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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락실

우편물 부치러 우체국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잠시 오락실에 들렀다.

1945 한 판과 야구게임 한 판 가뿐하게 해주고 왔다.

 

난 또래의 친구들에 비해 오락실에 잘 가지 않는 편이었다.

사실 초등학교 때는 부모님과 선생님의 말을 철썩같이 믿고

오락실가면 큰일나는 줄 알아서 안갔다.

어쩌다가 친구들과 어울려 가는 일도 있었지만 마음이 불편했다.

머리가 크면서 어른들의 새빨간 거짓말을 알게되었지만

오락실은 여전히 내겐 너무나 먼 당신이었다.

이유는 단 하나. 오락을 너무 못해서...

사실 몸으로 하는 거 다 못한다. 노래, 그림, 만들기, 각종 스포츠

예체능 과목 제발 '우' 한 번 받아보는 것이 소원이었다.

아무리 시험을 잘봐도(잘보지도 못했지만) 실기를 죽써서

정말 '미'안하게도 성적표는 최대치가 '미'였다.

 

오락실도 마찬가지...

순발력과 손놀림이 중요한 오락실 오락들이 나에겐 게임이 아니라 시험이었다.

친구들은 200~300원이면 한 시간을 버티던데 나는 한시간 동안 오락하려면

2000~3000원은 깨진다ㅠㅠ

더구나 사람 때리는 것에 취미가 없던지라

스트리트파이터 부터 해서 킹오브파이터, 철권 등등의 대전 게임은

그야말로 내 동전의 무덤이었다.

그나마 흥미를 붙인 게임들은 슈팅게임과 스포츠 게임

하지만 스포츠 게임도 번번히 지기만 하기 때문에 돈이 솔찬히 들었고

오락실 밖에서는 말싸움으로는 내 밥이었던 LG팬들에게

농락당하는 것을 참을 수 없었다.

슈팅게임도 그 수많은 미사일들 앞에서 나는 폭탄만 쓰다가

폭탄 떨어지면 그냥 죽어나가는 수밖에 없었다.

가정용 게임기에 있던 트윈비같은 귀여운 슈팅게임이면 얼마나 좋았을까

 

게다가 내 신체적인 조건도 오락실과 안 맞았다.

난 대체로 평균 이상으로 건강하지만 몇군데 평균 이하로 병원신세 져야하는

곳들이 있는데, 나쁜눈과 약한 목과 치아가 그 곳들이다

치아는 둘째치고라도 시끄럽고 번쩍번쩍 정신없는 오락실은

내 육체에겐 좀 커다란 고통이었다.

 

그래도 나도 오락 잘하고 싶었다.

100원짜리 하나가지고 원더보이 끝판까지 가보고 싶었다.

철권 16연승 해보고 싶었다.

1945 끝판까지 깨고 지겹다는 표정 지어보고 싶었다.

 

축구나 농구는 열심히 뛰면 악착같이 뛰면 실력이 모자라는 것을

커버할 수 있는데, 오락실은 그러지 못했다. 물론 남들보다 돈을 더

많이쓰면 되겠지만, 나의 학생시절은 그다지 여유있지 않았다.

지금도 여유는 없지만, 그 때는 정말 더 많이 가난했다.

 

그래서 난 아직도 오락실가면 금방 나오게 된다.

오늘도 두판하는데 5분이나 걸렸을까?

야구게임은 세계최강 쿠바팀을 선택해서 한국팀(컴퓨터)과 하는데

세상에 3:3 비겼다. 처음에 게임에 익숙해지는 동안 1회에

3실점한 것이 패인이었다

1945는...ㅠㅠ 세상에는 아무리 노력을 안되는 것들이 있다.

 

역시 나는 오락실 체질이 아니다.

오락 정 하고 싶으면 컴퓨터에다 삼국지 같은거 깔아서 해야한다.

슈팅이나 액션게임 스포츠 게임 이런 순발력 필요한거 하면 안된다.

전략시뮬레이션이나 퍼즐 같은 거 이런게 딱이다.

그래도 스타크래프트는 왠만큼은 했었는데, 하면서도 살짝 마음이 거시기했었는데

다행히도 이제 안한다. 그냥 오락하지 말자

그 시간에 책이나 한 글자 더 읽자. 노래나 한 곡 더 듣자.

 

그래도 가끔씩 오늘처럼 주머니에 동전이 너무 많아

고민의 무게보다 무거워지면 한 번씩

오락실가서 털고 와야겠다.

어차피 시간도 얼마 안걸리니까

일 할 시간 공부할 시간 빼았는 것도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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