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통(KT) 해고자동지가 보내온 편지

2008/03/05 09:36

아래 글은 한국통신 해고자 양한웅 동지가 박노균 선대본에 보내온 편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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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恨) 많은 한통(KT) 해고자 양한웅이 발전노조 활동가들에게 드리는 글 -


발전노조의 민주파 활동가 동지 여러분!


민주노총 홈페이지에 들어갔다가 발전노조 선거와 관련한 어느 후보의 동영상을 보았습니다. 그들은 한통 비정규직 투쟁을 상투적인 투쟁이었다고 비하하는 한편,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GS 칼텍스 해고자들의 투쟁(동영상은 해고자들의 고공농성장면)을 보여주며 국민 여론 앞에 굴복한 투쟁이라고 사실을 왜곡하고 있었습니다. 너무도 어이가 없고 기가 막힙니다. 그들이 구체적으로 어떤 얘기를 하고 있는지 알고 싶어 선거홍보물을 구해 읽어보았습니다. ‘선수교체’팀의 선거홍보물을 펼쳐 읽는 순간, 한통이 민주노조에서 어용노조로 넘어가던 과정이 생생하게 떠올랐습니다. 발전노조 동지들이 우리와 같은 일을 되풀이 하지 않기를 바라는 심정으로 이 글을 씁니다. 


우선 한국통신(KT)노조 역사와 저의 삶을 간략히 이야기 하겠습니다.


저는 86년도에 한국통신에 입사하였습니다. 당시 한국통신노조는 한국노총 산하의 어용노조였습니다. 의기투합한 몇몇 동지들과 함께 노조민주화 및 민영화반대에 앞장섰던 저는 91년 사측과 어용노조의 탄압에 의해 해고된 이후에도 동지들과 함께 노조민주화를 위해 계속 활동하였습니다. 94년 들어선 김영삼 정권은 이동통신 주식 매각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한통민영화 정책을 추진하였습니다. 민영화가 곧 대량 해고로 이어진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현장 조합원들은 걱정과 위기감에 휩싸였습니다. 하지만 낙담만 하고 있지는 않았습니다. 94. 5. 30 때맞춰 치러진 선거에서 조합원들은 유덕상 동지를 중심으로 하는 우리 민주세력을 선택하였습니다. 민주노조의 기운이 왕성한 가운데, 선거직후인 94. 7 저는 복직되었습니다. 우리는 하루도 쉬지 않고 열심히 현장을 조직했습니다.


95.4.2 35,000명이 참석한 결의대회를 정점으로 조합원들은 서로의 투쟁 의지를 확인하고서, 드디어 95.5.17 대의원대회를 통해 쟁의발생을 결의하였습니다. 김영삼 정권의 탄압은 상상을 초월했습니다. 파업을 결의한 당일 저녁 TV와 라디오에서는 우리 지도부를 국가전복세력으로 규정하고 수배령을 내린다는 뉴스가 속보로 방영되었습니다. 이에 집행부는 검거를 피해 명동성당과 조계사에 분산 피신하였습니다. 20여일후 공권력의 동시 침탈로 우리는 구속되었습니다. 우리가 구속된 상태에서 사측은 일방적으로 징계심사위원회를 열어 해고를 확정했고, 재판끝에 ‘징역 2년 6월에 집행유예 4년’의 형(刑)을 선고 받았습니다.

(2007년초 ‘민주화 명예회복 보상심의위원회’에서는 이 사건이 민주주의를 탄압하기 위한 정부의 부당한 공권력 행사였음을 인정하고, 해고자들을 원상회복시키라고 회사에 권고하였습니다. 이에 따라 몇몇 동지들은 이미 복직했고, 저 또한 복직대기상태에 있습니다.)


이때부터 사측은 엄청나게 노동조합을 탄압하기 시작했습니다. 일상적인 노무관리를 강화하는 것은 물론이고 끊임없이 중간 노조간부들을 회유하고 협박했습니다. 4명에 불과하던 노무담당이 400명으로 불어났다는 사실은 이런 점을 분명하게 보여줍니다. 이와 더불어 어용의 무리들이 우후죽순(雨後竹筍)처럼 자라났습니다. 96.12 치러진 선거에서는 사측의 사주를 받은 김호선후보가 ‘전집행부의 투쟁을 상처만 남긴 무모한 행위였다고 폄하’하며,『국민들로부터 기대와 사랑을 받는 민족한통노조 건설』을 기치로 내걸고 당선되었습니다.


김호선 집행부에서 사측은 민영화를 용이하게 하기 위해 강제명예퇴직를 실시했으나 노동조합은 무기력하게 방관하며 현장의 원성을 외면했습니다. 결국 서울지방본부가 더는 참지 못하고 일어나 본부 독자파업을 감행하자, 사측은 서울지방본부에 한해 강제명예퇴직을 철회하기에 이릅니다(서울지방본부를 제외한 전국의 사업소에서 9,000명이 강제로 명예퇴직함). 서울지방본부가 파업승리후 현장으로 복귀하자마자 사측은 핵심 간부들을 징계했습니다. 활동가들이 극도로 위축된 상태에서 회사는 식당/청소/난방/기계/청경/연수원/수련원에 대한 아웃소싱을 감행해 수천명이 회사를 떠나야 했습니다.


99. 12 치러진 선거에서는『전조합원에게 주식을 몇천주씩 나누어 주겠다』는 공약에 현혹된 조합원들이 사측이 낸 이동걸후보를 당선시키고 맙니다(조합원들은 이후 주식을 한주도 받지 못함). 이동걸 집행부가 들어서자 사측은 강제명퇴와 구조조정에 더욱 박차를 가합니다. 사측의 너무도 가혹한 압력에 견디다 못한 서울지역본부와 대구지역본부가 서울에서 집회를 하기로 한 2000.12.20 전국에서 25,000명의 조합원들이 자발적으로 상경하여 명동성당에 집결하였습니다. 회사도 이동걸 집행부도 깜짝 놀랐습니다. 조합원들을 설득하여 해산시키기 위해 부랴부랴 달려온 이동걸은 오히려 조합원들의 압력에 못이겨 파업을 선언하고 맙니다. 조합원들은 이동걸을 감시하며 4박 5일간의 파업을 진행했고, 결국 회사로부터 ‘구조조정과 강제명예퇴직을 진행하지 않는다’는 합의서를 받아냅니다. 조합원의 힘으로, 투쟁의 힘으로 쟁취한 보람찬 승리였습니다. 하지만 승리의 기쁨도 잠시, 조합원들이 뿔뿔이 흩어져 현장으로 돌아가자마자 사측은 또다시 악랄한 탄압을 가해 왔습니다. 서울지역본부의 핵심 간부들을 징계하고 원거리 부당전보를 자행하였습니다. 그리고 파업에 참여했던 조합원들에 대해 감사와 징계를 남발했습니다. 그렇게 현장이 초토화되고 있는데도 노동조합 집행부는 아무런 대응도 하지 않았습니다. 당시 명동성당에 왔던 이동걸을 끌어내리고 민주집행부를 구성했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현장복귀후 현장투쟁을 지속적으로 강화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한 것은 지금도 우리 민주파 동지들의 ‘천추(千秋)의 한(恨)’ 입니다.


사측의 무자비한 탄압에 현장이 극도로 주눅들어 있던 2002년 12월 선거에서 사측의 지원을 받은 지재식후보가 집회는 조합비 낭비하는 일이다. 투쟁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은 없다. 충분한 대화로서 성숙된 노사관계를 만들겠다는 주장으로 당선됩니다. 그리고 중앙위원장을 비롯한 490여명의 조합간부 전원 회사 측 후보가 당선되므로서 노조는 완전히 무력화/어용화 되고 맙니다. 지재식 집행부가 있던 3년동안 사측은 현장 노무관리를 더욱 강화하고, 2005년 12월 선거에서는 사측이 본격적으로 개입하여 지재식이 재선할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투표용지 휴대폰 촬영해서 보여주기, 투표용지상에 기표위치 부서별 지정, 투표용지를 함에 넣기 전에 참관인에게 보여주기 등의 한통부정선거 행태는 너무도 유명하여 많은 동지들이 이미 알고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유덕상 집행부를 중심으로 투쟁하던 96년말까지는 민영화가 지지부진했고, 임금 또한 매년 10%이상 인상되었습니다. 그러나 어용 4대(김호선-이동걸-지재식-지재식)를 거쳐 오면서 민영화는 100% 완결되었고, 임금은 거의 동결되다시피 했으며, 25,000여명의 직원이 회사를 떠났습니다. 남아 있는 조합원들도 고통스럽기는 마찬가지 입니다. 모든 직원이 휴대폰 특판을 강요당하고, 업무량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늘어났으며, 그 과정에서 5명 정도가 자살이나 과로사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지금의 KT 노동자들은 완전한 노예의 삶을 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2002년 발전노동자의 파업은 모범적인 투쟁이었습니다. 전국의 수많은 노동자들의 연대를 끌어내고 민주노총의 총파업까지 결의하게 만든 훌륭한 투쟁이었습니다. 그러나 아쉽게도  ‘민영화 포기 합의서’를 받아내지는 못했습니다. 하지만 실망하진 마십시오. 노동자는 투쟁 속에서 희생과 고통을 당하기도 하지만, 바로 그 투쟁을 통해서 고용안정과 노동조건을 지켜낼 수 있습니다. 투쟁하지 않는 노동자를 기다리는 것은 노예의 삶뿐입니다.


어용들은 항상 조합원들의 상처를 어루만져주는 척합니다. 또 투쟁해도 소용없다며 실리를 챙기자고 말합니다. 지옥으로 가는 길은 포장이 잘 되어 있듯이, 어용들은 달콤한 주장으로 우리를 유혹합니다. 하지만 어용이 인도하는 길로 한발 한발 내딛다 보면 어느새 천길 낭떠러지에 서 있는 우리를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한통의 걸어 온 길이었고 그 도착지는 바로 지옥이었습니다.


동지들! 정신 바짝 차리십시오!


‘선수교체’팀은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어버렸습니다. ‘투쟁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국민들도 싫어한다.’는 것은 정부, 회사, 어용노조가 언제나 주장하는 논리입니다. 노동조합이 이런 논리적 바탕위에서 활동한다면 발전소매각은 절대로 막아낼 수 없습니다. 돈으로 정부와 회사를 상대겠다는 그 발상이 얼마나 황당한 주장입니까?

이번 선거 절대로 패하지 마십시오. 동지들도 경험했겠지만, 집행부를 장악하지 못하면 아무리 높은 이상 옳은 생각도 휴지조각이 되고 맙니다. 동지들이 이번 선거에서 반드시 이겨야 발전소매각을 막아낼 수 있습니다. 조합원들과 함께 승리하는 투쟁을 이번에 만들어 내지 못하면 더 이상 발전노조의 미래는 없다는 것을 감히 말씀드리며 멀리서 동지들의 승리를 기원합니다.


2008년 2월의 마지막 날에..... 한통해고자 양한웅 드림


ps. 한통비정규직들은 2000. 5. 정부가 공기업 민영화 정책에 따라 7천명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집단해고하자, 노동조합을 만들고 2000. 12. 13부터 517일간의 가열찬 투쟁을 전개했습니다. ‘선수교체’팀의 동영상에서 폄하하고 있는 한통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 장면은 당시 목동전화국 점거파업중에 공권력이 무력으로 파업노동자들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노동자들이 저항하는 장면입니다. 점잖게 여론에 호소하지 않고, 파업하거나 공권력에 저항하는 것이 상투적 투쟁입니까? 청천벽력 같은 정부조치로 인해 하루아침에 길거리로 내몰린 노동자들의 절박한 저항이 이렇듯 매도당해서는 안됩니다. 투쟁 회피주의자들이 TV광고 등에 헛돈을 낭비하는 것은 자기들 마음이겠으나, 열악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처절한 생존권투쟁까지도 자신들의 논리를 정당화하기 위한 불순한 의도로 이용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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