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비

여기는 장애인활동지원 관련 글만 모아놓는 곳. - 아비

저는 좀 편하게 일하고 싶습니다.

이제 3살 된 아들을 두고 있는 선배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아이를 데리고 밖을 돌아다니다 보니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게 된다고 말입니다. 편의점 가장 아래쪽 매대는 사람들이 잘 보지 않고 지나치게 되는 곳입니다. 하지만 장사를 하는 사람들은 그곳에 시선이 미치는 사람이 누구이며, 그 사람은 어떤 욕망을 가지고 어떤 물건을 사는지 참으로 민감하게 반응합니다. 3살 아이의 시선이 머무는 그곳에는, 편의점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아 보이는, 조그마한 장난감 자동차가 놓여 있었고, 아이는 그것에 반응하고 있었습니다.

활동보조인을 하면서 제가 새로이 느끼는 것들이 많아졌습니다. 이용자와 함께 밖을 돌아다니다 보니,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비장애인으로서는 느끼지 못할 불편이, 이용자의 발이 되어 그의 휠체어를 끌고 있는 저의 신체에, 직접적으로 느껴지는 것입니다. 비장애인들이 쉽게 말하는 평지라는 것들이 우둘투둘한 보도블록으로 그의 바퀴에 전해질 때 저의 팔도 요동치고 있었고, 그 평지가 배수를 위해 약간만 기울어져 있어도 그의 한쪽 바퀴로 쏠리는 무게가 저의 팔에 여과 없이 전해지는 것입니다. 사람이 지나다니는 인도 사이를 빡빡하게 채워 주차된 차들을 마주할 때면, 휠체어가 빠져나갈 수 없어 돌아가야만 하는 불편이 저의 신체에 직접적으로 다가옵니다.

그런가 하면, 평소 무관심하게 지나치곤 했던 장애인을 바라보는 시선이 어떤지에 대해서도 직접적으로 느껴집니다. 어떤 이는 기도하면 낫는다고 열심히 기도하라는 충고를 하는가 하면, 어떤 이는 자신이 한의사라며 잘 주무르면 낫는다고 무작정 이용자의 몸을 주무를 때가 있었습니다. 어떤 보호의무도 함께 갖고 있는 활동보조인은 그런 일상적인 외부의 폭력을 매일 마주하게 됩니다. 어떤 할머니는 멀찍이 서 있다가 노골적으로 다가오며 이용자를 훑어보더군요. 무슨 일이냐는 물음에 너무 안 돼 보여 쳐다보고 있었답니다. 이런 반응들에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요? 저는 공격적으로 반응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쯤 되니 저를 보며 좋은 일 하고 있다는 주변의 시선도 부담스러워지기 시작했습니다. 어쩌면, 이 좋은 평가는 장애인들을 바라보는 폭력적 시선의 반쪽이기도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제가 하는 일이 좋은 일이라는 판단은 휠체어를 밀어주는 사람들이 하는 일은 시혜적 요소를 담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비장애인들의 관점이 녹아있습니다. 종종 아이교육을 걱정하는 주부들이 이런 자원봉사는 어디가면 할 수 있냐는 질문을 하기도 합니다.

저의 이용자는 센터에서 주관하는 자립생활 교육을 받곤 합니다. 제가 활동보조인이기에 함께 그 교육을 듣게 되는 경우가 많은데, 많은 장애인 분들은 활동보조인 바우처 시간이 더욱 많았으면 좋겠다는 희망을 밝히곤 합니다. 그리고 뜻밖에도 활동보조인의 노동권보호와 관련된 희망들을 밝히는 경우도 있습니다. 활동보조인들이 안정적으로 일할 수 있어야 활동보조인의 공급이 원활할 것이며, 그것이 이용자분들의 복지와도 직접적으로 연관되기 때문입니다.

저는 길들이 조금 더 평평했으면 좋겠습니다. 그것은 장애인 분들이 보다 편했으면 좋겠다는 선의의 감정에 발로가 아니라, 활동보조인으로서 느끼는 어떤 직접적인 불편함이 조금 더 감소했으면 좋겠다는 희망입니다. 저는 비장애인들이 장애인들에게 어떤 이상한 시선을 보내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활동보조인으로서 느껴지는 시선의 불편함이 더 이상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니까 저는 좀 더 편하게 일하고 싶습니다. 그런데 그게 그렇게 나쁜 것 같지는 않습니다. 제가 조금 더 편하다는 것은 그만큼 장애인들이 편안한 세상이기도 한 것이니까요. 거창한 선의와 배품은 세상을 변화시키기 보다는 폭력으로 다가오는 것 같습니다. 가끔 이런 일 왜 하냐고 물어 오시는 분들이 있는데, 저는 그냥 돈 벌려고 이 일을 할 뿐입니다.

—————————————————

노들장애인자립생활센터에서 발행하는 계간지 〈노들바람〉에 원고청탁받아 쓴 글. 2011년 9월 글.

2011/09/26 21:16 2011/09/26 21:16
엮인글 : 0 개 댓글 : 0 개 태그 :
http://blog.jinbo.net/abi/trackback/6
최근 글 - RSS - Atom 최근 응답 - RSS - Atom

프로필

  • 제목
    아비
  • 이미지
    블로그 이미지
  • 설명
    여기는 장애인활동지원 관련 글만 모아놓는 곳.
  • 소유자
    아비

공지사항

찾아보기

글 분류

달력

«   2024/04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기간별 글 묶음

저자 목록

최근 트랙백 목록

방문객 통계

  • 전체
    35006
  • 오늘
    10
  • 어제
    6
진보블로그텍스트큐브에서 제공하고, 콰지모도가 스킨을 꾸몄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