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통심의위 '정치 심의' 논란, 핵심은 다른 곳에 있다

[진보네트워크센터 논평]

방통심의위 '정치 심의' 논란, 핵심은 다른 곳에 있다

- 행정기관이 표현물의 불법성 여부를 심의하는 것 자체가 온당치 않다

 

 
 

 


최근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통심의위)의 '정치 심의' 논란이 거세다. 10일 이종걸 의원에 따르면 방통심의위 출범 후 한나라당 소속 정치인과 현 정부 관료 10명이 인터넷 명예훼손 건으로 심의를 신청한 사건 중 72.2%에 대하여 시정요구 결정이 내려졌고, 시정요구를 받은 해당 포털 사이트는 이들과 관련한 203개의 게시물을 삭제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하여 어제 방통심의위는 공인으로부터 제기된 민원 대상 게시글의 대부분인 77.7%는 그대로 유통됐다는 요지의 해명자료를 내놓았다.

 

우리도 인터넷상의 명예훼손 게시물은 다른 사람의 인권을 침해하는 표현물로서 그 불법성이 명확할 경우 삭제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게시물 삭제는 기본적으로 표현의 자유라는 헌법상 기본권을 제한하는 행위이기 때문에 그 불법성에 대한 판단 절차는 명확하고 공정하게, 그리고 최소한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현재 방통심의위가 명예훼손 소지가 있는 게시물을 심의하고 시정요구하는 것이 과연 그렇게 이루어지고 있는가? 핵심적인 문제는 여기에 있다.

 

우리는 방통심의위가 명예훼손을 비롯하여 인터넷상의 '불법 정보'를 심의하는 것 자체가 온당치 않다고 생각한다. 방통심의위는 사법기관이 아니다. 행정기관이다. 행정기관이 형사처벌로 이어지는 불법성을 일방적으로 판단하고 그에 따른 강제적 행정처분까지 하는 것은 위헌적이다. 방통심의위의 '행정처분'은 단지 '심의'를 하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다. 방통심의위는 '자체적인' 불법성 결정에 따라 각 포털 사업자와 운영자들에게 이에 대한 '시정 권고'도 하고 있다. '권고'는 말그대로 '권고'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이에 따르지 않을 경우 방송통신위원장의 취급거부·정지 또는 제한 명령을 받을 수 있으며 명령에 따르지 않으면 형사처벌된다.(실제로 우리 단체는 스팸게시물을 삭제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장관 명령을 받을 수 있다는 위협적 전화를 방통심의위로부터 직접 받은 적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어느 사업자나 운영자가 심의위의 소위 '권고'에 따르지 않겠는가? 특히 주요 인터넷 사이트에 대하여 강제적인 국가 실명제가 도입되어 있는 상황에서 이용자의 글을 행정기관이 심의한다는 것은, 국민 개인이 행정기관을 마주하여 직접 상대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으며 이러한 심리강제는 결국 표현의 자유 위축일 수 밖에 없다.

 

방통심의위의 불법 정보 심의는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제44조의7에 의하여 이루어지고 있는데, 이 조항은 2002년 헌법재판소가 구 정보통신윤리위원회의 '불온통신의 단속'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림에 따라 개정된 것이었다. 당시 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 취지는 구 정보통신윤리위원회가 '불온통신을 단속'하면 안되고 '불법정보를 단속'하면 된다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인터넷에 대한 내용규제 권한이 축소될 것을 두려워한 구 정보통신윤리위원회와 구 정보통신부에서 극구 해당 조항의 폐지를 반대하여 이 조항이 이렇게 모호한 형태로 존속된 것이다.

 

방통심의위는 자신의 권한을 여기서 더 확대 행사하면서 문제가 더욱 심각해지고 있다. 방통심의위는 지난해 출범 직후 인터넷 게시물의 '2MB'라는 표현에 대하여 '언어 순화와 과장된 표현의 자제 권고'를 하여 정치 심의 논란을 자처한 데다 인터넷 미디어를 지상파 방송과 구분하지 못하여 스스로 위신을 까먹었다. 더구나 자신의 설치 근거 법률인 '방송통신위원회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에 규정되어 있는 심의위원회 직무 가운데 "건전한 통신윤리의 함양을 위하여 필요한 사항으로서 대통령령이 정하는 정보의 심의 및 시정요구"(제21조 4호)를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름으로써 과거 '불온통신의 단속'과 다를바 없는 위헌적 심의를 자행하고 있다.

 

인터넷에 관한 한, 방통심의위의 행정심의 권한은 폐지되어야 한다. 방통심의위는 인터넷 게시물의 불법성을 모니터링하여 수사기관에 이첩하는 핫라인 혹은 유해성을 심사하여 등급을 부여하는 기관으로 명확히 한정하고 장기적으로 다른 나라처럼 민간기구화할 필요가 있다. 방통심의위가 명예훼손을 비롯하여 위헌적인 불법성 심의를 할 권한 자체가 헌법으로부터 부여되어 있지 않다.

 

2009년 3월 12일

진보네트워크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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