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 세탁소 아저씨에게 말을 건네 봤습니다. 세탁소 이름이 밀레니엄세탁소에요. 이름이 좀 멋있기도 하고 거창하지요? 새천년을 바라보는 어느 날 시작하게 됐나? 혼자 짐작해보면서 늘 지나다니는 길입니다.
근데 제가 이 동네로 이사 온 후 쥔장이 한 번 바뀌었어요. 저의 경우는 세탁물이 많지도 적지도 않은 편에다가 바쁘게 맡기고 서둘러 찾아가는 스타일이라서 이래저래 개인적으로는 아저씨에게 말을 건넬 일이 드문 편입니다. 근데 이 아저씨한테는 좀 특이한 습관이 있더라고요.
세탁물이라는 게 맡기고 며칠 두 찾아가는 직종이라서 그런지 아저씨는 바쁜 사람 심정도 모르는지 물어보지도 않고 "나중에요~" 하는 겁니다. 그래서 "아저씨, 나중에 언제요. 바쁜 것을 빨리 해주셔야 하잖아요?" 라고 한 적도 있습니다.
드디어 오늘 티셔츠 하나를 고쳐야 할 일이 생겼어요. 그래서 지켜 서서 해가지고 갈 테니 그리 아시고 지금 끝내주세요 말했지요. 지금 재봉틀 앞에서 하는 일이 이 일입니다.
-아저씨도 개신교 다니세요?
*아니 전 천주교 신자입니다.
-어디 천주교 다니세요?
*의정부 천주교 다녀요.
-댁이 의정부세요?
*상계동에 살아요.
-근데 의정부까지 다니세요?
*의정부에서 태어나서 부모형제도 볼겸 그리 갑니다.
-전 또 그 전 아저씨가 신학공부를 하시는 것 같더라고요. 그 아저씨처럼 그림이랑 다 같아서 그렇게 짐작했네요. 그럼 세탁소는 권리금 주고 인수 맡은 거예요? 적성에 맞아야 하시기가 좋을 텐데........
*저도 IMF 전에는 직원이 40여명이나 됐어요.
-세탁소라는 직업 알고 보면 금방 되거나 쉽게 그냥 할 수 없는 것일 텐데요.
*사실 그래요. 복잡한 일이 많지요. 섬유 계통에서 40여 년 했기 땜에 잘 아는 일이고요........
-그러니까 개인 사업이라서 은퇴나 명퇴 걱정은 안하셔도 되겠어요
*그럼요. 저는 이 일이 잘 맞아요.
아저씨 말이 맞다고 느꼈다. 이 아저씨 세탁소는 굉장히 깔끔한 것이 특징이다. 뭐 하나 바로 놓이지 않은 것이 없고, 세탁을 해서 걸어 놓은 옷들을 보면 어지간히 질서정연하다는 것을 한 눈에 알 수 있어서 고객 쪽에서 봐도 일을 대충하는 사람인 것 같지는 않았다.
자기 일에 대만족이라고 한다. 일요일엔 쉬고 주중엔 일터로 나와서 열심히 할 수 있는 직종 중의 하나가 세탁소라서 그렇다는 것이다. 아파트 단지 내에 있는 세탁소는 일감이 많아서 돈을 더 잘 벌 것 같지만 세탁물을 걷으러 다녀야 하고 그래서 혼자는 못하는데 여기는 혼자 감당할 만큼만 하니까 그만큼 경비가 안 나간다고 했다.
직원도 부려봤고, 사업도 크게 해봤는데 이제는 자기 혼자 감당하는 일이 좋단다. 그래서 최종적으로 혼자 부지런히 할 수 있는 세탁소를 택했고 만족도가 상당히 높은 편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한 마디를 덧붙이는 것이 있었다. 혼자 감당하면서 건실하게 먹고 살 수 있는 것에 눈을 돌리는 사람이 많아야 한다고. 창업 말이다. 건실한 1인 창업가들이 많을수록 우리나라의 중산층은 두꺼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