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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로와 아웃팅

피치 못하게 가해자의 성지향성이 드러나는 경우와 '아웃팅'의 경계는 딱 구분짓기 어려운 복잡함이 상존할 거라 본다.
고은태씨 건에서는 어떨까.
그의 특정 성취향을 언급하지 않고도 다른 이들도 피해자의 얘기가 사실이라고 믿을 만하게 폭로가 가능했을까-를 생각해보면, 글쎄, 잘라 말하긴 어렵겠단 생각도 든다. 선정성이 사건을 좀 더 특화시켰고, 그럼으로써

이게 일반적으로 상상 가능한 날조가 아니라 진실일 수 있으리란 믿음에 좀 더 빠른 속도로 힘을 실어줬을 수 있겠단 생각이 든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선정성의 전시가 그대로 옳은 것이 되나? 그것은 다른 층위의 얘기다. 인민재판대에 올려놓기 위한 자극적 악세사리로 쓰였다는 비판은, 고은태씨가 명백히 잘못을 저지른 게 맞다는 사실과는 별도로, 제기될 가치가 있다고 본다.

법적으로 처리 불가능한 사건을 인민재판대에 올리는 걸 잘못됐다고 보지 않는 사람들도 많다. 하지만 이런식의 처리는,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가 된단 걸 잊으면 안된다. 법치주의가 괜히 나온 게 아니다. 누군가의 자의적 판단에 의해 부당하게 심판당하는 일이 없도록 이룬 합의이다. 얼핏 온당해 보이는 심판이라 할지라도, 이런 '방식' 자체를 '판례로 합의'해 놓으면 이 '방식'이 엉뚱한 자의 손에 들어간 무기가 되었을 때에 무슨 명분으로 항의하려고 하나. 대중 정서는 언제나 윤리적으로 옳은 방향으로 가지만도 않는단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인민재판이란 것의 층위도 이렇게 위태할진대, 대중의 시선이 관음증적 폭력으로 화하는 선정성 층위는 더더군다나 조심히 다뤄져야 할 부분이다. 폐쇄적인데다 보수적 컬러가 짙은 사회에서 다수에 속하지 않는 개인의 특질이 전시되는 것은 일단 그 자체로 폭력일 수 있다. 그런 특질을 가진 누군가에게 사회적 형벌을 내리고 싶다면, 그 특질을 폭로하면 된다.

이번 건에서 고은태씨의 성취향에 관한 폭로가 사실을 알리기 위한 '증거'였는지 사회적 매장을 더 빠르게 이끌어낼 '체벌'이었는지, 보인 정황만 갖고 내가 쉽사리 판단할 자신은 없다. 하지만 그래도, 생각해 봐야 할 문제인 건 확실하다. 피해 준 나쁜놈이니깐 당해도 싸-로 넘어갈 문제는 아니라고. 더럽고 구질구질해도 원칙을 점검하지 않으면, 생각 못한 다른 데에서 부메랑이 날아오게 마련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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