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영과 안철수의 실용적 동거

정동영과 안철수의 실용적 동거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의 절묘한 정치력 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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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詩)가 있는 정치칼럼] 브레이크뉴스 박정례 선임기자= 3일 동안 극적인 일이 벌어졌다. 국민의당 이야기다. 16일 여러 언론매체에 출연하여 “정동영 전 통일부 장관이 입당할 경우 동참하지 않겠다.”는 뜻을 이상돈 중앙대 명예교수는 밝혔다. 

하지만 그는 17일 갑자기 국민의당 입당기자회견을 가졌다. 이 일을 두고 진보적인 정치노선을 갖고 있는 정동영 전 통일부장관의 입당은 상대적으로 어려워질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했다. 하지만 이상돈 위원장은 18일 아침 신율의 아침 라디오시사프로그램과 '한수진의 SBS 전망대'에 연이어 출연하여 정 전 장관과 관련해서는 “당 지도부와 최고위원회의 결정에 따르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정동영 전 장관의 영입을 찬성하는 발언을 하며 “남북교류를 끊어선 안 된다.”는 주장을 펴며. 햇볕정책은 “대북포용정책이라고 할 수 있으며 금강산 관광, 개성공단, 이산가족과 같이 여러 가지 긍정적이고 우리 국민들이 다들 환영하는 정책들로서 성과를 거둔 부분을 평가한다”며 다만 "햇볕정책이 의도했던 것 중 하나가 이러한 교류를 통해 북한의 핵 개발을 저지할 수 있다는 것이었는데 북한의 핵개발은 역대 그 어느 정부도 성공하지 못했다.”는 점을 아쉬움으로 지적하며 “엄중한 시국이니만큼 현재 북한과 관련된 정세에서 당이 정 전 장관을 필요로 하면 이에 따르겠다.”는 의견을 내놨다.

한편 안철수 국민의당 공동대표는 18일 국회 본회의 비교섭단체 대표발언에서 최근 안보 이슈와 관련해 “진보적인 정부와 보수적인 정부가 추진했던 성과를 계승하고 한발 더 나아가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근혜 대통령과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대표의 북한체제 ‘붕괴’나 ‘궤멸’ 발언에 대해 각을 세웠다. 사드 배치 문제에 대해서도 “찬성, 반대의 이분법이 아닌 공론화를 통해 국민공감대를 얻어야 한다”면서 실효성 있는 접근을 강조했다.

한반도에 위험한 핵무기가 존재하는 것을 원할 사람은 없다. 이를 위한 그동안의 노력으로서, 북한의 핵개발을 저지하는 수단은 이미 6자회담을 통한 남북한평화협정 체결과 북미수교를 통한 평화공존이라는 모범답안을 도출해낸 바가 있다. 정동영 전 장관이나 안철수 국민의당 상임대표나 이상돈 중앙대 명예교수의 의견도 근본은 크게 다르지 않다. 이런 기조에서 안철수 대표가 鄭.李의 원만한 화학적 결합뿐만 아니라 당내 외의 여러 목소리까지 모두 한데 묶는데 성공해 냈다.

안철수 대표는 오늘(18일) 국회 비교섭단체 대표 발언일정을 소화한 뒤 전북순창으로 정 전 장관을 만나러 복흥산방으로 향했다. 안철수 대표와의 회동 후 정 전 장관은 이에 화답하여 국민의당에 합류할 것임을 전격 선언했다.

정 전 장관과 안철수 측은 ▴개성공단의 부활과 한반도 평화 ▴민생정치구현 ▴양당 기득권 담합체제 깨기 ▴총선승리와 호남진보정치를 위한 백의종군 등 4개 사항에 대한 합의문을 발표한다. 이어 정동영 전 장관의 정치재개 선언은 내일 오전에 순창에서 하기로 결정했다고 전했다.

결론은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가 이틀 사이에 개혁적 보수인사인 이상돈 중앙대 명예교수와 합리적 진보인사인 정동영 전 통일부 장관까지를 모두 영입하는데 성공했다는 사실이다. 쾌거가 아닐 수 없다. 국민의당은 이제 떠오르는 일만 남았다.

 

이상돈 정동영 안철수

갔노라 보았노라 성공했노라

 

정동영 이상돈 안철수

갔노라 만났노라 합쳤노라

 

안철수 정동영 이상돈

갔노라 모였노라 입당했노라

 

개혁적 보수와 합리적 진보 모여

4.13 총선승리 2017 대선승리

모두모여 국민승리 모두 함께 국민의당

 

*글쓴이/박정례 기자.르포작가.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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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2/20 22:45 2016/02/20 2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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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와 국민의당. 善手 놓치고 惡手만 거듭

-더민당의 교란작전에 갈팡질팡 차선책도 못 챙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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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노패권에 학을 뗀 야권지지자들이 신당(新黨)에 많은 기대를 가졌던 것은 사실이다.

잘할 수도 있는데... 지지부진한 모습에 실망이 크다. 안철수와 국민의당, 자중지란을 겪으면서 원내교섭단체를 구성할 기회를 놓치고, 섣부른 계량(計量)만 하다가 인재를 영입할 수 있는 계기를 번번이 날려먹었다. 눈앞에서 벌어지는 답답한 현실을 보면서 혀를 차는 사람들이 많다.

세치 혀만 가지고 정치를 좌지우지 하는 자들과 초보정치인들에 의해서 휘둘린 몇 년 세월이 수십 년이나 된 것처럼 지긋지긋하다. 훈수꾼들과 객들이 주인자리를 차지하며 국정을 농단하는 세상이 돼버렸으니 더 나빠진 작금의 현실에 정치혐오증이 연기처럼 피어오른다. 국력과 경제가 엉망이다. 약자와 서민은 더 암담하다.

요즘 야당에서 벌어지는 일 좀 보자. 양지에서 거간꾼 노릇만 하던 인간들이 정당의 역사나 정체성을 헌신짝처럼 차버린 정치 초년생들에 의해서 벼락대표, 벼락 공동선대위원장으로 출세를 하며 허명의 춤사위를 나부끼고 있다.

더민당의 김종인(경칭 생략)과 국민의당 이상돈이 그렇다. 재작년 9월 문재인은 박영선 원내대표와 담합을 하여 이상돈을 새정련의 비대위원장으로 영입하려고 시도했으나 반대여론이 거세자 박영선 뒤에 숨으며 꼬리를 내린 적이 있다. 그때는 이상돈, 지금은 국보위 출신 김종인으로 대상만 바뀌었을 뿐이다.

당시 새정련의 고문이던 정동영은 "이상돈 비대위원장 카드는 민주당을 뿌리째 뒤흔드는 실책"이라는 목소리를 냈다. 트위터를 통해서도 "박근혜 정권 탄생의 일등공신을 당대표로 영입한다는 발상은 당원과 당의 역사에 대한 모독이다."라면서 "민주당이 중산층과 서민을 위한 정당이 맞다면 새누리당 진영 쪽에서 사람을 찾을 것이 아니라, 사회적 경제적 약자를 대변하며 살아온 분들 가운데서 찾아야 한다.”는 의견을 밝힌다. 이상돈은 결국 새정련의 비상대책위원장의 꿈을 접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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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돈은 정동영에게 복수할 기회를 엿보고 있었던가 보다. 이상돈은 어제(16일) 정동영 전 통일부 장관이 입당할 경우 국민의당에 동참하지 않겠다는 말을 공개적으로 내뱉는다. 그런데 오늘 국민의당에 입당해서 공동선거대책위원장 자리를 차지한다. 재작년 문재인이 이상돈 영입의 꿈을 못 이뤘던 것은 실력 있는 정치인들이 "아닌 것은 아니라"는 목소리를 내고 있었기 때문이었던 것,

그러나 친노 일색인 지금은 국보위 출신 김종인을 기어코 더민당의 비상대책위원장 겸 선거대책위원회 위원장으로 영입한 것이다. 제 버릇 개 주나. 그 때의 그 그릇에 그 나물 그 밥 아니던가? 이것이 문재인이다.

이쯤해서 안철수와 국민의당 얘기를 좀 하자. 이들은 상대의 떡이 커보였던가 보다. 박근혜가 버린 퇴물들을 대단한 인재라 여기고 서로 영입에 목을 맸다. 결론은 버킹검, 더민당은 김종인이요 국민의당은 이상돈이다. 문재인과 안철수가 한 일이다. 문재인 안철수 도진개진이다.

정치가 왜 이 모양인가. 원칙도 없이 묘수궁리에만 골몰 하니까 매번 자폭 형 인사가 판을 치게 된다. 잘못된 환상과 이미지 정치에 매몰되어 자기부정을 일삼는다.

안철수와 국민의당은 더민당의 교란작전에 휘둘려 제대로 된 선수(善手) 한 번 못 놔보고 악수(惡手)만 두고 있다. 이는 필시 멍청하거나 훼방꾼들의 덫에 갇혀 갈팡질팡하는 탓일 게다. 타이밍도 못 잡고 인재는 놓치고 차선책도 못 챙기고 있다. 원내교섭단체를 꾸릴 수 있는 타이밍도 다 놓쳤다. 국민의당 잘 되는 것 막으려는 교묘한 언설이 독인 줄도 모르고 꿀꺽 삼킨 탓이다. 그들에겐 옥석을 가릴 눈도 없고, 가려들을 귀도 없다. 이게 다 실력 부족이다.

축하한다. 이상돈을 영입한 국민의당, 늦었지만 김종인을 영입한 더민당에도 축하를 보낸다. 박근혜에게서 버려지면 대단한 인재라도 되는 모양이다. 두 정치 초년생들, 박근혜의 퇴물들과 함께 깨춤 추며 잘해 보시길 바란다.

 

더민당의 초짜 문재인에게 묻는다

국민의당 초짜 안철수에게 묻는다

 

박근혜가 버린 두 퇴물이

무에 그리 인재란 말인가

이상돈과 김종인 그 무슨 인재란 말인가

 

인재(人災)가 되리라. 재앙이 되리라 

보수본색 드러내며 남북관계 파탄 내는 자  

뇌화부동 하는데 주저없구나 그 세치 혀 재앙이 되리라 

 

*글쓴이/박정례 기자.르포작가.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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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2/18 00:23 2016/02/18 0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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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정치의 길에서” 가진 것 다 바쳐 헌신하고 파=②

-이계안 전 의원이 말하는 ‘잘 사는 나라 따뜻한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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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레이크뉴스 선임기자 박정례= 뿌리는 땅속에만 있는 게 아니다. 마음속에도, 나아가서는 세상 어디에도 있다. 나 하나의 노래가 기억의 저편 속에서 뿌리가 되어 살아 숨 쉰다. 그 뿌리는 한 인간의 평생을 좌우할 만큼 강렬한 의미로 살아나 시간과 사건 속에서 갖가지 조건과 부대끼며 지난한 몸부림의 시간을 갖는다. 시간이 지나고. 어느 한순간 세상 밖으로 나와 활짝 피어난다. 결연히 나부끼는 의지이자 시대의 표상이다.

한 사람의 행동 그 지난한 몸부림

이계안 전의원에 대한 탐구를 위해

풍문과 소문과 진실 속으로....

현대자동차 사장 출신 정치인 이계안, 풍문으로만 들었다. 신문과 방송에 거론되는 이름 석 자로 만 알았다. 성장하는 속도가 우리들 귀속까지 팍팍 들릴 정도로 잘 나가던 굴지의 재벌회사 최고책임자였기에 뉴스를 통해서 듣던 이름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그가 정치계로 진출하더니 얼마 안 있어 서울시장에 출마한다는 기사가 떴었다. 40넌 동안 전문경영인 생활을 하다가 정치에 입문하게 된 그, 다시 정치계로 돌아온 그, 속도를 내어 지금 곧장 그를 찾아가 본다.

 

-3단계 인생론을 말씀하셨는데요?

“인생을 3단계로 구분하여 살고자 했다. 태어나서 입사하기까지가 1단계요. 직장생활로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며 꿈과 목표를 이루기 위한 자아실현기가 2단계, 이타적 삶을 위해 사회에 헌신봉사 하는 3단계의 삶이다.”

이 전의원의 인생 2기는 1976년 현대중공업에 입사하여 현대캐피탈 회장으로 퇴임한 2004년 2월15일까지다. 그런데 그의 인생 3단계는 이타적인 삶의 단계로 설정하여 사회를 위한 헌신기로 잡고 있다.

 

-3기 인생에 정치가 포함되었나?

“정치를 하게 된 계기는 밖에서부터 찾아왔다. 평사원으로 입사해서 세계 굴지의 자동차회사 책임자가 된 나를 성공한 롤 모델로 보고 영입제안이 다각도로 이루어졌던 때문이다. 때마침 대표이사 회장으로 있는 현대캐피탈. 현대카드(주)의 유명한 광고카피가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 아니었나. 55세를 기점으로 인생 3단계를 구상하고 있던 터에 대학동창들이며 사회 곳곳에서 정말 많은 러브콜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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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은 만년야당이었던 곳이었다. 이유가 무엇인지..

“나의 베이스는 분명 보수 쪽이다. 재벌회사에서 30년이었으니. 그곳은 양지중의 양지라고 일컬어지는 곳이다. 그러나 나의 가슴속에는 진보의 DNA가 있었다. 조지프 나이의 말처럼 효율성과 정의라는 가치가 상호 충돌할 때 어떤 의사결정을 내려야 하는지 깨달았기 때문이다.” 당시 한나라당이 아닌 열린우리당을 선택하게 된 이 전의원의 설명이다. “정치와 담을 쌓고 한 길로만 달려온 세월이었다. 가난에 지친 가족을 일으켜 세울 책임을 지고 오로지 실력과 부지런한 품성을 바탕으로 한 분야에서 우뚝 섰다. 그렇더라도 고 정 회장으로부터는 사업보국의 가치를 배웠고, 시대와 타협하지 못했던 아버지와 누이동생 계숙이를 통해서는 이타적인 사랑과 실천의 중요성을 배웠다.”

이 전 의원의 가족사는 흥미롭다. 수감생활을 하느라 초등학교 졸업시기가 다 되어서야 얼굴을 마주하게 된 아버지, 연좌제의 희생자가 된 12살 손위 형과 방물장수로 가족을 먹여 살린 어머니 그리고 ‘한신대학교의 ’전설적인 운동권 대모‘였던 동생 이계숙 이들 모두가 ‘사랑과 야망’ 류의 드라마에서나 나옴직한 독특한 캐릭터를 형성하고 있었다. 그는 특히 콩나물무침을 한 양푼 가득 무쳐 후배들 밥걱정을 하며 수배자들을 돌봐줬던 누이 이계숙을 가슴에 품고 있었다.

 

-쉬운 선택은 아니었을 것 같다.

“항상 집권하고 항상 잘나가는 보수 세력들이다. 늘 집권만 하던 그들처럼 나 역시 30년을 대기업의 보호 속에서만 살아온 사람이었다. 그런 탓에 진보운동을 했던 아버지의 후배들이나 심지어 여동생의 한신대 후배들과 주변의 가까운 지인들까지도 나의 선택을 신기하게 여겼다.”

하지만 사람들이 이계안의 속마음까지 다 알 리가 없다. 이계안은 평소 회사 동료들에게 “아버지 상(喪)을 당했을 때 조문객이 더 많이 오는 직장이 어디인가를 생각해야 한다. 우리 현대가 평생직장이고 그런 곳이다”라고 부하직원들을 향해서 말하던 것처럼 그 또한 정당을 결정해야할 때도 편안한 길보다는 “가치에 우선하는 결정을 했다.”고 한다.

이계안을 정치권으로 끌어들이려는 친구들의 권유 앞에서 아내와 함께 찾아간 목사님은 ‘정치도 잘 하면 살아있는 신학이 될 수 있다’고 그에게 용기를 북돋아 줬다. 이때 그가 붙잡은 결론은 “정치를 편한 곳에서만 할 수 없다”는 가치기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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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연구소를 운영하시는 이유나 정치인으로서 크고 작은 신념에 대해서 알고 싶다.

“2.1연구소는 해외투자처를 물색하던 중에 나온 아이디어다. 유럽 쪽 거점을 스페인에 두려고 시장조사를 했다. 좋은 조건을 보고 스페인을 점찍고 있었다. 그런데 결정이 임박한 순간에 현지 사정을 잘 아는 연구기관으로부터 급히 연락이 왔다. 합계출산율이 최소 2.1명은 돼야 노동력 수급이 가능하다. 그런데 스페인은 출산율이 낮아 공장을 지어놓았다 손치더라도 향 후 노동력수급을 자신 못한다는 보고였다. 그때부터 출산율의 중요성을 깨닫고 관심을 갖게 되었다.”

기업가들의 정보 수집력은 전쟁 중에도 빠르고 정확하다는 속설이 있다. 현대자동차 CEO 이계안, 해외투자처를 물색하는 과정에서 출산율의 중요성에 눈을 뜬다. 현재 1.21명인 우리나라의 출산율을 2.1명으로 복원하는데 이바지하고자 2.1연구소를 설립하게 됐다.

“나는 세상을 바꾸는 것에 관심이 많다. 출산율과 병행해서 화두로 삼고 있는 것이 3가지인데 기후변화와 인구변화와 남북문제다. 이 3가지 모두 글로벌 이슈이고, 국제정세와 맞물린 중요사안이다.”

 

-정치에서의 신념은 정신이고, 꿈은 목표일 텐데 좀 더 자세히 들려달라.

“정치는 가난한 사람에게 희망을 주고, 기회를 상실한 사람에게 도전의 기회를 주는 것이다. 이를 실행 가능하도록 하는 것이 입법이다. 여성과 소외계층, 사회적인 약자를 위한 법말이다. 법안 마련이 정치다. 정치가는 경제회복을 위한 대안 제시도 할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이루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양심적이고도 성공한 산업화 세력과 민주화 세력이 만나야 한다는 것이 평소의 지론이었다. 나는 양 세력이 만나서 약자를 위한 좋은 입법을 하는데 관심이 많다. 나 자신이 성공한 CEO로서의 역량과 진보의 유전자를 갖춘 정치가라고 믿기에 인생3단계를 정치인으로 나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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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대대통령이 기업가 출신이다. 경기후퇴와 국력을 약화시켰다는 여론이 있다.

“경영과 정치와 본질적인 차이를 통찰하지 못한데서 온 때문이라고 본다. 경영은 효율과 혁신이 목표다. 반면에 정치는 정의를 목표로 하는 분야다. 의사결정 과정에서도 경영은 본질적으로 독재지만 정치는 민주주의다. 그래서 정치는 예술인거다. 또 경영은 결과이고 정치는 과정이라는 명제를 놓고 다투는 분야다.” 이어 그는 “이명박 전 대통령이 현대에서 사장을 역임한 회사들을 보면 현대건설, 현대엔지니어링, 현대제철, 현대리바트, 현대엔진 등 고객수가 적은 회사들이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며 고객수가 적다는 것은 사장이 영업을 다하고 참모들이 중요한 결정에 참여할 여지가 거의 없다는 점을 의미한다는 설명이었다.

과정과 절차를 중요시 하는 정치의 덕목은 사라지고 오로지 독불장군 식 나 홀로 정치로 인해 지금 우리사회는 극심한 가치전도의 혼란 속에서 신음하고 있다.

 

-기업으로 돌아갔다가 다시 정치로 유턴했는데

“다시 한 번 강조하는 말이지만, 나의 몸에는 CEO로서의 ‘혁신’의 피와 진보의 DNA가 동시에 작동한다. 나는 정치를 통해서 ‘잘 사는 사회, 따뜻한 사회’를 이루고 싶다. 2006년도에 서울시장에 출마하기 위해 당내 경선에 참여했었는데 계파도 조직도 등에 업지 않은 탓인지 후보경선에서 밀렸다. 짧은 정치기간에 두 번의 후보경선을 치른 탓에 정치는 한 번만 한다는 아내와의 약속을 지킬 수밖에 없었다.”

그때의 서울시장 선거를 기억한다. 당내 여론조사에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높은 지지율을 보였던 후보가 본선에서는 투표율 61:27로 상대후보와 무려 34% 차이가 났다. 당내여론조사의 거품이 심했다는 증거다.

“경영에서 또다시 8년이 지났다. 이제는 정말 더 늦기 전에 금전이든 경륜이든 내가 가진 모든 것을 다 내어놓을 때가 됐다고 생각한다. 그동안 열심히 번 재산은 아내와 자식과 3등분으로 나눴다. 내가 태어난 평택을 위해 내 모든 것을 다 바치려고 한다. 내겐 아직도 서울시장후보 경선에 나서던 때의 기억이 선하다. 많이 듣고 많이 이끌어내는 소통의 리더십을 구현하고 싶은, 자치단체장으로서나 정치가로서의 꿈은 아직도 살아 있다.”

 

-평택과 꿈 잘 알았다. 그럼 왜 신당인가?

“앞에서 말했지만 진보 성향의 정당에서 정치를 시작했다. 그렇지만 이내 경영 책임자로 되돌아갔다. 이 기간까지 합해서 산업현장에서 보낸 세월이 총 40년이다. 하지만 마음 한가운데서는 제대로 된 정당을 만들고 싶은 생각이 자리하고 있었다. 때마침 안철수 대표가 2013년 12월부터 당을 만드는 작업을 했기 때문에 새정치추진위원회 공동위원장으로 참여했다. 이 같은 인연으로 신당의 후보로 나선 것이다.” 그러면서 이 전의원은 ‘왜 평택 출마인가?’에 대해 부연설명 좀 해야겠단다. “평택은 오랜 독과점 구조로 인해서 소비자가 외면 받는 것과 같은 상황이다. 도의원에서부터 시장, 국회의원,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보수여당의 독점정당 체재다. 이런 틀을 내가 나서서 꼭 한 번 바꿔보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출마의 변으로 봐도 되겠다.

“그렇다. 평택이 뽑은, 평택을 위한, 평택의 최고 일꾼이 되고 싶다. 내가 가진 모든 것을 다 바치고, 다 내어놓고 싶은 곳이 고향이다.”

이계안 그에게서 연상되는 말은 현대자동차 CEO, 2.1연구소, 칼레의 시민 등이다. 희생자 6명을 내놓으라는 적국의 왕 앞에 죽기를 자원하고 나선 칼레시의 지도층 6인의 이야기에서 ‘잘 사는 나라, 따뜻한 사회’를 위하여 자신의 모든 것을 내놓으려는 결심을 읽을 수 있다. 바위와 같이 굳건한 그의 의지가 평택시민들을 향해서 빛나길 빈다.

 

*글쓴이/박정례 기자.르포작가.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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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2/16 14:59 2016/02/16 1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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