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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봉산의 델마와 루이스

어제 춘천에 연자언니가 놀러왔다. 몇년전부터 놀러온다고 하시더니, 어제 드디어 도착하셨다. 어제는 춘천에서 "구워먹는 닭갈비", 구름낀 하늘아래 걷기, "Peace of mind"라는 유명한 북카페 찾아보기 등을 하면서 쏘다녔다.

 

오늘 아침에 연자언니가 일찍 일어나셔서 서둘렀기 때문에 산행계획이 순조롭게 잘 진행되었다. 그 순조로움이란, 개인용 차가 없는 두 사람이 버스를 타고서 목적지인 오봉산산행지까지 갈 수 있었던 것이다.  아직도 하루에 5번 버스가 다니는 이 시골(?)에서 버스를 기다리지 않고 10분내에 다음 버스로 갈아탈 수 있었던 것은 정말 행운에 가까운 일이었던 것이다. 처음에 탔던 버스 기사님이 자세하게 알려주셔서 두번째 버스를 타기위해 후평동종점에서 버스를 탔는데, 종점에서는 우리 둘과 갈색 안경을 쓰고 짦은 파마머리를 하신 한 아주머니가 산행복장을 하고 올라타고 있었다. 까만 선글라스에 입가에 미소가 한가득인 기사님은 우리가 오봉산을 간다니까.. 오음리로 넘어가는 배후령 마루에서 산행하면 된다고 길을 알려주셨고, 갈색안경의 아주머니는 연실 오봉산이 힘들지 않느냐고 기사님과 이바구를 하고 있었다. 버스가 오향리를 지나서 오음리 배후령고개로 갈수록 산행복장을 한 사람들이 많아졌다. 버스는 정말 산 하나를 올라가듯이 구비구비 2차선 신작로길을 올라가더니, 고개마루에서 우리를 내려놓는다. 고개마루가 바로 배후령고개... 트럭을 개조한 차량 한 대가 간단한 등산용품을 팔 뿐, 주위엔 아무것도 없다.

 

여기서 우리는 아까 그 갈색안경과 그의 동행 아주머니 한분을 만나게 되었다. 명절을 앞두고 산을 오르겠다고 나선 우리도 의외의 사람들이었지만, 자식들이 장성했을 것 같이 보이는 두 여성분이 전문가적인 수준의 산행복장을 하고 나타난 것 또한 의외의 일이었다. 두 분의 복장을 꼼꼼히 살펴보니, 신축성 좋은  등산바지에, 등산셔츠, 등산화와 가방에다가 등산지팡이마저 갖추고 있었다. 두분의 모습이 범상치는 않았다. 도대체 어떻게 산을 오르게 되셨을까? 하는 호기심이 발동했다.

 

애초에 오봉산이 어려워서 마적산을 가려했던 두분을 꼬드겨서 오봉산으로 같이 가자고 한 것은 우리였다. 두분이 앞서고 우리는 뒤에서고 하면서 막상 산을 들어갔지만, 곧 우리는 생각지도 않았던 현실앞에서 무척 난감해 해야했다. 오봉산이 봉우리가 5개여서, 결국 5개의 봉우리를 오르락 내리락 해야한다는 것이다. 보통 산행은 한봉우리를 목표로 가는데, 5개의 봉우리를 넘나들어야 하다니...... 이 5개의 봉우리중에 가장 높은 봉우리(아마 두번째였던 것 같다)는 779m이지만, 비슷 비슷한 크기로 서있는 나머지 4개의 봉우리마저 올라가야 하다니...... 이것은 정말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일이었던 것이다. 여기에서 갈색안경과 그 동행아주머니가 아니었다면 우리는 산행을 포기했어야 했을 것이다.

 

우리는 동행을 시작한지 100m도 안되어서, 갈색안경과 그 동행아주머니가 범상한 분들이 아니며, 바로 한국여성들의 손과 발을 묶어 놓고 있는 보이지 않는 끈 혹은 밧줄을 끊고 해방된 여성들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분들은 오봉산의 "델마와루이스"였다. 델마는 바로 그 갈색안경의 동행이고 루이스는 갈색안경이다. 델마는 약간 아담한 키에 후리후리한 눈매에 한번만 보아도 전혀 배신을 안할 것 같은 신뢰가 가는 얼굴이었다. 루이스는 갈색안경에 짧은 파마머리, 연세에 비해서 한껏 멋을 부리신 모습이다. 델마와 루이스는 50대 중반을 바라보는 나이라고 했다. 그러나, 그들의 걸음걸이는 가볍디 가벼웠고, 그들의 읍조리는 인생역정은 마치 한편의 드라마와 같았다.

 

델마는 무척 잘생긴 한 남자에 반해서 결혼한지 얼마 되지도 않아 30세때에 남편이 바람을 피우기 시작했다. 43세까지를 왜 남편은 나를 사랑하지 않을까?하고 고민하면서 보내느라 허송세월을 보냈다. 그러던 어느날, 막걸리를 한병 다 마시면서 술도 먹게되고, 밖으로 무작정 뛰쳐나와 산을 오르게 되면서 모든 근심과 걱정이 사라졌단다. 남편이 가정을 돌보지 않고, 자기 혼자 놀러 다니는 것이 처음엔 소외감을 느꼈지만, 이제는 남편이 오히려 애초롭다. 10여년간 산이란 산에는 다 가보셨다. 무릎관절염이 올 나이에 10년은 젊어보이는 그 비결은 바로 산행에 있다고 하신다. 산으로 뛰쳐나오기 전에 왜 그렇게 집구석에서 남편이 애정을 가져가 주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는지 그 허송세월을 보낸 것이 아깝다. 델마는 산행에서 많은 사람들을 만났고, 사귀었다. 그러다보니, 인터넷에 홈페이지도 만들었고, 포토샵도 배워서 사진도 올릴 수 있게 되었다. 델마는 이제 "전국민과 대화를"이라는 꿈을 직접 실현하고 있는 것이다. 델마는 해방된 여성으로써 자신의 삶을 충실하게 살고 있는 것이다.

 

루이스는 그렇게 모진 남편은 아니나, "혼자 나돌아 다니는" 남편을 만난 것이다. 겉으론 평온하고, 밖의 사람들에겐 누구에게도 잘하는 남편은 정작 아내와의 소통은 거부하고 있었던 것이다. 어느날 루이스는 가족들과의 모임에서 딸과 며느리들에게 "왜 남편들하고 사느냐?" "무엇이 계속 살게하는것이냐?"라고 물어보았다고 한다. 딸과 며느리들은 제각기 "정때문에", "책임감" "사랑을 끝없이 주니까..", "술먹고 이름을 부르는 재미에..", "책임감" 이라고 대답했는데, 정작 자신은 아무런 대답할 수 없었다. 남편과 왜 사는 지를 이유하나 댈 수 없는 자신이 너무 슬퍼서 그는 그날 밤을 꼬박 새고, 새벽길로 산으로 향했다.

 

이렇게 해서 그 둘은 산에서 만났다. 이들은 해방된 여성으로써 자신들의 해방을 만끽하고 있으며, 진작 깨치지 못했던 시간들이 아쉬울 뿐이다.

 

산을 내려와 청평사에서 배를 타고 춘천으로 나온 델마와 루이스는 밥을 해야할 걱정을 하면서 집을 향해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지금 들어가면 (그때가 약 5시쯤 되었다.) 저녁을 준비해야 한다며, 집으로 향하는 우리를 뒤로하고, 다시 어디론가 사라졌다.

 

그 장면이 한편의 영화와도 같았다. 배에서 막 내린 사람들 틈속에서 모두들 집을 향해 앞으로 향해서 걷고 있는데, 갑자기 방향을 바꾸어서 집을 향한 인파에서 멀어져가는 두 사람... 영화의 한 장면이지 않은가?

 

이 땅의 모든 여성이 이들과 같이 해방되는 날이 올때까지.. 나는 오봉산의 델마와 루이스를 기억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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