다 표정이 다르십니다.

오늘 밤에 사진들을 출력하여 벽에 붙여두었는데

그 자체로 마음이 울렁거렸습니다.

내일쯤 그 사진들 시리즈를 잘 찍어 올려보겠습니다.

 

 이분의 성함을 여직 몰랐었는데

오늘 촛불 문화제 때 규섭아저씨께서 발언을 시키셔서 알게되었습니다.

그런데 까먹었네요... 이런.

 

젊은 사람이 귀도 어둡고 기억도 가물가물하다는 것을

이제 저를 좀 대해보신 분들은 아실 겁니다.

특히 얼굴을 잘 몰라보는데, 다행히 팔당 분들의 얼굴은 잘 기억하는 편입니다.

성함까지 다 아는 대는 좀 시간이... ㅡ,.ㅡ;;

 

아, 본론은 그게 아니고,

아무튼 저 분께서 날마다 미사 음식을 갖다주셔서

가난하고 배고픈 에코토퍄 친구들은 두물머리 미사 때부터 남은 음식 처리를 하며 내내 행복했었다는 말씀.

어제도 저희에게 커피와 떡과 과일을...

천사십니다.

 

앗, 그리고 이분들.

문 브라더스~ (떽! 죄송합니다...^^;)

문규현, 문정현 신부님 오셨습니다.

 

 

언제나 말없이 힘들게 자리를 지키고 있는 사람들에게 따뜻한 위로와 격려의 말씀을 해주시는...

나쁜 넘들에게는 불호령을 내리시는 지팡이와 함께 계십니다.

 

 

이렇게 날마다 촛불이 있고

촛불이 있는 곳에 규섭아저씨도 늘 오시니

하늘이는 심심합니다.

 

 

얼마전 제가

어색한 관계라고 했었는데

보시다시피 저와 좀 친해졌습니다.

오늘은 제 팔을 끌고 프란치스코 성당에 가서 손도 씻고

다시 농성장까지 손잡고 뛰어왔습니다.

 

 

 

그러고도 마구 심심해하며 그림을 그렸습니다.

 

아이와 친하게 대화하는 법을 아직 더 익혀야 할 것 같습니다만

다행히 이 친구도 무척이나 심심했던 터라, 저를 대충 이해하고 봐주더군요.

땡큐.

 

강물 옆에 작은 강물을 그리고는

상어와 미역을 그리겠다 하더니 

 물고기를 그렸습니다.

아가미를 그려야만 할 것 같은 제 낡은 관념에 땟찌 하며

저는 옆에서 빤스만 입은 사람을 하나 그려넣었습니다.

 

하늘이가 좋아했습니다.

 

부릅뜬 눈.

강물의 한 표정.

 

죄송스럽게도 밥을 챙겨먹고

농성장에 돌아오니 밤이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입에 긴 하모니카를 불고 있었고요.

 

술 한 잔 하신 거 아님... 사진이 이렇게 나와 죄송...

 

열심히 강냉이 잡수시는 청년.

양손에 하모니카 들고...

 

 

오늘 촛불은 팔당 싸움과 4대강에 관한 영상을 보면서 진행되었습니다.

그 사진은 다른 카메라에 담겨 지금 올리지는 못합니다만...

옥수수 나눠 먹으며 많은 분들이 영상과 함께 울고 웃는 시간을 보냈습니다.

 

돌아와서 친구들과 술 한 잔 하다가

제 입에서 툭 튀어나온 말.

 

"내가 여기에, 팔당에 그렇게 꽂히는 건... 아마도 내 미래를 보는 것 같아서..."

 

잠시 생각에 잠겼드랬습니다.

내가 그렇게 살고 싶기 때문에, 지금 그렇게 살아오신 분들의 일이 정말 남의 일만은 아닌 거였겠지요.

여기서 물러서면, 제가 돌아갈 곳을 미리 잃어버릴까봐 두렵습니다.

말도 안되는 폭력이 이 세상의 상식이 된다면, 정말 모두가 길을 잃을 수밖에.

 

그래서 갑니다.

농성장에, 팔당에.

그렇게 함께 싸울 수 있는 기회가 저에게 주어져

이 시간들이 행복하고 감사합니다.

팔당을 꼭 지켜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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