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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우유 맛을 보며
싫어진 우유 냄새에 환희와 절망을 동시에 느끼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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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시리얼을 말아먹고 가고 싶다는 아들 아이에게
유전자 조작된 곡물로 만든 시리얼을 사주고 싶지는 않았다.
농산물의 유전자를 조작하는 산업에 인류애는 없고,
이윤추구와 자본으로의 종속만이 있을 뿐이다.
더욱이 건강을 해칠 수 있는 여러 가지 방식의 가공식품들을
사먹는 것은 내겐 너무 억울한 일이다.
국내의 한 공동체에서 만든 유기농 시리얼을 구해 보았다.
내가 하듯 두유에 말아먹으라고 했더니, 아이는 말도 안 된단다.
그러더니 생협(두레생협) 심부름 갔을 때 우유를 한 통 사왔다.
그 시리얼이 (아이가) 먹을만한지 (내가) 조금 시식을 해보았다.
몇 년간 바깥 생활을 많이 하며, 자극적인 맛에 길들여진
아이의 입맛에 맞을 지, 그게 염려되었기 때문이다.
발아통밀로 만든 시리얼은 내 입맛에는 고소했다.
우유를 말아보니, 아이는 맛이 심심하다 할 것 같았다.
정제하지 않은 마스코바도 설탕을 적당히 타 먹으라고 해야겠다.
약간의 소금을 넣으면 더 맛이 좋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알려줘야겠다.
그런데 나는 다시는 우유에 말아먹지 않으련다.
송아지에게 먹여야 할 소젖을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상식을 하려면
어미 소는, 그리고 송아지는 어떻게 살고 죽어야할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부터, 그 잔인한 현실을 알게 되면서부터
우유를 점차 먹지 않게 되었다.
생협에서 거래하는 우유는 덜 잔인하게, 덜 유독하게 만들어지겠지.
하지만 나는 한살림 생협의 우유 취급 찬반을 묻는 설문조사에 반대를 표명했다.
그렇지만 생협 우유도 못 먹겠다. 냄새가 싫어 못 먹겠다.
어느새 고기 냄새가 싫어지고, 고기 국물이 느끼해진 것처럼
우유 냄새가 이토록 싫어졌구나..
생협 우유는 다른 우유보다 덜 비린 편인데도 그 냄새가 싫다.
우유 맛을 보며 나는 환희를 느낀다.
나도 대다수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고기가 없어서 못 먹고
우유의 고소함을 즐겼던 사람이다.
그런데 이제 나는 우유를 먹으려 해도 맛이 없어 못 먹는 지경에 이르렀다.
특별히 도를 닦은 것도 아니고, 우유를 안 먹거나 싫어하기 위해
어떤 프로젝트를 한 것도 아니다.
그냥 점차 고기나 우유를 안 먹게 되면서, 채식 위주의 반찬,
다시마와 버섯, 또는 생협의 천연조미료로 맛을 낸 국물들을 먹고 살았다.
(울 동네 유기농반찬전문점인 동네부엌이 나의 채식생활의 일등공신이다.
내가 동네부엌을 만들자고 제안했던 것도 육식을 줄이고
채식 위주의 전통음식들을 먹자는 뜻이었다.
동네부엌에는 고기 종류도 만들어 팔지만,
다양한 전통 채식 반찬들이 많기 때문에 육식을 줄일 수 있도록 도와준다.)
그 사이에 나의 입맛이 이토록 달라졌다.
이렇게 변할 수 있다는 것이 환희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우유 맛을 보고 또한 나는 절망을 느꼈다.
남들은 그대로인데 나 혼자만 달라진 것이다.
같은 우유를 가지고 나 혼자만 다르게 느끼는 것이다.
우유 맛을 보고 나는 환희를 느꼈다.
똑같은 우유인데..
나의 입맛이 달라질 수 있다면 누구든 달라질 수 있다.
우유는 꼭 먹어야 하는 것이 아니다.
우유 맛을 보고 나는 절망을 느꼈다.
똑같은 우유인데..
남들과 내가 너무 다르게 느끼고 있다.
그 간극을 좁히려면 얼마나 많은 세월과 노력과 공감이 필요할까.
다 같아져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완전히 육식이 사라지는 일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우유 냄새가 싫어지는 것이 얼마나 가치 있는 일인지 않다.
얼마나 평화로운 일인지 안다.
동물들은 물론, 인류를 위해...
* 민중언론 참세상의[세상 모든 생명들과 더불어 평화로운 숨을] 에 관련된 글.
(기사 제목을 클릭하세요~)
‘동물보호 잡지’ 첫 숨 토하다
한겨레 생활/문화 2007.12.20
세상 모든 생명들과 더불어 평화로운 숨을
참세상 사회 2008.01.15
아우슈비츠나 소 축사나...고기 맛있습니까
오마이뉴스 책동네 2007.12.27
동물보호잡지 '숨' 첫선… 창간호서 실험실의 동물학대 고발
한국일보 생활/문화 2007.12.27
국내 최초 동물보호잡지 ‘숨’ 창간한 김효진 편집인
여성신문 963호 [사람들] | 2007.1.4
공장형 축산은 문명사회의 야만
오마이뉴스 책동네 | 2008.1.7
* 숨 카페 : http://cafe.naver.com/mzso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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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은 B5 크기에, 내지 172쪽입니다. 여러가지 측면을 고려해 창간호는 칼라판으로 편집이 되었으며, 앞으로 점차 친환경적인 출판을 하기 위해 고민하고 있습니다.많은 분들의 관심과 뜨거운 호응을 소망하는 바입니다..
사실 출판영업 전문가들로부터 10000원 짜리 이상의 품질로 평가받았습니다만, 처음 나오는 동물보호 전문지인만큼 문턱을 낮추려다보니 말도 안되는 가격으로 책정되었습니다. 배송비 없이 5000원에 구입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단지 5000원이라 생각지마시고 후원금을 보태어 보내주시면, [숨]이 더 많은 분들에게 다가가고, 지속될 수 있을 것입니다.
따뜻한 세상을 희구하는 나의 가슴에... 따뜻한 숨결의 소유자로 자라기 바라는 우리 아이들 마음에(어린이에게 '숨' 창간호를 직접 보여주라는 뜻은 아닙니다. 어린이에 따라 어른의 지도 하에 볼 수 있는 경우도 있을 것입니다. 이후 어린이를 위한 '숨'의 제작도 계획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사회 곳곳에 생명사랑의 씨앗을 뿌려주세요~
[숨] 편집부 드림
***********************
이번에는 서점 거래를 하지 않기 때문에, 이 홍보물을 여기저기 퍼날라주시면 큰 도움이 된답니다.
그리고 주변에도 많이 알리고 팔아도 주시기 바랍니다.
우리 사회 동물에 대한 인식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소중한 계기가 될 수 있도록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여기까지 모두 퍼가 주세요~)
조항 |
정의 |
의미 |
래칫(톱니바퀴의 역진방지장치) 조항 |
한번 개방한 수준을 되돌릴 수 없다는 조항. |
모든 정책이 개방/민영화 쪽으로만 향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 |
서비스 시장의 네거티브 방식 개방 |
개방하지 않을 분야만 유보 리스트에 명시하고, 나머지는 모두 개방하는 것. |
미래에 새롭게 생겨날 서비스는 모두 개방한다는 의미. |
미래의 최혜국 대우 조항 |
앞으로 다른 나라에 미국보다 더 많은 개방을 약속할 경우, 자동적으로 한미 FTA에 소급 적용 |
미국에 대한 개방폭은 점점 늘어나기만 할 것. |
투자자 국가 제소권 |
초국적기업이 자신의 이윤 확보를 방해하는 정부의 법과 제도, 관행을 제3의 민간기구에 제소할 수 있는 권리. |
헌법상의 사법권, 평등권, 사회권을 무너뜨릴 것. 정부는 부동산 정책을 포함한 공공정책을 사실상 포기하게 될 것. (지하수를 오염시킨 회사에 오히려 멕시코 정부가 165억원을 물어주는 기이한 상황 연출) |
비위반 제소 |
FTA협정을 위반하지 않아도 세금, 보조금, 불공정거래 시정조치 같은 정책으로 ‘기대하는 이익’을 못얻었다고 판단되면 일방적으로 국가가 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 제도. |
'기대했던 이익'이란 모호한 조건으로 소송 제기. 어느날 갑자기 정부의 공공정책과 합법적인 정책들이 제소대상이 되는 것. |
정부의 입증 책임 (necessity test) |
어떤 규제든 그것이 필요불가결함을 '과학적으로‘ 입증해야하는 책임. |
규제 이유를 현재의 과학수준으로 증명 불가능한 경우, 보통 건강과 환경 정책은 '예방우선의 원칙'을 적용해 먼저 규제한다. 그러나 미국식 FTA는 증명하지 못하면 수입하라는 것. |
간접수용에 의한 손실보상 |
미국인 투자자에게는 인정됨. |
미국인에게는 우리 헌법보다 한미 FTA가 우위의 법으로 적용되는 것. 게다가 미국인에 비해 손해를 보는 한국인이 내외국인 차별을 이유로 위헌 심판을 청구하게 되면, 우리 헌법은 더욱 위협받게 될 것. |
(참고 : 한미FTA저지범국민운동본부, “한미FTA Q&A 무엇이든 물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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래칫! 톱니바퀴가 거꾸로 돌지 못하게 막는 장치랍니다.
그런데 '래칫조항'이라는 것이 있어요. 말만 들어도 섬찟합니다.
대한민국은 법적으로는 독립국가이지만,
실질적으로는 초국적 자본가들의 식민지가 되는 것입니다.
IMF 이후 이미 그런 방향으로 달려왔지만,
한미 FTA에 도장 찍는건 완전 판쓸이해서 갖다 바치는 것이지요.
그들은 자유롭게 드나들며 다 빼갈 수 있지만,
우리가 자유롭게 할 수 있는게 얼마나 되겠어요.
지난 10년간 수출은 119%나 늘었지만 수출이익의 90%가 해외투기자본에게로 흘러갔고,
어느덧 우리나라 노동자의 절반이 비정규직이랍니다.
그동안 중간 굵기의 빨대로도 거의 다 가져갔는데,
앞으로는 완전 굵다란 빨대를 꼽아주는 거지요.
위와 같은 독소조항들을 구상해내며 그들이 스스로를 얼마나 대견해하고
낄낄대며 즐거워했을까.. 그런 생각이 드는 겁니다.
정말 기막히게 창의적이지요?
.
.
ⓒ 오마이뉴스 권우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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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이것저것 보다 정리해본 것인데, 독소조항들 더 있을지 모릅니다.
일부 분야에만 따로 적용되는 것도 있고요.
(예 : 정부는 미국에의 자동차 수출관세(2.5%) 철폐로 가격경쟁력을 높일 수 있어 유리하다고 하는데, '합리적 기대이익'이 보장되지 않으면 2.5% 관세철폐를 철회할 수 있는 ‘snapback’이란 독소조항이 있어서, 관세가 다시 부활하지 않게 하려면 우리는 미국차의 품질, 가격이 어떻든 의무적으로 사주어야 한다. )
위에 포함되지 않은 독소조항이 더 있으면 댓글로 달아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인간중심주의에 갇힌 생명과 생태 개념
▲ 오늘날, 우리 주변에서 가장 쉽게 만날 수 있는 동물 개. 예쁘다고 키웠다가 조금 불편하면 내쳐버리는 마음과, 1m 철장에 가둬키워 잡아먹는 마음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인간이 동물에게 이런 고통을 주는 것이 사람에게 고통을 주는 것과는 무엇이 다를까.
ⓒ 옐로우독
녹색대학의 장회익 교수는 지구의 모든 생명체는 서로 어우러져야 온전히 살아갈 수 있는 하나의 '온생명체'라 하며, '나'는 그 온생명체의 일부이고 온생명체가 나와 한 몸이니 환경은 내 몸의 다른 일부라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내 몸의 일부가 내 몸의 다른 일부인 환경을 쥐어짜며, 이를 일러 성장, 발전이라 말한다면 결국 우매하여 자멸의 길을 가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렇게 볼 때 환경보호는 곧 나를 위한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환경을 보호해야 하는 이유가 더욱 명확해집니다. 그럼에도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을 것입니다. '뭐 그렇게 신경 쓰며 살아. 우리 식구나 대충 살다 가지.' 그렇습니다. 사실 나와 내 식구만을 위한다면 환경에 대해 그다지 관심을 갖지 못할 것입니다. ‘우리 식구’만 좀 공기 좋은데 가서 조심해 살다 죽으면 될 수도 있으니까요.
그리 생각하면 환경을 보호하는 것은 나만이 아니라, 이웃을 생각하고 내가 볼 수 없는 먼 후손까지를 생각하는 이타성이 강한 행위가 되는 것이지요. 반대로 환경을 많이 파괴하며 사는 것은 남들에게 죄를 짓는 것입니다. 물론 내 이웃에게 죄를 짓는 것이 곧 나에게 죄를 짓는 것이기도 하고요.
당연히, 사람들, 동식물을 포함한 모든 자연, 세상만물과 모든 공간이 다 환경입니다. 지금부터 그 중에서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고통을 주고 죄를 지으면서도 잘 인식하지 못하며 사는 대상인 동물에 대해서 이야기해보려고 합니다. 달리 말하면, 온생명인 '나'의 몸의 일부가 아프고 썩어들어 가는데 그 부분에는 감각이 마비되어 나는 거의 아픔을 못 느끼고 산다는 것입니다. 지금은 아픔을 못 느끼지만, 언젠가 나는 그로 인해 큰 고통이나 죽음에 직면하겠지요.
동물도 환경의 중요한 일부이지만 외면당하고 있다
▲ 모피 때문에 좁은 공간에서 사육되고 있는 이 푸른여우는 이상행동으로 동료를 살해하였다. 오른쪽은 뇌에 실험장치가 박힌 실험실의 고양이.
ⓒ ? , PETA
지금 우리의 환경 개념 안에는 생명의 개념이 불완전하게 걸쳐 있고, 동물의 개념은 거의 쏙 빠져있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동물의 경우 야생동물 정도가 포함되기는 하지요. 물론 생태계와 야생동물 보호는 아주 중요한 일입니다. 그러나 실제 인간이 동물들과 관계 맺는 방식들을 볼 때 동물문제는 야생동물 이외에도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인간생활 깊숙이 함께 하고 있는 반려동물들, 끊임없이 번식을 강요받는 모견이나 종견들, 농장에서 가둬키워지는 동물들, 모피를 위해 사육되거나 포획되는 동물들, 보신문화로 고통 받는 동물들, 동물원에 전시되는 동물들, 공연에 이용되는 동물들, 싸움·경주 등 사행성 오락에 이용되는 동물들, 동물뽑기나 경품으로 이용되는 동물들, 홍보에 이용되거나 심한 노동을 해야 하는 동물들, 실험에 이용되는 동물들...
그래서 아직은 환경운동가나 생태주의자 중에서도 동물보호를 생태계 유지 차원으로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것은 진정한 공존이 아니며, 동물보호도 인간을 위한 이기적인 차원에 가두는 것입니다. 여전히 인간중심적인 근대적 시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전인류적인 well-being'과 혼돈하는 것이지요.
그것은 세상을 머리로만 사랑하는 것이지 가슴으로도 사랑하는 것이 아니며, 인간이 동물들에게 가하는 '심대하지만 피할 수 있는' 가학의 현실들에 대해 잘 모르기 때문입니다. 사실 동물착취는 심각한 환경파괴와 맞물려 있기에, 인류의 well-being이란 측면에서도 문제가 되지요.
아직은 동물의 문제가 환경론자나 생태주의자들에게도 외면을 당할 정도로 우리 사회의 동물에 대한 인식수준은 낮습니다. 어느 나라나 인간의 사회복지제도가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은 이후에야 동물보호에 대한 관심과 의식이 일반화, 보편화되고 그 보호가 정책화, 제도화됩니다. 이는 일단은 사회의 주된 구성원인 인간의 기본적인 권리와 복지가 어느 정도의 수준에 이른 다음에야 우리의 주위를 둘러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동물보호'에 대해 이야기하면, '불쌍한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배부른 소리를 하냐'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옛날, 백인들이 흑인을 노예로 부려먹던 시절에, 백인들에게 흑인들의 고통이나 권리에 대해 이야기하는 사람은 오히려 멸시를 당했습니다. 지구상에서 동물들도 생명체로서 존중받을 권리가 있지만, 많은 사람들은 종(種)이 다르다는 이유로 그들의 권리를 인정하려 하지 않는 것이지요.
'인권' 개념은 '생명권'의 개념으로 확장되어야 한다
▲ 겨울 내내 밀폐된 실내에 갇혀 우울함에 빠진 고릴라, 갇힌 스트레스로 자기 가슴털을 다 뽑은 앵무새, 회전목마에 매달린 조랑말 등 오락을 위해 이용되는 동물들의 문제도 심각하다.
ⓒ 옐로우독, 환경운동연합 마용운, 전경옥
하지만, 인간의 이성이 점차 진보해가는 시대에 '인권' 개념은 '생명권'의 개념으로 확장되어야 합니다.
엄밀히 얘기하면, '인권' 개념은 '생명권', 나아가 '자연권'으로 확장될 수 있을 터인데, 요즘은 인권과 자연권에 대해서는 인식이 많이 되어가고 있지만, 인권에서 자연권으로 의식이 옮아가기 전에 거쳐야 할 생명권에 대한 관심은 쏙 빠져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동물을 사람의 이용대상으로만 여기고 그리 이용해왔기 때문에, 그에 대한 생각을 바꾸고 싶어 하지 않기 때문이지요.
마크 롤랜즈는 《동물의 역습》에서 "전세계를 뒤흔든 구제역, 광우병, 조류독감 파동은 동물을 상품으로 취급한 결과 일어난 당연한 현상이다. (사람들은) 이윤만을 극대화할 목적으로 동물을 강압적으로 취급한다"며 학대받는 동물에게도 도덕적 권리가 있음을 주장했습니다.
우리 사회는 세상이 궁극적으로 약육강식의 논리로 움직이는 것처럼 가르쳐왔는지 모릅니다. 하지만 실제 동물사회에도 '강한 자만이 살아남을 수 있다는 폭력이론을 뒤집는 이타적 성공전략'을 사용하는 무리들이 많이 있다고 합니다. (비투스 드뢰셔, 《휴머니즘의 동물학》, 이마고, 2003)
이제는 학교에서도 인권 교육과 생명권 교육이 '따로 또 같이' 시행되어야 합니다. 생명권은 인권의 확장된 개념이자 온전한 개념이므로, 생명권 교육과 인권 교육은 서로 상승효과를 일으킬 것입니다.
지금 우리 사회의 생태주의 운동은 보완되어야 한다
▲ 육식동물이라도 다른 동물을 좁은 공간에 평생 가둬키우다 잡아먹지는 않는다. 고기의 대량생산과 대량소비를 위해, 사람들은 동물들을 생명으로 취급하지 않는다.
ⓒ PETA
생태철학의 대두로 근대 이후 대량생산과 대량소비, 개발을 향하여 무작정 내달리는 것을 조금씩이나마 완화시키고 자연의 훼손이 가져올 더 큰 피해에 대해 주의를 환기시킬 수 있는 논리가 생겼습니다.
학교에서도 아이들이 자연을 배우며 좀더 여유롭고 따뜻한 정서와 꿈을 가꿀 수 있게 되었습니다. 즉, '생태적 상상력과 감수성을 지닌 인간형'을 새로운 인간상으로 요구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생태철학과 생태교육은 저의 고개를 갸우뚱하게 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언젠가부터 우리는 아이들에게 풀 한포기, 돌멩이 하나라도 소중히 여기라고 얘기하게 되었습니다. 풀을 쓰다듬어보고 풀은 쓰러지면서 무슨 소리를 내는지, 나무를 두 팔로 안아보고 뺨에 닿는 감촉을 느껴보고 냄새도 맡아보고 수액이 흐르는 소리를 들어보고 나무가 하는 이야기를 들어보라고 합니다.
그리하여 감수성을 섬세하게 발달시킬 뿐 아니라, 다른 존재를 귀하게 여겨 더불어 살아가는 마음을 키우기를 바랍니다. 그런 마음을 갖고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이 되려면 '신령한 기품'인 '영성'을 키워야 한다고 합니다. 신령한 기품은 다른 존재를 자신의 이기적 이익을 위해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이타적으로 존귀하게 여기고 그 존재를 지키려는 행동을 함으로써 얻어진다고 합니다.
그런데 계통상 식물보다 사람과 훨씬 가까운 동물에 대해서는 별로 주의를 환기시키지 않습니다. 사람과 가깝다는 것은 그만큼 사람과 공통점도 많고 교감도 더 많이, 잘 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사람과 공통점이 많은 만큼, 기쁨과 슬픔, 두려움과 불안, 고통과 스트레스의 표현이 인간을 닮았고 우리가 이해하기가 쉽습니다.
우리가 분명히 고통스러울 거라고 거의 확신하는 동물들부터 고통을 제거해주려 노력하지 않으면서, 그보다 하등한 동물, 또는 식물의 고통 운운하는 것은 동물 이용에 대한 기득권을 버리고 싶지 않은 자의 변명이 아닌지요.
분명한 것은 인간이 살기 힘든 세상이라고 해서 동물에 대해 배려할 수 없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무엇이든 여력이 있어야만 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올바른 관점을 갖는 데서부터 시작되기 때문이지요. 정신문화의 건강성, 서로를 배려하고 사람들 간에, 또 생명체 사이에 어떻게 관계 맺는가 하는 이 모든 것들이 중요한 우리의 환경입니다.
끝으로, 함께 새겨보고 싶은 말씀들을 옮깁니다.
“피조물을 대하는 인간의 태도에서 항상 볼 수 있듯이 모든 인간은 나치에 다름 아니다. 인간이 인간 종이 아닌 다른 종들을 자기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만함이, '인종주의'와 '힘'이 곧 정의라고 생각하는 원칙들을 대변한다.” - 헤르만(Her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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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중심에 국한시킨 인권은 결국 인간의 욕망을 극복할 수 없다. 인간의 욕망은 생명을 파괴하고, 생명을 파괴하는 대가로 성취된 인권은 진정한 의미에서 인권이 아니다. 누릴 수 없는 공허한 논리일 뿐이다. 결국, 인권의 범주는 생명이라는 범주와 환경이라는 범주를 포함하는 포괄적인 차원에서 정의되어야 할 것이다.” - 경기민주언론연합 사무처장 이주현
개식용 FAQ 9
1. 기호의 문제가 아닌가요?
2. 반려동물부터 먼저 보호해야 한다고요?
3. 소, 돼지는 안 불쌍한가요?
4. 우리나라의 전통문화가 아닌가요?
5. 문화상대주의도 모르나요?
6. 서양사대주의가 아닌가요?
7. 식용으로 기르는 개가 따로 있지 않나요?
8. 그래도 개고기는 몸에 좋다고 하니까...
9. 차라리 개식용을 합법화하면, 잔인한 학대를 줄일 수 있지 않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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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기호의 문제가 아닌가요?
▲ 당신은 기호의 문제일 뿐이라며 푸아그라를 드시겠습니까? 먹을거리 중에는 단지 기호의 문제로만 치부할 수 없는 것들이 있습니다.
ⓒ ering
개고기 먹는 사람을 배척하거나 특별히 나쁜 사람으로 여기지는 않습니다. 물론 개를 가두거나 묶어 키우거나 도살하거나 사거나 먹는 과정에서, 아주 잔인함을 발휘하는 사람들이 꽤 있습니다. 그러나 그 외의 개를 먹는 대다수는 평범한 우리 이웃들로서, 살아온 경험이 조금 다를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그 식습관을 바꾸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살아있는 곰을 가두고 내내 쓸개를 뽑아먹는 것에 반대하듯 말입니다. 습관을 쉽게 바꿀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뒷받침 되는 것도 중요하겠지요.
일부 개를 먹던 아시아의 국가들도 점차 개식용을 금지해 나가고 있습니다. 싱가포르, 네팔, 홍콩은 개식용이 본디 불법이었고, 필리핀은 1998년에 개와 고양이의 도살을 금지하였습니다. 대만과 태국도 개고기를 먹는 관습이 있었지만 금지되었습니다. 대만은 개도살 금지에서 시작하여 최근에 개고기 거래 시 쌍방을 처벌하고 도살에 대한 벌금을 강화하는 식으로 법을 발전시키고 있는데, 개식용 금지가 이뤄지자 언론의 적극적인 협조 아래 다른 동물들에 대한 보호운동이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습니다.
스페인의 대표적인 전통문화라는 투우도 수도권 지역에서부터 금지되기 시작했습니다. 세계 3대 진미라는 거위간 요리(푸아그라)도 EU에서 퇴출 논의가 되고 있고, 미국 시카고에서는 이미 금지되었습니다. 영국의 여우사냥 금지, 중국의 원숭이골 요리 금지 역시 동물보호단체들의 반대운동을 통해 얻어진 성과입니다.
네, 자기가 싫다고 남까지 하지 말라는 차원이 아니에요. 사회적으로 바람직하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지요. 단지 내가 당근이 맛없어서 싫어하니까 너도 먹지 말라고 하는 차원이 아닙니다. 단순히 기호의 문제로 축소할 문제가 아닙니다.
(푸아그라나 개 등의 식용이 사회적으로 바람직하지 않은 이유는 따로 논할 문제이고요, 여기서는 일단 기호의 차원이 아닌, 다른 차원에서 반대한다는 것만 확실히 합시다.)
.
2. 반려동물부터 먼저 보호해야 한다고요?
▲ 이들은 말이 없어도 눈빛만으로도 뭔가 통합니다. 말 못하는 동물과도 교감을 나누는 일은, 배려의 감수성과 소통과 공감의 능력을 키우는데 큰 도움이 됩니다.
ⓒ KARA
동물학대와 유기동물 문제를 살펴보다 보면, 많은 경우 개식용 문제에 직면하게 됩니다. 집안에서 기르던 동물을 보신탕으로 내다 팔거나 길거리에 내다 버리는 사태는, 동물과의 관계는 하찮게 여기고 동물도 고통을 느끼는 하나의 생명체로서 여기지 않기 때문입니다. 먹어도 되는 동물이라는 인식이 그만큼 그 보호가치를 희석시킬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버리는 일도, 학대하는 일도 대수롭지 않게 여기게 됩니다.
인간 사회 깊숙이 자리 잡고 사람과 더불어 가족으로, 친구로 친밀하게 살아가고 있는 반려동물(개와 고양이)마저 가축으로 전락시켜, 음식 메뉴의 하나로 자리 잡게 하는 것은 아주 위험한 일입니다. 곁에서 자주 만날 수 있는 동물을 함께 살아가는 생명체로서 소중히 여기는 모습보다는, 먹을 수도 있는 동물로서 하찮게 여겨 학대하거나 방치하거나 버리거나, 심지어 개장수에 팔거나 잡아먹는 모습을 우리의 생활환경 속에서 많이 만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환경은 우리의 정서에 나쁜 영향을 미치고, 결국 생명존중과 동물보호 의식의 향상을 기대하기도 어렵게 합니다. 상대를 배려하는 마음이 동물에까지 미치지 못하는 사람은, 조금 이해하기 힘든 어떤 사람에 대해서도 이해하고 배려하는 노력을 쉽게 포기할 수 있습니다.
사람의 말은 못하지만, 동물들도 여러 가지 방법으로 말을 합니다. 우리는 그들의 말을 읽으며, 표현이 힘든 장애인은 물론, 일반적 대인관계에서도 타인의 마음을 읽어줄 수 있는 힘을 키우게 됩니다. 그렇게 배려의 감수성과 소통과 공감의 능력을 키우면서, 정서적 안정과 기쁨 또한 얻을 수 있습니다. 우선 가까이 있는 동물들과, 이러한 긍정적인 관계를 맺으며 따뜻한 사회를 만들어 가는 것은, 무엇보다 우리 인간에게 도움이 되는 일입니다.
돼지 등 여러 동물의 종(種)이 애완용으로 키워지기도 하지만, 그것은 소수의 경우로 보편적이지 않으며 앞으로도 보편화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개와 고양이는 오랜 옛날부터 전 세계 보편적으로 반려동물로 선택되어져서, 반려동물 보호정책이 따로 세워져가고 있습니다. 그들은 반려동물로 선택될만한 특성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만약 오랜 세월이 지난 후 다른 동물이 반려동물로 보편화된다면, 그 역시 식용으로 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처럼 사람의 곁에 사는 반려동물을 어떻게 다루느냐는 사회 전반의 생명존중 의식에 많은 영향을 미치는 일입니다.
개의 식용 사용이 인정되는 한, 반려동물의 보호나 생명존중이란 말은 공허할 뿐입니다. 현행법에도 분명히 동물의 학대와 학살을 금지하고 있지만, 개를 가혹하게 고문하거나 잔인한 방법으로 죽이는 사람을 신고해도 경찰들이 대체로 신속히 나서지 않습니다. 그 개가 “누구네 개냐?”고 묻고는, 그 사람의 개라고 하면, “자기 개를 그렇게 하는 건, 뭐라 할 수 없다”며 회피할 따름입니다. 현행법상 벌금형이나 구류에 처해질 수 있는 경우지만, 일단 경찰들이 협조적인 태도를 보이지 않습니다. 개식용이 인정되는 한, 어떤 개가 반려동물이고 어떤 개는 식용인지의 구분은 모호할 수밖에 없습니다. 결국 어떤 개든 그 사회적 지위가 식용개 수준으로 하락하여, 학대를 방지하기가 어려운 것입니다. 구석구석 많이 키워지는 개라는 동물이 함부로 다뤄져도 제재 받지 않는 현실이, 과연 우리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것일까요?
그러므로 반려동물 식용 근절은 동물보호운동의 첫 단추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동물보호단체들은 반려동물만이 아닌, 실험업계, 축산, 모피산업, 오락산업 등 다양한 영역의 동물들을 위해서도 노력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개만 보호하자는 것이 아니고, 각 동물 종(種)이 처한 현실에 맞추어 문제를 풀어가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개만 보호하느냐?’고 물으며 ‘소, 돼지의 고통’ 운운하는 사람들은, 실은 소, 돼지를 싣고 도살장으로 가는 긴 열차에, 개를 태운 마지막 객차를 연결하자고 하는 것입니다. (‘3. 소, 돼지는 안 불쌍한가요?’ 참조)
3. 소, 돼지는 안 불쌍한가요?1)
▲ 정말 소, 돼지가 인간의 밥상에 어떻게 해서 오르는지 잘 아는 사람이라면, 축산동물의 종류를 하나둘 늘리는 일을 반가와 할 수 있을까요? 돼지는 저렇게 몸에 딱 맞는 우리에 갇혀서도, 스트레스 안 받고 살 수 있는 동물일까요?
ⓒ PETA
곰을 이용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곰을 사육해 웅담을 채취하고 나아가 곰고기도 팔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2005년 녹색연합 ․ 한길리서치의 조사에서 국민의 87%가 곰사육을 반대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 경우에도 ‘소, 돼지는 안 불쌍하고, 곰만 불쌍하냐?’고 하시렵니까?
오로지 이윤만을 위한 공장식 축산의 비극을 알고 계시는지요? 소, 돼지, 닭! 참으로 불쌍한 동물들입니다. 그들은 제대로 몸을 움직일 수도 없는 비좁은 우리 안에서, 온갖 독성물질이 가득한 사료를 먹으며, 최단 기간 안에 비육되어져서, 도살장의 끔찍한 컨베이어벨트에서 슬픈 생을 마감합니다.
동물들이 견디기 힘든 환경 속에서 스트레스를 표출하면 그것이 이윤 저하라는 결과를 낳으므로, 그런 스트레스마저도 표출할 수 없을 정도로 더 조건을 나쁘게 만드는 것으로 문제를 해결해가는 것이 공장식 축산의 경향입니다. 즉 만원버스 같은데서 스트레스로 동료의 꼬리를 물어뜯거나 동료를 쪼면 공간을 넓히는 등 사육환경을 개선해 주는 것이 아니라, 마취도 않고 그냥 꼬리, 이빨, 부리, 발톱 등을 잘라버리는 방법을 취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동물이 한번 축산화되면 복지를 개선하기 위한 싸움은 더욱 힘들어질 것입니다. 더구나 복지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동물의 종류별로, 용도별로, 연령단계별, 성별에 따라 전문적 지식을 갖고 따로따로 싸워서 법제화 해내야 하는 일입니다. 그러니 합법적 축산동물이 아닌 개에 대해서는 개식용 반대운동이 도움이 되는 것이지, 동물의 평등을 고려한답시고 (하향평준화하여) 합법화 해놓고 다시 그 동물의 처우를 생각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기도 하거니와 무의미한 코미디가 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개고기는 ‘반대운동’으로, 소, 돼지, 닭은 ‘채식운동’으로 풀어야 하는 것이지요.
물론 당장 모든 동물을 축산체계에서 해방시키고 싶지요. 그러나 모든 육식을 중단하고 모든 축산업을 폐지하라고 하는 것이 현실성이 있나요? 그러니 육식을 줄여 축산동물의 수를 줄여나가고 그들의 복지를 개선해 나가며, 그 종류도 늘리지 말 것을 주장하는 것입니다. 고기의 대량 생산과 소비를 지속하면서, 축산동물의 복지 개선은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이미 공장식 축산체계는 더 이상 그대로 지속시킬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습니다. 광우병, 구제역, 조류독감이야말로 바로 자연이 인간들에게 주는 경고입니다.
결국 ‘소, 돼지를 먹으니 개도 먹어야한다’가 아니라, ‘사람들과 돈독한 유대관계를 맺으며 살아가는 반려동물(개와 고양이)부터 보호하고, 소, 돼지, 닭들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고 육식을 줄여 그 수를 줄이고 복지를 개선해나가자’라고 하는 것이, 우리가 더 따뜻하고 행복한 세상으로 가는데 도움이 되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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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곰 사육 업자들은 곰을 사육해 웅담을 채취하고 나아가 곰고기까지 팔기를 원한다. 그러나 2005년 녹색연합 ․ 한길리서치의 조사에서 국민의 87%가 곰 사육을 반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민들의 이러한 반대가 소, 돼지와는 달리 곰을 특별히 아끼기 때문일까? 그건 아니다. 곰까지 그렇게 감금해 사육하고 도축하는 것을 원치 않기 때문일 것이다.
마찬가지로 개의 식용사육과 도축을 반대하는 것도 다른 동물에 비해 개를 특별히 아끼기 때문이 아니고, 개까지 감금 사육하고 도축하는 것을 원치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개식용을 반대한다고 ‘소, 돼지는 안 불쌍하고, 개만 불쌍하냐?’고 묻는다면, 똑같이 곰 사육 반대에 대해서도 ‘소, 돼지는 안 불쌍하고, 곰만 불쌍하냐?’고 물어야 할 것이다.
최근의 조사에서는 곰 사육 농가의 80%가 정부가 보상할 경우 곰 사육정책 폐지를 찬성한다고 답했다. 2004년 야생동식물보호법 제정 이후 판로가 부족해졌기 때문이다. 이처럼 개식용 금지를 위해서도 정부가 홍보와 함께 점진적인 정책을 편다면, 국민들과 관련업자들의 생각을 바꿔나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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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우리나라의 전통문화가 아닌가요?
▲ 신광현(1813-?), 개를 부르는 아이(招狗圖),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조선시대
국어사전에는, 예로부터 내려오는 관습 중에서 합리적, 진보적 관점에서 가치가 의심되거나 부정되고 있는 것, 즉 좋지 않은 풍습은, 전통과 달리 인습(因襲), 악습(惡習)이라 정의되어 있습니다.
다산 정약용 선생께서 귀양 간 형님을 걱정하면서 써 보낸 편지 중에 "요즘 사람들이 개고기를 먹는 것에 대해 시비가 있지만, 형님께서 몸이 많이 약하시니 개라도 잡아드십시오." 라며 개고기를 약으로 먹을 것을 권하는 글이 있습니다. 그 시기에도 세간에 개고기 먹는 것에 대해 논란이 많았다는 증거입니다.
단지 역사 속에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전통문화로 포장될 수는 없습니다. 사농공상, 가부장적인 의식과 태도, 남녀 차별 등등 악습들은 이미 버려지거나 타파되고 있습니다. 노비, 남존여비 등과 마찬가지로, 개고기란 단어 역시 역사 속에 묻힐 용어 중 하나일 뿐입니다.
우리의 전통사상 속에는 따뜻한 생명존중의 정신이 있었습니다. 평범한 우리 조상님들도 작은 생물을 해할까봐 마당에 뜨거운 물도 함부로 버리지 않고 식혀서 버리는 등, 기르던 동물이나 개를 함부로 하지 않았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누구에게도 인정받을 수 있는 한글, 한복, 국악, 탈춤, 김치, 된장, 떡, 인삼 등 소중한 문화유산과 전통음식을 비롯하여, 상생, 정(情), 효(孝), 생태, 자연철학 등 소중한 정신적인 가르침을 유산으로 물려받았습니다.
보릿고개 넘기기 어려운 시절 어쩔 수 없이 개를 많이 잡아먹었던 상황과는 달리, 먹을 것이 넘쳐나 비만, 당뇨가 사회 문제로 대두되는 오늘날에 맹신적 보신습성이 이어진다는 것은 시대착오적입니다. 사실 예전에는 동물을 키워도, 지금과 같이 생명체로 인정하지 않고 단지 상품으로만 취급하는 일은 없었습니다. 즉, 현대식 축산 자체가 전통문화와의 단절을 의미하는데, 축산동물의 종류를 자꾸 늘려가자고 하는 것은 명백히 전통문화에 역행하는 일입니다. 동물보호단체들은 개, 오소리, 물개, 말 등의 식용 축산화에 반대하고 있습니다.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와 우리 후손들이 진정 물려받아야 할 전통은 개식용이란 참혹한 죽임의 문화가 아니라, 우리 선조들의 '생명을 살리는' 문화입니다.
5. 문화상대주의도 모르나요?
▲ 극단적인 성차별로 고통 받는 이슬람 문화권 여성들의 저항 의식은, 그것이 ‘고유의 문화’라는 논리 앞에서 무력해지기 일쑤입니다.
ⓒ manas
문화상대주의를 모르는 것이 아닙니다. 문화상대주의는 ‘세계 문화의 다양성을 인정하고, 각 문화는 그것이 속한 문화권 나름의 환경과 역사적, 사회적 상황을 토대로 이해해야 한다’는 견해입니다. 그러므로 타문화권의 전통과 고유문화에 대해서는 기본적인 예의를 갖추어야 하고, 어느 민족이 ‘우월하거나 열등하다’고 말해서는 안 되는 것이지요.2) 이러한 문화상대주의는 소수민족의 자율과 전통도 존중해야 함을 인식시켜, 제국주의의 팽창논리에 맞서왔다는 점에서 소중한 의의가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도덕적 관점에서 어떤 습속이 과연 오늘의 시점에서도 정당한가에 대해 성찰할 때는, 더 이상 문화상대주의가 개입될 수가 없습니다. 무조건 과거에서부터 존재해왔거나 고유의 문화라는 이유가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존재해야 하는 이유가 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여성의 음핵이나 외음부를 잘라내고 봉합해버려 평생 동안, 생리할 때, 부부관계 할 때, 출산할 때 상당한 고통을 받아야 하고, 투표권은 물론 없고, 심지어 성폭행을 당해도 오빠에게 총살당해야 하는 일부 이슬람 문화권 여성에 대한 차별문화를 반대해서는 안 될까요? 지금도 그 사회의 지배계급인 남성들은 그것들이 고유의 문화라며, 문화상대주의를 여성들을 지속적으로 억압하는 수단으로 삼고 있습니다. 또한 그러한 논리에 세뇌 당해, 자신들을 차별하는 문화가 고유의 문화이므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스스로 믿고 있는 무슬림 여성들도 많을 것입니다.3) 마치 우리나라에서 개의 특성을 잘 아는 애견인들조차, 개고기를 먹는 것이 고유의 문화이므로 존중해야 한다는 ‘극단적 문화상대주의’ 논리에 세뇌 당하여, 개식용 비판론이 곧 서구의 문화침략의 논리인양 민족주의적인 반감을 드러내는 경우가 흔치 않듯이 말입니다.
다른 문화권에서 이슬람 문화를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우리들은 그 이슬람 문화의 모든 것을 비난하는 것이 아니고, 그 중 극도의 성차별 문화로 인한 여성들의 고통을 가슴 아파하는 것입니다. 악습을 빌미로 무력침입하거나 지배하려고 해서는 안 되지만, 자신들의 성차별 문화를 타파하기 위해 노력하는 무슬림들과는 연대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그 문화권 내부에서, 종식시켜야 할 관습에 대한 문제제기를 스스로 하고, 공감세력을 넓혀가며 싸울 수 있는 힘을 키워가는 것이겠지요.
개식용은 이슬람 지역의 일부다처제, 여성할례, ‘명예살인’과 같이, 과거의 어느 시점에서부터 현재까지 지속되고 있는 하나의 관습일 뿐입니다. 그것이 지속될만한 가치가 있는 관습인지를 판단하려면, 문화상대주의가 아닌 다른 기준을 찾아야 합니다.
우리나라의 노비제도, 일부다처제, 호주제, 그리고 영국의 여우사냥, 중국의 원숭이골 요리 등은 모두 문화상대주의만으로는 용인될 수 없는 일들로서 이미 금지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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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그런 점에서, 개식용을 하는 사람에게 ‘야만인’이라는 표현을 쓰는 것은 성숙하지 못한 태도이다. 그렇지만, 그런 일부 사람들의 감정적인 표현을 문제 삼아, 개식용 문제에 대한 깊은 성찰을 포기해서도 안 될 것이다. 그동안 심심찮게 개식용 찬반 여론조사를 해온 언론이나 포탈사이트들 대다수가 설문의 내용을 “개식용은 야만행위인가? 고유문화인가?”라는 식으로 선정적으로 제시해 왔다. ‘야만’이란 표현을 거의 빼놓지 않음으로써, 그것이 마치 개식용 반대론의 핵심인양 호도하고, 무조건적인 반감과 피해의식을 조장하며 민족주의 감정을 불러일으켜 온 것이다.
3) ‘이슬람 근본주의(원리주의)’에 대한 이해가 필요한데, 사실 이 용어는 서구권에서 붙인 이름으로 이슬람권에서는 일련의 이슬람화 운동을 통칭, '이슬람 부흥운동'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는 이슬람 교리를 정치·사회 질서의 기본으로 삼아 이슬람교의 원점으로 돌아갈 것을 주장하는 운동으로, 철저한 율법준수, 반(反)외세, 특히 반(反)서양문명, 반미(反美)를 특징으로 하고 있다.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이 본격적으로 세를 확장한 것은 79년 이란 이슬람혁명이 성공하면서부터이고, 그 후 이란의 지원 아래 급속도로 확산되었다.
모든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이 서구세력에 대한 극단적인 폭력을 주장하는 급진주의자는 아니며, 자국 정부의 반서구, 반세속 개혁이 주요 목표이다. 그런데 이슬람 근본주의는 대체로 ‘여성=모성’이라며 여성을 통제한다. 그럼에도 많은 여성들이 자발적으로 근본주의 집단의 열혈당원이 되기도 한다. 이는 근본주의 집단이 서구 제국주의의 이슬람 침략에 대한 분노를 바탕으로, 여성들에게 이슬람 천국 건설에 필요한 ‘전사’ 생산자로서 자부심을 갖게 한 결과라고 한다.
6. 서양사대주의가 아닌가요?
▲ 고향처럼 푸근하고 평화로운 풍경이지요? 일하고 계신 우리 어머니와 늘 그 앞을 지키고 앉아있는 흰둥이 녀석. 어머니는 저리 파를 다듬다 흰둥이한테 신세한탄도 하시고… 흰둥이야말로 어머니 속마음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지 모릅니다. 이토록 해맑은 표정으로 어머니 손등을 핥아주는 흰둥이가 어느 날 한 끼 식사로 전락해도 되는 걸까요?… 개식용의 문제는 ‘사람과 개 사이의 문제’입니다. ‘우리나라와 외국 간의 문제’가 아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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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사람으로서 개식용을 반대하는 것은 서양사대주의라고 하는 분들이 있지요. 외국 사람들이 싫어하기 때문에 개식용을 반대한다고 여기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대단한 오해입니다. 어느덧 개식용이 만연된 우리나라에서, 우리 스스로가 누구보다 그 폐해를 절실히 느끼기 때문에 반대하는 것입니다. 개식용 문제는 ‘사람과 개 사이의 문제’이지, ‘우리나라와 외국 간의 문제’가 아닙니다. 외국 사람이 싫어하고 안하고에 대해서는 사실 관심도 없고 중요하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브리짓드 바르도라는 일개 프랑스인의 발언이 개식용 반대 논리의 전부인 듯, 이제껏 개고기를 옹호하는 많은 사람들이 그에 대한 비판만을 교과서처럼 암기하고 반복해 왔습니다. 바르도 하나 때문에 프랑스의 모든 것에 대해 알러지 반응을 보이기도 합니다. 그는 개식용을 반대하는 사람들을 대표하는 사람이 결코 아닙니다. 그가 어떤 식으로 표현했느냐에 의해, 개식용 문제의 본질이 달라지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한편, 주목받는 외국인이 방한하면, 굳이 개고기를 먹여서 그 식습관을 인정받고 싶어 했습니다. 개고기를 둘러싸고 민족주의 의식에 사로잡혀, 개식용 문제의 본질을 성찰해보기보다, 무조건 ‘누가 우리나라를 욕 하는가’ 하는 식의 피해의식을 드러내는 것이, 개식용을 옹호해 온 분들의 전반적인 정서였습니다. 민족주의는 보편적 가치를 침해하지 않은 범위에서는 특정 국가와 민족의 단결과 번영을 가져올 수 있지만, 그것이 일정한 수준을 넘어 종족주의의 색채를 띠게 될 경우에 문제는 심각해집니다.4) 과거 선민의식이나 지나치게 국익을 앞세우는 논리들이 잘못된 민족주의와 결합되어 어떤 결과를 나았는지를 기억해야 합니다. 그러니, 진정으로 외국을 의식하는 사람들이 누구라 하겠습니까?
다만, 개식용을 반대하는데 있어 앞세울 논리는 아니지만, 현실적으로 개식용이 국가이미지를 치명적으로 실추시키는 요인이라는 지적은 할 수 있습니다. 개는 인간과 아주 친밀한 동물이라는 정서가 밑바탕에 깔려 있어서, 개식용은 수많은 세계인들에게 정서적으로 크게 거부감을 주는 게 사실이니까요. 세계의 어린이들이 코리아(Korea)에 대해 가장 먼저 듣게 되는 것이 ‘개 도살’이라고 합니다. 실제로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7할 이상이 한국인을 연상할 때 ‘개고기’를 떠올렸다고 합니다.
우리나라는 국가이미지위원회까지 두어, 국가의 이미지와 브랜드를 높이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또한 지금은 정부가 앞장서서 한류를 유지, 확대하되, 수준 높은 문화의식으로 격상시켜 나가기 위한 고민을 치열하게 해야 할 때입니다. 그러나 보신습속만 부추기는 개식용은 그와는 정반대의 길을 걷는 것일 뿐입니다. 몸에 좋다면 뭐든 가리지 않는 일부 한국 남성들에 의해, 많은 야생동물들이 밀렵과 남획으로 멸종위기에 처하고, 나아가 보신관광으로까지 주변국들의 환경을 파괴하여 원성을 듣고 있습니다. 그러한 보신습속의 정점에 ‘개고기’가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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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우리에게 보편적 가치는 무엇인가”
김선태 한국경제신문 경제교육연구소 연구위원. <한국경제신문> 2007.4.27
7. 식용으로 기르는 개가 따로 있지 않나요?
▲ 식용 개 농장에 함께 갇혀, 마주보고 위로를 나누는 시베리안허스키와 도사견
ⓒ 옐로우독
큰 개는 보신탕으로, 조그만 개는 개소주로... 유기견이나 경매장에서 유찰된 개들이 식용으로 거래되는 일들이 이미 여러 차례 언론을 통해 보도되었습니다.
개고기는 식용견만 사용하는 것이라며 마치 개라는 종(種) 안에, 잡아먹어도 되는 견종이 따로 있는 듯이 말하는 것은, 개고기 산업자와 일부 옹호자들이 자신의 영리와 편의를 위해 이기적인 발상으로 꾸며낸 거짓말일 뿐입니다.
모든 개는 개들 특유의 속성을 똑같이 지니고 태어납니다. 동일한 개도 그 개를 잡아먹으면 ‘식용견’인 것이고, 품에 안으면 ‘반려견’인 것입니다. 아무리 정부가 임의로 용도를 부여하고 개를 식용과 애완용으로 구분하여 법 적용을 한다고 해도, 개라는 동물이 부여된 용도에 따라서 고통을 느끼는 정도가 달라지고, 타고난 습성이 달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개들은 견종에 따라 겉모습만 다를 뿐 기본적인 속성은 다 같으니, 식용견과 애완견으로 구분하는 것은 마치 피부색에 따라 대우를 달리하고 탄압하는 인종주의와 다를 바 없습니다. 어떤 개든 개라고 하면 개 본연의 속성은 다 똑같습니다.
2008년부터 시행되는 동물보호법 개정안은 ‘가정동물’ 관리에 집중되어 있고, 그나마 보호규정이 허술합니다. 동물등록제의 등록대상동물이 ‘가정에서 기르는 개’로 정해져, 농장은 물론, 가게나 회사에서 기르는 개들까지 제외되었습니다. 주유소나 철물점 한켠에서 이도저도 아니게 묶여 살면서, 때로는 ‘심심풀이용’으로 학대를 당하다가(이마에 나사를 박히기도 함), 복날이 되어야 비로소 1m의 줄에서 해방(?)되는 개들은 등록의무대상이 아닙니다. 개식용 문제를 피해가려는 정부가 도출한 지혜로운(?) 결론이지요. 반려동물의 대상을 모든 개와 고양이로 하지 않는다면, 그 어떤 장치도 실효성을 갖지 못할 것입니다. 즉, 여기저기 산재한 채 무수히 키워지고 번식되는 그들을 보호, 관리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8. 그래도 개고기는 몸에 좋다고 하니까...
▲ 진정한 보양식은 고기음식이 아니라, 통곡물, 채소, 버섯, 해조류, 과일, 견과류들을 골고루 먹되 소식하는 것입니다.
ⓒ 금낭화
개고기는 고단백, 고칼로리일 뿐, 특별한 효능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현대 사회는 하루 세끼 정상적인 식생활을 하는 사람이라면 특별히 보양식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지금 우리나라는 성인 비만 인구만 1000만 명을 넘어서고 당뇨환자도 1000만 시대를 향해 가고 있습니다.5) 지나친 영양공급으로 다이어트가 트렌드가 된지 오래입니다. 그러니 보양식으로 인한 칼로리, 단백질, 지방의 과잉섭취는 오히려 건강을 해칠 뿐입니다. 더구나 보통 집에서 먹는 한 끼 식사가 500~700kcal인데 반해, 술까지 곁들여 보양식을 들면 4000kcal가 보통이고, 맘 놓고 먹으면 10000kcal까지 섭취하게도 된다고 합니다.
또한 한방에서 개고기는 소음인 외의 체질들에는 다 맞지 않는 음식이며, 특히 열 많은 사람한테는 독이 된다고 합니다. 흔히 하듯 생마늘에 소주까지 곁들이면 더욱 위험하다고 하지요.
류병호 식품공학과 교수는 실험결과 개고기가 다른 고기들에 비해 정력에 좋다는 성분은 찾아보기 힘들었으며, 소화가 잘 된다는 것도 사람의 인공위액으로 각종 육류를 실험해본 결과 큰 차이가 없었다고 밝혔습니다. 오히려 성호르몬의 합성에 관계되는 지방 함량은 개고기가 다른 고기에 비해 떨어지므로, 정력에 좋다는 것은 허구라는 지적도 있습니다. 노화방지 전문가인 권용욱 의학박사도 “과거 영양결핍 시절에는 고열량, 고지방식이 정력에 도움 되었으나, 현대 영양과잉 시절에 고열량, 고지방식을 먹으니 오히려 정력을 떨어뜨린다. 개고기, 뱀탕, 해구신, 웅담, 사슴피 등이 정력에 도움이 되는 것이 아니라, 정말로 정력에 좋은 음식은 오신채, 곡류, 버섯, 견과류, 해산물이다.”라고 하였습니다.6)
또한 보양식으로 인한 단백질 과잉섭취는 오히려 골다공증과 신장결석의 위험성을 증가시킵니다. 뿐만 아니라, 뜨거운 탕류는 소금이 아주 많이 들어간다는 점에서도 위험합니다. 결국 육류섭취를 줄이고 소식과 채소, 과일 위주의 섬유질이 풍부한 식품을 위주로 한 식단이 건강의 비결입니다.
진정한 보양식은 고기음식이 아니라, 된장찌개와 콩국수, 버섯전골, 비빔밥, 나물, 해초무침, 쌈밥과 같이 평상시 우리가 즐겨먹는 음식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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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비만은 암, 심혈관계 질환, 당뇨병의 결정적 원인으로 작용하고, 당뇨병은 점차 반신불수, 심장병, 실명, 다리절단, 인공투석이라는 합병증을 동반할 수 있는 무서운 질병이다.
6) 권용욱 박사는 “보신탕도 특별한 성분이 없고, 옛날 못 먹던 시절, 영양결핍시절에 만만한 것이 개이기 때문에, 여름에 힘 빠지고 땀 흘릴 때 고열량 음식을 먹으니 기운 난다고 생각한 것으로 절대 정력증강식품은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9. 차라리 개식용을 합법화하면, 잔인한 학대를 줄일 수 있지 않나요?
▲ 자극에 반응하여 짖어대는 개들의 귀찮은 본성을 억압하기 위해, 현재 일부에서 암암리에 행해지는 고막 뚫어 귀머거리 만들기 등의 시도가, 합법화되면 유용한 기술로 검토되지 않는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만화 “개고기 합법화의 진실은?!" 중에서.
ⓒ KARA
합법화된 축산동물들이 얼마나 참혹하게 사육되다 참혹하게 도살되는지 제대로 안다면, 그리고 그 사육과 도살방법이 효율과 이윤만을 위해 점점 더 악화의 길을 걸어왔다는 것을 안다면, 도저히 그런 말을 할 수 없을 것입니다. 개도 축산화되면 이윤추구를 위해 보다 더 교묘한 학대방법이 점차 개발되어, 더 열악한 사육조건에 처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합법화는 ‘위생’을 담보해 주지도 못합니다.) 활동성 강한 개들이지만, 살찌우려고 운동은 제한될 것이며, 뜬장에서 땅 한번 디뎌보지 못하고 살다 죽게 될 것입니다. 짖지 못하게 고막을 뚫거나, 제한적인 급수를 통해 활동성을 둔화시켜 사료를 덜 먹게 하는 악덕업자들은 지금도 있고, 합법화된다고 단속할 수 있는 일들이 아닙니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개 도살 방법으로 사용된다고 알려진 전기충격법도 단번에 죽지 않는 경우가 많은 고통스런 도살법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더욱 문제는 합법화되어도 개는 아무나 쉽게 키우는 동물이라 음성적으로 도살하는 것을 막기 힘들다는 것입니다. 개를 산채로 태워 죽이기 위해 개를 묶는 장치가 외진 곳에 감춰진 것이 발견된 적이 있습니다. 개가 심한 고통으로 아드레날린을 분비해 육질이 좋아진다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또한 산채로 태우면 개가 고통스러워 알아서 몸을 돌려주니 털을 태우기 쉽고, 죽임과 털 제거를 한꺼번에 할 수 있기 때문에 그리 하는 것입니다. 작은 개들에 사용하는 더 잔인한 방법들이 있지만, 차마 여기서 언급하지는 못하겠습니다. 이것들이 모두 전기로 도살하면 피가 굳어 맛이 없다는 이유로, 그리고 더 편하게 죽이기 위해 사용하는 방법들입니다! 그러니 아무런 죄책감 없이 좀 더 맛있는 고기를 만들거나 조금 더 쉽게 죽이려고 동물에게 최소한의 배려도 하지 않는 사람들을, 개식용 합법화 정책과 부실한 동물보호법으로 어찌 막을 수 있단 말입니까!
현행법에 이미 잔인한 도살 행위나 학대 행위 금지 조항이 있음에도, 실제로 이런 잔인한 개 도살 행위로 처벌받은 사례가 거의 전무합니다. 그러니 개를 잡아먹어도 된다고 합법화까지 한다면, 고통 속에 살다 비명에 죽어가는 개들은 훨씬 더 많아질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또한 활동성 강하고 예민한 개들이 식용으로 가둬키워지는 것 자체가 개선의 여지가 없는 잔학한 학대상황이므로, 합법화가 사육과정에서의 학대를 줄일 것이라는 기대는 전혀 할 수 없습니다. 다시 말해, 개는 그 어떤 동물들보다도 좁은 공간에 가둬키우는 축산체계에 맞지 않는 동물입니다. 그런데 개의 축산화는 이미 이윤추구의 법칙에 의해 ‘맹수’를 키워먹는 사태에까지 이르렀습니다. 몸집을 키우려고 투견으로 품종 개량된 도사견 등과 누렁이들을 교배시킨 맹견들이 이미 개 농장의 70%를 차지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스트레스와 이상행동을 더욱 많이 나타내고, 사람을 물어 죽이는 일까지 여기저기서 빈발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욕심이 어디까지 치달아야 하는지 깊이 성찰해 봐야 할 문제입니다.
더구나 합법화된다면 ‘개는 먹어도 되는 동물’이란 인식의 팽배로 인해, 어떤 목적으로 키우기 시작했든 개라는 동물에 대한 산발적인 학대와 잔학 행위는 더욱 만연될 것이고, 오히려 그런 행위에 대한 정부의 규제 자체가 불가능한 상황이 초래될 것입니다.
맺는 글
당장 개고기에 대한 고민이 너무 버겁다면 좀 유보하시더라도, 이 기회에 모든 축산동물들에 대해 다시 생각하고, 고기들이 어떤 과정을 거쳐 우리의 식탁에 오르게 되는지에 대해 관심을 가져주시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이 자료가 어떤 고기든 그 섭취를 조금씩 줄여 나가는 계기라도 되어 주기를 간절히 바라며 끝을 맺습니다. / KARA
"그렇다. 문제는 경제, 신자유주의다"
[2007 대선이야기]"그들의 남북경협론은 트로이의 목마"
2007-08-27 오전 8:26:20
"대통합민주신당을 중심으로 한 범여권은 오는 대선을 평화라는 코드를 통해 한나라당과 차별화해서 민심을 끌어오려고 하고 있다. 그러나 한나라당의 새로운 대북정책을 주도한 정형근 의원이 냉전세력의 달걀 세례를 맞은 것이 잘 보여주고 있듯이 햇볕정책은 한나라당도 거부할 수 없는 대세라는 점에서 이를 통한 차별화 전략은 잘못된 것이며 올 대선의 핵심의제는 경제, 정확히 말해 김대중, 노무현 정부가 본격적으로 도입한 시장만능의 신자유주의, 특히 이에 따른 양극화 문제이다."
한 달 전(7월 23일) 내가 바로 이 지면에 "멍청아, 문제는 '평화'가 아니라 '경제'야"(☞칼럼 보기) 라는 글을 통해 주장한 내용이다.
이 글의 내용과 관련해, 그동안 세 가지의 변화가 있었다. 하나는 학계와 사회운동의 원로이고 평소 존경해온 주종환 동국대 명예교수가 나의 글에 반론을 제기한 것이다(<한겨레>, 2007년 7월 25일자의 "문제는 경제라고요?" ☞칼럼 보기). 다른 하나는 노무현대통령과 김정일 북한국방위원장간의 남북정상회담이 결정된 것이다. 마지막으로 한나라당 경선에서 이명박 후보가 승리한 것이다.
주 교수는 한나라당의 변신은 진정한 것이 아니며 경제가 중요하지만 "일본과 중국의 협공 속에서 방향을 잃고 비틀거리는 한국경제의 활로가 남북의 협력 속에서 새로운 지평을 개척하는 것 말고는 좀처럼 찾아지지 않는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경제문제의 활로를 남북간 평화정착과 교류협력에서 찾는 것이 정답"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다시 말해 "대선의 가장 중요한 담론은 경제와 평화의 결합 속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오랫동안 실천운동에 몸담아온 학계원로답게 경청하고 깊이 생각해볼 주장들이다. 그러나 동의할 수 있는 주장은 아니다.
우선 한나라당의 변신이 진정한 것이 아니라는 반론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나 역시 7월 23일자 글에서 한나라당의 변신이 얼마나 진정한 것인지 불투명하다는 것을 전제한 바 있다. 그러나 바로 "한나라당조차 대선을 의식해서 이 같은 포장을 하고 있다는 사실 그 자체가 바로 햇볕정책의 기조가 시대적 대세라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다"고 썼다.
핵심은 한나라당의 변신이 진정한 것인가, 아닌가가 아니다. 문제는 "한나라당의 변신은 거짓이며 한나라당은 여전히 냉전적인 수구꼴통당이니 한나라당을 찍지 말라"는 주 교수와 범여권의 담론에 국민들이 얼마나 호응할 것이냐는 것이다. 별로 호응이 없을 것이라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국민들의 주된 관심은 "누가 나의 생존권 문제를 해결해줄 것이냐"이다. 오죽했으면 박정희 향수가 되살아나겠는가?
남북정상회담, 대선 영향 없다
이와 관련, 주목할 것은 이명박의 승리이다. 그 많은 도덕적 의혹에도 불구하고 그저 일자리를 주고 먹고 사는 문제만 해결해주면 그만이라는 것이 민심이다(물론 그가 일자리를 주고 신자유주의의 문제들을 해결해주지는 못할 것이 뻔하지만).
또 박 후보보다는 상대적으로 유연한 이후보가 냉전적 보수의 상징인 박근혜 후보를 누르고 승리했다는 것은 한나라당의 과거와 같은 냉전적 노선으로는 살아남을 수 없다는 것을 그 지지자들도 인식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실 정형근 의원이 주도한 신대북정책이 경선과정에 나와 꼴보수 지지층을 의식하느라고 조심을 했지만 이제 국민을 상대로 한 본선이 시작된 만큼 이 후보는 중도표를 잡아오기 위해 본격적으로 전향적인 대북정책을 내놓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는 이 후보가 10월로 연기된 남북정상회담이 혹시라도 대선에 영향을 미칠까하는 우려에서 정상회담에 대해 던지고 있는 견제구와는 별개의 것이다. 참고로 최근의 북한수해와 관련해 반북의 상징인 뉴라이트 단체들까지도 북한돕기에 나서겠다고 선포하고 나선 점에 주목해야 한다.
남북정상회담도 마찬가지다. 남북정상회담이 얼마나 획기적인 결과들을 가져올 것인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남북정상회담이 일시적으로는 다른 의제들을 압도하고 세상을 떠들썩하겠지만 대선에는 별 영향이 없을 것이다. 국민들은 평화와 남북관계의 전진을 당연시할 것이다. 대선이라는 선거공학의 입장에서 본다면 차라리 북한 핵사태가 다시 심각해져 전쟁에 준하는 상황이 벌어지는 것이 오히려 범여권으로서는 "한나라당이 집권하면 전쟁이 일어날 것"이라고 국민들에게 겁을 줄 수 있다는 점에서 오히려 유리할 것이다.
남북경협이 신자유주의의 대안인가?
다음에 집어볼 것은 남북경협 등을 통해 평화와 경제를 결합시켜야 한다는 주 교수의 주장이다. 이는 단순한 평화론보다 진일보한 것이다. 그러나 이 주장이 이명박류의 경제대통령론에 맞서서 당장 경제를 살려 우리의 생존권을 보장해달라는 다수 서민들의 표를 얼마나 끌어 올 수 있을지 회의적이다.
그러나 문제의 핵심은 이 같은 선거공학적 문제점이 아니다. 진짜 문제는 이 주장이 우리 경제문제의 핵심이 단순히 중국과 일본 사이에서 샌드위치가 되고 있다는 것 이상의 위협, 즉 신자유주의라는 점을 보지 못하고 있다. 다시 말해, 개성공단과 남북경협이 신자유주의의 대안이 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우리의 신자유주의를 그대로 남겨 놓은 상태에서의 남북경협은 오히려 월스트리트의 금융자본과 한국재벌이 중심이 된 한국의 종속적 신자유주의의 북한으로의 영토적 확장이 되고 말 것이다(이 점에서 김대중 정부 이후 진행되고 있는 햇볕 기조는 한반도의 탈냉전이라는 긍정적 계기와 신자유주의의 확대, 심화라는 부정적 계기가 공존하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물론 한국의 다수 민중이 아니라 재벌과 기업의 입장에서는 북한의 싼 노동력을 이용하는 신자유주의적 북한 흡수통일 전략이 현재의 자본축적의 위기를 돌파할 수 있는 중요한 축적전략일 수 있다. 사실 1990년대 이후 최고의 통일세력은 더 이상 한총련도, 범민련도, 주사파도 아니며 현대와 개성공단으로 상징되는 재벌과 자본이다.
자본의 입장에서 파업 한 번 안하는 온순하기 짝이 없고 언어 문제도 없는 양질의 노동력을, 그것도 서울에서 두 시간 거리에서 월 70달러(개성공단의 임금)에 살 수 있는데 이보다 더한 횡재가 어디 있는가?
신자유주의는 분명히 악랄한 반인간적인 체제이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봉건적 왕정'의 변형에 불과하고 인민의 최소한의 생존권도 보장해주지 못하는 북한체제에 비해서는 차라리 '인간적'이라고 생각한다. 이 점에서 북한이 남한의 기업들의 신자유주의적 축적체제에 편입되는 것이 '사회주의로부터 자본주의로의 역사의 퇴보'가 아니라 오히려 '역사발전'이라고 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결국 중요한 것은 관념적 이념이 아니라 구체적인 민중의 삶이 아닌가("모든 이론은 회색이고 살아 있는 나무는 푸르다"[괴테, 파우스트 중]). 다시 말해, 신자유주의적 남북경협이 단기적으로는 북한민중에게 도움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문제는 남북경협이 남한사회, 남한 노동자들에게 끼칠 영향이다.
한국의 기업들이 월 70 달러짜리 북한노동자들을 찾아 공장을 옮기면서 남한의 노동자들은 일자리를 잃고 노동운동은 더욱 힘을 잃어갈 가능성이 크다. 그러면 노동운동이라는 견제추마저 사라진 신자유주의의 횡포는 더욱 기승을 부릴 것이다. 그리고 그 같은 움직임이 심화되면 민주노총이 조선일보와 마찬가지로 남북경협 반대운동에 나설 수도 있다.
이 점에서 주 교수가 이야기하고, 일부 범여권 주자들이 주장하는 남북경협을 통한 평화와 경제의 결합은 자본의 축적전략, 신자유주의적 자유주의 세력의 경제전략일 수는 있지만 민중운동과 진보진영의 전략일 수는 없다.
이 같은 계급분석이 동반되지 않고 중국과 일본에 끼여서 위기에 처한 '한국'이라는 추상적 국가주의나 민족론에 기초한 '평화와 경제의 결합론'은 한미 FTA가 재벌에게는 막대한 이득을 주지만 민중들에게는 생존권의 위협을 가져다준다는 계급분석을 사장하고 중국과 일본에 끼인 '한국'이 살아남기 위한 올바른 선택이라고 주장하는 노무현 정부의 논리를 그대로 빼어 닮았다. 다시 말해, 물론 민족은 중요하지만 내부분석을 동반하지 않고 중국과 일본에 끼인 한국이라는 식으로 분석단위를 국가로 한 분석과 처방은 넘어서야 한다.
문제는 남북 경제협력 그 자체가 아니라 어떤 경제협력이냐는 것이다. 한마디로 신자유주의적 경제협력은 우리(중국과 일본에 대항하는 한국 또는 한민족이라는 추상적 우리가 아니라 남한 민중 나아가 남북한 민중이라는 우리)의 대안이 아니다.
다시 한 번, 문제의 핵심은 경제라는 이름의 신자유주의이며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는 경제와 평화의 결합도 추상적 미사여구에 불과하다는 점을 강조하고자 한다. 아니 신자유주의의 확대, 심화를 은폐하는 트로이의 목마가 되고 말 것이다. 이번 대선의 역사적 과제는 평화와 경제의 결합이 아니라 신자유주의에 재갈을 물리는 것이다.
손호철/서강대 정외과 교수
http://www.pressian.com/scripts/section/article.asp?article_num=60070826144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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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우크라이나에서 태어나 구소련 체제를 겪은 후 스웨덴으로 이주해 살고 있는데, 어려서 부모를 잃고 5번이나 이혼하는 등 거듭된 불행으로 '정신세계가 불안한 작가'라고 보도되고 있습니다. 2003년 스톡홀름에서 첫 전시회를 열 때 PETA(People for the Ethical Treatment of Animals)의 캠페인 코디네이터가 5일 밤낮으로 철야 항의를 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전시회 때마다 동물학대 논란을 일으키면서도 작품이 매진되어, 작가는 더욱 자만해져 있는 듯합니다. 정신세계가 불안한 작가의 엽기적인 전시회 국내 동물보호단체는 그의 작품과 그 전시를 기획한 화랑이 논란을 통해 주목받아 오히려 그들이 원하는 방향의 관심이 늘어나지 않도록 시위와 같은 방식은 삼가고, 그 전시회에 대해 항의해 줄 것을 각계에 호소하며 화랑 앞에서 조용히 전단지를 나눠주고 있습니다. 동물학대와 생명의 무참한 남용임이 틀림없는 이런 전시회가 아시아에서는 처음으로 한국에서 성사된 된 것에 부끄러움과 치욕을 금할 길 없습니다. 그는 스스로 꽃을 꺾는 것과 토끼를 죽여 목을 자르거나 새의 눈알을 뽑아내는 엽기적인 행위가 어떻게 다른지 모른다고 하는 사람입니다. 그는 우선 예술을 하기 이전에 인간으로서의 연민과 여자로서의 모성애부터 되찾아야 합니다. 그 전시물들은 예술작품이라기보다는 작가의 병든 정신의 반영에 불과하며, 따라서 그 작가에게는 전시회보다 정신과 상담이 더 시급합니다. 그는 작품을 위해 동물을 직접 죽여 머리를 자르고 장식을 하여 꽃병에 꽂는다고 합니다. 설사 이미 죽은 토끼를 주워와 머리를 잘랐거나 죽은 새의 눈을 뽑아냈다고 해도, 이는 생명에 대한 최소한의 경외심을 상실한 것입니다. 죽은 토끼의 머리와 죽은 새의 눈은 자연으로 돌아가야 하며, 여러 사람들의 구경거리가 되도록 이상한 화병에 그것도 리본을 매서 모욕을 주며 꽂아 놓을 권리는 그 누구에게도 없는 것입니다
그의 작품에 대한 대부분의 네티즌의 반응을 보면 '예술이라 할 수 없다'는 의견과 '의미 없는 구역질나는 행위'라는 의견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오히려 문제는 평론가들이나 기자들입니다. 그의 작품을 '독특한 예술'이며 '시니컬한 풍자'라고 소개하는 비평가들은, 그런 사진의 전시와 만인들에게 어린 돼지를 찢어 죽이는 행위를 보여주는 퍼포먼스가 과연 무엇이 다른지 얘기해줄 수 있을까요? 그는 이천시민이 '돼지 퍼포먼스'를 자행할 때 가지고 있던 생각처럼, '고기를 먹으면서 이런 일이 대수냐'라고 생각하며 그런 흉악한 작품을 만들었을 것이라 짐작됩니다. 고기를 먹는 행위가 그렇게 흉악한 일이라고 여기면, 차라리 고기를 안 먹거나 덜 먹으면서 축산방식을 개선하도록 요구하는 예술을 해야 할 것입니다. 고기 먹는 거나 다를 바 없다며 동물의 몸을 아무렇지도 않게 재료로 삼는 일은 결코 아름답지도 않으며, 아무 의미도 가질 수 없어 창조활동이라 할 수도 없습니다. <세계일보>의 편완식 문화전문기자는 그의 작품이 '고기를 먹고 가죽을 애용하고 동물실험을 거친 제품을 써온 우리의 실상'을 은유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에덴몬트가 '동물을 통한 독성실험의 결과가 인간에게도 비슷하게 나타나는 경우는 5~25%밖에 되지 않는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이 있을까요? '동물실험은 소수 기득권 세력의 이익을 도모하고 유지하기 위한 재원낭비일 뿐, 거의 불필요할 정도로 무효하고 인간에게 위험하다'는 주장에 동의하고 있는 걸까요? 정말 그가 동물실험과, 공장식 축산과, 모피와 가죽 생산의 실상을 제대로 알고 있다면 그런 작품을 만들 수 있을까요? 다시 말하지만, 그는 "작품을 만들기 위해 동물의 목을 자르는 것과 꽃꽂이를 위해 꽃을 꺾는 것이 무엇이 다르냐"고 합니다. 아직까지 통증을 느끼는 고등신경체계는 동물에서만 확인되었습니다. 식물은 동물에게 먹힘으로써 씨앗을 퍼뜨리고 번식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경우가 많습니다. 잔혹행위는 결코 예술일 수 없어 '동물의 몸을 자르는 것과 꽃을 꺾는 것이 다를 것이 없다'는 그의 말은, 수많은 보통 사람들도 꽃꽂이를 하듯 동물을 죽여 작품을 만들어도 된다는 뜻이 될 것입니다. 예술행위는 인정받은 작가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니까요. 동전 한 닢이면 병아리를 손에 넣을 수 있는 좋은(?) 교육환경에서 자라는 우리의 어린이들도 예외가 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는 '병든 토끼를 사용하기도 하고, 인간적으로 생명을 끝내기 위해 수의사의 지도를 받고, 사람들이 먹지 않는 머리와 눈 등을 사용했다'는 등 스스로가 합리적으로 행동하고 있다고 믿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렇게 한다고 해서, 동물의 몸을 가지고 꽃꽂이처럼 사용하는 것이 사회에 미칠 폐해에 대해 작가는 고민할 필요가 없는 걸까요? 수많은 나비의 날개로 꽃잎을 구성한 작품들도 철부지 어린 아이의 '금지된 장난',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거늘, '독특한 발상'이며 '위선적인 인간사를 꼬집는' 풍자적 작품이라며 예찬을 받을 수 있는 것인가요?
"적어도 예술가라면 나와 상대방 그리고 이 세상과 나, 이 우주와 나의 관계 정도를 먼저 처절하게 숙고한 뒤 작품을 만들어나가야 하는 것이 아닌지, 같은 창작활동을 하는 한 사람으로서 여쭈어봅니다." 그렇습니다. 인위적으로 죽이지 않고 자연적으로 죽은 동물의 시체를 재료로 작품을 만들지라도, 그 결과물이 세상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깊이 숙고해야 하는 것입니다. 화랑 측은 지금이라도 그 전시회를 폐쇄하고 홈페이지 관련 내용들을 삭제하기 바랍니다. 아울러 장삿속만 앞세운 이번 전시기획에 대해 국민들에게 사죄하고, 국민들의 정서를 순화할 수 있는 건강한 작품들로 '속죄전'을 열기 바랍니다. 인터넷에 그의 작품 사진을 올려놓은 모든 매체와 카페, 개인 블로거들도 그 사진들을 내리기 바랍니다.
그런 퍼포먼스는 미친 짓이지만 사진은 예술이 되나요? 에덴몬트 사진전에 취재 나왔다는 한 총각이 그랬다는군요. 자기는 토끼를 키우지만, 그 사진들은 그저 예술일 뿐이라 이해한다고. 또 예술이라며 보여주는 동영상이라면 어떨까요? 저는 갑자기 스너프 필름(snuff film)이 생각나네요. 화랑 고객과 콜렉터들께도 부탁드립니다. 그의 작품들을 구매하지 말고, 혹시라도 이미 구매나 예약을 했다면 취소해주시기 바랍니다. 시민 여러분, 박여숙 화랑에 항의해주세요! 간곡한 편지도 보내주시고요.(02-549-7574~6, 팩스 02-544-2500, parkryusook@paran.com) 이런 작품 행위와 전시 기획이 얼마나 문제가 되는지, 여러 매체를 통해 알려주세요. 아무쪼록 저의 호소를 외면하지 마시고, 이런 잔혹한 것들은 우리 사회에 발을 붙일 수 없다는 것이 상식이 될 수 있도록 작은 힘이 되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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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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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법체계에서는 인정되지 않는 "간접수용에 의한 손실보상"이 미국인 투자자에게는 인정됨. 따라서 내외국인 차별. (경북대 행정학과 교수, 연락처 yskim@knu.ac.kr)부가 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