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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14회 – 여름나기

 

 

 

1

 

요란한 장마가 계속 되고 있습니다.

비가 왔다 개었다를 반복하는 변덕스러운 날씨 때문에

계획성 있게 일을 하기가 어려워서

웬만한 것은 뒤로 미루며 건성건성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후덥지근한 날씨 때문에 몸과 마음이 쉽게 지쳐서

일을 하는 것도 쉬는 것도 아닌 어정쩡한 상태가 이어지고 있네요.

 

비가 갠 날 주변을 둘러보면

잡초들은 무성하게 자라서 작물들을 뒤덮고 있고

감귤나무에는 때를 만난 병충해들이 활개를 치고 있습니다.

수시로 날씨를 확인해가져

비가 오지 않는 날 급히 방제를 하고

시간이 날 때마다 틈틈이 잡초들을 뽑아주고 있지만

잡초들과 병충해들의 속도를 따라잡기에 조금 벅찹니다.

 

여름에 먹으려고 심어놓은 채소와 과일들도 제철을 만나

왕성하게 결실을 맺고 있는 것이 그나마 즐거움이기는 한데

잘 자란 수박이 겉으로는 익었는지 덜 익었는데 구분하기가 어려워서

매번 이리저리 살피며 수확을 해야 하는 것이 살짝 신경이 쓰입니다.

 

아직도 초보딱지를 때지 못한 저는

이렇게 허둥지둥 거리며

장마를 보내고 있네요.

장마가 끝나고 본격적인 무더위가 이어질 앞으로 한 달이

감귤나무와 텃밭 작물들에게는 가장 중요한 시기이기에

식물들에게 좀 더 신경을 써야겠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2

 

무더위가 실력을 발휘하기 시작하면서 제 삶에도 변화가 생겼습니다.

 

우선 새벽에 하는 명상과 운동이 중단됐습니다.

새벽에도 더워서 도저히 할 수 없고, 에어컨을 켜는 낮에도 몸이 늘어져서 모든 게 귀찮습니다.

 

먹는 것도 가벼운 것으로 바뀌고 있습니다.

추울 때는 뜨겁고 칼로리 높은 것들을 몸이 원하지만 더울 때는 차갑고 간편한 것들을 원합니다.

텃밭에서 기른 채소들 위주로 먹다보니 식비와 체중은 줄어드는데 몸이 가벼워지는 만큼 기운도 가벼워지는 것이 문제이기는 합니다.

 

생활이 극도로 단조로워지고 있습니다.

오전에 3~4시간 땀 흘리며 일하고 나서는 나머지 시간은 대부분 침대에 누워서 보냅니다.

운동도 하기 싫고, 책도 잘 읽히지 않고, 다른 소일거리도 없으니 OTT로 영화나 드라마를 보는 것이 주된 일과입니다.

 

술을 먹는 일이 많아집니다.

밤에도 너무 더워서 한일도 없이 몸이 쳐지면 시원한 맥주를 자연스럽게 찾게 됩니다.

그전에는 한 달에 2번 정도 가볍게 혼술 하는 것이 전부였는데 요즘에는 5일 간격으로 맥주를 마시곤 합니다.

 

몸만큼 마음도 가벼워지고 있습니다.

먹는 것과 활동량이 줄어들면서 몸이 가벼워지는 것은 늘어짐으로 발전하고 있고

진중한 자기관리와 사색이 사라지면서 덩달아 가벼워진 마음은 감각적인 것들을 찾아 헤맵니다.

 

더위에 극도로 취약한 체질이라 여름만 되면 이런 형상이 반복되기는 합니다.

이렇게 늘어지는 제 자신을 곧추세워보려고 마음을 다잡아보기도 하지만 잘 되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그냥 제 자신을 바라봤습니다.

 

더워서 몸이 늘어지는 것은 생존을 위한 자연스러운 전략이니 그대로 받아들이고

명상도 운동도 독서도 못한 것은 어쩔 수 없으니 그것 때문에 스트레스 받지 말고

단조로운 삶을 살며 자연식 위주의 식사를 한다는 것은 축복받은 삶이니 괜한 투정부리지 말고

마음이 가벼워지는 것은 편안하다는 반증이기도 하니 술과 감각적인 것을 찾는다고 너무 나무라지 말고

그저 이 여름이 잘 지나가도록 해봐야겠습니다.

 

 

3

 

저의 여름나기는

삐걱거리기는 하지만

큰 탈 없이

잘 해내고 있는데

그렇지 못한 이들이 많은 요즘이라서 마음이 조금 불편합니다.

 

이런 소식을 접할 때마다 항상 그렇지만

그저 멀리서 그 소식을 접하기만 할 뿐

할 수 있는 것은 별로 없습니다.

 

“죄를 지어야만 잘못이 아니라 선함을 행하지 않음이 잘못이다.”

성경이 이런 말이 나온다는데...

오늘도 별 탈 없는 하루를 보낸 저는

마음의 빚을 또 하나 쌓아두고 있네요.

 

 

 

(생각의 여름의 ‘다섯 여름이 지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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