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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충

 

차별금지법안 발의가 무산될 위기.
기독교계의 지랄 때문.
 
적은 조직적이다. 그리고 파렴치하다. 그리고 오리발을 내민다.
 
'종교'라는 것 때문에, '관용의 범위에 들어가야 하는, 엄연한 문화의 한 영역'이라는 원칙을 저버려선 안된다는 것때문에 언제까지 신사적으로 대해줘야 하나?
-란 생각을 첨엔 했다.
그래, 니들 말야 니들. 다름아닌 바로 니들, 니들이 나쁜놈이라고 바로 니들이.
그렇게 곧바로 지적을 할 수 있는 반대전선이 필요한 거 아닌가.
'언론'이라는 허울 때문에 봐주지 않고 대놓고 '악'으로 지목하는 안티조선운동이 있었듯이 말이다.
 
하지만 안티조선운동에 생각이 닿자, 역시 원칙을 허무는 게 과연 좋은 방법인가 하는 의구심을 논리적으로 떨칠 수가 없었다.
아니 그럼 원칙은 일단 내깔겨 두더라도. 전략적으로는 괜찮은 방법인가? 
'아니야, 기독교가 다 그렇진 않아'라고 떠드는 것들에게 그럼 니들이 들고 일어나서 증명을 하든가 씹새끼들아-라고 외쳐주고 싶던 게 한두번이던가.
 
그런 '분통 터짐'을 해소한다는 것 말고, 전략적으로 정말 괜찮을 방법인가?
 
 
확신하지 못한다.
 
 
그리고 영화 '링컨'에서. 노예 제도를 금지하는 법안을 통과시키는 그 장면.
 
급진파 의원이, 일단 '입법을 위해', 원래 자신의 소신대로 말하지 않고 눈가리고 아웅을 한다.
당시 시대 분위기는 '흑인이 법적 지위를 얻게 되면 지들이 정말로 백인이랑 똑같다고 하면서 막 참정권도 달라고 그러겠네? 그담은 뭔데? 여자도 막 투표권 달라고 하겠어? 말세다!' ←이랬으므로, 대중정서를 확 건드릴 말을 피해 우회한다. 덕분에 그 법이 자신들의 정치적 생명을 끊을 정도로 '위험하지' 않다는 분위기가 말로나마 조성됐으므로 망설이던 의원들이 찬성하는 데에 힘을 받는다. 하지만 가결과는 별도로, 지켜보던 다른 급진파 동료의원은 배신감과 분노에 몸을 떤다.
하지만 세월이 지나 지켜보는 우리는, 그런 절차로라도 입법을 우선 시켜버리는 게 결국 더 나은 결과를 가져오는 초석이 되었다고 받아들여 준다.
 
언젠가 나도 다이어리에 썼다. 100%를 원하면 혁명은 할 수가 없다고.
 
어차피 곧이곧대로 원칙을 고수하지 못할 바엔, 적을 보이게 만들어 공격하는 것과 눈가리고 아웅을 해서라도 계단 하날 만드는 것, 어느편이 더 효율적일까?
 
 
모르겠다.
 
 
 
그리고,
 
 
이 나란 안 망할 수 있을까? (아니 뭐, 언젠간 어떤 나라든 반드시 망하기야 하겠지만 상상 가능한 근미래에 말이지.) 누군가의 칼럼에서 읽고 아 그렇겠구나 했던 것처럼 '전 지구 단위의 도시 집중화'에 따라 능력 되고 정신 제대로 박힌 인간들은 차츰 다 '살만한 세계적 중심가'로 떠버리고, 그 외 잡것들이 못 떠나고 남은 곳은 변두리 시골마을 쇠락하듯 '세계의 슬럼가'가 될 것이며 한국도 그짝 날 거라는.
그 예상은 뒤엎어질 수 있을까?
 
이 나라가 과연 회생 가능성이 있을까..라고 회의하게 되는 건 지금이 '내리막의 시대'라서일까? 세월이 더 더 많이 지나다 보면 오르막의 시대가 여기에도 볕을 주게 되는 걸까?
 
 
...그것도 모르겠다.
 
 
 
미국도 부시 시대 8년을 겪고 나서 오바마 시대도 열기도 하고 그러긴 했다. 세계적 우경화 추세에도 불구.
물론 많은 수의 사회주의자들은 코웃음을 치겠지만 최소한 한국의 평균 스태터스보다는 백배 낫다. 그거 부정하긴 그다지 쉽지 않다.
 
..어떤 일이 벌어지나 더 봐야 하련가.
 
 
 
 
아무짝에도 소용없는 생각이지만 '인류의 등신같음'류의 생각이 드는 건 참, 막기 힘들구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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