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질도 갑질이지만...

category 감놔라 배놔라 | Posted by 오씨 부부 | 2019/04/25 17:05


 

몇 년 전, 한 아파트 주민이 경비원의 뺨을 때리며 갑질을 했다고 해서 시끄러웠던 적이 있었죠. 공교롭게도 그 무렵에 길을 잘못 들어 바로 그 아파트 단지 입구에서 차를 돌려야 할 일이 있었습니다. 아파트 단지 입구는 대개 차로가 좁아서 차를 돌리기가 쉽지 않죠. 게다가 큰 도로와 연접해 있다면 더더욱 그렇습니다. 어쩔 수 없이 단지 안으로 들어가서 차를 돌려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는데, 입구에는 바리케이드가 내려져 있었습니다. 경비원이 바리케이드를 올려주면 단지 안으로 잠깐 진입해서 차만 돌려 나가면 그만인 상황이었습니다.

 

경비원 : (차가 접근하자) 왜 오셨어요?
전순호 : 네, 잘못 들어와서요, 차를 돌려서 나가려고 합니다.
경비원 : 왜 오셨어요?
전순호 : 잘못 들어와서요, 차만 들려서 바로 나갈 겁니다.
경비원 : 왜 오셨냐고요!!!
전순호 : (차 안에서 대답하고 초소에서 들으니 잘 안 들리나 싶어 조금 큰 소리로, 오해하면 안 되니 미소를 머금고) 예, 내비를 잘못 봐서 잘못 왔어요, 차 돌려 나가려고요.
경비원 : (언성 높아짐) 아니, 왜 왔냐니까요?!!!
전순호 : (차에서 내려서 갑질한다는 소리 안 들으려 초소에 다가가서) 아, 예, 수고 많으십니다. 길을 잘못 들어서 차를 돌리고 싶습니다.
경비원 : (눈빛이 거칠어지고 언성 계속 높아짐, 한대 칠 기세임) 아, 그러니까 왜 왔냐고요!

 

이후로도 똑같은 대화가 여러 번 오가고, 어쩔 수 없이 언성을 높이니 그제야 투덜거리며 바리케이드를 올려주고, 외길에서 차를 돌려서 나올 수 있었습니다. 바리케이드를 쉽게 열어주면 안 되는 업무 규정이라도 있었을까요? 지금 생각해 봐도 궁금합니다. 참고로 재작년 하필 그 아파트로 이사를 하고 나서 보니 잘못 들어와서 돌아나가는 차들이 종종 있다는 것을 확인하며 살고 있습니다.

 

또 한 번은 이런 적도 있습니다. 어떤 지방 도시에 갔다가 한 마트에서 20대 초반의 어린 여점원한테 편육 있냐고 물었습니다. 참고로 전순호가 이제 예순이 다 되어 가고, 친한 사람에게도 반말은 잘 안 씁니다.

 

전순호 : 아, 혹시 여기 편육 있습니까? 잘 못 찾겠네요.
점원님 : 편육이요?
전순호 : 편육이요, 냉면에 넣어 먹는 편육이요.
점원님 : (얼굴을 찡그리고 이게 뭔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냐는 경멸 섞인 눈빛으로 아래 위를 훑어보며 빈정거리는 말투로) 편육을 왜 냉면에 넣지? 그런 거 없어요.(홱, 돌아서 가버림)
전순호 : ???

 

편육은 얇게 저민(썬) 고기를 말하는 것이지 돼지고기를 말하는 게 아닌데, 표정이나 눈빛으로 보아 술안주로 쓰는 돼지 머릿고기 누른 것을 떠올린 모양이었습니다. 뭐, 아직 젊다보니 뜻을 모르는 거야 이해하지만, 그 태도가 심히 불량했죠. 어리다고 너그러이 이해할 수준을 벗어날 정도로요. 그렇다고 눈빛이나 표정처럼 주관적으로 해석되는 것을 가지고 따지고 들 수도 없어서 기분만 상해서 더 살 것이 있었지만 나와버렸습니다. 어린 사람한테 존대말을 너무 잘 써줘서 오히려 바보로 보였나 싶은 생각까지 들더군요. 역시 겸손은 강자의 미덕인가 봅니다.

 

손님이 왕이라고는 해도 그건 손님을 맞아들여야 하는 쪽의 자세를 구호화한 것이지 손님쪽에서 나는 왕이다라고 여겨서는 곤란합니다. 마찬가지로, 먹고 살기 위해 가장한 친절도 오히려 손님 입장에서는 때론 불편하기까지 합니다. 상인과 손님은 물건을 거래하는 순간을 빼면 그저 평범한 이웃인 관계가 제일 좋습니다. 물론 오늘날 사회에서는 노스탤지어에 불과할지도 모르겠지만요.

 

아무튼 친절을 요구할 생각도 없고 그저 사무적이고 원론적이기만 해도 충분히 만족스러운데 왜 굳이 과도한 친절을 요구하고 그게 충족되지 않으면 행패를 부리나, 갑질 사건들을 보면서 그런 생각을 했는데 경우에 따라서는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애는커녕 친구나 동생과도 어울릴 줄 모르는 어린 사람들이 어린이집 교사를 하거나 음식이 주는 행복을(맛이 아니라!) 모르는 사람들이 식당을 차리고, 공공에 대한 봉사라는 마인드 없이 공무원을 하고 학생을 가르칠 소양도 없이 오직 외국 박사학위라는 것만으로 교육자의 길을 걷습니다. 지식수입상조차도 못하면서 연구자를 칭하고 생명에 대한 경외나 사람의 마음조차 모르면서 의사를 합니다. 정의감도 없이 경찰을 하기도 하고요.

 

주변에서 들은 이야기입니다. 갑자기 어른이 쓰러지셨답니다. 119에 요청하여 부친을 옮기는데, 119대원이 묻더랍니다.

 

대원님 : 어느 병원으로 갈까요?
보호자 : 제일 가까운 병원이요, 여기서 OO병원 응급실이 가장 가깝습니다.
대원님 : 만약 거기에 병상이 없으면 (다른 병원으로 옮기는 동안 환자가 사망할 경우) 책임은 본인이 지셔야 해요.
보호자 : 아니, 내 입장에서 어느 병원에 병상이 남는지 어떻게 아나요? 남는다는 대답을 듣더라도 가는 도중에 꽉 찰 수도 있을 텐데요?
대원님 : (픽 웃으며) 평소에 환자 건강 안 챙기세요?
보호자 : 건강하셨는데 갑자기 쓰러지신 겁니다.
대원님 : 전화 자주 안 드리세요?
보호자 : 오전 오후로 드리는데, 자주 드려도 갑자기 쓰러지면 어쩔 수 없죠, 근데 그건 왜 묻죠?

 

당신 같은 불효자 때문에 우리가 고생한다는 경멸적인 눈빛와 한심하다는 헛웃음을 연신 해대는 대원들에게, 후송해 줘서 고맙다고 인사를 하니 스무 살은 더 젊은 사람이 차창과 운전대에 발을 얹고 고개 하나 까닥 않은 채 눈길도 주지 않으며 건성으로 네, 그러고 말더랍니다.

 

작업복 걸치면 우습게 보고 인격 모독한다며 분노를 터트리는 그 사람들도 상대방이 캐주얼이나 아웃도어 입고 있으면 역시 막말에 막돼먹은 표정과 눈빛으로 대합니다. 주위 사람들의 공통된 얘기로는 비슷한 연배의 남자들이 여럿 있거나, 정장에 머릿기름 바르고 큰 차라도 몰고 나가면 그런 불쾌한 대접을 덜 받는다고 합니다. 나 역시 그런 상황을 충분히 이해합니다. 이 사회에서 살아본 경험이 공유되는 탓이겠죠. 누가 누구를 욕하면서 세상탓을 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래서 모욕을 느끼지 않으려고 더 고생스럽게 돈을 벌려 애씁니다. 돈 벌어서 비싼 서비스를 받음으로써 불쾌한 일을 안 겪으려는 것, 누구도 지적하지 않지만 정말 중요한 사회적 경쟁의 큰 동기입니다.

 

뒤집어 말하면, 우리가 인간관계를 품위 있고 예의 바르게 한다면 지출을 훨씬 덜하고 살 수 있을 겁니다. 사회 전체가 건강하고 타인에게 친절하고 배려할 줄 안다면 사회적 압력도 훨씬 줄어들 테고 개인들도 스트레스를 덜 받을 겁니다. 몸이 건강해지고 불필요한 지출도 줄일 수 있습니다. 그걸 꼭 숫자로 보여줘야 이해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더군요. 뉴스에 나오는 거의 모든 숫자가 다 엉터리 주먹구구에 의해 나오는 거라는 걸 충분히 사람들이 깨달을 때가 되었는데도 말입니다.

 

업무 시간에는 노동자이지만 퇴근하면 소비자가 되는 것처럼, 갑질당하는 사람과 갑질하는 사람이 나뉘는 것이 아닙니다. 법적으로 책임을 묻기도 좀 그렇고 따지고 나서기도 좀 그런... 딱 그 수준에서 상대방에게 역갑질을 하는, 그리고 항의라도 받으면 약자임을 내세워 상대방을 갑질로 몰 테세가 갖춰진 사람들이 분명 눈에 뻔히 보입니다. 뭐, 그 사람들이라고 늘 그런 것은 아닐 테지만 아무튼 온라인 행정, 무인 판매, 자율 주행 등등 하나라도 대인관계를 줄이는 쪽으로 세상이 변해가는 데에는 가격 경쟁과 편의성만이 아니라 서로가 서로에게 주는 껄끄러움 탓도 분명 있을 것입니다. 결국 자신들이 만든 세상이 결국 자신들을 옥죄는 거겠죠. 부자되고 싶으면 서로가 서로를 소중히 대해야 합니다. 서로 칭찬과 위로를 줘야 합니다. 그래야 불필요한 지출과 사회적 낭비를 줄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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