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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교회 공동체에서의 그리스도인 사이에는 ‘철저한 교환’(intensive exchage)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부유한 그리스도인이 가난한 형제 자매들에게 물질을 나누어 주었고, 계층간의 물질 소유의 평등화가 이루어졌다. 이러한 평등화는 물질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 레인 폭스(Robin Lane Fox)가 지적한 것처럼 ‘기독교는 사회에서 가장 소외된 집단의 사람들이 의사표시를 할 수 있게 했다.’ 초대교회 공동체 기독교인들에게는 포용(inclusivity)과 관용(generosity)이 있었다.
그리스도인의 공동체는 그리스도 안에서의 평등을 표현하는 의식인 평화의 입맞춤을 통해서 평등과 평화를 만들어 갔다. 이것은 초대 기독교 공동체 안에서 매우 중요한 것이었다. 다양한 배경의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함께 화해(reconciliation)를 경험하였다. 거룩한 입맞춤은 예배의식의 몸짓만이 아니라 ‘혁명적인 사회적 결속과 근본적 평등에 관한 표현이었다.’ 초대 기독교인들은 원형경기장에서 ‘평화의 입맞춤’으로 순교를 확증하였다. 이런 ‘평화의 입맞춤’은 평화의 공동체의 예배의식의 중요한 한 부분이었다. 그것은 교회 안에서 성령의 임재를 축하하고 서로 교통하는 것 뿐만 아니라 평화와 신자들의 관계를 회복하기 위한 인사였다. 초대 기독교인들은 평화의 입맞춤이 없는 기도와 성만찬은 무의미하고 헛되다고 믿었다.
그러나 콘스탄틴이 로마를 통치하게 되면서 기독교인에 대한 박해의 역사는 끝이 났고 교회는 제국이 선택한 종교가 되었다. 로마군에 의해 십자가에 못박혔던 예수가 로마 제국의 구세주로 경배되게 된 것이다. 교회는 순교의 시험을 성공적으로 견뎌왔으나 호의의 시험을 받게 된 것이다. 기독교는 법적, 제도적 종교가 되었고, 기독교인이 아닌 사람들이 핍박을 받게 되었다.
기독교국가사회(Christendom)를 통하여 기독교는 상류사회로 들어섰다. 기독교의 가치를 공표한 문명이 탄생하였고, 기독교는 강권적이고 선택의 여지가 없는 종교로 변해버렸다. 그리고 국가 교회 공동체 안에서 그리스도인이 되는 방법과 의미가 바뀌어 버렸다. 4세기 초에 작성된 이집트의 파피루스는 교리문답 수강자를 권고하는 편지로 나중에 이름을 기입할 수 있게 한 형식의 문서가 발견되었다. 이 문서를 작성한 공동체에서는 세례지원자를 받아들임에 있어서 문답대신에 상투적 절차를 밟았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은 얼마 전까지 순교로 믿음을 나타냈던 것과는 매우 다른 일임에 분명하다.
제자도의 변화는 세례에서도 분명히 나타났다. 로마 황제 유스티아누스 1세는(Justinian Ⅰ) 유아세례를 황제가 제정하는 법으로 만들었다. 국가 교회에서 회심에 대한 유일한 가르침의 수단은 대중 설교만이 남아 있었다. 이는 기독교가 로마제국의 종교로 공인되기 이전의 관점대로라면 회심이라는 것은 극히 소수의 것으로만 남게 된 것이다. 초대 교회의 공동체는 단순한 종교적 공동체가 아니라 실천적 공동체, 정치적 공동체였다. 하지만 콘스탄틴 이후로 교회는 사회 지배체계 속으로 들어가거나 그것을 종속시킴으로 초대교회의 모습을 상실하였다.
기독론(基督論)은 시대가 지나면서 끊임없이 신학적으로 재해석되어져 왔다. 초기 교회의 기독론의 전통에서부터 종교 개혁, 근대 이후의 기독론은 예수와 그리스도 사이의 재해석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기독론의 인식의 지평은 때로는 정치적인 수단으로 이용당하기도 하였다. 하느님 나라의 선포자였던 예수는 선포(宣布)되는 자가 되었고, 그가 비판하였던 제도권 체제 속에 갇히게 된 것이다.
몰트만은 『십자가에 달리신 하느님』에서 예수가 그리스도로 고백되는 바로 거기에 기독교 신앙이 있다고 하였다. 이것이 의심스러워지거나 흐려지거나 혹은 부인될 때 기독교 신앙은 존재하지 않게 되며 역사적 기독교의 중요성도 몰락하게 된다. 또한 몰트만은 ‘예수에 대하여 신앙을 고백하고 말씀과 행동과 새로운 결합을 통하여 그의 자유하게 하는 통치를 그의 뒤를 따르면서 확장시키는 사람들이 있는 한, 기독교는 살아 있게 된다’고 하였다.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과 삶과 죽음과 부활의 의미를 새로운 지평으로, 아나키적 지평으로 이해해야 하는 중요한 이유이다.
기독론은 공동체가 처한 문화적 배경과 물음 위에서 정립되어진다. 기독론은 인간의 다양한 상황과 인식 속에서 새롭게 고백되어지는 것이다. 예수 시대에도 지금과 유사한 민족주의, 경제적 억압, 탐욕, 폭력, 권력의 남용, 교만한 개인주의 같은 문제들이 드러나 있었다. 이러한 시대적 상황 속에서 예수는 성전정화 사역을 통하여, 합법적으로 성전에서 헌금과 희생제물을 파는 이들을 공격하였고, 하느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 없다는 반자본주의를 가르쳤다. 이렇게 예수는 합법화된 제도를 뒤집었고, 지배 이데올로기를 거부하였다.
그러나 예수를 고백하는 교회는, 왕정시대에는 군주제주의자였고, 제국시대에는 제국주의자였으며, 공화국하에서는 공화국주의자가 되었다. 이는 현 세상의 개념에 순응되어서는 안된다는 바울의 말과도 반대되는 결정이다.
신학함에 있어 몰트만은 하느님에 관해 말한다는 것은 단순히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인가 만을 질문하는 것이 아니라 나아가 특정한 상황 속에서 하느님에 대해서 말하는 것과 침묵하는 것이 어떤 공적인 영향을 미치는지에 관해서도 물어야 한다고 하였다. 신학은 방법론적으로 통시적(diachronoc)이며, 공시적(synchnic)인 특성을 지닌다. 신학 방법에 있어 역사를 통한 통시적 고찰은 중요시 된다. 그리고 시대와 맞물려 있는 공시적 시각 또한 간과해서는 안된다. 정치신학은 기독교 신학에서 정치적 자의식을 일깨우고자 하는 신학이다. 몰트만은 비정치적인 신학은 그들의 침묵으로서 보수적인 정치와 더불어 견고한 동맹을 맺는 다고 비판하였다. 이에 비추어 아나키적 신학은 ‘무강권’의 반정치를 논하는 정치신학적인 특성을 가진다.
필자는 고전적 기독론이 가지고 있는 한계를 밝히고 아나키스트 기독론을 제시하고자 한다. 또한 성서와 교회사 속에 이미 있었던 아나키적 기독교를 재발견함으로 아나키를 통한 기독론의 지평의 확대를 통해 다양한 내용들을 전개할 것이다. 또한 존 하워드 요더(John Howard Yoder)와 자크 엘룰(Jacques Ellul)의 신학 작업과 저서를 중심으로 아나키적 기독교를 살펴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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