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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7/03/31
    20070330 -- 한미 FTA중단 촉구 촛불문화제
    땅의 사람
  2. 2007/03/29
    20070329 -- 신문사진보기
    땅의 사람
  3. 2007/03/29
    20070328 -- 한미FTA 중단촉구 촛불문화제
    땅의 사람
  4. 2007/03/26
    20070324 -- 거기 마을 하나 있었다. (대추리 935일째)(1)
    땅의 사람
  5. 2007/03/26
    20070326 -- 신문사진보기
    땅의 사람
  6. 2007/03/26
    20070325 -- 한미 FTA를 반대합니다.
    땅의 사람
  7. 2007/03/23
    20070321 -- 광화문 한미FTA반대 촛불문화제(동영상)
    땅의 사람
  8. 2007/03/18
    20070317 -- 국제공동반전행동(3)
    땅의 사람
  9. 2007/03/16
    20070316 -- 신문사진보기
    땅의 사람
  10. 2007/03/13
    20070310 -- 제주 4.3 유적답사(1)
    땅의 사람

20070330 -- 한미 FTA중단 촉구 촛불문화제

한미 FTA중단 촉구 촛불문화제

시청에서 경복궁사거리까지

 

FTA협상 시한이 48시간 연장되었다고 합니다.

그렇게 연장해서라도 하고 싶으신지요...

국익을 최우선으로 한다고 하는데...

 

당신들은 이라크에 파병할때도 국익때문이라 했고 이미 죽어가고 있는 농업을 죽이면서까지

자동차를 더 팔아먹으려 하는것도 국익이라 합니다.

 

대체 당신들이 생각하는 국익은 누굴위한 국익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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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329 -- 신문사진보기

어떤 사건에 대해 어떻게 보도를 했나를 보면 그 신문의 논조를 알 수 있지만
또한 어떤 사건이 기사화 되지 않았나를 보면 그 신문의 논조를 알 수 있습니다.

어제 밤 3,000여명이 모여 한미 FTA 중단을 촉구하는 촛불 문화제가 열렸습니다.
9개 중앙 일간지를 뒤져보니 조선, 국민, 동아, 세계, 중앙에서는 사진 한 장,
기사 한 줄도 보도를 하지 않았습니다.

반면 기사가 실린 신문을 보면 사진 한 장에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한겨레사진은 앙각으로(올려찍기) 촬영해서 거대함, 위압감과 더불어 어두운
밤하늘의 먹구름까지 잘 표현했습니다.

경향의 사진에서는 특수 촬영기법을 사용한 사진이 실렸습니다.
좋다 싫다를 떠나서 상당히 자극적이고 내용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서울신문의 사진은 광각렌즈를 이용해 시청의 모습과 문화제에 참여한 무수히 많은
촛불을 같이 표현했습니다.

한국일보는 단순히 사건보도에 그치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진제목에 나름의 주관이 들어있습니다.


필리핀에서 탁아소 원장이 탁아소 원생들과 교사를 인질로 잡고 인질극을 벌였습니다.
다른 신문에서는 해외 토픽수준의 기사로 다뤘지만 동아에서는 깊이 있게 다뤘습니다.

솔직히 이 기사를 보면서 가슴깊이 느껴지는 안타까움에 울컥했습니다.
이게 남일 인가요?

 

 

△한겨레신문 6판 1면

 

△경향신문 45판 9면

 

△서울신문 20판 1면

 

△한국일보 30판 3면

 

△동아일보 45판 A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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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328 -- 한미FTA 중단촉구 촛불문화제

한미 FTA반대 국민 촛불문화제

서울시청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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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324 -- 거기 마을 하나 있었다. (대추리 935일째)

2007. 3. 24.

대추리 935일째 촛불문화제

 

이제 더 이상 이땅에서 주민의 소원을 담은 촛불문화제를 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뜻이 있는 모든이의 마음속에 끝까지 촛불은 타오를 것입니다.

 

- 대추리, 도두리의 투쟁의 기록을 모아 엮은 "거기 마을 하나 있었다" 출판기념회

- 935일째 촛불문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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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326 -- 신문사진보기

박태환선수가 수영에서 금메달을 땄습니다.
대단합니다.
연습도 많이 했고 음과 양으로 주위에서도 많이 도와주었더군요.

그래서 그런지 9개 중앙 일간신문의 1면에 사진이 실렸습니다.
비슷비슷한 AFP 연합의 사진이 실렸습니다.

그런데 좀 심하다 싶은게 신문 1면 사진과 더불어 스포츠면의 1면에 통으로
기사를 실은 신문도 있습니다.
(한국 32면, 조선 A26면, 세계 3면, 경향 26면, 동아 A3, A26면, 한겨레 18면)

동아일보는 2개면에 통으로 실었습니다.
그러면서 KBS가 수영중계를 안해주었다고 비판하고 있습니다.
사진기자 한명 파견안하고 모두 외국 통신사의 사진을 가져다 쓰고
있으면서 말입니다.

비인기 스포츠 종목이 여럿 있습니다.
각 스포츠에 화살을 돌리기 이전에 시청율(열독율)이라는 방패 혹은 무기로
외면한 것이 비단 TV뿐일까요?

※ 박선수의 금메달 획득을 폄하하고자 하는 의도는 아니고 냄비같은 신문을 비판하고자 하는 의도입니다.

 

△조선일보 A26

 

 

△세계일보 5판 3면

 

△경향신문 40판 26면

 

△동아일보 45판 A26면

 

△한겨레신문 6판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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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325 -- 한미 FTA를 반대합니다.

한미 FTA를 반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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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321 -- 광화문 한미FTA반대 촛불문화제(동영상)

2007. 3. 21.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100여명의 사람이 와서 촛불문화제를 진행했습니다.
퇴근길이라 늘 가지고 다니는 조그만 디카로 동영상으로
찍어보았습니다.

조금 늦은 감은 있지만 여러 사람들이 최선을 다하고 있었습니다. 
오늘 뉴스에 미국이 쌀을 협상대상으로 하자고 합니다.

쩝....

런닝타임 : 1분 42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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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317 -- 국제공동반전행동

317 국제공동반전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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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316 -- 신문사진보기

 

무능, 게으른 공무원 3% 퇴출!

사람들은 공무원에 대해선 모두가 일정부분 피해의식을

가지고 있는 듯 싶다.

언론이 부추기는 면도 있지만 과거에(현재에도 일부 있지만) 권위의식을 가지고

국민을 홀대한 결과이기도 하다.


하지만 뭔가 초점이 잘못되어 가고 있다.

객관적인 기준없이 인사권자의 자의적 판단으로 퇴출명단을 작성한다는 것도 문제이지만

상명하복의 공무원이 가진 성격상 줄서기와 국민은 없고 상사만 있는 공무원사회가

될 수 있다.

제도를 시행하기 이전에 충분한 검토를 했어야 한다.

또한 알게 모르게 숨어 있는 경쟁을 통해 통제를 강화하려는 신자유주의적 발상.


그리고 대체 다른 직원의 무능과 게으름에 대해 어떻게 순위를 매기십니까?

정말 궁금합니다.



한겨레 신문 1면에 실린 사진에 눈을 갑니다.

렌즈의 한계를 역이용한 작품입니다.

 

△중앙일보 43판 1면

 

△경향신문 40판 1면

 

△한겨레신문 6판 13면

 

△한겨레신문 6판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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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310 -- 제주 4.3 유적답사

제주 4.3 기행

주체 : 노동자 교육센터

 

 

 

제주도는 참으로 아름다운 곳입니다.  

#1

 

정방폭포 입구에서

 

#2 성산 일출봉과 해돋이

 

#3 제주 들녘의 해넘이

 

 #4 산방산과 푸른하늘

 

#5 얼마전 어느 분에게 선물받은 김영갑의 유고 사진집입니다.

1982년부터 제주를 오르내리며 사진 작업을 하다가 제주에 매혹되어 1985년부터 아예 눌러앉아서

작업을 하신분입니다.

밥먹을 돈을 아껴 필름을 사고 배가 고프면 들판의 당근이나 고구마로 허기를 때우곤 하셨다합니다.

그리고는 루게릭병으로 2005년도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사진으로 볼때는 느끼지 못했지만...

제주도의 다랑쉬오름에 오르니 김영갑사진가가

제주에 머물수 밖에 없는 이유를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6 *김영갑의 유고 사진집에서.

*인터넷에서의 해상도 때문에 밑으로 길게 찍었습니다.

 

 #7 하지만 아름다움에는 그만한 댓가가 있나 봅니다. .....

 

피로 물든 학살의 땅 제주도.

그 섬의 유명하다는 곳 어디를 가도 바로 그 곳이 학살의 현장이라는 것.

아직도 한라산 자락의 어느 동굴속에서 원혼을 달래고 있을지도 모를 그때를 살다간

민중들의 명예회복과 유족의 아픔을 진정으로 보듬을 수 있는 세상이 오기를 바래봅니다.

 

#8 관덕정.

1947.3.1. 4.3의 도화선이 된 3.1절 발포사건이 일어난 곳이고

1949. 4월 이승만은 이곳에서 지속적인 토벌정책을 천명했다.

 

#9

 

#10

 

당시의 상황을 설명해 주시는 최규진 선생님

 

 #11 1948. 10월부터 총살이 집행되었던 현장.

그리고 나서 시체는 대충 모래사장에 매장되었다고 합니다.

 

#12

 

#13 모래사장을 밟고 있는 자체도 죄스러워 집니다.

 

#14 북촌초등학교

북촌양민학살사건의 현장

이 마을에서 4-500명의 양민이 학살되었습니다.

 

#15

 

현장에 대한 설명을 해 주시는 박준성선생님

 

#16 숙소에서 4.3연구소 분들과 간담회를 했습니다.

 

 #17

 

오승국 4.3연구소장.

 

#18

 

김은희 4.3연구소 연구원.

 

#19 이덕구 산전(山田)을 찾아가는 일행들

큰길에서 산길을 1시간 걸어가야 유적지에 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유적지에는 흔한 표말하나 없이 방치되고 있습니다.

 

*이덕구 : 1948년경 김달삼에 이은 2대 유격대장으로 군사부 총책임자이며 이곳에서

마지막으로 주둔하면서 게릴라 전술로 토벌대에 맞서 싸운 무장대의 지도자

 

#20 유격대의 흔적들.

 

 #21

 

 

#22 정방폭포

여행좋아하는 사람이면 한번쯤은 배경으로 사진찍는 곳. 하지만 폭포 상부의 넓은 공간은 서귀포에서

가장 큰 학살터.

1948.11.24 이후 여섯차례이상 대학살이 자행되었습니다.

 

 #23 4.3연구소 연구위원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24

 

 

 

#25

 

토벌대는 양민들을 총살한 후에 폭포 밑으로 떨어뜨렸다고 합니다.

 

#26 송악산의 해안동굴 제주도는 지정학적으로 중요한 위치라서 한때는 일본군이 6만명이나

주둔했다고 합니다. (4.3당시 섬주민은 27만명정도 였습니다.)

 

이 동굴들은 강제로 동원된 노무자들에 의해 삽과 곡갱이 만으로 판 일제의 군사시설입니다.

제주도에는 80여곳에 700여개의 인공동굴이 있고 송악산에는 15개의 인공동굴이 있습니다.

 

#27

 

#28

 

#29

 

#30 백조일손지묘(百祖一孫之墓)

백명도 넘는 많은 사람들이 한날에 죽어 누구의 시신인지도 모르는 채 무덤도 같고 제사도 같이

치르니 한 자손이 모시는 것과 같다는 뜻으로 백조일손지묘라고 이름을 붙였습니다.

 

1948년에 일어났던 4.3항쟁이 다음해에는 군경의 대토벌로 어느 정도 와해되자 정부당국에서는

선무공작을 통해 귀순을 유도하고 계엄령을 해제한다.

정부에서는 귀순자들을 엄격히 심사한 후 어느 정도는 귀가해서 가족들과 생활하도록 배려를 했던 것 같다.

1950년 6.25가 발발하면서 제주도에는 소위 예비검속이라는 피바람이 전도에 휘몰아쳤다.

그 예비검속의 대상자들을 증언을 통해 추론해보면 전에 검속되었다가 일차 석방되었던 사람, 경찰이나

서청 등의 우익단체에 한번 잡혀가서 그 기록이 남아 있던 사람들이 주로 검속 대상이었던 것 같다.

 

그러나 6.25가 발발하고 정부가 부산으로 옮기는 등 상황이 악화되면서 귀순자, 경찰에서 조사를

받았던 기록이 남아있던 사람, 혹은 무고한 양민들이 예비검속이라는 명분으로 다시 체포되고 많은

애매한 양민들이 대량학살을 당하게 된 것이다.(1950.8월)

 

대량학살후에 군경은 시신수습을 못하게해서 방치되어 있다가 1956. 5월에야 수습하면서 신원파악이

안된 시신을 이렇게 합장한 것이다.

 

#31

 

#32 5.16 군사쿠데타세력은 비석을 부수고 공동묘역의 해체명령까지 내렸다.

 

#33

 

동광 큰 넓궤

1948. 11월경 집요한 토벌과 학살을 피해 마을 주민 120여명이 50-60일 동안 숨어 살았던 천연동굴

 

#34 동굴로 들어가는 입구는 낮은 포복을 해야만 들어갈 수 있습니다.

 빛 한줄기 없는 곳에 120명이 2달 가까이 있었다는것에 그 고통과 불안해 했을 심정에

가슴깊이 져려옵니다.

 

 #35

 

#36

 

#37

 

이제 초등학교에 들어가는 어린이도 이 험난한 길을 같이 걸어왔습니다.

또 앞으로도 계속 가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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