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도, 유엔도, 국가인권위도 “방심위, 인터넷 심의 안돼!”

 

법원도, 유엔도, 국가인권위도 “방심위, 인터넷 심의 안돼!”

 
한 사례를 보자. 2009년 멜라민 파동이 한국 사회를 뒤흔들었다. 특히 2월 24일 식약청이 국내 유수의 제과업체 제품에서 멜라민이 검출되었다고 발표하여 큰 충격을 주었다. 식약청의 발표 이후 인터넷에서는 이들 제품 목록을 거명하며 업계를 비판하는 소비자들의 목소리가 높았다. 그런데 26일 식약청은 일부 제품들에 멜라민이 포함되지 않았거나 기준치 이하라는 내용의 정정 발표를 하였고, 해당 회사는 게시물들이 명예를 훼손하였다며 모두 삭제하여 줄 것을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 요청하였다. 3월 16일 방심위 통신심의소위원회 위원들은 이 문제를 두고 격론을 벌인다. “게시자 입장에서는 의심되는 원료를 사용해서 잠정적으로 유통 중지되었다는 사실은 움직일 수 없는 사실입니다…그 정보는 공익적 정보일 수 있습니다(엄주웅 위원)”는 의견이 있는가 하면, “공개적인 자리에서 얘기했으면 준언론의 기능을 가지고 있는데…수정을 해줘야 한다고 봅니다(박명진 위원)”는 의견도 있었다. 결국 멜라민 파동에 대한 게시물 25건이 이날 삭제되었다. 손쉽게.
 
자, 방심위의 이 결정에는 어떤 문제가 있을까? 첫째, 인터넷은 방송과 다르다. 그런데 이들 심의위원은 인터넷을 방송처럼 보고 있다. 방심위는 이 매체에 대하여 다른 매체에서 요구되는 ‘정정보도’에 준하는 의무를 부과하고, 그 의무가 관철되기 어려운 기술적 환경 속에서, 그것을 자신들이 ‘수정해줘야 한다’는 관점을 갖고 있다. 둘째, 지금 ‘명예훼손’이라는 ‘불법성’을 심사하는 이들의 어느 누구도 자격미달이다. 인터넷 명예훼손은 ‘비방할 의도’가 범죄 구성 요건 중의 하나이며, 형법에서는 그것이 공익을 위한 내용일 경우 명예훼손에 대한 위법성 조각사유를 인정하고 있지만, 이들에게 그런 고려나 전문성이 없다. 셋째, 절차가 엉터리다. 게시물 삭제라는 행위는 기본적으로 ‘표현의 자유’라는 기본권을 제한하는 것으로서 합당한 절차를 갖추어야 한다. 하다못해 피고인으로 법정에 서더라도 당사자의 의견을 개진하거나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수 있지 않는가? 그런데 이들은 밀실에서 당사자의 의견 진술 한줄 없이 일방적으로 회의를 진행한다.
 
뭐니뭐니해도 가장 큰 문제는 이것이다. 누가 이들에게 인터넷의 모든 게시물을 자기들 맘대로 뜯어고칠 권력을 주었는가? 행정기관이 이를 하는 것은 우리 헌법이 금지한 ‘검열’이다. 물론 우리 헌법재판소에서 인정하는 의미의 ‘사전적인 검열’은 아니지만, 인터넷은 사전 심사라는 것이 원체 불가능한 매체이니 검열과 다를 바 없다. 무엇보다 이런 대량 게시물 삭제가 한번 휩쓸고 지나간 후 네티즌 일반에 불어닥치는 ‘위축적 효과’는 이 사태를 위헌적인 국가 검열이라고 볼 수 있는 충분한 근거가 된다. 행정기관의 검열이 위험한 것은 정부 입장과 반대되는 의견을 통제하고자 시도할 개연성이 충분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방심위는 ‘천안함’과 ‘연평도’ 사건 당시 민감한 게시물들을 자의적으로 심사하고 삭제해 왔다.
 
방심위는 자기 조직이 행정기관이 아니라고 주구장창 주장해 왔다. '검열' 논란을 피하기 위해서이다. 그런데 행정기관도 아닌 조직의 시정요구가 일선에서 수용되는 비율은 99%이다. 이들의 권력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최병성 목사님의 용기 덕분에, 법원이 이 모순적 상황을 검토할 수 있는 기회가 열렸다. 
 
지난 2010년 2월 1심 법원은 방심위가 행정청이며, 방심위의 시정요구는 행정처분이고, 최목사님의 글을 삭제한 결정은 ‘잘못된’ 행정처분이라고 판결하였다. 방심위가 항소하여 2심이 진행되었지만, 지난 2월 고등법원은 방심위의 활동 근거인 「방송통신위원회의설치및운영에관한법률」 제21조 제4호에 위헌적이라며 헌법심사를 제청하였다.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고 과잉금지의 원칙과 포괄위임입법금지 및 법률유보의 원칙에 위배된다고 인정할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다는 것이다. 
 
인터넷 강국 한국에서 행정기관이 인터넷을 시시콜콜히 심의하는 문제는 국제적인 인권기준에서 비추어 볼 때에도 문제가 되어 왔다. 지난 해 6월 한국을 방문했던 프랭크 라뤼 유엔 표현의자유 특별보고관은 “방심위의 폐지를 권고”하는 의견을 내놓았다. “대통령 임명 위원으로 구성되는 방심위가 온라인 상의 정부 비판 내용을 삭제하는 사실상의 ‘검열기구’로 기능할 우려가 있고, 이를 막을 안전장치도 부족하다”는 것이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이미 지난해 9월 방심위의 인터넷 행정심의 제도의 인권침해성을 지적하며 이를 민간자율심의기구에 이양할 것을 권고하였다.
 
법원도, 유엔도, 국가인권위도 방심위의 인터넷 행정심의에 대하여 안된다고 말하고 있다. 특히 법원은 결정문에서 “민주주의에서 어떤 표현이나 정보의 가치 유무, 해악성 유무를 국가가 1차적으로 재단하여서는 안되고 시민사회의 자기교정기능, 사상과 의견의 경쟁메커니즘에 맡겨야 한다”면서 방심위의 시정요구가 “다양한 의견간의 자유로운 토론과 비판을 통하여 사회공동체의 문제를 제기하고, 건전하게 해소할 가능성을 봉쇄한다”고 비판하였다. 구구절절 옳은 얘기다. 이제 헌법재판소의 결단만 남았다. 
 
장여경 (진보네트워크센터 활동가)
 
덧붙이는 글: 
* 언론인권센터가 발간하는 <언론인권회보>에 기고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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