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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만남과 단절

길을 좋아한다. 길을 걷는 것을 좋아한다.

길은 아무렇게나 나지 않는다.

길은 마을과 마을을, 땅과 하늘을, 나무와 바람을

모두 고려하여 자연스럽게 형성된다.

때문에 길은 하나로 길게 뻗어가면서 서로 교차하여 만난다.

 

길은 사람만의 것이 아니다.

길은 사람들이 주로 다니는 길만 있는것이 아니다.

사람들이 다니는 길은 다른 짐승들이 다니기도 하고,

짐승들이 다니는 길은 바람이 다니기도 한다.

 

길은 이동하기 위한 도구이고,

만남이 이루어지는 장소이다.

길을 통해서 우리는 서로를 만나고

이웃과 이웃이 교류할 수 있게된다.

 

이 세상의 모든 길은 소통과 만남을 위한 것이고 그래야 한다.

 

그런데 차가 다니는 길은 그렇지 않다.

그 길은 단절의 길이고 죽음의 길이다.

그 길은 오로지 인간에게만, 아니 어쩌면 육중한 무게와 시끄러운 소음으로

무장한 자동차에게만 유용한 길이다.

 

강화도의 아름다운 산이 자동차가 넘어가는 길로 완벽하게 두쪽으로

나누어져 있었다. 산의 이쪽과 저쪽은 허리가 자리워진

처량한 모습으로 나의 눈앞에 다가왔다.

내가 사랑하는 길들은 이쪽과 저쪽이 연결된다고 해서

다른 이쪽과 저쪽이 단절되지 않는다.

이쪽방향의 만남과 저쪽방향의 만남 그리하여 모든 방향의 만남이

항상 교차하는, 그래서 모든 길은 일직선이면서 또한 교차로다.

 

그러나 그 차도는 오로지 자동차들의 이동을 위한 이쪽과 저쪽의

완벽한 단절을 이루어냈다. 매끄럽게 일자로 뻗은 길은 그 길의

매끄러움  만큼이나 너무도 완벽하게 깔끔하고 소름돋는

단절을 만들어내고 그 길이 만큼이나 그 단절은 계속 이어졌다.

 

그리고 오로지 자동차들의 그 속의 인간들만을 위해 만들어진 길은

죽음의 길이었다. 자연의 길, 야생의 길에서의 죽음은 삶의 연속이고

생태계의 순환이다. 초식동물들이 육식동물들에게 잡아먹히더라도

길은 결코 불평등하지 않다. 육식동물은 길위에서 죽어서 초식동물이

먹는 풀들의 양분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차를 위한 길은 자연스럽지 않은 죽음을 잉태한다.

추구하는 것은 자동차가 좀 더 빠르게 가기 위한 속도이고

잃는 것은 인간과 함께 그 길을 사용하던 많은 것들의 죽음과

떄로는 인간의 죽음이다.

 

자연의 길위에서 죽어가는 것은 흙으로 돌아가는 것이지만

자동차의 길위에서 죽는 것은 죽임 당하는 것이다.

 

만남과 소통을 위한 아름다운 길이 죽음과 단절의

아스팔트로 씨꺼멓게 변해있엇다. 그것이 강화도에서 본

가장 슬픈 풍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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