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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메이데이를 위한 삿포로 선언

세계 메이데이를 위한 삿포로 선언
우리 자유는 연대(連帶) 속에 있다.
우리 생존은 연대 속에 있다.
우리 연대는 다양한 사람들의 다양하고 풍부한 유대이다.

우리는 고독하고 불안정한 날들을 살아가는 것을 강요당해 있다.
그리고 때로는 그 속에서 죽어가는 것조차 강요당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유대 속에서 사는 것을 원한다.

우리는 전 세계 프레카리아트(precariat)들에게 호소한다.
2009년에 세계 메이데이를 실현하자.

연대를 파괴하는 기도, 경쟁으로 몰아대는 힘, 만들어지는 격차나 빈곤, 모든 전쟁이나 차별 ....
우리를 억지로 억압하고 지배하려는 모든 것을 무서워하지 말아라.

우리 하나 하나는 무엇보다도 더 훌륭하다.

자, 기뻐하자.
크게 기뻐하자.

새로운 사회는 이미 우리 것이다.

2008년 4월 29일 "자유와 생존의 연대 메이데이 in 삿포로" 참가자 일동

世界メーデーのための札幌宣言

わたしたちの自由は、連帯の中にある。
わたしたちの生存は、連帯の中にある。
わたしたちの連帯は、多様な人びとの多様で豊かなつながりである。

わたしたちは、孤独で不安定な日々を生きることを強いられている。
そしてときには、その中で死にゆくことさえも強いられているのだ。

だからわたしたちは、つながりの中で生きることを求める。

わたしたちは、全世界のプレカリアートに呼びかける。
2009年、世界メーデーを実現しよう。

連帯を壊す企て、競争へと駆り立てる力、つくられる格差や貧困、あらゆる戦争や差別…
わたしたちを力でねじ伏せ、支配しようとする一切のものを恐れてはならない。

わたしたち一人ひとりは、何にもまして素晴らしい。

さあ、喜ぼう。
大いに喜ぼう。

新しい社会は、すでに私たちのものである。

2008年4月29日「自由と生存の連帯メーデーin札幌」参加者一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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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1

켄짱 잘 다녀왔습니다...
후기예요^ ^
스크롤의 압박 장난 아니니까 각오하시고 클릭하셔야 해요...
기사는 사진하고 같이 간단하게 해서 따로 정리해보려고요...

도쿄에서의 집회를 경험하고 고민했던 것은 일본에서의 투쟁은 일단, 일본의 상황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외국인으로서의 내가 그곳에서 어떤 의미를 찾고 어떻게 활동해야 하는가...였어요...

폴리스라인을 넘는 것과 법이 정해놓은 질서에 따라가는 것과 관련된 여러가지 고민들은 이미 한국에서도 계속 되었던 것이었기 때문에 경찰국가인 일본에서 더 깊어졌습니다...내가 이곳에 온 목적, 내가 이곳에서 해야하는 일, 나의 액션과 일본행에서 어떤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것인가.

일단, 내가 알고 있는 것은 사람들이 G8을 막기 위해 무슨 짓을 하든지 그들은 모이고야 말았고 매번 사람들의 속을 뒤집어놓는다는 것이에요...

일본의 액션을 준비하면서 생각했던 것은...무엇보다도 G8의 의미와 왜 반대해야하는지를 삿포로 시민들에게 알리는 것, 그리고 일본의 사람들에게 알리는 것.
무리하게 현지 활동가들의 연행을 감수하고서까지 액션을 하는 것은 현지의 지속적인 활동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나름의 선판단이 있었기 때문이었지요...
어쨌거나 나는 잠시 여기에서 액션을 하다 돌아갈, 웬만해서는 연행되지 않을 외국인의 입장이니까요.

어쨌거나 일본에 있는 내내 숨이 막힐 것 같은 법의 굴레 속에서 몸부림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운동하고 힘겨운 삶을 마땅히 살아내고 있는 일본의 활동가들을 만났고 마음에 담았습니다.

한 꼬뮤니스트이면서 생디칼리스트인 활동가와 삿포로에서 나눈 이야기가 생각나네요...그 친구는 자신은 꼬뮤니스트고 생디칼리스트이지만 아나키즘이든 소셜리즘이든 맑시즘이든 그런 것들은 자신에게 중요하지 않다고 했어요. 자신에게 있어 가장 소중한 것은 친구들이고 동료들이지 이념이 아니다...
우스갯소리고 그럼 캐피탈리스트도 상관없냐고 물었는데...그친구에게 상처를 준 것 같아요...진지하고 슬픈 눈빛으로 나의 농담에 진지하게 답해줬어요...
주머니에 있던 돈을 전부 꺼내보이면서 이것이 나의 전 재산이다. 그래서 웬만한 거리는 다 걸어다녀야 한다. 돈이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이것이 캐피탈리즘이다. 정말 엿같다. 자신은 건물을 부수거나 만드는 일을 하는데 대기업의 일이고 캐피탈리스트를 위해서 일하고 있다. 돈을 벌기 위해서 해야만 한다.
진심으로 그친구는 괴로워 했어요...고뇌하는 그 친구와 맞부딪히면서 눈물이 고이고 가슴이 먹먹해져서 아무말도 할 수가 없었어요...

그리고서 그 친구는 이 말을 덧붙였지요...
내가 고민해야 할 것은 어떠한 이념과 주의를 가지는 것이 아니라
なにを やるか?
무엇을 할 것인가? 라고...

지금을 살아보자고 고민하고 있는 나의 마음에 큰 울림을 주는 말이었어요...
일본에서의 지금을 어떻게 살아야하는지 힘들어하고 있던 상황에서 그 말은 큰 힘이 되었어요...지금을 살고 있는 나는 무엇을 할 것인가?

아마도 한국에 돌아온 지금도 계속 고민하겠지요...

스크롤 압박 꽤 쎄니까...긴장하시고...싫으신 분은 안읽으셔도 돼요...
쓰다보니까 궁시렁 궁시렁 길어져서...2편까지 가야될 것 같아요...




디온님과 마찬가지로 저도 생애 첫 일본여행이고...또 꼭 가보고 싶었던 곳이라...들뜰 뻔 했지만 검열과 억류의 소식들이 속속 들어오면서...긴장되기 시작했다...
처음 비행기에서 내려서...
경악을 금치 못했던 것은 생각보다 더 끔찍한 지문날인 때문이었다...
사진까지 찍어대던 그 입국장에서...컴퓨터와 카메라를 부숴버리고 싶은 충동을 느꼈고 지문날인을 거부하고 싶은 마음이 치밀어 올랐지만...일단 들어가야하기 때문에 참아야만하는 입국자의 입장이 답답해졌다...

직업-학생, 방문목적-친지방문, 아라시 콘서트

물어보는 것도 없이 그냥 지문과 사진만 찍고 바로 통과...
괜히 겁먹었군...하고 나오는데 불쑥 팔랑팔랑이 나타났다...
어찌나 반갑던지...

모**상의 집에서 보낸 도쿄의 시간들은 그곳에서 노력하고 있는 활동가들을 만날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었다...처음 집에 들어섰을 때 나를 맞이하던 그 수많은 검고 작은 생명체들 때문에 과연 내가 여기서 생활할 수 있을까 싶기도 했지만...
곧 익숙해졌다...

시부야에서의 첫 시위.
내가 들어왔던 날, 사운드데모가 있었다고 했다...한국에서 간 고양이들은 그 사운드데모가 매우 인상적이었다는 말을 해주었다. 길바닥이 생각나서 모두가 함께 왔으면 좋았을텐데...아쉬움을 달래며 집회를 시작했다...
놀랐던 것은 길고 긴 연대발언, 그 중에 고양이들의 발언이 제일 길었지만...어쨌거나 한국에서도 연대발언을 듣지 않던 나였기 때문에 참 힘들었다...
카라님의 말대로 거리행진은 정말 정말 준법적으로 이루어졌고 경찰들은 쉴새없이 미안하다며 떠들어댔다. 아아...일본은 이런 분위기구나...

끝나고 오***상이 우리를 초대해주어서 샤워할 수 있는 큰 도움을 받았다...
도쿄에서 만난 활동가들 모두 자신의 삶을 사르고 있었고 잠깐이나마 찾아온 우리를 진심으로 아껴주었다...

영어는 전혀 되지 않고 좃또 스꼬시 니홍고만 가능한 나 때문에 모두 애를 먹었다...그래도 영어공부할 생각이 들지 않는 나 자신이 뜨악했다...

삿포로로 들어가는 날.
팔랑팔랑이 국내에서의 이동은 전혀 문제가 없다는 일본인들의 말을 전해왔다.
2,000엔의 우치와가 짐이 되어버릴 줄이야...

삿포로에 도착해서 훗카이도상을 만났고...짐을 풀었다.
치토세에서 나오면서 확인한 경찰병력만 해도 광화문에 깔렸던 애들만큼 되었던 것 같다...치토세로 들어가는 길목은 이중 삼중의 검문과 검색이 이미 시작되고 있었다...아직 며칠이나 더 남았는데도...아마도 2MB가 들어올 때 마중 나오는 것을 불가능하지 않을까...바로 연행?
교통비를 절약하기 위해 자전거를 빌리고 일정들을 각자 계획했다...
주로 언어가 약해서 서로 절충해야하는 세명이 함께 움직였다...
자전거로 한시간 이상의 거리를 매일 왕복하면서...서울에서 자전거를 타고 도로를 누비는 것을 떠올려보다 바로 포기...
도쿄와는 비교도 안되게 많이 깔려있는 경찰들...이건 뭐 일본의 모든 경찰들이 다 온거야?
셋은 컨벌전 센터를 기점으로 움직였는데 일단 언어로 인한 의사소통의 문제와 우리가 접촉할 수 있는 활동가들이 별로 많지 않았기 때문에 일단 거기서 일정을 시작했다...그곳에서 만난 활동가들과 숙소에서 만난 활동가들과 계속해서 함께 생활했다...

7월 3일.
저녁에 있는 펑크밴드의 공연에 참석했다. 아나키의 깃발을 펄럭이며 그들은 NO G8과 반자본주의를 외치며 열광했다. 과격한 슬래밍과 액션들 속에 전혀 알아들을 수 없는 말들로도 음악과 함께 소통하고 연대했다. 유럽 활동가들의 냄새 때문에 좀 힘들었지만 그래도 즐거웠다.(슬래밍할 때 주로 닿았던 오른쪽 팔에 냄새가 배였을 정도...) 7월 5일에 오오도리에서 만나자는 약속을 하고 숙소로 돌아왔다.

7월 4일.
집회가 있었다. 이날의 집회는 크게 기억에 남아있지 않은데 이유는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마도 환영회도 있었는데 그곳에서 '이명박은 물러가라'는 노래를 개사해서 경찰은 물러가라, G8은 물러가라 이런 노래들을 일본어로 불렀다. 근데 이게 5일인지 4일인지 기억이 정확하지가 않다. 아...4일인가 보다. 솔직히 그자리가 어쩐지 불편해서...텔레비전타워 아래의 벤치에서 오***상과 유**상, 그리고 누구였더라...아무튼 다섯명이 이야기와 맥주를 나누었다...오***상은 내가 도쿄에서 술을 잘 못한다고 말한 것을 기억하고 포카리를 뽑아주었다. 포카리가 일본의 음료수라는 것을 알려주면서...미국게 아니었단 말이지...

7월 5일.
데모는 세그룹으로 나뉘어졌고 그룹마다 경찰이 둘러싸 그룹간의 소통조차 쉽지 않은 상황 속에 데모가 시작됐다...아나키의 검은 깃발들이 휘날리고 그 속에 함께 출발했다...어쩐지 가슴이 먹먹해졌다...
나는 첫그룹인 사운드데모 그룹. 주로 젊은 일본 활동가들과 외국인 활동가들이 많은 그룹. 그 뒤의 그룹의 상황은 나로서는 전혀 알 수가 없었다.
처음엔 뒤쪽의 밴드들과 함께 시작했지만 어느새 사운드트럭 바로 뒤로 와있었다...
신나는 리듬과 구호에 자연스럽게 몸은 들썩이고 목소리는 높아져 갔다...
검은 깃발 가운데 반가운 깃발, 에스페란토 아나키스트의 깃발도 함께 휘날리고 있었다...고양이 분장을 하고 등에 구호를 달고 손에 방울을 들고 춤도 아니고 스텝도 아닌 동작을 하며 신나게 행진했다. 경찰의 채증이 너무 심해서 중간에 검은 두건으로 얼굴을 가려야 했지만...
경찰들은 땀을 뻘뻘흘리면서 일본인 활동가들이 경찰들을 약올리는 멘트에 자기들도 웃기도하고 대꾸도 하면서 함께 행진했다...그 속에 섞여서 나도 들고 있던 구호가 적힌 부채로 부쳐주기도 하면서...
이런 시간들도 잠깐, 한 외국인 활동가가 가면을 쓰고 사운드트럭에 올라타자마자 갑자기 경찰이 치고 들어왔다...영문도 모르고 일단 트럭을 빼앗기지 않기위해 긴장했고 위에 있던 사람들은 다 뛰어 내려왔다...갑자기 들어온 경찰들과 몸싸움을 하게 됐고 찍고 있던 캠코더를 신경쓸 겨를도 없었다...(나중에 영상을 보면...)
순식간에 상황은 정리되고 다시 행진이 시작됐는데...이때는 연행된 사람이 있었는지 없었는지 정확하지 않지만 없었던 듯하다...
트럭 뒤에 손을 올리거나 기대거나 하면서 다시 행진이 시작됐지만 경찰들이 갑자기 쳤던 순간이 있었기 때문에 긴장을 늦출 수는 없었다...
얼마나 행진했을까...갑자기 경찰이 다시 트럭을 쳤는데...트럭의 앞유리를 깨고 운전수를 끌어내려고 하고 있었다...내 기억에는 이때 경찰이 트럭의 앞부분을 치면서 동시에 트럭의 뒤와 위로 진입했다...눈 앞에서 앞좌석이 엉망이 되고 트럭 위의 DJ들이 연행되고 트럭을 빼앗겼다...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고작 やめろ!!!라는 고함과 욕설, 그리고 트럭 안에 실려있던 깃발과 물건들을 경찰의 눈을 피해 끌어내고 경찰 손에서 빼앗는 것 뿐이었다...도쿄의 한 사무실 주소가 적힌 택배물, 여러 단체의 깃발들, 활동가의 가방...이런 것들을 트럭 안의 깃대로 끌어내고 막으려는 경찰과 신경전을 벌이고...
마음 같아서는 뛰쳐올라가고 싶었지만...우리가 집회에서 벌인 난동은 그대로 채증되어 남아있는 일본 활동가들을 연행하는데 쓰인다는 팔랑팔랑의 말 때문에 발만 동동 구를 수 밖에 없었다...
애초에 생각했던 액션들, 이를테면 유카타를 입고 고양이 분장이라든지는 시간의 이유로, 또 바닥에 글씨를 쓰는 액션들은 불법이라는 리걸팀의 충고로, 경찰의 가슴에 꽃을 다는 것은 자칫 위험해지거나 불리한 상황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한 활동가의 충고로 아예 시도도 못했다. 가지고 갔던 종이꽃비폭죽을 긴장의 순간에 뿌려보았지만 오히려 경찰의 화만 돋군듯 하기도 했고...(화약이 일단 터지니까...이건 불법이 아니라는 리걸팀의 조언으로 실행에 옮겼다)
경찰과의 신경전을 뒤쪽에서 벌이고 있던 두명은 일본의 이 상황 자체가...(도쿄에서부터) 바닥부터 끓어올라 부글부글대고 있었다...
오만가지 생각이 드는 가운데 연행은 진행됐고 일본어로 외치다 열받은 나는 한국에서도 쓰지 않는 쌍욕들을 해대기 시작했다...(나중에 확인해보니 울면서 욕해댄게 영상에 다 녹음되어 있어서...찍히지 않은게 어찌나 다행인지)
말레이시아에서 온 활동가 한명이 흥분해서 뛰어들었다 경찰에 포위되어 있던 것을 다**상이 끌어내어왔다. 연행된 운전수는 다**상의 친구였다...
나중에 알게 됐지만 이 과정에서 경찰의 과격한 진압을 항의하던 로이터의 현지 카메라맨이 함께 연행됐다고 한다...총 4명 연행.
차 안에 들어있던 기기들, 들어내려다 경찰의 제지로 포기하고 결국 트럭주변에서 항의하다 다시 행진을 시작했다...한국이라면 납득할 수 없는 상황.
당시에는 그 누구도 연행의 이유를 알지 못했고 경찰쪽에서도 연행사유를 밝히지 않았다...행진을 마무리하고 모두 다시 중앙경찰서로 항의방문을 했다...
여기서도 연행의 위험 때문에 진입은 꿈도 못꾸고 도로 건너편에서 항의를 계속했다...유럽의 활동가들은 입에 NOG8스티커를 붙이고 침묵 농성을 할 것을 제안했지만 일본의 활동가들은 계속해서 투쟁하기 위해서는 오오도리파크로 돌아가야한다고 말했다...그 과정에서 유럽의 활동가들과 약간의 의견마찰이 있는 듯했다...
외국인 활동가들은 일본의 이 상황 자체를 납득하기 어려워 했다...
그렇지만 그 상황에서 가장 화가 나고 분통이 터지는 것은 아마도 연행된 사람들의 친구인 일본의 젊은 활동가들이 아니었을까? 그들의 표정은 이미 충분히 끔찍하게 일그러져있었고 분노에 차 있었다.
함께 있던 일본인 활동가가 일본의 법적 상황을 설명해줬고 그 중에 만난 디온님과 희선님도 그런 상황들을 알려주었다. 그래서 활동가들이 삿포로에서 캠프로 쓰고 있는 토우베츠에서 자체적으로 미디어컨트롤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고 우리쪽에서도 조심하게 되었다.
일본은 영장 없이 최장 23일까지 구금이 가능하고 심문하는 동안 변호사를 제외한 일체의 면회가 금지된다. 검사의 허가만 있으면 경찰쪽에서 구금기간을 계속 연장할 수 있기 때문에 그런 말도 안되는 기간이 가능하다고 한다. 그리고 같이 연행된 사람들끼리도 만날 수 없기 때문에 심리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엄청나게 힘든 시간들을 보내게 된다고 한다. 때문에 이렇게 연행되는 것 자체가 엄청난 타격을 주고 또, 사회생활에서도 큰 곤란을 겪게 된다고 한다.
집회에서 일본경찰의 채증은 정말 가공할만한데 충돌이 있으면 경찰쪽에서 캠코더와 디카가 사방에서 십수대가 올라와 찍어댄다. 깃발로 가려도 소용이 없다. 정말 사방팔방에서 찍어댄다. 마치 한국에서 기자들과 시민들이 찍는 것을 방불케할 정도로.
이렇게 채증한 것들을 토대로 연행자들을 심문하는데 어느게 유도심문이고 어느게 증거자료를 가지고 심문하는 것인지 알기 힘들다고 한다. 도쿄에서는 일본 경찰들이 바보라고 생각했는데 여기 와서 보니 한국보다 훨씬 영악하고 사악했다.

모든 게 끝나고 저녁에 도*님이 준비한 레이저 태깅이 시작됐다.
현지 기기의 문제와 지형적인 상황으로 좀 지연되기는 했지만 어쨌든.
6일이 캠프로 출발하는 날.
올나이트 공연에 원래 참여할 생각이었지만 캠프로 가야할 짐을 꾸려야하고 또 낮의 상황으로 체력이 소진되어 있었기 때문에 캠프에서의 액션을 위해 집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토우베츠에서는 여러가지 회의들과 논의들이 연일 계속되는 분위기였는데 내가 있는 숙소에서는 주로 머무는 활동가들과의 교류가 중심이 되었다.
원래는 토요라캠프로 갈 예정이었지만 훗카이도상의 제안으로 닷테캠프로 네명의 캠프를 변경했다. 팔랑팔랑은 예정대로 토요라로 가기로 했다.

5일까지의 상황들을 보내면서 캠프에서의 집회나 액션 역시 호락호락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윈저는 커녕 토야코 근처도 못가는 것은 아닐까 하는 염려가 앞섰다. 일단 소우베츠와 닷테는 집회허가가 났지만 토요라는 허가가 없는 상황이라 어떤 문제가 생길지 전혀 모르는 상태였고 게다가 유럽의 활동가들이 주로 토요라로 가기 때문에 약간의 긴장감도 감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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훗카이도

지금은 훗카이도...

아직 새벽 4시밖에 안됐는데 벌써 밖은 환하다...

해가 빨리 뜬다...떠도 너무 빨리 뜬다...

지기도 엄청 일찍 지더니...

요즘은 매일 4, 5키로는 걷는 듯 하다...

희한하게도 발바닥에 물집은 잡히지 않는다...

단지 무릎과 발목이 아플 뿐...

 

창밖의 샛파란 하늘 사이로 까마귀가 날아오른다...

 

평화도...그리고 자유도...평등도, 생명도...저렇게 동이 트고...저렇게 힘차게 날아올랐으면 좋겠다...

 

다른 나라에서 온 활동가들에게 우리의 활동과 한국의 상황을 알리는 찌라시를 만들다가...

졸음을 이기지 못하고...이렇게 잠시 한숨을 돌린다...

 

일본의 활동가들은...

한국에서 온 우리를 살갑게 맞이한다...

불과 한시간 반을 날아온 우리에게 수억만리 날아온 사람을 끌어안듯이...

자신의 모든 생활과 모든 마음을 털어 우리에게 내어준다...

사무실에서 일하면서...흔히 형식처럼, 그리고 생색내기 위해 걸었던 연대...

그저 돈이나 몇푼 보태고 말았던 그 연대라는 말보다...

페페상의 랩에 곱게 싸여진 거뭇한 현미오니기리가 더욱 뭉클하고 사무친다...

신자유주의를 앞세우고 어떻게 하면 더욱더 교묘하고 확실하게 사람들의 살과 피를 도려내고 생태를 죽일지만을 연구하는 그들을 곳곳에서 달려온 활동가들과 함께막기 위해서 열아홉시간을 배를 타고...아마도 그는 이곳까지 올 것이다...

아침 열시부터 저녁 일곱시까지 일하면서도 우리를 위해서 기꺼이 자신의 집을 통째로 내어주고...우리를 위해 밤 늦게까지 요리를 하고...일본어 수업까지 해주는 모테키상은...모처럼의 휴가를 모두 이곳에서의 직접행동을 위해 불사르고 있다...

시부야에서 만난 우리를 씻기고 먹이기 위해 자신의 집까지 데려가고 또 삼겹살과 야끼소바를 직접 만들고 고급맥주를 기꺼이 헐었던 작은 아까짱의 아버지 오오미치상도...이곳으로 달려오고 있다...

수많은 활동가들이...수많은 아나키스트들이...

히치하이킹을 하면서 모여들고 있다...

예쁜 워킹을 하는 고이즈미상은 도쿄에서 액션을 계속하고...성화군은 일본에서 높아지고 있는 군대와 징병제의 부활을 막으려는 일본 활동가들과 함께 한국의 징병제를 무너뜨리기 위해 열심히 일하고 열심히 행동하고 있다...

활동가들의 활동을 저지하려는 일본 당국의 말도 안되는 압력에 굴하지 않고, 또 지금의 우리를 북돋우기 위해서 고민하고 힘을 주는 카라님...

다음날 출근의 압박 속에서도 기꺼이 기타를 메고 자전거를 끌고 길바닥을 누볐던 쏭님...

길바닥을 지키며 돌아오지 않는 목을 부여잡고 외치다 드디어 목청이 터져버린 꼬미님...

언제나 짐들을 책임지고, 부끄러워하면서도 맛깔스러운 음율을 뽑아내고야마는 양군님...

늘 재미있는 유머로 나를 혼란스럽게 하는 짱돌님...

이 판에 하나밖에 없는 퍼커션이라 늘 피곤하지만, 과중한 노동시간에 시달리지만 열심히 손에 불이 나게 젬베를 두드리는 멍구님...

우리를 일본에 보내놓고 더욱 열심히 살고 있을 길바닥의 소중한 사람들...

그리고 눈코뜰 새 없이 바쁘고 제대로 먹을 것이 없어서 점점 더 말라가면서도 대책도 없고 도움도 안되는 나를 채찍질하고 바로세워주는 고마운 돕...(제발 돌아갈 때까지 건강해줘요...)

 

그들과 함께 할 수 있어서...

나는 참 행복하다...

그들을 만날 수 있어서...

나는 참 고맙다...

그 어떤 사람들을 만난 것보다...

지금의 시간들을 결코 잊을 수 없다...

나의 피 속에...눈물 속에 가지런히 챙겨서...

또다른 내가 될 이들과 함께하고 같이 살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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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nge

초등학교 교사출신, 35세 초선의원으로 최연소총리대신 아사쿠라 케이타.

 

키무라 타쿠야의 새배역.

 

헤에...초반 얼빵하던 이미지는 어느새 역시나...이미지변신인가 싶더니 원래의 또릿또릿하던 이미지로 다시 돌아왔다...뭐 별로 상관없지만...

 

일본은 그 정치나 사회가 가진 보수성에 비해 꽤나 드라마들이 교조적이다.

원론적인 얘기들만 한달까나...

 

그래도 이건 좀 의외다...

 

정우당 총재 선거에서의 연설은...연기를 넘어서 뭐랄까 처음 접하는 키무라 타쿠야의...본심을 내비쳤달까...

이 사람도 이럴 때가 있군 싶은...

 

누구나 꿈꾸던 정치가가 극 안에 있었다...

 

그렇지만 정말이지 놀라웠던 것은...

 

댐 건설로 인한 물해파리 발생의 인과관계를 국가가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그 피해와 복구에 대해 적극적인 배상 의지를 실현했다는 것.

 

드라마를 평가하고 싶지는 않고...

 

새만금이 떠올라서...또 월곶 앞바다가 떠올라서 울컥 치밀어 올랐다.

 

이전 사무실에서 일할 때,

원폭2세환우들과 접할 기회가 있었다.

 

사실 우린 어려서부터 알고 있고 환경문제가 나오면 늘 듣는 것이 원자력,

특히 방사능 오염의 치명적 위험이다.

그러니 북핵이니 뭐니 지겹도록 물고 늘어지는 것이고.

 

그런데 젠장할 국가는 웃기지도 않는다.

 

원폭2세환우들의 유병율이 일반인의 유병율의 몇십배, 혹은 몇백배에 달해도,

의미있는 수치라는 의학적 판정에도 불구하고

발병원인이 방사능에, 피폭의 유전에 의한 것인지 명확한 인과관계를 증명하기 전까지는 전혀 인정해줄 수도, 지원해줄 수도, 보상해줄 수도 없단다.

 

원폭피해환우들과 2세, 3세, 4세에 이어지는 높은 유병율과 사망율, 그리고 그 안에서 일어나는 첨예한 갈등과 갖가지 입장들에 대해 정부는 궁금해하지도, 이해하지도, 해결하지도 않는다. 그럴 의지도 없다.

 

대의민주정치에도, 또 정부나 국가의 존재에 동의하지 않지만,

현재의 상황에서는 국가가 존재하고 또 그 국가의 권위에 맞서 개개인의 생존권과 존엄을 지키려면 이러한 것들을 깨뜨려야 하는데...신선했다.

 

법정 드라마에서 승소했다거나 하는 스토리였다면 뭐...놀라지도 않았겠지만...

행정부의 수장이 국가의 잘잘못을 스스로 납득할 때까지 공부하고 드러난 사실과 잘못에 대해 솔직히 인정하고 1심 재판부의 국가배상판결에 공소를 포기하는 그 과정이 인상깊었다.

 

국가라는 체제 자체를 불신하고 또 궁극적으로 없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투표권을 쉽사리 포기하지 못하는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원이 된 것은...그런 사람이 한사람쯤 있지 않을까, 국가가 사라지는 그 과정에 국가의 권위보다 생명의 권리를 우선하는 그런 사람이 한사람쯤 나타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에서다. 뭘 아직까지 기대하고 있는지...이런 기대를 가지느니 내가 직접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행동하는 것이 더 중요하겠지만...말이다.

 

어쨌거나 총리이기 이전에 한사람의 인간으로서 문제에 충실히 직면하고 직접 움직이는 그 캐릭터 자체가 꽤나 인상깊다...

근데 이거 왜 시청률이 안나오는거냐...

너무 키무라 타쿠야 스러워서 그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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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마다...

점점 종교가 아편이라는 말에 동의하게 된다...

학부시절에는...그 말을 뒤집기 위해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내가 무엇을 해야할지 고민하고 치열한 삶을 살아야겠다고 나 자신을 채찍질하곤 했었는데...

이건 뭐...

확실히 아편이다.

특히 기독교는 강력한 환각증상과 뇌신경마비를 동반하는 향정신성 약물이다...

어찌나 강한지 정신까지 마비가 아니라 아예 개조시켜버리는 듯...

무섭다...

혹세무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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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어로 고양이 소개하기

私(わたし)たちは 韓国(かんこく)から来(き)ました.

우리는 한국에서 왔습니다.

'G'は かんこくの"鼠(ねずみ)"という単語(たんご)と同(おな)じ発音(はつおん)です.

알파벳 G는 한국어의 '쥐'라는 단어와 같은 발음입니다.

それで私(わたし)たちは鼠(ねずみ)八(は)つ匹(ぴき)を捕(と)る猫(ねこ)で扮装(ふんそう)しました.

그래서 우리는 쥐 여덟마리를 잡는 고양이로 분장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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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간다 私たちは行

우리는 간다

私たちは行く

わたしたちはいく

 

우리는    간다 인민의 의지    우리는  도전한다  법과 질서 억압의 굴레

(わたしたちはいくじんみんのいしわたしたちはちょうせんするほうとちつじよくあくのくびき)

 

取り戻すために行く.

(わたしたちはいくうばられたひとびとわたしたちのものとりもどすためにいく)

 

우리는 평화    모두의 땅 씨앗을 뿌려 황무지를 갈고 일할 뿐이다

(わたしたちはへいわみんなのちたねをまきおれちをたがやしてはた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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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나키즘의 역사 1

프루동 바쿠닌 절대자유주의 저항 혁명 조직화 자유 죄의식 유물론 관념론 앙시앵레짐 국민국가 국민 선험적으로 자유로운 존재 플로베르 앙드레 지드 절대자유주의 초현실주의 브르통 아라공 엘뤼아르 페레 생디칼리슴 슈티르너 아나키즘과 여성주의 마흐노 인터내셔널

...

 

아직 초반부를 읽고 있지만...

 

민중이 권력을 획득한다는 것은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것과 일치하지 않다.

민주주의 하에서는 필연적으로 인민의 권력을 박탈당한다.

 

근데 나 이렇게 말하려면...민주주의부터 공부해야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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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의 과대망상

"개인은 이기적이어서 질서를 해치는 행동을 자발적으로 자제하지 않는다. 따라서 공공선이 있다는 사실을 자명한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된다. 질서는 하나의 공공선이다. 개인이 이기적인 한, 자신은 기여하지 않으면서 타인 혹은 타집단이 제공하는 선의 총량으로부터 이득을 얻으려는 무임승차자가 되려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자신으 기여에 상관없이 공공의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것을 전제하지 않으면 안된다. ... 폭력의 집중과 정치적인 전문화의 부재, 폭력에 대한 통제권이 평등한 사회. ..."

- 구승회 '저주받은 아나키즘' 역자 서문에서

 

성선설에 동의하지도 않고 인간은 필연적으로(?) 원래 자기중심적이고 나약하기 때문에 모든 권력과 권위가 해체된 상태, 참 자유의 세상이 가능할 것인가에 대해 의심하고 두려워 했었다. 과연 가능한가? 라는 질문 앞에서 항상 '지구상에 인간이 사라진다면'이라고 대답했었는데...

막상 저렇게 활자화 되어서 결국 '질서'를 공공선으로 요청해야 한다는 것이 왜 이렇게 불편한지.

사람은 악할 수 있지만 죄를 짓지 않는다는 말에 공감하면서도 깊이 동의할 엄두가 나지 않는 것은 나 자신이 가지고 있는 피해의식, 피해자로서의 정체성으로 인한 윤리적인 강박관념 때문이다.

 

여성으로서 늘 잠재적 피해자라는 과대망상이 나를 좀먹고 있고 그래서 더욱 불행하다.

 

과거 남성이길 바랬던 것이, 남성이 되고자 소망했던 것이 권력과 힘, 그리고 가부장으로서의 권위를 획득하고 정당성을 획득하기 위해서였다면 지금은 이 지긋지긋한 피해자의 과대망상의 덫으로부터 도망가기 위해서이다. 이 망령을 떨쳐내지 못하고, 극복해내지 않는다면 나는 계속해서 같은 자리를 맴돌며 발버둥칠 뿐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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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내셔널가

인터넷을 돌아다니다가...

에스페란토어버전과 일본어버전을 찾았다...

일본어버전은...soul flower(????) 이라고 들은 것 같은데... 기억이...가물가물...

(재검색하기...귀찮아져버림...)

암튼...굉장히 일본적인 느낌이 강해서...

얏사이 못사이 같은 느낌이랄까...즐겁네...

중간에 あっ それ 완전 대박...흥겨워

아레레...용량이...넘어버려서...파일은 담에 올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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