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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추억>에 실린 김 훈선생님글 일부...

중학교 때 나는『허클베리 핀의 모험』이라는 소설에 빠져 있었다.
학원사에서 나온 청소년용 문고판이었는데, 겉표지는 노란색이었고

삽화가 들어 있었다.

마크 트웨인의 소설 중에서도 허클베리는 톰 소여보다 훨씬 더 재미있었다.

허클베리는 공부 못하고 집구석은 가난하고 싸움 잘하고

말썽만 부리는 불량청소년이었지만, 미지의 세계에 대한 동경과

모험심으로 가득 차 있었고, 그 동경을 실천할 수 있는 결단성과

행동력을 가진 소년이었다.


허클베리네 아버지는 술주정뱅이에다 돈은 안 벌어오고 집에도 안 들어오는

사내였다. 다시는 술 안 먹겠다고 아들한테 맹세해놓고서 그 다음날 대낮부터

또 마시는 사내였다. 어렸을 때 나는 내 아버지가 허클베리 아버지와 비슷하다고 생각했었다.  중학교 1학년 때였던가. 천지분간 못하는 나는 어느 날 모처럼 집에 온 아버지에게 물었다.



그때 아버지는 술에 취해 있었는데, 내 말이 무엇을 겨누고 있는
지를 대번에 알아차렸다. 아버지가 허공을 올려다보더니 한참 뒤에
말했다.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아버지는 또 말했다.



아버지에게 말을 달릴 선구자의 광야가 이미 없다는 것을 나는 좀
더 자라서 알았다. 아버지는 광야를 달린 것이 아니고, 달릴 곳 없는
시대의 황무지에서 좌충우돌하면서 몸을 갈고 있었던 것이었다.

“내 말이 너무 어려우냐?”
“광야를 달리는 말이 마구간을 돌아볼 수 있겠느냐?”
“아버지는 꼭 허클베리네 아버지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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