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김선일씨 부고를 접하며...

정말 우려하던 일이 벌어졌다.
한 사람의 죽음을 먹이로 온갖 개때들이 자신의 이익과 목적을 챙기고 있다.

온누리교회(난 당신들과 같은 기독교인인게 부끄럽다.) , 유가족, 노빠, 안티 노빠, 할 일없고 말 하기 좋아하는 논객들, 최고의 개때인 언론 ....

집단 최면 종교 의식에 빠진 사람들 처럼 피아 구별없이 고인을 소제로 게임의 법칙을 만들고 있다.

도대체 이 사건이 우리에게 뭐란 말인가? 서해교전 전사자들 얘기도 있지만 난 김선일씨 죽음을 생계형 빚 독촉에 시달려 자살하는 사람과 비등하게 본다.

믿었던 친구의 보증을 서준 바람에 하루 아침에 집 날리고 장기 마저도 위협받는 자가 마지막으로 선택했던 것, 자살.. 극단적인 자살이란 선택을 하게 된 원인에는 사회적 안전장치 마저 부재한 국가의 방만함도 함께 있다.
굳이 이 생계형 빚 독촉으로 인한(특히 위에 예시한 것과 같은) 자살자와 김선일씨 죽음의 유사성은 친구의 부도, 이라크 해방군에 의한 생명의 위협의 가능성을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결정을 내린 것과 그러다 봉변을 당한 것 (부채 위임, 참수) 이란 형태상의 유사함 때문이다.
단지 다른건 엽기적인 홀로코스트가 공개됐느냐? 안 됐느냐? 는 것...
본인도 밝힌 바지만 그는 선교와 고소득을 목적으로 전쟁터에 갔다. 그것도 선교사도 군인도 아닌 가나 무역 직원으로...

하지만 여론은 마치 전태일 열사의 죽음 이상으로 고김씨의 죽음을 미화했고 정치적 단체, 정치인들은 자신의 정치적 이익을 위해 이용했고, 유가족과 교회는 이런 여론 몰이에 편승해 자신의 이익을 챙기려 했다.
사실 난 김선일씨 죽음 보다 이 현상이 더 엽기적으로 보여진다. (마치 사람을 죽이는 장면 보다 네크로필리아나 신체절단 도착증자에 의해 벌어지는 시체유린 장면 처럼..)

난 이들이 "고인의 명복을 빌며", "고인의 죽음에 애도를 표하며" ...... 이런 말을 할 때 마다 불쾌해진다. 마치 편지의 형식적 인사와 같은 "친애하는 XX에게" 식의 의미 없는 립서비스....
그리고 본론으로 들어가면 김선일씨 죽음과 무관한 자신의 이익, 목적 달성을 위한 얘기들...
니들이 고인을 위한다고 하니, 내가 그 방법을 알려줄께 ....

         "시끄러!!"


애초에 이 문제는 김선일씨란 고유명사(개인)이 아닌 이라크 파병의 희생자인 대명사로 접근 했어야 했다. 피랍 및 참수 과정에서 국가가 과연 제대로 자국민 보호 기능을 행했는가에 대한 진상규명, 그리고 죽음에 대한 적절한 보상, 무엇보다도 이라크 파병에 대한 여론 흡수 및 현명한 결정 등이 쟁점이 됐어야 했다.

        시체갖고 장난치면 안된다.



                                               김선일씨 문제가 조속히 해결되길 바라며.. (장례라도 어서 지냈으면..) 그리고 이라크 파병이 철회되길 바라며....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